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열리는 믿음 문학동네 시인선 66
정영효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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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의 전원을 누르면, 노트북은 어김없이 내가 설정한 사용자 이름을 부르며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낸다.          환영합니다,라는 말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환영받는 심정으로 노트북의 바탕화면이 나타날 때 까지 기다린다. 습관에 따라 움직이는 나를 위해 그 어느 것 하나의 위치도 변경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내 기억과 의지와 마음을 붙들고 있는 노트북을 본다. 고마운 노트북. 그럼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할 길이 없다. 그저 먼지를 닦고, 키보드를 살살 누르는 것으로 마음을 전할 뿐. 또한 나를 향한 저 마음이 고장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 눈물겨운 노트북과 나 사이의 신뢰는 이렇게 두터워져만 간다.

 

 

짐작하는 날들

 

정영효

 

다시 물어보기 위해 계속 짐작했다

의자에 앉으면 밀려오는 졸음에 대해

반대편에서 이어지는 평화에 대해

 

주택가를 지나는 무심한 고양이의 눈빛처럼

의심을 둔 채 확실해지는 것들을 믿지 않았다

 

문 앞에서는 매일 가능성과 마주쳤다

걱정을 알면서 우연을 내밀고

우산을 준비하면서 모자를 준비하고

 

무언가 일어날 거라는 생각으로 안도했지만

바람의 끝을 구름이라 부르거나

모래에서 기억을 찾는 식으로

비슷하게 시작해 조금 다른 이유로 끝나는 건

단지 비숫한 일로 남겨두었다

 

거짓말을 구해 아무데에나 숨길 수 있었고

고개 숙이는 혹은 고개 돌리는 내게

짐작하는 동안 낮게 말했다.

 

나에 대한 확신은 반복되는가 경험적인가

그리고 무력해지는 잠으로 돌아와 차츰 잊어버렸다

조금씩 다른 생각들이 쌓인 곳에서

다시 물어보기 위해 계속 짐작할 뿐이었다

 

시인이 묻거나 웅얼거린다. 나에 대한 확신은 반복되는가 경험적인가. 그러게. 나 역시 짐작할 뿐이다. 노트북에 대한 확신은 반복되는가 경험적인가. 이것 역시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왜 짐작할 수 밖에 없는지. 어쩌면 늘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을 관람하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그래서 노트북은 내게          환영한다,는 메세지를 보내 '저곳'에서의 부재를 알려주려는 것일까.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공간이 이상해지고 있다.          歡迎과          幻影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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