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에 실린 라틴의 낭만 카리브의 해풍을을 타고…
콜롬비아 북서부 카르타헤나. 적도의 햇빛이 격렬하게 가슴을 두들기더니, 어느새 바다가 선선한 바람을 선사한다. 황혼 무렵이다. 악사들이 아코디언과 기타로 흥겨운 라틴음악을 튕겨내자, 광장은 어느새 숨 넘어갈 듯한 강렬한 리듬의 ‘바예나토(Vallenato)’로 가득찼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바로 이곳, 카리브해의 대표적 관광지인 이곳에서 본격적인 작가 수업과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바예나토는 그에게 마술적 리얼리즘의 원형이었다. 민담이나 사랑 이야기를 빠른 템포로 구연(口演)하듯 부르는 바예나토는 “옛날 옛날에”로 시작해 터무니없는 일들을 아주 자연스러운 말투로 전개한다. 때로는 “여보게들, 내 이야기 좀 들어보려나. 그 여자와 내가 헤어진 사연을 들려주겠네…”라는 식의 가사를 랩같이 이어간다. 코코넛으로 맛을 낸 밥에 구운 바나나를 곁들인 도미구이와 해물 스파게티에는 바예나토가 버무려져 있었다.
21세기의 광장에서 17세기 노래가 현실과 몸을 섞는 이곳에서, 스무 살 청년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엘 우니베르살’의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르타헤나에서 만난 메르세데스 바르차는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되었으며, ‘백년의 고독’에서 ‘나일강의 뱀처럼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가씨’로 등장한다.
카르타헤나 인근 바랑키야는 청년 시절 만나 평생을 함께한 친구들 모임 ‘바랑키야 그룹’이 태동한 곳이다. 소설가·화가·기자·출판업자 등으로 구성된 그룹은 그동안 주변부에 머물고 있던 카리브해 문화의 진가를 세상으로 길어올린다. 기자인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친구들이 호기롭게 몰려다니던 단골 카페 ‘라 쿠에바(La Cueva)’는 지금 도심의 명소다. 이 카페의 카롤리나 마르티네스씨는 “가보는 바랑키야 그룹 멤버들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평생 새로운 원기를 불어넣었다”며 “멤버들은 가보가 참석하지 못할 때는 그의 자리를 비워놓고 토론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카페에는 바랑키야 그룹 멤버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으며, 소설 속 마콘도에 처음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얼음 덩어리를 나무상자에 담아 전시하고 있다.

▲ 카르타헤나는 17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도시로 해적을 막기 위해 축조된 고성과 거대한 대포를 구경할 수 있다. | |
3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며 그는 한편으로 소설을 빚어냈다. 보고타에서 발행되는 ‘엘 에스펙타도르’지 동료 기자였던 기예르모 다빌라씨는 “가보는 ‘단순히 사실만 전달하는 것은 기자가 아니다’란 말을 자주 했다. 기사는 문학적으로 쓰고, 소설은 마치 취재하듯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갔다”고 말했다. 보고타·파리·로마·아바나로 취재 현장을 누비던 그는 “나는 아코디언 한 대 메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유유자적한 삶을 꿈꾸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늘 이야기를 하기 위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행복한 방법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쓰기도 했다.
작가는 이곳에 없다. 그러나 그의 문학은 언제까지나 이곳에 있다. ‘엘 우니베르살’지 문학 담당 기자이자 작가인 구스타보 타티스씨는 “민초들의 사랑과 애환을 담은 바예나토는 사실과 환상이 뒤섞인 이야기들이 끝없이 중첩되는 ‘백년의 고독’과 같은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놀랍고도 신비로운 일들로 가득한 작가의 작품 세계는 카리브해 열대지역의 자연과 문화가 빚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사촌인 오스칼 알라르콘씨는 “서구적 시각에서는 주술적·환상적으로 보이는 것들도 카리브해에서 나고 자란 형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형은 ‘나는 바닷가 사람’이란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 카페 '라 쿠에바' 입구에 1950년대 초 바랑키아 그룹 멤버들을 담은 대형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최근 모습. 바랑키아=최홍렬 기자 | |
■ 카리브적 상상력
사실과 환상을 뒤섞어 카리브적 세계 창조
입력 : 2005.03.10 19:51 38' / 수정 : 2005.03.11 04:47 48'
“소설의 죽음을 말하는 것은 서구작가들의 지엽적인 걱정일 뿐이다. 어떻게 서재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놓은 채 소설의 죽음에 대해 중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말이다.
진지함(사실)과 재미(주술·환상)를 함께 버무려 놓은, 스토리텔링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지적했다.
문학평론가 이그나시오 라미레스씨는 “현실과 상상이 섞인 단어(글)를 구성해 독특한 의미를 지닌, 카리브적인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했다. 이경득 세르시오 아르볼레다대 교수는 “백년의 고독 이후, 사실과 환상이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는 뜻의 ‘마콘도적’이란 말이 생겼다”며, “현실을 훨씬 풍요롭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은 내면으로만 들어가다 막다른 길에 부닥친 한국문학이 한 수 배워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가 본 마르케스
마리오 아랑고 교수(전 콜롬비아 안티오키아대)
옛날 이야기를 기억해내고 그 이야기의 끈을 잡아 상상의 나래를 펴는 데 가르시아 마르케스만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소설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천부적 이야기꾼은 최근작 ‘이야기하기 위해 살기’(2002)와 ‘내 슬픈 창녀들에 대한 기억’(2004)에서 자신의 성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야기하기…’의 스페인어판 표지에는 작가의 아기 때 사진이 등장한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로부터 이런저런 세상사를 들으며 자랐을 아기는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모든 것, 세상을 구석구석 살피려는 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반면 ‘내 슬픈 창녀…’ 표지에는 세상에 등을 보이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노인이 등장한다. 노인은 이 삶의 종착점, 죽음이라는 휴식의 공간, 아니면 20세기 신화의 결정적인 신격화를 향해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와 노인의 모습을 겉장에 둔 것은, 이들이야말로 허구 속에서 기쁨을 찾으며 살았거나 들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재창조하는 데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존재들임을 강조하고 싶어서였으리라. 이 두 모습에서 작가가 걸어온 삶의 길을 반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1967년에 ‘백년의 고독’에서 그려낸 ‘고독한 아메리카’는 현재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거센 조류 앞에서 더욱더 고독한 아메리카, 점점 더 왜소해지는 아메리카로 남아 있다. 작가는 아메리카의 고독을 타개하기 위해 쿠바의 영상학교와 베네수엘라의 신저널리즘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 내일의 아메리카 주인을 배출해내는 그의 모습에서 지극히 인간적이고 다정다감한 또 하나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