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의심스러웠다. 처음 있는 일. 몇 달을 이용한 버스인데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대여섯 살로 보이는 스무 명쯤의 아이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다. 그 재잘거림과 여과되지 않은 웃음과 팡팡 터지는 에너지가. 아이들 주변을 떠도는 공기조차 내가 속한 세상과 다르게 보였다. 내가 타고 가던 버스가 흑백의 세상이었다면 아이들이 서 있는 버스 정류장은 온통 칼라의 세상이었다. 그저 놀랍다.
아이들이 버스에 올랐다. 서울숲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이름표에는 얼굴처럼 예쁜 이름들이 쓰여있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자리에 앉는다. 버스는 갑자기 동화책처럼 알록달록. 나는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찬찬히 본다. 리암 니슨이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다 해도 이렇게 울렁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담하건데. 뭔가 알 수 없는 에너지에 나는 멀미를 하듯 울렁거렸다.
그때다.
내 앞자리에 앉은 소녀가 고개를 정말 휙 돌려 나를 본다. 웃는다. 그리고 말을 건다.
총명탕같이 생긴 소녀 : "말 잇기 알아요?"
나 : "응, 그럼"
총명탕같이 생긴 소녀 : "거북이"
나: "이주민"
총명탕같이 생긴 소녀 : "이주민"이 뭔데요?
나: ..............(아...창피해)
총명탕같이 생긴 소녀 : "에이, 다시 기회를 줄께요. 거북이!"
나: ..... ......
소녀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휙 돌려 친구와 재잘거린다.
내 머릿속은 갑자기 안개다. "이"로 시작하는 수백의 단어가 어딘가로 숨어버린 것 같았다.
소녀의 에너지에 내가 졌다. 그것도 기쁘게.
그리고 생각난 시 한 구절.
별똥
고은
옳거니 네가 나를 알아보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