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에코의 장편 소설 “장미의 이름”은 언젠가는 한번 읽고 싶었던 책 중의 하나였었다. 박식한 기호학자가 쓴 소설이란 점에서 궁금했다. (그의 난해한 저서“기호학이론”을 먼저 읽어서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책을 살 때마다 항상 우선 순위에 밀리곤 했었다. 재작년 봄 알라딘의 도스또옙스끼 선집 세트 이벤트에 포함되어 있어서 드디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도 다른 책들에 쫓겨서 오래 동안 서가의 장식품으로 있어야 했다. 작년 연말 한가해져서 읽기 시작했었는데 역시 추리 소설이란 매력에 흡인되어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신비에 쌓여 있던 중세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추적한 미스터리이기에 결말을 궁금해서.... 특히 몇 해 전 TV에서 영화로 방영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보다가 조는 바람에 결말을 몰라 아쉬워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 때 졸랐던 것이 이번에 읽으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사물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캐어내는 기호학자의 이 소설엔 음미할 대목이 많다.

진리에 대한 자기 기준에 광신한 나머지 전설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을 숨겨 놓기 위해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이성적인 수도사 윌리엄이 날카로운 지적들,

“서책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새로운 탐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삼는 것이 옳다. 서책을 대할 때는 서책이 하는 말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신학적 미덕에는 믿음 말고도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가능할 거라는 희망이고 또 하나는 가능하다고 믿는 인간에 대한 자비이다.” ff 588-9.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쫓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897.

 

 

 

 

 

 

 

 

 



장미의 이름 속표지

결말 못지않게 궁금했던 것은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 화자인 아드소의 회고록인 이 책의 말미에 쓴 마지막 구절이 내 마음에 아프도록 새겨진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911.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덧없음이란 우리를 그토록 기쁘게 해주던 아름다운 장미는 사라지고 그 이름만이 추억으로 주어질 뿐이다.
어쩌면 기호학자가 발견해낸 인생이란 의미를 이 한 구절에 농축시켜 놓기 위해 이 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 2004-01-17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아하는 멋진 소설 중의 하나랍니다. 어찌하다 잃어버려서 두 번을 사고, 작심하고 다시 읽어도 흥미진진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었던 책이죠. 이 소설에 관한 에세이도 나왔고 후속작인 '푸코의 진자'도 꽤 재밌게 읽었어요. 천재의 글쓰기에 대한 보통 사람의 감상은 한숨을 동반하더군요.

이로운삶 2004-01-1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보통 사람들로서는 천재들이 가는 길을 선망의 눈으로 찬탄하며 따라갈 뿐이죠.
그럼으로서 우리 자신을 좀더 넓힐 수 있고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겠죠...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