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와의 싸움에서 이겨보리라 다짐한 지 어언 20년. 결론부터 말하면 백전백패다. 물론 오늘도 졌다. 책 한 권을 찾다가 결국 책장의 먼지를 닦아내는 일에 혈안이 된 나는, 책장 사이사이 집요하게 쌓인 검은 먼지들을 보며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다 퍼부었다. 다행히 집에는 나 혼자다. 실체를 들키지 않아 다행이다. 휴~
그러니까 무슨 책을 찾은 거냐면, 『일만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라는 시집인데, 여튼 찾았다. 이 시집을 찾은 이유는 작가의 시로 추정되는 어떤 시가 불쑥 생각나서였는데, 찾아서 다시 읽으니, 이 시가 아닌게라. 뭐냐. 휴~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날이면 날마다 확인하고 있지만, 참으로 이제는 자체 폐기를 해야 할 시간이 온 걸까. 나도 우리의 아놀드처럼 굿바이!하면서, 엄지 손가락 하나 치켜 들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휴~
그래도 이 시를 발견한 것은 기쁜 일이고!
자리
조용미
무엇이 있다가
사라진 자리는 적막이 가득하다
절이 있던 터
연못이 있던 자리
사람이 있던 자리
꽃이 머물다 간 자리
고요함의 현현,
무엇이 있다 사라진 자리는
바라볼 수 없는 고요로
바글거린다
여느 때 같으면 이 시를 읽고 나는 무엇인가 존재했던 혹은 그렇게 믿었던 것들의 자리를 기억하며, 약간은 우울하게 혹은 약간은 비장하게 뭔가 씨부렸겠지만, 지금 나는 먼지가 있었던 자리를 가만히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쳐다볼 뿐이다. 휴~
그리고, 나는 묻는다. 이건 뭔지?????? 혹시 인터스텔라?????? 뭔가 싸인이냐??????? 그런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