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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최민자 지음 / 까치 / 1997년 11월
평점 :
품절
서양정치사상사를 전공한 정치외교학 교수가 우리의 道(도)를 깨우치기 위해 행한 구도 자세가 무척 흥미롭고 대담함에 놀랍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세상에 드러난 모든 物像(물상)은 끊임없이 영원이라는 심연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했듯이 이 책은 언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실제와 지적 戱論(희론: 말장난)의 위험성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감히 나의 짧은 경험에서 도출하는 형식으로 써 보았다.'라고 밝혔듯이 학문과 인생을 공부해 오며 체험한 바를 에세이 형식으로 쓴 것이다.
조용하게 공부하기 위해 암자와 수녀원에서 지냈듯이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진리는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롭게 인용하고 설명하고 있는 점이 시원스럽다.
미국과 영국에 유학해 학위를 취득하면서 체험했던 이야기들. 귀국해서 교수가 된 다음 스승에게서 들은 왕진인이라는 전설 속의 인물을 찾아 나선 구도 여행(모험) 등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되면서 동서양의 사상들을 묵상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일 것이다.
특히 낮에는 학교에서 강의하고 밤에 산 속 동굴에 들어가 修道(수도)를 더욱이 여자로서 三七日씩 여러 번이나 했다는 것이 범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선뜻 가지 않지만, 그런 구도 정신이 부럽기만 하다.
또한 재야사학과 만나게 되면서 역사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도 중요한 대목이다.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이란 사회적 상황 속에서 태어났고 역사적 변천을 거치면서 발전되어 왔기에 역사에 대한 안목이 정립되어 있어야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적인 서양의 정치 사상을 연구하면서도 학문과 일상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동양의 道(도)를 공부하기 위해 정진했기에 깊은 주제를 담담한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게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쉽게 살아가기만 하려는 세태 속에서 끊임없이 보다 근본적인 것을 발견하고 추구하려는 저자의 자세가 귀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