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영동 둘러보기(2004년 10월 10일) -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의 여행은 즐겁다. 부산 박물관 교실에서 난계국악축제가 열리고 있는 영동으로 답사를 갔다.

  여행사 대표로 계신 분께서 출발하면서 ‘오늘 여행은 가을을 보러 가는 여행’이라고 했다. 아주 오랜만에 남두와 희숙이 언니와 함께 가을을 보러 가는 길은 즐거웠다

 

  가는 길, 가을 들녘은 아름다웠다. 쌀시장 개방 문제로 시끌시끌한 마당이라 머지않아 이런 풍경들도 사진 속에나 남아있지 않을 까 싶은 아쉬움도 있지만 풍요롭다.주렁주렁 매달린 감이며 사과며, 단풍이 들기시작하는 산이며 눈을 뗄 수가 없다.

 

  영동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이 반야사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계곡물을 막아 만든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호수를 따라 호젓한 산길을 걸어들어가니 자그마한 절이 있다. 들어가는 길이 참 예쁘다. 대웅전 안에 경주 옥석으로 제작된 석가여래좌상과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고 해서 법당안으로 들어가 절을 하고 살펴보니 개금(改金)을 해서 번쩍번쩍 한다.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가 없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안에 모셔진 돌은 마모가 심하지 않을 텐데 덜 훼손시켜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어쩔수 없었나 보다. 작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500년 이상 되었다는 배롱나무를 보고 내려왔다

 

  신향리라는 마을 입구 누각 안에 모셔놓은 삼존입불상을 보고 난계 축제가 열리고 있는 영동읍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하고 난계 국악박물관과 박연의 영정을 모셔 놓은 난계사에 들렀다. 우리 나라의 전통악기와 쓰임, 만들는 방법, 연주하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전시장을 들러 보고 박연의 영정을 모셔놓은 난계사를 참배 하고 내려왔다. 박연은 세종대왕을 도와 음악을 정비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고 편경을 제작했던 분이다. 아이들과 국악 감상글 쓰기 할 때 참고 자료로 쓰기 위해 사진도 찍고 악기도 두드리며 둘러 보았다.

 

  난계 축제장, 국악 연주회가 열리는 시간을 지나 도착하는 바람에 국악 감상을 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국악기를 배워 보았다. 가야금은 오른손 검지를 튕기며 연주하는 것과 같은 음이 반복될 때는 앞 줄에서 검지로 엄지를 스쳐 튕기면서 친다는 것을 알았다. 아리랑 연주를 했는데 재미있었다. 해금은 낮은 음을 내는 방법과 높은 음을 내는 방법을 배웠는데 높은 음은 바깥줄을 낮은 음은 안에 있는 줄을 활로 긁어서 낸다. 둑을 두드리는 것도 배웠다. 북 소리를 낼 때 그냥 치면 힘도 들고 소리도 아름답게 나지 않는 단다. 큰 북은 위에서 아래로 쳐야 힘도 덜 들고 소리도 우렁차게 난다는 것과 작은 북은 아래서 한번 밑에서 위로 올려치면 한번씩 쳐야 힘도 덜 들고 소리도 아름답게 난다고 한다. 


가야금 배우기

  돌아오는 길에 천태산 영국사를 들렀다. 

  영국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3개나 있단다. 주차장에서 오솔길을 따라 2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니 1000년이 넘었다는 아름다운 은행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많은 이야기를 가슴이 품고 사는 나무같다. 이 나무를 소재로 동화 한편을 써 보고 싶어진다. 일행들이 영국사로 올라간 뒤에도 한참 동안 은행나무를 바라봤다. 나도 이 나무처럼 모든 걸 품에 안은 듯 의연하게 늙어가고 싶다.

  (영국사 입구에 선 은행 나무)

  은행나무를 보고 영국사 경내로 들어가 삼층 석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절 뒤편에 있는 부도를 보러 갔다. 커다란 거북 위에 세워진 원각국사비를 보고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팔각원당형 부도를 보았다. 부도를 보면서 의견이 분분하다. 보물로 지정되기는 웬지 초라해 보인다는 둥, 고려 시대가 아니라 신라 말에 세워진 부도같다는 둥, 우리 문화 유적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 답게 유적을 볼 때 마다 이런 저런 의견이 오간다. 나도 우리 문화 유적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생각했는데  명함도 못내밀겠다.

 

  뜻깊은 가을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 길이 막혀 예상 도착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흐뭇하다


(영국사 경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풍경그림 2004-11-2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보고 싶다~~

다솜 2004-11-23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사 은행 나무 넘 이쁘죠? 담 가을에 한 번 가보셔요. 동화 쓰시는 분들은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나무가 내 속으로 걸어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참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사는 나무 같죠?
 

-진주 유등 축제를 다녀와서(2004년 10월 3일)

   올 봄까지 큰언니가 진주에 살고 있었다.그래서 제법 자주 진주에 내려가곤 했다. 작년에는 언니집을 갔다가 유등축제가 열리는 것을 보고 언니네 가족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고 올라왔었다.

  올해는 신문을 보고 유등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언니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해서 멀뚱거리고 있다가 친구와 일요일 오후에 잠시 내려가서 보고 왔다

  유등축제는 김시민 장군의 군사신호로,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의 도하 작전 저지용으로,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쓰이는 유등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얼과 넋을 기리는 행사로 수백년 동안 이어져 오다가 오늘날의 유등축제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해저물녘에 도착하니 차를 주차할 곳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촉석루 앞을 흐르는 남강에 아시아 여러 나라의 등을 띄어 놓은 것을 보고 예술회관 앞에서 언니를 만나 밥을 먹고 오니 강 위에 수많은 등불이 꽃처럼 피어있었다. 한켠에는 시민들이 띄워놓은 소망들도 떠 다니고, 촉석루 맞은편 고수부지엔  붉은 홍등에 저마다의 소망을 적어 걸어두었다. 사람들에 밀려 다니며 강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학생과 시민들이 만든 아이디어 등을 전시한 두 동의 터널이 있었다. 이 곳에 전시된 등들은 진주시내 학생, 시민들이 전통 한지 뿐만 아니라 나무 저, 계란 판,플라스틱 바구니 같은 폐품을 이용해서 등을 만들어 걸어놓았는데  등에 달린 소망들이 참 재미있었다. 공부 잘하게 해 달라는 이야기에서 부터, 동방신기 엘범 잘 팔리게 해 달라는 이야기...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을 다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마음 씀씀이가 고운 아이의 소망까지.  유등축제도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재미있다.

  축제의 계절 가을이다. 어느 고장을 가든 그 고장의 특색을 살린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가을날 부지런히 길을 떠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 때 '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다. 오늘 현정이와 생활글을 쓰면서 '칭찬'이 가진 힘을 절감했다.

  현정이와 같이 방과후 미술 특강을 받는 아이중에 평소 남의 기분 생각 않고 잘난 체 하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 모양이다. 그 아이가 학교 대표로 뽑혀 그림 그리기 대회를 2번 나가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무슨 말만 하면 "나는 이번 주, 다음 주 다 그림 그리기 대회 나가잖아." 이렇게 말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반 아이들 중에는 그 아이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집에 오는 길에 현정이가 그 아이에게 "진영아, 내일 그림 잘그려."라고 인사를 하면서 "너는 그림 잘 그리니까 좋겠다." 하고 말했단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씩 웃더니 "너도 처음인데 그림 잘 그리잖아."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현정이는 이 말을 듣고 아주 놀랐단다. 그 아이가 누구를 칭찬하는 것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헤어질 때도 그 냥 "나는 이쪽으로 간다." 이러면서 휑 가는데 오늘은 "너는 걸어가제. 나는 학원차 탄다, 안녕" 이러면서 손까지 흔들며 가더란다.

   자기 밖에 모르고 고집 센 친구도 칭찬 앞에서는 마음이 너그러지는 것을 보고  잘난척 하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알았단다. 

  나도 아이들에게는 칭찬을 잘하는 편이지만 동료나 친구들에게 칭찬을 잘하지 않는 편이다. 기분 좋은 말 한 마디로 주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는데 현정이 이야기를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른 나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갈 때는 그 나라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가는 것이 기본 상식인데 아유타야 유적지를 볼 때는 그렇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었다.그런데 앙코르 유적지는 나름대로 알차게 준비해간 탓에 룰루오스 유적군을 제외한 나머지 유적군은 목표한 대로 다 돌아봤다. 3일동안 내가 신들의 나라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힌두교 신화 속에 푹 빠졌다 돌아왔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순박한 사람들과 싼 물가 편리한  관광 시스템이 참 편하고 기분 좋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도와 주었다. 내가 캄보디아를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다들 걱정을 했었다. 오랫동안 내전이 있었던 나라라는 선입견 때문이리라. 약간의 모험이 필요했지만 또 다른 역사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모험에 따른 불안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글로벌 하우스에서 점심 밥을 2달러 주고 먹고, 1시 넘어서 캄보디아 국경으로 출발했다. 이런저런 기념품을 샀더니 짐이 많이 불어났다. 그런데다가 저녁에 희진씨랑 먹으려고 샀던 맥주랑 안주를 챙겨 들었더니 손에 줄줄이 짐이 들렸다. 그렇지만 기분은 참 좋다

                                          (태국에서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가는 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씨엠립강 오른쪽에 있는 유적 보기

  희진씨가 태국으로 가기로 한 날이어서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 갔다. 7시까지 여행버스 예약한 곳에서 데리러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올 때 와 달리 우리도 오전 투어만 하고 (룰루오스 유적군 보는 것은 포기하고)태국으로 가기로 해서 서둘렀다.  7시 30분에 희진씨 보내고 우리는 서둘러 쁘라삿 끄라반을 갔다.

쁘라샷 끄라반- 왕의 명령으로 지으진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이 곳은 어느 귀족이 개인적으로 지은 사원이란다. 보통의 사원들은 가운데 성소탑이 있고 빙 둘러 4개의 탑이 있는데 이 곳은 특이하게도 가운데 성소탑이 있고 좌우로 2개씩 탑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이것이 이 사원의 전부다. 톰마논을 먼저 가지 않고 맨 마지막 코스를 먼저 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공기도 상쾌하고 좋다. 이틀동안 정신없이 다녔던 것과는 달리 오늘은 조용하게 메모도 하면서 유적은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성소탑 맨 왼쪽 벽돌로 된 방벽 방 3면에는 여러 가지 부조가 새겨져 있다. 여신이 명상중인 신도들 사이에 서 있고 옆에서 도마뱀이 기어오르고 있는 그림도 있다. 둘러보고 나오려고 하니 하나둘 사람들이 나타난다

  반띠아이 끄대이 와 그 앞에 있는 쓰리쓰랑 .  이 곳은 탑문이 앙코르 돔 남문의 탑문과 비슷하다.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는 부처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사원이 너무 많이 허물어져서 그런가 인자하고 넉넉한 부처의 얼굴이 아니라 가만히 고통을 참고 있는 듯한 얼굴이다. 웬지 가슴이 짠하다. 탑문 안으로 들어가 돌아보니 탑문 밖으로 쓰리쓰랭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좌우로 수 많은 방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규모가 아주 큰 사원이었던 모양이다. 1960년 이 곳을 복원하려고 했을 때 원주민들이 수 많은 방들마다 염소를 키우고 있었단다.그래서 더 많이 허물어지지 않았나 싶다. 무희홀을 지나 탑문을 들어서서 내부를 둘러 보니 건물잔해에 아름다운 부조들이 많이 남아있다. 성소로 들어가다 말고 다시 뒤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주황색 사리를 걸친 스님 두 분이 부처님께 올릴 공양을 들고 들어오고 계신다. 합장을 할 생각은 않고 사진부터 찍는다. 부처님을 모셔놓은 곳은 지나 서쪽 탑문으로 나갔다. 그런데 서쪽 탑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사방에 막대기를 바쳐 놓았는데도 위태롭다. 이 곳도 거대한 열대나무와 유적의 싸움에서 유적이 일방적으로 지고 있다. 아열대 나무들의 뿌리는 얼마나 거대한지 유적과의 공존을 꾀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유적을 내리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쪽 탑문 있는 곳에서 보니 성소탑 같이 생긴 탑들이 거의 허물어지긴 했지만 탑이 많다. 세어 보니 9개나 된다. 이 곳은 대체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 내부 벽에 새겨진 부조를 보면 정성을 많이 들여 지은 것 같은데.

  스리스랭- 반띠아이 끄데이 앞에 있는 왕실 전용 수영장이었단다. 다른 저수들은 건기에 물이 말라도 이 곳은 건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단다.  

  따쁘롬-그 유명한 영화 툼 레이더를 이곳에서 쵤영했다고 해서 더 많이 알려진 그 곳.이 곳을 다녀온 여행자가 말하기를 ‘이 곳처럼 아름다운 폐허가 없다’고 했던가. 이 사원은 효성이 지극했던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브라흐마 신에게 헌납한 사당겸 사원이라고 한다. 수많은 건축물을 남긴 그가 가장 먼저 지은 건물이 이 건물이라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지었을까? 그런데 사원은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 심하게 훼손이 되었다. 그 훼손의 주범이 열대 나무들이고.

   열대 나무의 그 튼실한 뿌리가 여러 개로 갈라져 그 중 한개는 사원의 탑 가운데를 펀치를 날리듯 쫙 뻗어 뿌리를 내린 곳도 있고, 탑을 밀어 내듯 좌우로 꽉 쪼아 숨통을 조이고 있는 곳도 있다. 그래서 건물이 더 이상 견디지를 못하고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열대나무의 생명력에 경외감이 일 정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다.나무들도 밉지 않고 허물어진 유적들도 흉물스럽지 않다. 담 위에 타고 앉은 거대한 뿌리와 그 밑에서 숨쉬기 조차 힘들 것 같은 담을 보고 있으니 내 숨통을 조이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긴 하지만.

  무희들의 홀을 지나 동쪽 탑문 쪽으로 가니 캄보디아 악기를 팔고 있다. 동생 사 줬으면 딱 좋겠다.우리 나라의 해금 비슷한 악기다. 뱀 가죽과 캄보디아에서 나는 무슨 나무로 만든 것이라는데 나무가 고급스러워 보인다. 니스를 칠해 억지로 윤을 내지도 않았고. 흥정을 해 보니 15달러에서 10달러까지 내려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지고 갈 일이 걱정이다. 바로 집에 가면 모를까 며칠을 가지고 다녀야 되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안 샀다. 돌아서 나오는데 그 가격이 8달러까지 내려간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따께오-쉬바신에게 바쳐진 사원들이 그렇듯이 주변에 4개의 탑이 둘러 싸 있고 가운데 성소탑이 있는 힌두교 사원이다. 타프롬을 갔다가 승리의 문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따께오가 있다. 길가에 있어 뚝뚝이에서 내리면 몇 미터 거리에 이 사원이 그대로 보인다. 이 사원을 오르면서 보니 난관이 없다. 그래서 2층을 한바퀴 돌아보려면 심장의 벌렁거림을 다스리며 돌아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디자인이 그다지 정성드려 지은 사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다가 올라가는 계단은 또 얼마나 가파른지, 다행히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신의 영역에 다가갈 수록 계단의 각도가 완만해 진다.

  참고 올라간 3층 성소,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아니 모셔놓았다기 보다는 그냥 덩그마니 놓아 두었다. 성소탑을 둘러보고 주변 탑들을 돌아보는데 어느 탑 앞에 서니 냉장고에 들어온 것처럼 시원하다. 서늘한 바람이 끈적거리던 물기를 다 데려간다.

  톰마논-성소탑 좌우로 건물이 길쭉하게 늘어져 늘어서 있는 작고 아담한 사원이다. 쁘라삿 끄라반은 붉은 라테라이트로 지어져 단순하게 줄 늘어서 있어도 참 예뻤다. 그런데 이사원은 비슷비슷한 수많은 사원은 보고 난 뒤라 그런지 사암으로 지어진 자그마한 사원이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되는 것이 없다.

  유적지 관람을 다 끝내고 돌아올 때 지뢰 박물관을 들렀다. 나비 정원을 가려다가 아똑이 정확하게 위치를 잘 모르는 것 같고 지도상으로 보아 앙코르 유적지와도 꽤 떨어져 있어 글로벌 사장님과 약속한 시간까지 가기가 힘들 것 같아 가까운 앙코르유적지와 가까운 지뢰 박물관으로 갔다. 이 곳은 아똑도 잘 아는 곳이었다

  지뢰박물관-지도상으로 보니 앙코르왓 앞에 있더니만 앙코르왓을 나와 한참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려가니 지뢰박물관이 있었다. 일반 가정집 만한 규모의 건물 안에 캄보디아 곳곳에서 수거한 지뢰들을 쓰레기처럼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둘러보니 지뢰 모습도 가지가지, 크기도 가지가지다. 지뢰의 위험성을 알리는 포스터도 곳곳에 붙여 놓았다. (이곳에는 지뢰로 인해 다친 아이들이 공동 생활을 하는 곳인지 아니면 재활 훈련을 하는 곳인지 밥을 먹고 함께 모여 생활하고 있는 곳도 보인다.). 서양 아이 하나가 일행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데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보이는 것만 둘러보고 나왔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