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요일 시간이 나서 함께 답사 다니는 처자들한테 연락을 했다. 합천 영암사지를 갈까 하다가 밀양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다. 답사 동선은 삼랑진(만어사와 숭진지 3층석탑),산외면(영원사지와 혜산서원),단장면(허씨고가와 표충사).
신대구 고속도로를 타고 삼랑진 IC를 빠져나가 간 첫답사지는 만어사. 이곳은 2006년 모신문 신춘문예에 만어사 전설을 모티브로 쓴 동화가 당선되었을 때부터 답사예정지로 점찍어둔 곳이다. 나 역시 영국사 은행나무를 보고 동화를 쓰고 싶은 마음을 품었으므로.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나와 보물 제 466호로 지정된 석탑을 둘러본다.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추정된다는데 단아하다. 절 마당 끝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본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며 뛰어오르는 듯한 너들바위 너머로 구불구불 산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산들이 바다 한가운데 뜬 섬 같다.

(용화전 앞에서 바라본 산능선)
용화전에는 용왕의 아들이 인연이 다하여 낙동강 건너 무척산의 신승을 찾아가서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였더니 '가다가 멈추는 것이 인연터'라는 법문을 들고 멈췄다가 미륵돌이 되었다는 바위가 있다.

용화전 앞에는 ‘어산불영’이라는 너들바위 지대가 있다. 이 곳에 있는 돌들은 용왕의 아들을 따르던 수만마리의 물고기들이 변한 것이란다.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너들 바위들은 물고기들이 파도위로 용솟음치는 모습을 하고 미륵돌을 향하고 있다. 이 돌들은 3개 중 두 개는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는데, 작은 돌을 주워 길가에 있는 돌들을 두드려 봤다. 그런데 일반 돌덩이에서 나는 소리랑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너들바위 지대 안으로 들어가 바위들을 두드려 봤다. 오호~ 정말 종소리가 난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종을 친다. 정말 신기하다. 산 아래 마을까지만 해도 겨울 치곤 포근한 날씨였는데도 만어사가 있는 산중턱은 바람이 아주 차다.

삼랑진쪽으로 내려와 숭진리 3층석탑을 보러 갔다. 숭진리 3층석탑이 있는 골짜기 산이 자씨산이라는데 자씨는 미륵보살의 성씨란다. 숭진리 마을을 거슬러 경운기 한 대나 겨우 다닐만한 좁은 논길을 올라가니 논 가운데 자그마한 탑 하나가 보인다.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된다는데 절터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1층 몸돌에 글자를 새겼던 흔적이 보이는데 글자도 알아볼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밋밋한 느낌이 든다

영원사지, 밀양 표충사 가는 길에서 산외면 사무소 쪽으로 빠져 사무소 앞 갈대숲이 아름다운 내를 건너면 영원사지가 있다. 그런데 참 허무하다. 대추 밭 한쪽에 밀쳐놓듯 놓아둔 돌부처 네분과 보감국가 묘응탑비와 부도. 거기다가 밭둑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탑신이 보인다. 개인 사유지여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참으로 씁쓸하다. 밀양에 답사를 오려고 계획했던 게 영원사지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영원사지 1402~1530년 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몇 백년 세월 동안 남아 있던 흔적들은 이리저리 다 흩어지고 그나마 남아 있는 흔적들은 대추나무에 밀려 더부살이 하듯 한쪽 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
영원사지를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산외면 사무소 뒤편에 있는 혜산 서원에 들렀다.

(서원 왼쪽에 보이는 나무가 600년된 차나무를 얻어다 심었다는 차나무)
이 서원은 좀 독특하다. 제를 지내는 곳,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 등이 가각 독립건물처럼 분리되어 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서원철페령이 내려졌을 때 용도별로 분리해서 건물에 담을 둘러 건물이 헐리는 것을 막았단다. 그리고 이제껏 다녀본 서원들은 동제와 서제 건물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 곳은 다르다.동제 건물보다 서제 건물이 단촐하고 초라해 보인다. 이곳에 잠시 기거하고 계신다는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제는 상류층 자제들이 기거하던 곳이고, 서제는 동제에 있던 유생들보다 낮은 신분의 자제들이 공부했던 곳이라고 한다. 서원 앞에 600년 된 차 나무 씨앗을 얻어다 심었다는 차 나무가 있다. 이 나무로 인해 마을 이름이 ‘茶院’이란다.

(혜산 서원 동제)

(혜산 서원 서제)
밀양 표충사 가는 길에 ‘밀양’ 영화 속에서 송강호와 전도연이 백숙을 먹었다는 그 식당 ‘길벗’에 들러 비빔밤을 먹고 표층사에 갔다.
식당가 마당에 차를 세워놓고 마을을 가로질러 설렁설렁 걸어갔더니 표 받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냥 들어갔다. 표충사가 자리잡은 곳은 그윽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재약산이 표충사 주위을 감싸고 있어 깊은 산 속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느낌이다.성보 박물관에 들러 청동함은향완과 사명대사 유품들을 봤다. 표충사를 둘러싼 재약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제 모습을 그대로 겨울 재약산은 산의 본질을 보는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단장면 허씨 고가에 들렀다. 문이 잠겨있다. 제법 규모가 큰 살림을 하던 댁이었던 것 같은데 자손이 이 곳에 살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담 위로 고개를 쑤욱 빼고 이리저리 둘러보니 오른쪽 사랑채 건물인듯한 곳은 비닐이 덥혀있다. 공사 중인 모양이다.
내려 오는 길에 ‘행랑채’라는 찻집에 들러 진하게 달인 대추차를 마셨다. 따뜻한 기운이 온 몸에 번진다.밀양, 무시로 드나들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