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부터 정초까지 내리 5일을 쉬었다. 황금같은 이 시간을 어떻게 쓸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 종로에 있는 특색있는 박물관 몇 군데랑 서오릉을 다녀오기로 했다.
서울에 도착해서 내가 하룻밤을 묵을 언니한테 전화를 했다.
"언니 서오릉 갔다가 저녁에 갈게요."
"뭐하러 그러니 서울역에서 언니 있는 곳까지 지하철로 세 정거장만 오면 되는데. 언니 사무실에 들러 점심 먹고 가."
이랬다. 그래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언니 사무실에 갔다.점심을 먹고 서오릉을 가려고 나오는데 그 사이에 비가 쭈욱쭈욱 내린다.그러자 언니가 종묘를 가 봤냐고 묻는다. 안 가봤다고 하니 그럼 오늘 서오릉 가지 말고 낼 가고 오늘 종묘에서 창경궁까지 산책 가잖다. 문화재 답사를 다닌다고 하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를 하는 곳을 안가봐서 되겠냐고.
그런데 언니 사무실에서 길 하나 건너니 종묘 입구다. 들어서니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서울 한 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다니!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종묘랑 창덕궁, 창경궁이 연결되어 있어 그 곳까지 단 돈 1,000원을 내고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이 있고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곳이 시내 한 복판에 있는 것도 놀라운데 시민들이 부담없이 산책 할 수 있도록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출입을 허용하는 것이 얼마나 부럽던지. 그래서 언니한테 연신 그랬다 .
“언니, 정말 좋은 데 산다.”
종묘에 들러 종묘 제례(왕조의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내는 중심건물인 정전을 둘러보고 종묘제례시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대기하는 악공청에서 종묘제례를 할 때 연주하는 제례악과 제례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보았다. 종묘제례악은 세종때 지은 보태평과 정대업을 세조가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들어보니 아주 장엄한 느낌을 준다. 내가 넋을 잃고 보고 있으니 언니가 5월달에 종묘 제례 할 때 연락할테니 그 때 와서 직접 보고 듣고 가란다.

(종묘-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셔놓은 곳으로 매년 5월에 제사를 지낸다. 이 때 종묘 제례악 연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종묘와 창덕궁 사이를 갈라놓은 도로 위에 건설된 다리를 건너니 창덕궁이다. 일제시대 이전에는 창경궁과 종묘가 연결되어 있었다는데 맥을 끊어놓기 위해 종묘와 창경궁 사이에 도로를 만들어 차단을 해 놓았단다. 몹쓸 ..!
창덕궁은 내일 아는 샘과 함께 둘러 보기로 해서 관측대 주변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며 감탄을 연발하다가 창덕궁 내에 있는 여러 건물들을 둘러 보러 갔다.

(관천대-숙종 14년에 세웠다는 천문 관측대)
창덕궁은 몇년 전 여름, '평양에서 온 국보전'을 보러 서울에 왔다가 들렀던 곳이다. 이곳에는 볼거리가 정말 많다. 왕과 왕비가 생활했던 공간이나 집무를 보았던 곳, 연회를 베풀던 곳, 과거 급제한 이들을 접견하던 곳 등의 건물들 뿐만 아니라 성종 태실비, 석탑, 연꽃 확,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 그런데 늘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못 보고 같다. 그때도 같은 일을 하시는 선생님과 함께 혜화동에서 이곳까지 걸어와 관람을 했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대충 휘 둘러보고 갔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궁궐 관람 허용 시간이 다 돼서 다 꼼꼼하게 보진 못하고 내가 즐겨봤던 드라마 '이산' 의 등장인물들이 살다갔던 곳을 중심으로 둘러봤다.

(경춘전-광해군 8년에 지은 건물로 22대 정조와 24대 헌종이 이곳에서 태어났단다)

(영조가 썼다는 숭문당 현판 글씨-영조는 수시는 이곳에 들러 성균관 학생들을 시험하기도 하고 술잔치를 베풀기도 했다고 한다)

(성종 태실비)

(창경궁 명정전, 창경궁의 으뜸되는 건물로 현존하는 궁궐 법전 중 가장 오래되었단다)

(수령이 300년 쯤 된다는 주목)

(풍기대 옆에 있던 연꽃 확-나는 돌 확을 보고 배유안 작가가 쓴 '초정리 편지'에 나오는 어린 석공 장운이 떠올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그런가 아니면 문 닫을 시간이 다 돼서 그런가 이 넓은 궁궐 안에 언니랑 나 외엔 아무도 안 보인다.텅빈 궁궐을 남겨두고 문을 나서니 수많은 차량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마치 다른 행성에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