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양희은 - 찔레꽃 피면

찔레꽃 피면 내게로 온다고
노을이 질땐 피리를 불어준다고 그랬지
 
찔레꽃 피고 산비둘기 울고
저녁 바람에 찔레꽃 떨어지는데

너는 이렇게 차가운 차가운 땅에 누워
저기 흐르는 하얀 구름들만 바라보고 있는지
음음 바라보고만 있는지

너는 이렇게 차가운 차가운 땅에 누워
나도 그렇게 네가 있는 나라 보았으면 좋겠다
좋겠다
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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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을 마치고 지난 번 답사 때 시간이 늦어 못 간 김해 대성동 고분 박물관에 갔다. 이곳에는 박물관 옆 구릉지 ‘왜고지’에서 만들어진 금관가야 왕들의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묘제의 변천과정을 자세하고 알기 쉽게 전시해 놓았다. 고분이 발굴된 구릉지에 있는 노출 전시관에는 왕묘인 29호 목곽묘와 이것을 파괴하면서 설치된 39호 목곽묘를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 전시하고 있어 무덤의 구조와 유물의 부장양상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고분 박물관 전경)


  금관가야는 1-2세기까지는 땅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관을 만들어 시신을 묻었던 목관묘를 주로 만들었고 3-4세기에는 목곽묘를 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목곽묘는 금관가야의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하는데 통나무로 덧널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하고 주곽에는 시신과 함께 철기를, 달린곽에는 토기류를 매장했다. 그래서 목곽묘에서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고 한다. 그리고 목곽을 만들고 난 뒤 시신을 안치하기 전에 바닥에는 덩이쇠를 깔아 토지신에게 땅을 샀다는 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 당시 덩이쇠는 화폐대용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4세기 경에는 돌덩이로 곽을 만들어 그 안에 죽은이의 시신을 안치했단다.


                        (목곽묘를 만들고 있는 모습)

  이렇게 매장된 무덤 속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가야는 중국과 대방 낙랑, 일본등지와 활발한 교역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다른 박물관 지역에 전시된 삼한시대 유물들과 별 차이가 없어 기억에 남은게 없다. 그런데 대성동 23호 고분 군에서 나온 청동거울은 독특한 문양이 기억에 남는다. 엣날 궁궐이나 사찰에 단청을 할 때 썼다는 오방색과 사신(四神)이 이 청동 거울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청동에 새긴 것이라 오방색은 알 수 없지만 동에 청룡, 서에 백호,북에 현무, 남에 주작, 사신(四神)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상상 속의 동물이라 우리가 익히 다른 그림이나 물건들에서 봐온 모습과는 약간 다르다. 지배계층에서 주로 이러한 청동거울을 가지고 다녔다는데 그 이유는 사신이 액을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금관가야는 전기 가야의 중심 세력이었다는데 532년 구형왕이 신라에 투항함으로써 신라에 복속되었다고 한다. 경주 어딜가나 마주치는 것이 신라의 유물듯이 김해 곳곳에는 가야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물과 유적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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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 선거철이다. 그래서 4학년 이상 아이들과 ‘선거’를 주제로 토론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 주 수업을 마치면서 다음 주에 연설문을 한 번 써 볼 테니 친구들한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생각을 정리해 보고 오라고 했다. 그러자 모둠 아이 4명중 1명 빼고는 전혀 관심이 없다. ‘도대체 그런 걸 왜하냐는 표정이다.

 

  드디어 금요일, 토론 수업을 끝내고 연설문을 써 보게 했다. 연설문을 써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해 보겠다는 아이는 연설문을 쓰고, 나머지 3명의 아이들에게는 “그럼 우리가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반장 부반장 선거’에 대한 네 생각을 한 번 써 보자” 고 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자신도 연설문을 한 번 써 보고 싶다고 했다. 이 아이는 산문을 참 잘 쓰는 아이다. 역시나 연설문을 처음 쓰는데도 제법 잘 쓴다. 그러더니 처음에 연설문을 썼던 아이랑 둘이서 다 쓴 연설문을 읽어가며 서로 문장이 어색한 부분도 고치고 좀 더 크게 말해야 할 부분도 체크해 가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머지 주장글 쓰기를 하고 있던 2명 중 한명, 전혀 관심 없다고 했던 아이 하나가 이러는 거다.“선생님 저도 한 번 써 볼게요?” 이 아이는 한 학급의 반장이 될 만한 충분한 자질을 갖춘 아이인데 의외로 선거에 관심이 없어 조금 안타까운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 그래 그럼 한 번 써 봐라.”고 했다. 엄마가 돈 많이 든다고 반장 선거에 나가지 말라고 해서 안 나갈려고 했는데 두 친구가 하는 것을 보니 자기도 선거에 한번 나가 보고 싶단다. 연설문을 이리저리 궁리하며 쓰더니 먼저 시작했던 2명의 친구와 같이 연설 할 때 말하는 속도를 조금 천천히 해야 될 것 같다는 둥 그 말 보다 이 말이 더 낫겠다는 둥 해 가며 연습을 하고 있다.

 

   ‘토깽이 같은 이쁜 내새끼’가 아니라 이쁜 내 제자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남은 1명의 글을 봐 주면서 내심 얼마나 흐뭇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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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는 아이들이 있어 졸업 선물 겸 영화 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이야기 나누기도 해 볼 겸 이 영화를 봤다. 다른 녀석들은 웃기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자고 난리를 쳤지만 꼭 보고 싶은 영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녀석이 강력하게 민 이 영화를 본 것이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한 번 쯤 하고 넘어가야할 이슈이기도 해서 잘됐다 싶었더니 이 영화를 본 아이들의 반응은 ‘너무 지루하고 잔인하고 재미없다’ 였다. 볼 영화를 조금 빨리 결정해서 한 시간 정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관계에 대해 배경 지식을 쌓고 갔으면 이해하기가 쉬웠을 텐데 이걸 보자 저걸 보자 의견만 분분하다 급작스레 결정하고 바로 영화를 보러 갔으니 죽고 죽이는 테러 이야기가 뭔 재미가 있었겠는가?

  이 영화는 1972년 뭔헨 올림픽당시 팔레스타인 무장 테러 집단 ‘검은9월단’이 올림픽 선수촌을 급습해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살해하고, 이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또한 최정예 요원을 선발해 뮌헨 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팔레스타인 11명을 차례로 응징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왜 끝없이 총부리를 겨누며 싸우고 있는지, 검은 9월단은, 모사드는 뭔지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이 이 영화를 어찌 흥미있게 보겠는가?


  그런데 나는 볼 만했다. 팔레스타인이 먼저 이스라엘을 건드려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보복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는 했지만 모사드 정예요원 에브너가 팔레스타인 테러 배후 인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정신장애를 겪는 것을 보면서 ‘내 조국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은 허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피는 피를 부를 뿐 한 쪽에서 복수를 끝내지 않는 이상은 복수는 끝날 수가 없다. 에브너가 남은 배후 인물 2명은 더 이상 처치할 수 없다고 손을 뺐지만 누군가에 의해 나머지 두명도 다 제거됐다는 것을 보면.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휴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서로 총격전을 벌이고 있다. 1년전 휴전 협정을 체결했던 당사자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총선에서 참패했고, 혼수상태에 빠진 아리엘 샤론 총리는 이미 정치적 생명을 잃었다. 3월에 있을 이스라엘 총선 이후 두 나라는 어떤 상황으로 치닫게 될지 아무도 예측 할 수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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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3-02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상영시간이 길어 아직 망설이고 있는데 꼭 보고 싶은 영화에요..

다솜 2006-03-03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아이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기 하기 좋아요. 저는 이 영화 보고 한 시간은 관련 지식 이야기 나누기 한 시간은 글쓰기 수업을 했는데 괜찮네요.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선생님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요즘 볼만한 영화들이 많길래 약속 장소를 서면 CGV로 정해 영화를 보기로 했다. 학생들 수업을 끝나고 나니 6시 20분, 허겁지겁 약속 장소로 가서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메종 더 히미코’를 보기로 했다  ‘게이샤의 추억’을 보려고 했는데 너무 늦게 만나 밥 먹고 나서 이야기 할 시간도 없이 바로 영화를 봐야 돼서 시간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해서 보았다


  일본 영화는 웬지 ‘성적인 느낌’이 강해 이상하게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는 한 선생님의 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영화를 봤다. 게이들의 이야기였다. 요즘 부쩍 동성애를 다룬 영화가 많이 상영되고 있다. 왕의 남자, 중국에서 상연 금지 당했다던 브로크백마운틴.


  메종 드 히미코는 히미코라는 사람이 만든 게이들의 양로원이다. 결혼을 했지만 원만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고 가족의 등져야했던 사람들도 있고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도 게이에 대해 편견이 많은 모양이다. 옆 마을에 사는 중학생들조차 지나 다니면서 양로원 건물에 낙서를 하고 게이를 보면 괴상한 볼거리라도 생긴듯이 히히덕 거리며 지나다닌다. 그리고 히미코에서 지내던 한 게이가 쓰러져 가족들의 보살핌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게이임을 알게 되면 자식들이 충격을 받고 모셔가지 않을 까봐 끝까지 게이임을 밝히지 않고 보낸다.


  그런데 이들은 사랑하는 대상이 동성이라는 사실만 다를 뿐 보통 사람들과 똑 같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들은 변태(?) 취급을 하곤 해서 수많은 게이들이 세상과 격리되어 정신적 고통을 당하면서 살고 있었다.  주인공 사오리가 용서할 수 없다던 게이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동정으로 동정에서 연민으로 바꾸어 갈 때 그 영화를 보고 있던 나도 게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오랜만에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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