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와의 통화는 요즘 전국을 들썩인다,는 그렇지만 종방을 했다는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역시나 처음은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나를 힐책하고 고문하는 것으로 시작해 마지막은 일관성없음을 꾸짖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나도 몇 편은 봤다. 에라이, 에라이 에라이야.
최는 주인공 남자가 무척 좋아, 아니 무척 탐나서 괜히 짜증이 난단다.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나도 아니까,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물으니, [까도남]과 [차도남]이면서 [따도남]이라 좋단다.
나도 주인공과 최가 남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까도남,차도남,따도남이 무슨 관계인지 물었다.
대답은 없고 악쓰는 소리만 들렸다. "야!"
사람이 뭘 물으면 조근조근, 차분차분 대답해주면 그만일 것을 성질머리 더러운 것으로 치면 최와 나는 상위 1%에 들어갈 것임에 확실하다. 여튼, 그것들이 싸그리 줄임말임을 알았고, 동시에 반대말도 존재함을 알았다. 그럼 나는? [따도녀]? [따당하는 도시 여자]? 응? 네 이년!
우야든 간에 최는 주인공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까칠함을 외피로 진정성을 내피로 두른 이 시절 최고의 남자라고 핏대를 세우는 것 같았다. 날이 추우니 모피가 한 벌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까칠함과 진정성이라는 피혁이 있음은 내 오늘 처음 알았다. 그걸로 옷을 지어 입으면 따뜻하더냐고 물었더니, 이번에도 악쓰는 소리만 들렸다. "야!"
너만 소리지를 수 있어 소리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파, 나도 일단 소리를 질러 기선을 제압할까 생각도 했지만, 이게 추운날 무슨 입돌아가는 짓도 아니고, 여하간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나는 물었다. 최는 뭘 어떻게 해달라는 것은 아니고, 자기 주위에는 어찌하여 그런 신인류,신선한 인류가 없는지 개탄스럽다는 것이었다. 나도 내 주위에 너같은 인간만 있어 개탄스럽다고 했다. 최는 더이상 악도 쓰지 않았다. 야호~!
생각해보면 최의 주위에 꽤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사람들이 최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면 문제랄까. 물론, 현빈처럼 찬물 맞은 강아지같은 그 눈빛과 입술을 돋보이게 하는 날렵한 턱선을 지닌 사람들은 없었지만, 츄리닝으로 치면 안빨아서 반짝이는 츄리닝을 입은 선배도 더러 있었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아니지만 알만한 나라의 엘리스(어딘지 기형적으로 터질 것 같은 그녀들) 화보를 보는 선배는 많았고, 컨버터블은 아니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친구들도 많았고, 실물 화폐는 없지만 자본(자본론)을 들고 다니는 선배들도 꽤 있었지만, 다시 말해 그들도 최도 뭐랄까, 서로가 서로에게 짜증이 나서 미치면 미쳤지, 혹은 안봐야 살 것 같았지, 그렇게 밤낮으로 뽀뽀 쪽쪽하고, 달달하게 서로를 마주하고 싶어 미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나는 증언했다. 최는 전화를 끊고 달려올 기세로 씩씩거렸지만, 물리적인 거리와 한파를 고려해 보건데 나는 안전했다.
한때는 세상 천지에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하고, 나없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과 옴짝달싹 못하는 연애를 하고야 말리라 다짐한 모질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이 어찌 생각하면 지옥인게라, 사실은 외모가 걸림돌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인지라, 언능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참 잘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 편, 현빈같은 눈빛으로 "굿바이씨! 언제부터 그렇게 가오잡았나?" 뭐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또 딱히 나쁠 것 까지야 있을까 싶다. 헤헤 좋지, 암만~ 그러니, 최의 심정을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일.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아니, 우리는 생각했다. 이제와 현빈은 좀 많~이 무리수고, 설령 현빈같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최도 나도 법정에 서야하거나 흥신소 피해다닐 처지인지라, 그림에 떡일 뿐이다. 물론, 그림은 떡을 줄 의지가 전혀 없다. 따라서 어차피 마음만 움찔움찔 해봤자 다 소용없는 이야기다. 그러니 어떻게 형사고발되지 않는 범위에서 몸은 아니지만 사상이 섹시하고, 재벌은 아니지만 미래를 장악할 꿈과 의지가 있는 사람을 좀 만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응? 그런데 어디서? 둘 다 대답은 같았다. 다음 대선에서.
최의 지적처럼 일관성없지만, 드라마 이야기는 대권주자 이야기로 옮겨갔다. 진짜 일관성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의 일관성이다. 좌우지간 요즘 유심히 보게 되는 사람들이 몇 있다. 아직은 시간이 있고, 물론 충분한 시간은 아니지만, 일을 만들기에는 적절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물론, 예전에 누구들처럼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을 하거나, 좌빨이라고 할까봐 빨대도 쓰지 못하고 눈치만 본다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 보인다.
그러니 제발, 그들이 최와 나처럼 현실에서 고통받고(현빈과 같은 신인류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늘 무간지옥) 더는 꿈 꿀 수 없어 허탈해 하는(연애를 할 수 없어 그러는 건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여튼 아닙니다요) 이들을 위해 누군가 츄리닝 입고 다시 뛰어줬으면 좋겠다. 한 땀 한 땀, 의지와 비전으로 튜닝한 반짝반짝한 츄리닝을 입고, 현빈처럼 비구름 속으로 뛰어들 당신, 당신을 좀 봤으면 좋겠다. 옥쇄한 그분처럼 따당했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일으켜 줄 "당신씨!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작년부터?" "아참, 진정성이라는 내피는 입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