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이 되기 위한 즐거운 글쓰기
루츠 폰 베르더. 바바라 슐테-슈타이니케 지음, 김동희 옮김 / 들녘미디어 / 2004년 9월
구판절판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자신을 -197쪽

갈고 닦는 '나'는 또 다른 '나'에게 정신적인 질서를 세우라고 호소한다.
철학적인 글쓰기는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로 성장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나'는 자신을 분석하고 통합함으로써 철학자가 되어가며 그 과정에서 더욱 강해진다. 그와 더불어 글속의 '나'는 실재의 '나'를 뛰어넘으려 하고, '나'의 외부에 있는 절대성을 영혼을 근거로 해서 파악하려 한다.
철학적 글은 다음과 같은 진리에 입각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
'나'에 대한 철학적 글은 여러 철학자들이 시도한 바 있다. 몽테뉴는 자신을 9년 동안이나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관심을 내부에 두고 있다‥‥‥‥누구나 바깥쪽에 한눈을 판다. 그런데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본다. 따라서 나는 나 자신에게만 관계가 있다 나는 내 자신의 내부에 원을 그린다. "
몽테뉴의 '나'에 대한 연구결과는 이렇다. 즉, '나'는 비약이 심하고 기분의 변화가 많다 도대체 파악이 불가능하다.
"나는 나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다. 그 대상은 자연 도취상태에서 비틀거리며 왔다 갔다 한다. "
데카르트의 󰡔성찰󰡕은 개인의 생각과 개인의 존재를 규명하려 했기 때문에 철학적인 글쓰기의 귀감이 되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출발점에서 어떻게 감각적인 삶의 세계를 이성으로 뛰어넘을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길을 제시했다.
아일랜드 철학자 버클리는 '나'를 의지와 동일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198쪽

실험을 제안했다.
"자궁 속의 아이를 지켜보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에 주의하라 정신적인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은 감각기관에 의해 지각되는 경우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너는 너의 천성을 믿게 될 것이다 "
자신의 내면을 거리낌 없이 표현한 루소의 『참회록』도 철학적 글쓰기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참회록』을 시작한다.
"나는 전례가 없었던, 그리고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일을 시작하고 있다. 나는 나의 동료들에게 한 인간을 자연 그대로의 진리 속에 드러내 보이고 싶다. 그런데 그 인간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될 것이다."
쇼펜하우어도 철학적인 글쓰기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이 세상을 지옥, 불안 지루함, 나 자신 그리고 너로 인식했으며 그것들을 철학의 대상들로 삼았다."
철학자인 바더는 다음과 같이 자신을 분석했다.
"위대한 사상은-나의 내면적인 인생 전체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내 일기장 속에서 언젠가 볼 수 있게 될 것이다-내 전체 영혼을 가득 채운다. "
철학적 글쓰기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그리고 그 후 실존주의가 유행하면서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나'의 약점도 알려지게 되었다. 카뮈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내가 불합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의'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 "자아는 세상에서 물러-199쪽

나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내가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이다‥‥자아'는 지독한 고독을 경험한다. ""'자아'는 무가치를 경험한다.‥ ".자아'는 지옥에 산다. 지옥이 여기 있다.
"사르트르는 '나'를 해충으로 보았다 즉, "나는 마을에 페스트를 옮기는 병원균이다" 그리고 '나'는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나는 이세상의 위인도 아니고 그런 위인과 교제하지도 않는다." '나'는 전체인생을 조망하지도 않는다. "나는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자기 인생을 조망할 수 없다고 느꼈다. " 그렇지만 '나'는 모든 면에서 자유롭다. "누구나 자기 인생에 대해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 '나'는 원래 고독한 존재이다. "나는 끝없는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즐긴다. - "·나'는 자본주의, 의회주의, 중심화, 관료주의의 생산품이다.
"하지만 철학적인 글쓰기는 방금 언급한 예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정지되어 있는 상태를 살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와 초월성과'나'가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에 대해 연구한다.
파스칼은 일기에서 자신의 미약함과 동시에 위대함도 알아냈다. "팽창을 통해 우주는 나를 포함시킨 다음 점과 같이 만들어 버렸다. 나는 사유를 통해서 그것을 붙잡을 수 있다. " "나는 단지 자연의 가장 연약한 갈대일 뿐이지만, 생각하는 갈대이다‥‥나'는 그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신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 이로써 파스칼은 허무주의에 바탕을 둔 '나'를 극복할 수 있었다
작가인 노발리스는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는 나 이상이다. "나는 너다. "-200쪽

키에르케고르는 자아 숭배를 극복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내재적인 신(神)은 없다 ‥‥단지 실존자들만을 위해서 신은 존재한다.
작가인 테오도어 헤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공포에 떨면서 다음 과같이 썼다. "고통과 어려움이 커질 때마다 나는 믿기 어려운 신에게 나를 맡긴다. " 해커는 '나'의 고립을 다음과 같은 말로 극복하곤 했다. "나의 파트너는 바로 위대한 '너'야.
"종교 철학자인 엘리아드는 '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출생 전의 상황을 기록했다. "가끔 순수한 상태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이었는지 처음의 순간으로 돌아가려는 정향이 있고, 그것을 반복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심리학자 융이 정신병으로 고생하는 동안 가시화되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상상하는 방법을 이용해서 무의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관찰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철학적 글쓰기는 '나' '세계','초월성'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이제부터 철학적 글쓰기를 위한 단계적인 훈련과정을 소매할 것이다
훈련단계를 쫓아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했는지에 대해 쓰다 보면 소진된 에너지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매일 조금씩 내부의 성을 쌓아 가게 될 것이다. 내세를 바라볼 수 있는 탑과 함께. 철학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허무주의를 방어하는 데 공헌을 하는 셈이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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