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기 (2)-
오릉에서 국립 경주 박물관을 가려던 원래 계획을 수정해서 대릉원 쪽으로 갔다. 박물관을 들리면 아무래도 계획했던 곳을 다 돌아볼 수가 없을 것 같아 박물관은 다음 여행에서 보기로 했다. 대릉원 가는 길에 너른 공원에 큰 무덤이 몇 개 보이는 곳이 나왔다. 이곳이 대릉원인가 싶어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대릉원이 맞는지 물어보니 아니란다. 이곳은 왕족들의 무덤이고 뒤에 내물왕릉이 있단다. 대릉원에 가려면 더 가야되는데 차를 여기 대 놓고 가면 주차비를 안줘도 된다고 하신다. 고개를 쭈욱 빼고 앞을 보니 대릉원 입구가 안 보인다. 제법 먼 거리같다. 그래서 일단 차를 타고 가다가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같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그 무덤을 먼저 보고 대릉원을 가려고 물어보니 건너편 주차장이 대릉원 주차장이란다. 거기 차를 대 놓고 가면 된단다.
대릉원 주차장 맞은 편에 차를 대 놓고 첨성대와 계림을 둘러보러 갔다.첨성대를 먼저 보러 갔다.
얼마전에 첨성대가 기울어지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던 터라 유심히 살펴보았다. 서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듯 하다.첨성대는 음력 일년 날수와 같은 361개의 화강암돌을 쌓아 만들었고, 사방을 가르키는 맨 위에 얹힌 우물 정자 모양의 석단까지 28단은 기본 별자리 28수를 상징한단다. 그리고 석단 중간의 네모난 창 아래위 12단의 석단은 12달, 24절기를 의미한다고 한다고 한다. 정확하게 남쪽을 향하고 있는 창문은 춘하추동을 나누는 분점의 역할을 한단다. 과학적 상징을 생각하며 보니 참 오묘하다.
첨성대를 나와 반월성터로 가는 길에 계림에 들렀다.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숲이란다. 경주는 고도 답게 유적지가 있는 공원마다 아름드리 나무가 숲을 형성하고 있어 참 아름답다. 이 곳에는 느티나무와 왕버들나무가 오랜 세월을 역사와 함께 살고 있다. 계림 안에는 신라의 고대체제를 정립했던 내물왕릉이 있다. 펜스 바깥쪽에 왕족들의 무덤 몇 기가 띄엄띄엄 있는데 이 무덤이 내물왕의 무덤인 줄은 어떻게 알았을까? 무덤이 거대하다. 그런데 말짱한 하늘에서 비가 슬글슬금 내려온다. 다행히 양산을 들고 왔다.
계림에서 5분정도 거리에 있는 반월성터와 석빙고를 보러 갔다. 그런데 가는 길에 소나기가 퍼붓는다. 얼른 석빙고 앞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석빙고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 보며 구조를 살펴보다가 냉기가 느껴지는지 어쩐지 궁금해 졌다. 한 쪽 손을 넣어보니 모르겠다. 그런데 조금 서 있으니 다리 쪽에는 냉기가 느껴진다. 석빙고 위 지붕에는 세 개의 공기구멍이 굴뚝처럼 나 있다.
석빙고를 보고 건너편 안압지로 갔다.
‘마지막 왕자’라는 책에서 달못으로 나왔던 곳이다. 이 곳에 동궁전이 있었고 외국에서 사신들이 왔을 연예를 베풀기도 하던 곳이라고 한다. 안압지를 한바퀴 쭉 둘러보는데 재외국인 2세 고국 방문단 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왔다. 산책하듯 여유롭게 연못가를 돌고 있다. 그런데 한바퀴 거의 다 돌아올 무렵에 본 수조유구가 신기한다.
조금씩 흘러드는 물을 이곳에서 모아 작은 폭포를 만들어 연못으로 흘러들게 했단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수조 바닥에 용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지금은 희미해 져 잘 안보인다. 신라의 장인들은 진정한 멋을 아는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안압지를 둘러보고 나와 다시 반월성터쪽으로 건너왔다.
그 동안 비가 그쳐 천천히 반월성터를 한바퀴 돌았다. 석빙고 앞에서 비를 피할 때 경주 사신다는 어떤 분이 말씀하신 대로 천혜 요새였다 앞으로는 개천이 빙 둘러 흐르고 있고 뒤에는 해자를 만들어 적을 침입을 피했다.그런데 반월성터에 옛날 궁궐이 있었던 흔적이 없다.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는 몇몇 아이들만 보일 뿐 적막하다. 마의태자의 혼이 서려있는 이 곳에 오면 뭔가가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았는데. 강숙인씨는 터만 남은 반월성이 자석처럼 자신의 마음을 끌어당겼다는데. ‘사람도 거의 없는 반월성 터에 혼자 앉아, 스쳐 가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폐허가 된 궁궐터의 달밤을 상상해 보니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 달빛 조차 스산한 밤에 폐허가 된 궁궐터에 와서 잃어버린 옛 나라를 생각하며 눈물 짓는 ....’그래서 마의태자 이야기를 동화로 쓰기로 했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