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의 역사, USA/ 에릭 프라이 지음 / 추기옥 옮김/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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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 여기 백 년 전부터 세계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기수를 자처하며 다른 민족들을 파멸에서 구한다는, 오직 그 하나의 순수한 목적을 위해 그들의 아들과 딸을 전쟁터에 보내고 항상 덕과 법의 편을 들었던 나라가 있다. 그러한 미국이 오늘날에는 과거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이 거의 전 세계에서 증오의 대상이 되어 대량살상의 위협에 처해 있다.
자화상 속에는 분명 비판과 통찰력이 들어 있지만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미국식 사회·경제·정치 모델의 원칙적 타당성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이것이 미국의 딜레마다. 이들은 선과 악을 엄격하게 구분하며, 복잡한 회색빛은 참아내지 못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들의 결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결정 속에서 이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는 종종 실망스럽게, 때론 재앙처럼 보이기도 한다.
50년이 넘는 한국 내 미군 주둔의 역사는 미국 역사의 갈등을 대변하는 좋은 사례다. 미국은 선의를 가지고 한국에 왔다. 잔인한 북쪽의 형제로부터 공격을 받은 우방을 방어하기 위해 왔던 것이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의 한국전쟁은 유혈이 낭자한 비참한 전쟁으로 미군 역시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원칙적으로는 정당한 전쟁이었다. 미국은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정치적·군사적 실수를 범하여 중국의 개입을 초래했으며 그로 인해 결국 한반도는 통일의 희망을 잃었다. 다시 옛 국경선으로의 복귀라는 삭막한 결과를 놓고 본다면 전쟁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도 한국전쟁이 원칙적으로 긍정적인 결과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50년도 넘는 시점부터 미군은 북한이 다시 한국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이것은 제국주의가 아니라 파트너십이 존재하는 좋은 예다. 그리고 한국이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지구상의 가장 부유한 나라 중의 하나로 인상적인 경제도약을 이루고, 1990년대 민주화를 이룬 데에는 미국 측의 지원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미움을 받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미국을 거부하거나 증오로 맞서기까지 한다.
거기에는 비이성적인 이유를 포함하여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반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잔혹한 서울의 군사독재를 지원했으며, 이들 정권이 자국 국민들을 괴롭히거나 학살할 때에도 모르는 체 외면하거나 막후에서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인권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인권 대통령으로 정평이 난 지미 카터조차 우방의 정치적 안정을 전략적으로 우선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현재 한국 국민들에게는 쉽사리 잊혀질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다.
또 미국은 오늘날 북한에 대해 호전적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 물론 평양의 정권이 정치 결정권자들에게 커다란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은 예측할 수 없고, 위험하며, 위협이나 허용을 통해 이성으로 유도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효과적인 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려는 노력보다는 결연한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상을 점점 더 강하게 풍기고 있다.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우방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나 대화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워싱턴 정가의 신보수주의자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의 서울에서도 그대로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거기에 반대의견을 표시하거나 저항하는 사람은 이미 적의 공범자로 통한다.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은 이 글의 중심 주제가 아니다. 미국 정치에서 정말로 심각한 잘못과 죄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역시 이 글에서 지적했듯 지난 50년간 미국 외교정책이 저지른 잘못에서 예외가 아니다. 맹목적인 반공산주의, 군사적 수단에 대한 지나친 믿음, 최후의 강대국이라는 자만심이 세계경찰의 역할을 하던 미국의 영향력을 위험한 방식으로 전도시켰으며, 선의에서 수행된 많은 정책들도 결국 다른 나라와 민족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다. 특히 2001년 9월 11일 이후 부시 행정부가 어긋난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에 대한 전 세계의 불신은 확연히 증가했다.
경제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의 시장경제가 막대한 예산적자를 쌓으면서 전 세계의 자본을 흡수하고 있다. 그들은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에 따라 거침없이 보호주의적 조치를 취한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철강과 자동차 제조기업들은 자유무역의 기치 아래 정말 미국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인들은, 어쩌면 금세기에 지구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일지도 모르는 기후변화를 무시하는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
또한 미국 내의 잘못이 전 세계로 파급되기도 한다. 전 세계가 미국을 역할 모델로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의 가치와 시스템에 관대하지 못한 미국식 소명의식 때문에 그렇다. 모든 산업국가들처럼 한국도 미국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무비판적인 ‘미국화’를 지양해야 하지만, 대신 미국의 경제·사회체제의 장점을 수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에서 오는 미국 정치의 딜레마가 이라크에서만큼 공공연히 드러난 적은 없었다. 국제법적으로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고 현실적인 위협도 부재했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어쩌면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도 있었다. 우리 시대 최고로 잔혹한 지배자 사담 후세인이 실각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라크 국민들의 분위기를 잘못 판단해 잘못된 점령정책을 펴고,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내의 이라크 포로들을 잔인하게 대우함으로써, 미국의 도덕적 권위는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다. 그리고 아랍 이슬람 세계를 안정시키고 민주화하려는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이 이라크에 주둔한 이래 이라크는 통제불능의 상태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오히려 미국 정부가 군사적으로 타파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 테러리즘의 온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난관 이상으로 이미 비극이다.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위해 한국이 강력하고 이성적인 미국을 필요로 하듯 전 세계도 신뢰할 수 있는 질서의 힘을 필요로 한다. 오로지 미국만이 이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미국인들이 잘못을 하면 그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가 된다.
에릭 프라이Eric Frey
들어가는 글
미합중국은 멋진 나라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럽에서 자행된 종교적 박해와 정치적 탄압과 빈곤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건국되었고, 이어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메디슨 같은 초창기 정치가들은 그들의 독립선언서에도 볼 수 있듯 계몽주의의 후손들이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똑같이 창조되었고, 창조자로부터 삶과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십 년 후 그들은 전제정치를 종식시키고 여러 그룹의 이익 조정을 최고의 목표로 선언하는 헌법을 제정하는 등, 민주체제를 고안하여 오늘날까지 존속시키고 있다. 그들은 헌법의 수정조항에 종교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가폭력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법률을 통과시켰다. 재산권을 확실하게 보장한 덕분에 미국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개발하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인들은 또한 세계에 대한 책임도 짊어졌다. 20세기에 미국은 고립주의를 털어버리고 그동안 가장 밀접한 우방국이 된 영국의 편에 서서 유럽전쟁에 참여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917년 ‘모든 전쟁을 종식시킬 전쟁’을 수행하여 ‘세계를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목표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다. 베르사유 회의에서 발표한 윌슨의 14개 조항은 민중들에게 자결권을 약속하면서 유럽 강대국들이 철면피적인 현실정치에서 방향전환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구대륙 유럽이 깊은 어둠에 빠져 있던 1941년 미국은 국민사회주의와 파시즘에 대항하는 전쟁에 참여해 거둔 군사적 승리를 새로운 정치에 이용하여 패자에게도 자유와 행복을 선물했다. 미국은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성공적이었던 마셜 플랜이라는 원조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UN의 지휘하에 다자적 세계질서에 참여할 준비를 갖추었으며, 공산주의가 무너질 때까지 40년을 추격하여 유럽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치하에 다시 통합될 수 있도록 도왔다. 인권이 짓밟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러시아 군대나 유럽연합이 아닌 민주주의 초강대국 미국에 구조를 요청했다.
또한 세계 각국 사람들은 희망의 땅 미국에서 ‘아메리카의 꿈’에 동참하고자 매년 백만 명 이상이 합법 또는 불법 이민자로 미국 땅을 밟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방문객들이 활력 넘치는 경제, 수준 높은 대학과 연구시설, 사회의 다면성, 언론의 자유와 비판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긍정적이며 친절한 미국인들에게 감명받고 있다. 이웃이 서로 알고 항상 돕는 곳, 창조주를 믿고 창조주의 명령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곳, 위쪽으로의 신분상승이 가능하다고 누구나 믿는 나라다. 슈타이어마르크 출신 경찰관의 어린 아들이 세계적 스타가 되고, 백만장자가 되어 인구가 밀집된 연방주의 주지사가 될 수 있는 곳.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미국 현실의 일부, 지극히 협소한 일부 현실에 불과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메리카 드림이 악몽이 되는 비참한 경우는 수없이 많다. 미국에서는 모든 아동의 5분의 1이 빈곤 속에서 방치되고 있으며, 무제한의 무기소유가 범죄를 부추기고 있고, 사법 스캔들은 일상사에 속한다. 2백만 명의 사람들이 교도소에 갇혀 있는데 그 중 어떤 사람들은 별것 아닌 범행으로 중형을 받은 사람들이며, 매년 범죄에 대한 충분한 증거도 없이 수많은 재소자들이 처형되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과다체중이 되고, 종교적 무관용주의자들이 늘어나며, 민주주의가 비극적인 조롱거리로 추락하고, 노동자와 주주들을 희생시켜 회사 사장이 부를 축적하는 나라, 이것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외교는 특히 부시에 이르러 세계평화의 위협이 되었다. 그들은 국제법을 무시하고, 국제기구들을 파괴시키며, 유일한 맹주로서 세계를 지배할 권리를 요구한다. 입으로는 자유무역을 설교하면서 스스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국 보호주의에 빠지고, 스스로를 너그러운 존재로 평가하면서도 개발도상국 지원에는 인색하다. 눈치 보지 않고 온실가스를 방출시켜 환경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신이 자기들 편이라고 믿으며 겉으로만 성스러운 척한다. 찬탄받으며 사랑받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의 우방국 내에서조차 점점 거부와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전쟁은 미국의 위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조작된 증거를 바탕으로 불법적이며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켜 포악한 독재자를 몰아냈으나 그 땅에는 평화도 안정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미국의 역사는, 자신들의 헌법과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노력한다는 이상을 깔아뭉개는 정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음을 보여준다. 인디언들을 거의 전멸에 이르게 하고 흑인들을 노예화한 것에서부터 베트남 전쟁과 제3세계의 수많은 독재자들을 지원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런 예는 비일비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