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의 고향을 찾아서] '페스트' 알베르 카뮈

②알제리 오랑에서
바다에 등 돌린 채 달팽이처럼 맴도는 길 순수와 해방이 걷고 있다
실직·결혼·증오로 점철된 ‘방황의 무대’ 몸 의탁했던 처가는 아랍식
거리에 그대로
글·사진=김화영 고려대 교수·불문학
입력 : 2005.05.26 18:51 25' / 수정 : 2005.05.26 19:19 14'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무대인 오랑은 알제에서 서쪽으로 423㎞나 떨어진 항구 도시다. 공항에 마중 나온 오랑 여행사 하데피는 카뮈에 대해서 잘 아는 체 했다. 그러나 그는 2차대전의 상징인 ‘페스트’가 정말 1940년대 오랑에 퍼져 많은 사람이 죽은 것으로 오해하여 열심히 소설 같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카뮈는 소설 ‘페스트’의 첫머리에서 오랑을 ‘특이한 것도 없고 초목도 없고 영혼도 없는’ 평범한 도시로 소개했지만, 내겐 상쾌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가도는 해변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 있고, 종려나무들이 규칙적으로 늘어선 넓은 인도에는 철제 벤치들이 놓여 있으며, 사람들은 난간에 기대어 한가로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뮈의 작품에서 오랑 자체는 늘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페스트’로 폐쇄된 도시. 이 도시에 바친 긴 산문 ‘미노타우로스’에서 카뮈는 이렇게 묻는다. ‘공허, 권태, 무관심한 하늘, 이런 곳들의 매력은 무엇인가?’ 그러나 권태는 오랑 자체라기보다는 그곳에 머물었던 카뮈 자신의 내면풍경이었다.


▲ 카뮈의 소설‘페스트’의 무대가 된 오랑 시내 풍경.
‘페스트’의 화자가 오랑을 ‘완벽하게 금을 그어놓은 듯한 만을 등지고 있어서 바다를 바라볼 수가 없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야만 바다를 볼 수가 있다는 점’이 유감이라고 한 것은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도시 서쪽 언덕에 위치한 터키 요새에 올라가서야 깨달았다. 눈앞에 펼쳐진 도시가 바닷가 ‘언덕들에 에워싸인 채 헐벗은 고원 한가운데’ 올라 앉아 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과연 요새 뒤에 파묻힌 시가지는 ‘바다에 등을 돌린 채’ 길들이 ‘달팽이 껍질처럼 맴돌며’ 위로 뻗어 오르고 있었다.(‘미노타우로스’)

높은 산타 크뤼즈 산허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내려다본다. 오른쪽으로 구시가 가장자리 절벽들, 왼쪽은 메르 엘 케비르. 주름 하나 없이 짙푸른 바다. 그러니까 오른쪽 도시는 권태와 ‘페스트’,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보이지 않는 모래밭은 순수함과 해방의 공간인 것이다.

카뮈는 전쟁 중 두 번 오랑에 체류했다. 두 번 다 실직자 신세였다. 1939년 여름, ‘알제 레퓌블리켕’ 신문이 폐간 위기에 처하자 젊은 기자 카뮈는 실직자가 되었다. 친구들과의 그리스 여행계획도 2차대전의 발발로 무산된다. 군에 입대하고자 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그마저 좌절. 1940년 초 그는 오랑에 자리 잡는다. 오랑 출신 여자 프랑신 포르와 약혼했다.


▲ 푸르디푸른 지중해를 품에 안고있는 도시 오랑의 전경.
그녀의 어머니 페르낭드는 세 딸과 아르죄 가의 65번지에 산다. 카뮈는 잠시 그곳에 몸을 의탁한다. 나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폭이 좁고 긴 아르죄 가로 가 보았다. 아랍식 이름, 라르비 벤 므히디 가로 바뀐 거리에 그 집은 건재하고 있다. 알제에서처럼 그 65번지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줄 안내자는 없었다.

얹혀 지내는 처지가 마음에 편할 리 없다. 지식인 타입과는 반대인, 말 없고 투박한 피에르 갈랭도와 친했다. 그와 함께 산책도 하고 술도 마시고 권투시합 구경도 갔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모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인물이다.

‘갈랭도의 패거리’ 덕분에 카뮈는 ‘이방인’의 가장 중요한 한 장면, 즉 바닷가 살인사건 장면의 소재를 제공받는다. 어느 날 오랑의 서쪽 부이스빌 바닷가 모래밭에서 소설 ‘이방인’의 제1부 6장, 일군의 프랑스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백주의 결투장면이 거의 그대로 벌어졌다. 갈랭도 패거리의 대다수는 수영과 축구를 즐기고 있었는데 벵수쌍 형제 중 라울과 두 명의 아랍인 사이에 시비가 일어났고 즉시 다른 친구들이 거기에 가세하게 되었다. 아랍인에게 권총을 발사하는 사태만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 오랑 생활은 1941년 1월부터 1년 8개월 동안 계속된다. 전쟁 중 파리 스와르의 기자 알베르 카뮈는 1940년 12월 3일 피난지 리옹에서 프랑신과 결혼하지만 곧 감원대상이 되어 실직, 오랑의 처가로 되돌아왔다. 아르죄 가 65번지. 발코니는 거리를 향하고 있다. 아파트는 거실 하나, 침실 두 개로 넓었다. 27세의 이 깡마른 사내는 여전히 무직. 아내 프랑신은 임시교사 자리를 얻었다. 카뮈는 알제에도 자주 갔고 가정교사, 사립학교 선생을 하며 지냈다. 그는 벌써 ‘페스트’를 구상 중. 처가인 포르 집안에 대해 느끼는 카뮈의 역정은 그 도시에 대한 증오로 나타났다. 그래서 그는 가끔 혼자 혹은 친구와 같이 오랑을 벗어나기도 했다. 그가 즐겨 찾는 곳은 서쪽 해안 멀리 난 인적 없는 그 바닷가.

나는 그가 즐겨 찾던 아인 엘 튀르크, 레 장달루즈, 마다그 바닷가 모래밭을 차례로 찾아가 보았다. 기울어가는 저녁나절. 카뮈는 그곳에서 일주일간이나 혼자 야영했고 그때의 고독과 행복감을 노래했다. ‘오랑 지방의 이런 해변에서의 여름 아침은 날마다 세상의 첫 아침 같다. 황혼은 날마다 마지막 황혼인 양 온갖 빛깔로 짙게 물든 마지막 광선이 장엄한 임종을 마친다.’

지금은 여름 시즌 준비를 위하여 방갈로 수리가 한창이고 담장 밑에 한껏 부풀어 오른 꽃들이 폭발하고 있다. 1942년 5월 19일 ‘이방인’ 초판이 파리에서 나오고 얼마 뒤 폐병이 재발한 카뮈는 프랑스 고산지대로 요양하기 위하여 오랑을 떠난다. 나도 알제로 돌아오는 마지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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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페스트’는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입력 : 2005.05.26 18:48 47'


소설 ‘페스트’가 1943년 프랑스에서 출간됐을 때 카뮈는 34세의 젊은 작가였다. 첫 구상에서 탈고까지 7년이나 걸린 이 소설은 알제리의 도시 오랑이 페스트의 공격을 받는 상황 속에서 실존의 부조리와 한계 상황을 형상화했다.

당시 유럽이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페스트는 전쟁의 은유였다. 전쟁은 질병이나 죽음과 마찬가지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전 5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구조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폐쇄된 도시에 갇히는 상황에 직면해 도피와 반항·체념 등등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운명을 주체적으로 극복하는 인간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카뮈 스스로도 ‘이방인’이 부정의 표현이라면, ‘페스트’는 긍정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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