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 철저한 은둔자로 유명한 JD샐린저가 살고 있다고 인근 주민들이 말한 저택. 뉴햄프셔주 코나슈의 숲속에 있다.
뉴욕 맨해튼의 부유한 가정 출신인 16세 소년 홀든은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한 사립학교에서 쫓겨난다. 5과목 중 4과목 낙제 때문이다. 맨해튼의 집으로 돌아가는 이틀 동안 그의 경험과 생각을 1인칭 시점으로 들려준다. 첫 출간은 1951년이다. 인간 군상의 비열함, 어른들의 허위 의식, 희망을 잃어버린 암울함이 소설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홀든은 그런 세상을 견딜 수가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은 넓은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다 넘어지면 잡아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바로 책 제목이다. 결국 홀든은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랠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1952), 앨런 긴스버그 ‘울부짖음’(1956), 잭 케루악 ‘노상에서’(1957), 노먼 브라운 ‘죽음에 반하는 삶’(1959), 그리고 제임스 딘 주연 ‘이유 없는 반항’(1955) 등과 더불어 1950년대 안정과 순응의 사회에 도전한 기념비적 명저로 남아 있다.

“그 집에 접근하지 마세요. 바로 체포됩니다. 저도 얼굴을 못봤어요.”(지방신문 기자 존 양씨)

“그 집요? 알지요. 하지만 가르쳐 드릴 수 없네요. 규칙입니다.”(우체국 직원 M씨)

허위의식과 획일주의에 저항하며 시대 정신을 앞서갔던 소설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Salinger·86)는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철저한 은둔자로 살고 있다. 뉴욕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6시간 이상 달려가면 뉴햄프셔주의 산간 마을 코니시(Cornish)에 그의 집이 있다. 인근 레바논시(市)에 있는 L 공학박사 집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아침 밤새 내린 눈에 깜짝 놀라며 코니시의 야산들을 훑기 시작했다. 해발고도 100m 안팎의 완만한 구릉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져 있고, 고개 하나 넘으면 겨우 집 한 채가 나올 만큼 숲속에 묻힌 마을이다. 3~5층 높이쯤 돼 보이는 나무들로 울창한 산 속에 누워 있는 도로는 차 바퀴가 빠질 정도로 좁다. 그 길마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어느 집에 샐린저가 살고 있을까.

코니시로 올라가기 전 그의 생가가 있는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그리고 그가 맨해튼에서 퇴학 당하고 전학 간 펜실베이니아주 웨인시(市)의 밸리 포지 밀리터리 아카데미(Valley Forge Military Academy)를 먼저 찾았다. 그의 대표작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Holden) 역시 퇴학 맞은 고교생이기 때문이다.

회색 구름이 낮게 웅크리고 있던 날, 맨해튼에서 남서쪽으로 자동차로 3시간쯤 떨어진 이 학교에서 샐린저가 남긴 흔적을 더듬었다. 그가 고교생이던 때는 벌써 70년 전이다. 찰스 맥조지(McGeorge) 교장은 “샐린저 말고도 이 학교 출신 중 작가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11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학생도 10여명이 다니고 있는 이 학교에 대해 맥조지 교장은 “샐린저의 책에 있는 것들은 다 픽션이다. 여기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홀든이 다섯 과목 중 네 과목이나 낙제해서 퇴학을 당하기 때문인지 맥조지 교장은 소설의 내용과 현재 학교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것을 한사코 꺼려하는 눈치였다.


▲ 딸이 쓴 자서전 표지 JD샐린저의 짤 마거리트(폐기)는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 '드림캐쳐'를 썼다. 책 표지 사진에서 어린 폐기가 아빠에게 무등을 타고 있다.
그러나 샐린저와 동기 동창생이었으며 현재는 이 학교 채플에서 교목으로 일하고 있는 사닐리(Sanelli) 장군은 “이 학교에서의 경험이 상당히 많은 부분 그의 소설에 녹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롬은 그때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공공연한 꿈을 갖고 있었지요. 문학 서클에는 가입한 적이 없지만 영화를 좋아했고, 릴에 감아 놓은 영화를 사다가 집에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샐린저의 딸인 마거리트 역시 “아빠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픽션이 아니라 실제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학교의 켈리 M 드셰인 행정실장이 1930년대 소년 샐린저의 모습이 들어있는 졸업앨범을 찾아내왔다. 1919년 1월 1일 뉴욕 출생인 샐린저가 이곳 밀리터리 아카데미 B 중대 소속이었다는 점, 그리고 드라마클럽(Mask and Spur), 비행기조종클럽(Aviation Club) 같은 9개 동아리 활동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세 줄짜리 화려한 장식 단추의 제복을 입은 샐린저의 사진이 실려 있다. 부리부리한 눈썹과 갸름한 턱선이 누가 봐도 준수한 용모다.

이곳에서 샐린저는 펜싱팀 주장을 맡았는데,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홀든도 펜시 고교의 펜싱팀 주장으로 나온다. 학교에서 쫓겨난 홀든은 서부로 도망치려다 막내 여동생과 정신적인 교감을 하면서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당시는 “속물주의에 찌든” 암울한 시대였다. “미치지 않았다면 마주하기 힘든 일만” 가득한 환경을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 뇌까렸던 열여섯 소년 홀든이 절망에 잠겨 걸었던 발걸음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펜실베이니아 애거스타운 톰슨언덕→앤터니웨인가(街) 스펜서 선생집→기차역→(기차탑승)→뉴욕 34번가 펜역(驛)→그랜드센트럴역→브로드웨이→센트럴파크→47번가 빌트모어 극장→50번가 라디오시티→센트럴파크 동쪽 서튼플레이스에 있는 앤톨리니 선생집→회전목마….

변한 것은 없었다. 50여년 전 소설 속이나 지금이나 위치도 건물도 모두 그대로였다. 심지어 홀든이 소설 속에서 그토록 걱정했던 센트럴파크 연못의 오리떼조차 여전했다. ‘연못이 얼어버리면 그곳에 살고 있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알고 계세요?’(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25쪽, 113쪽)

그 뒤, 뉴햄프셔로 찾아간 샐린저의 집은 코니시의 ××로드 1××번지로 확인됐다. 우체통에는 지방신문 2부가 들어 있었고, 쌓인 눈 속에 파묻힌 집 외벽에는 전기작가 사라 모릴(Morril)이 얘기했던 대로 위성 접시 안테나가 걸려 있다.

얼마 전까지 샐린저는 수요일이면 다운타운에 내려와 외식을 했다. 식당은 ‘피터 크리스천스’다. 나중에 ‘진스’로 바뀌었다. 샐린저는 이 식당에서 ‘피터 어머니의 특선(特選)’이라는 샌드위치를 주로 먹었다.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먹는 야채는 모두 길러 먹었다.

“허위로 가득한 세계가 강요하는 획일적인 가치관에 정면으로 맞섰던” 샐린저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던 경계선의 작가”라는 평가도 듣는다. 정작 본인은 세상의 평가를 듣는 듯 마는 듯 아마 죽는 날까지 은둔의 베일을 벗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맨해튼 센트럴파크 샐린저의 기념비적인 출세작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 홀든은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를 지나면서 "저 오리떼들은 겨울이 오면 어디로 갈가?"라고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호밀밭의 파수군'을 거론할때마다 맨먼저 인용하는 유명한 문구다. 사진은 센츠럴파크 남쪽에 있는 연못과 오리, 그리고 햇볕을 쬐고 있는 뉴욕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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