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고 달려 강원도 폐사지들을 보러 갔다.작년 겨울 보령 성주사지를 갔다가 겨울 폐사지의 매력에 빠져 올 겨울엔 강원도 폐사지를 찾아갔다.눈 쌓인 강원도 폐사지 풍경이 한 동안 눈에 어른거릴 것 같다


첫번째 답사지는 한계사지.한계사는 신라 진성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 아미타불상존을 모셨다는 곳이다.

설악산 장수대 분소 옆 200미터 거리에 있는 한계사엘 도착하니 하얀 눈을 수북이 이고 선 삼층 석탑만 보인다. 눈 구경하기 어려운 경상도 사람들은 문화재 답사는 뒷전이고 눈 밭을 노루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논다. 산 기슭에 는 귀퉁이가 깨진 광배도 보인다. 수많은 유구들이 눈에 파묻혀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하얀 눈 위에 홀로 선 석탑을 주변에 주춧돌을 놓고 그 옛날 한계사지를  상상해 보니 재미있다. 




(훼손된채 남아 있는 광배에 새겨진 부처, 마모가 되어 잘 보이지 않더니 설본을 했더니 형태가 보였다)

 

한계사지 뒤, 비탈길을 따라 70미터 정도 올라가니 북탑이 있다. 이 탑은 감은사지 탑 같이 크고 잘 생겼다.



  한계령을 넘어 선림원지에 갔다. 선림원은 9세기 중엽 홍각선사라는 분이 창건했다는데 많은 건물지들로 보아 규모가 아주 컸던 사찰 같다.

동네 있는 곳에 차를 대고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눈이 엄청나게 왔던 모양이다. 온 사방이 하얗다. 이 곳은 한계사지보다 눈이 더 쌓였다. 눈 속을 걸어보니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이곳에서도 답사는 뒷전이고 눈 속에 파묻고, 파묻히고, 눈싸움하느라 난리가 났다.



선림원지는 3층석탑, 석등,탑비 귀부와 이수 등 볼 거리가 참 많은 폐사진데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유물들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특히 탑비의 귀부를 보고 싶었는데 눈을 걷어내도 밑에 있는 눈이 얼어 볼 수가 없어 아쉽다. 귀부에 날개가 달렸다는데, 다행히 눈을 쓸어 보니 한 쪽 날개랑 앞 발이 보인다.귀부를 조각한 조각가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진전사지로 향했다.진전사지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8세기 말경에 창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건너편에 진전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진전사지 삼충석탑은 겨울 아닌 계절에 오면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조금씩 드러나는 탑 모습이 참 예쁘단다.봄에 오면 참 좋을 것 같다. 오르는 길 양쪽에 수령이 제법 오래된 벚꽃나무가 있어 그 꽃이 필 때쯤 풍경을 그려보니 아닌게 아니라 볼만하겠다.진전사지 삼층석탑은 하층 기단에는 비천상이 ,상층기단에는 팔부중상이, 1층 몸돌에 사방불을 새겼다.탑 규모도 크고 상당히 정성을 들여 만든 탑이다. 탑 뒤로 보이는 산은 동양화 한 폭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뒤에 올라가니 진전사지 부도가 있다.  기단은 탑을 쌓듯이 쌓아 올리고 탑신과 지붕은 신라시대 전형적인 부도양식인  팔각원당형이다. 탑 같기도 하고 부도 같기도 한 독특한 모습이다.



 진전사지를 보고 나니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속초 불축제를 보러 갔다. 준비가 부실해서 볼게 없다.그래서 설악산 켄싱턴스타 호텔 앞에 있는 항정리 3층석탑을 보러 갔다. 눈이 많이 내려 제설 작업을 하고 있어 차 댈 데가 마땅이 없다. 길가에 차를 대고 호텔 불빛에 의지해서 석탑을 대충 둘러봤다. 한계사지 북쪽 석탑과 비슷한 분위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낙산사로 일출을 보러 갔다 와서 밥을 먹고 , 관세음보살이 연꽃을 베고 누운 형상이 발견되었다는 휴휴암을 갔다가 강릉 신복사지엘 갔다. 신복사는 효통대사 범일이 문성왕 12년에 창건한 사찰로 조선 초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 곳에서 나는 내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탑으로 담길 탑 한 기를 봤다. 아랫기단에 새긴 복련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고 몸 돌을 바쳐 주는 돌이 하나씩 끼여 있어 경상도 지방에서 본 탑들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는 탑이었다. 

탑 앞에는  지권인을 한 식영보살이 정성드려 공양을 드리고 있다. 월정사 9층석탑 앞에 있던 문수보살처럼 이곳 명주 지방의 사찰만이 지닌 독특한 모습이다. 일행 중 한 분이 부르기에 가 보니 탑 앞에 있는 공양상을 뒤에서 보란다. 약간 비튼 듯한 허리가 제법 요염해 보인다. 조각하는 분이 꽤 재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신계사지를 나와 간 곳은  굴산사지. 굴산사는 문성왕 때 창건한 사찰로 구산선문 중에서 가장 컸던 사찰로 알려져 있다. 아닌게 아니라 굴산사지가 있었다는 학마을 앞 너른 터에 있는 당간을 보니 우람하다.가까이 가서 보니  돌을 다듬지 않고 형태만 잡아 당간으로 세워놓았다. 참 당당하고 자연스럽다.



 당간의 규모로도 절의 규모를 추측할 수 있다는데 이렇게 큰 당간을 세울 정도의 절이라면 그 사세가 엄청났을 것이다. 기거하는 스님이 최고로 많을 때는 1,600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 같다. 당간 지주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학마을 뒤 도로 난 곳까지가 다  절터라니 전성기의 굴산사지 모습이 어떠했을 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당간 지주가가 있는 곳에서 왼쪽 마을 가는 길을 따라 가면 석불이 있다. 그런데 석불은 조성하다가 만 것 같다. 얼굴 부분이 깨진 것인지 다듬다가 만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옷이나 손모양 등으로 보아 미완성 작품인 것 같다.



학마을 회관 앞에서 야트막한 산을 오르면 밭 한가운데 굴산사지를 창건하셨다는 범일 국사 사리탑으로 전해지는 부도가 있다. 부도 가는 길에는 범일 선사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한 학바위와 우물이 보인다. 전설이 개연성을 띄고 다가온다.



개인 주택 옆 밭에 있는 이 부도는 참 멋을 많이 부렸다. 이 부도를 만든 석공은 담백한 것 보다 화려하게 꾸미는 걸 좋아하셨던 분 같다. 부도기단에  아주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를 새겨놓았다.

 

이번 폐사지 답사는 ‘눈덮힌’ 이라는 낭만적인 낱말이 주는 느낌만으로도  망설임 없이 떠났다.폐사지 곳곳에 널린 유구들을 눈 때문에 다 볼 수 없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곳곳에서 설매도 타고 눈밭에 뒹굴며 동심으로 돌아갔던 즐거운 답사였다. 가며 오며 주변 유적지도 돌아보며 후회없는 답사를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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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2-27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하세요. 부럽습니다.

다솜 2008-02-2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시간만 나면 답사 다니느라 정작 써 올려야 할 책 리뷰는 한 편도 못 쓰고 있네요.^^
 

 

  ‘더 이상은 못참아’ 책에 짝지 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반은 한 달은 남자애가 좋아하는 여자애 옆에 가서 앉고, 또 한 달은 여자애가 좋아하는 남자애 옆에 앉는 것으로 짝지를 정한다. 그런데 오늘 그 책을 읽고 수업을 하다가 내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 4학년 때 너희는 짝을 어떻게 정했으면 좋겠니?"

  그랬더니 한 녀석이 이랬다.

“남자끼리 앉았으면 좋겠어요.”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도 아니고 남자끼리?' 그래서 내가 넌지시 떠 봤다.

“좋아하는 여자애랑 짝지 되는 것도 좋잖아.”

그랬더니 글쎄 이러는 것이다 .

“세상이 무서워서 싫어요.”

 헉, 여자애랑 앉는게 무섭다니!

여자애들이 꼬투리만 잡으면 떼로 몰려와서 때리기 때문에 되도록 여자애들과 멀리 떨어져 앉고 싶단다. 여자애들을 괴롭히는 녀석도 아닌데 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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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부터 정초까지 내리 5일을 쉬었다. 황금같은 이 시간을 어떻게 쓸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 종로에 있는 특색있는 박물관 몇 군데랑 서오릉을 다녀오기로 했다.

  서울에 도착해서 내가 하룻밤을 묵을 언니한테 전화를 했다.

  "언니 서오릉 갔다가 저녁에 갈게요."

  "뭐하러 그러니 서울역에서 언니 있는 곳까지 지하철로 세 정거장만 오면 되는데. 언니 사무실에 들러 점심 먹고 가."

이랬다. 그래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언니 사무실에 갔다.점심을 먹고 서오릉을 가려고 나오는데 그 사이에 비가 쭈욱쭈욱 내린다.그러자 언니가 종묘를 가 봤냐고 묻는다. 안 가봤다고 하니 그럼 오늘 서오릉 가지 말고 낼 가고 오늘 종묘에서 창경궁까지 산책 가잖다. 문화재 답사를 다닌다고 하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를 하는 곳을 안가봐서 되겠냐고.

 

 

그런데 언니 사무실에서 길 하나 건너니 종묘 입구다. 들어서니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서울 한 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다니!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종묘랑 창덕궁, 창경궁이 연결되어 있어 그 곳까지 단 돈 1,000원을 내고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이 있고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곳이 시내 한 복판에 있는 것도 놀라운데 시민들이 부담없이 산책 할 수 있도록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출입을 허용하는 것이 얼마나 부럽던지. 그래서  언니한테 연신 그랬다 .

  “언니, 정말 좋은 데 산다.”

 

  종묘에 들러 종묘 제례(왕조의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내는 중심건물인 정전을 둘러보고 종묘제례시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대기하는 악공청에서 종묘제례를 할 때 연주하는 제례악과 제례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보았다. 종묘제례악은 세종때 지은 보태평과 정대업을 세조가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들어보니 아주 장엄한 느낌을 준다. 내가 넋을 잃고 보고 있으니  언니가 5월달에 종묘 제례 할 때 연락할테니 그 때 와서 직접 보고 듣고 가란다.

(종묘-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셔놓은 곳으로 매년 5월에 제사를 지낸다. 이 때 종묘 제례악 연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종묘와 창덕궁 사이를 갈라놓은 도로 위에 건설된 다리를 건너니 창덕궁이다. 일제시대 이전에는 창경궁과 종묘가 연결되어 있었다는데 맥을 끊어놓기 위해 종묘와 창경궁 사이에 도로를 만들어 차단을 해 놓았단다. 몹쓸 ..!

 

  창덕궁은 내일 아는 샘과 함께 둘러 보기로 해서 관측대 주변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며 감탄을 연발하다가 창덕궁 내에 있는 여러 건물들을 둘러 보러 갔다.


(관천대-숙종 14년에 세웠다는 천문 관측대)

창덕궁은 몇년 전 여름, '평양에서 온 국보전'을 보러 서울에 왔다가 들렀던 곳이다. 이곳에는 볼거리가 정말 많다. 왕과 왕비가 생활했던 공간이나 집무를 보았던 곳, 연회를 베풀던 곳, 과거 급제한 이들을 접견하던 곳 등의 건물들 뿐만 아니라 성종 태실비, 석탑, 연꽃 확,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 그런데 늘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못 보고 같다. 그때도 같은 일을 하시는 선생님과 함께 혜화동에서 이곳까지 걸어와 관람을 했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대충 휘 둘러보고 갔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궁궐 관람 허용 시간이 다 돼서 다 꼼꼼하게 보진 못하고 내가 즐겨봤던 드라마 '이산' 의 등장인물들이 살다갔던 곳을 중심으로 둘러봤다.  


 


(경춘전-광해군 8년에 지은 건물로 22대 정조와 24대 헌종이 이곳에서 태어났단다)

 


(영조가 썼다는 숭문당 현판 글씨-영조는 수시는 이곳에 들러 성균관 학생들을 시험하기도 하고 술잔치를 베풀기도 했다고 한다)



(성종 태실비)

 



(창경궁 명정전, 창경궁의 으뜸되는 건물로 현존하는 궁궐 법전 중 가장 오래되었단다)


(수령이 300년 쯤 된다는 주목)



(풍기대 옆에 있던 연꽃 확-나는 돌 확을 보고 배유안 작가가 쓴 '초정리 편지'에 나오는 어린 석공 장운이 떠올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그런가 아니면 문 닫을 시간이 다 돼서 그런가 이 넓은 궁궐 안에 언니랑 나 외엔 아무도 안 보인다.텅빈 궁궐을 남겨두고 문을 나서니 수많은 차량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마치 다른 행성에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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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적사에 문화재 두점을 보러 갔다가 나와 기장 죽성리 나지막한 언덕에 있는 해송을 보러 갔다.



이 소나무는 수령이 250-300년쯤으로 추정된다는데 사방으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겸손하게 서 있는 모습이라 품이 넉넉해 보인다. 멀리서 볼 때는 한 그루 같았는데 여섯그루가 비슷한 자리에서 함께 자라 한 그루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소나무들 사이에 마을 서낭신을 모신 국수당이 있다. 죽성리엔 조상대대로 고기잡이를 해 오고  계신 분들이 많이 사신다던는데 고기잡이 하러 갈 때는 고기 많이 잡아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돌아돌 때는 서낭신님 덕분에 무사했다고 먼빛으로 기도드리는 사람들이 많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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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일요일 시간이 나서 함께 답사 다니는 처자들한테 연락을 했다. 합천 영암사지를 갈까 하다가 밀양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다. 답사 동선은 삼랑진(만어사와 숭진지 3층석탑),산외면(영원사지와 혜산서원),단장면(허씨고가와 표충사).

  신대구 고속도로를 타고 삼랑진 IC를 빠져나가 간 첫답사지는 만어사. 이곳은 2006년 모신문 신춘문예에 만어사 전설을 모티브로 쓴 동화가 당선되었을 때부터 답사예정지로 점찍어둔 곳이다. 나 역시 영국사 은행나무를 보고 동화를 쓰고 싶은 마음을 품었으므로.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나와 보물 제 466호로 지정된 석탑을 둘러본다.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추정된다는데 단아하다. 절 마당 끝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본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며 뛰어오르는 듯한 너들바위 너머로 구불구불 산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산들이 바다 한가운데 뜬 섬 같다.

 
 (용화전 앞에서 바라본 산능선)

 

  용화전에는 용왕의 아들이 인연이 다하여 낙동강 건너 무척산의 신승을 찾아가서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였더니 '가다가 멈추는 것이 인연터'라는 법문을 들고 멈췄다가 미륵돌이 되었다는 바위가 있다.



 용화전 앞에는 ‘어산불영’이라는 너들바위 지대가 있다. 이 곳에 있는 돌들은 용왕의 아들을 따르던 수만마리의 물고기들이 변한 것이란다.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너들 바위들은 물고기들이 파도위로 용솟음치는 모습을 하고 미륵돌을 향하고 있다.  이 돌들은 3개 중 두 개는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는데, 작은 돌을 주워 길가에 있는 돌들을 두드려 봤다. 그런데 일반 돌덩이에서 나는 소리랑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너들바위 지대 안으로 들어가 바위들을 두드려 봤다. 오호~ 정말 종소리가 난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종을 친다. 정말 신기하다. 산 아래 마을까지만 해도 겨울 치곤 포근한 날씨였는데도 만어사가 있는 산중턱은 바람이 아주 차다.



  삼랑진쪽으로 내려와 숭진리 3층석탑을 보러 갔다. 숭진리 3층석탑이 있는 골짜기 산이 자씨산이라는데 자씨는 미륵보살의 성씨란다. 숭진리 마을을 거슬러 경운기 한 대나 겨우 다닐만한 좁은 논길을 올라가니 논 가운데 자그마한 탑 하나가 보인다.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된다는데 절터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1층 몸돌에 글자를 새겼던 흔적이 보이는데 글자도 알아볼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밋밋한 느낌이 든다


  영원사지, 밀양 표충사 가는 길에서 산외면 사무소 쪽으로 빠져 사무소 앞 갈대숲이 아름다운 내를 건너면 영원사지가 있다. 그런데 참 허무하다. 대추 밭 한쪽에 밀쳐놓듯 놓아둔 돌부처 네분과 보감국가 묘응탑비와 부도. 거기다가 밭둑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탑신이 보인다. 개인 사유지여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참으로 씁쓸하다. 밀양에 답사를 오려고 계획했던 게 영원사지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영원사지 1402~1530년 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몇 백년 세월 동안 남아 있던 흔적들은 이리저리 다 흩어지고 그나마 남아 있는 흔적들은 대추나무에 밀려  더부살이 하듯 한쪽 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  

  영원사지를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산외면 사무소 뒤편에 있는 혜산 서원에 들렀다.


(서원 왼쪽에 보이는 나무가 600년된 차나무를 얻어다 심었다는 차나무)

 

이 서원은 좀 독특하다. 제를 지내는 곳,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 등이 가각 독립건물처럼 분리되어 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서원철페령이 내려졌을 때  용도별로 분리해서 건물에 담을 둘러 건물이 헐리는 것을 막았단다. 그리고 이제껏 다녀본 서원들은 동제와 서제 건물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 곳은 다르다.동제 건물보다 서제 건물이 단촐하고 초라해 보인다. 이곳에 잠시 기거하고 계신다는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제는 상류층 자제들이 기거하던 곳이고, 서제는 동제에 있던 유생들보다 낮은 신분의 자제들이 공부했던 곳이라고 한다. 서원 앞에 600년 된 차 나무 씨앗을 얻어다 심었다는 차 나무가 있다. 이 나무로 인해 마을 이름이 ‘茶院’이란다.

(혜산 서원 동제)


(혜산 서원 서제)

 

  밀양 표충사 가는 길에 ‘밀양’ 영화 속에서 송강호와 전도연이 백숙을 먹었다는 그 식당 ‘길벗’에 들러 비빔밤을 먹고 표층사에 갔다.

  식당가 마당에 차를 세워놓고 마을을 가로질러 설렁설렁 걸어갔더니 표 받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냥 들어갔다. 표충사가 자리잡은 곳은 그윽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재약산이 표충사 주위을 감싸고 있어 깊은 산 속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느낌이다.성보 박물관에 들러 청동함은향완과 사명대사 유품들을 봤다. 표충사를 둘러싼 재약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제 모습을 그대로 겨울 재약산은 산의 본질을 보는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단장면 허씨 고가에 들렀다. 문이 잠겨있다. 제법 규모가 큰 살림을 하던 댁이었던 것 같은데 자손이 이 곳에 살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담 위로 고개를 쑤욱 빼고 이리저리 둘러보니 오른쪽 사랑채 건물인듯한 곳은 비닐이 덥혀있다. 공사 중인 모양이다.

  내려 오는 길에 ‘행랑채’라는 찻집에 들러 진하게 달인 대추차를 마셨다. 따뜻한 기운이 온 몸에 번진다.밀양, 무시로 드나들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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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2-13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뭘 봐도 불 걱정이 먼저 드네요. -.-;;

다솜 2008-02-1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렇죠? 숭례문 전소,이래저래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네요.얼마전 서울 갔을 때 오는 길에 숭례문 들렀다 오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 그냥 왔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