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을 지나 황진이, 서화담과 얽힌 이야기가 많은 박연폭포엘 갔다 오전 관광 코스가 박연폭포,범사정,대흥산성 북문,관음사다. 

 

  박연은 폭포가 떨어지는 위가 바가지 같이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사진으로 보는 이미지는 웅장한 느낌은 없다. 그러나 물 줄기는 가늘어도 폭포 앞에 섰을 때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일었다)


 옛날에 경치를 즐기며 전국을 유람하길 좋아하는 총각이 있었단다.이 총각이 박연 폭포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 경치에 취해 황홀해 하다가 피리를 불었는데 용궁의 선녀가 그 총각 피리 소리에 반해 총각을 용궁으로 데리고 갔단다. 그래서 둘이는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총각의 어머니는 아들을 찾으러 왔다가 그만 고모정에 떨어져 죽었단다.

 

북측 안내원의 설명을듣고 우리 일행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전에 서둘러 박연폭포엘 올라갔다. 하얀 꽃이 만개한 나무 사이로 깎아 지른 듯한 절벽에서 물이 곧장 떨어지고 있다. 폭포 수량이 풍부할 여름에 오면 폭포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우뢰 소리 같겠다. 떨어지는 수량은 적지만 과연 명폭 답다.경치가 ‘수려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풍경이다.총각처럼 폭포물에 뛰어들 정도는 아니어도 폭포 앞에 섰을 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박연 폭포 왼쪽에는 용바위가 있다.

이 바위 위에 아름다운 글씨(초서체)를 휘갈기듯 새겨 놓았다.황진이가 머리채를 풀어 고소담 물을 묻혀 일필휘지에 써 내려 갔다는 시구다. '飛流直下 三千尺/疑是銀河 落九天'(물 줄기가 삼천자를 날 듯이 떨어지니 마치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 하다).



그리고 오른 쪽에는 1700년에 지었다는 범사정이 있다. 범사정을 지은 자리에서 박연 폭포를 보면 마치 안개바다 위에 떠가는 떼와 같아서 지은 이름이란다.
박연폭포 옆에 범사정이 있어 한결 풍성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박연폭포 용바위에서 바라본 범사정)
박연폭포를 보고 관음사 오르는 길은 범사정을 거쳐 간다. 범사정에 앉아 잠시 박연폭포를 바라 보았다. 정자에 앉아 보는 박연폭포는 앞에서 보던 모습과 다른 멋이 느껴진다,


(범사정에서 바라본 박연폭포, 왼쪽에 용바위가 보인다)

     범사정을 지나 약간 가파른 숲길을 걸어올라가면 대흥산성 북문이 나온다.




 이 성은 고려시대에 쌓았단다. 특히 북문의 견고하게 쌓은 성벽과 축대는 고려시대 뛰어난 축성 기법을 엇볼 수 있다고 한다.

아치형 북문을 지나 산책 하듯 산길을 걸어올라가면 관음사가 있다. 관음사 올라가는 길은 참 좋다. 연두색 잎사귀들의 춤사위를 즐기며 걷는 것도 좋고 길가에 핀 이름모를 들꽃들의  보며 걷는 것도 즐겁다. 가는 길 양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마다  다녀간 이들이 이름을 빼곡하게 새겨놓았다. 오르는 길 옆 바위 전체가 방명록 같다.





처음에는 바위에 새긴 이름들을 더듬더듬 읽으며 올랐지만 갈수록 이름을 새겨 놓은 바위가 널려 있어 포기했다.  


  관음사 입구 바위에 탑비가 있다.



안내판이 없어 어느 시대에 조성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거북 모습이 이상하다. 귀부를 조각하신 분은 거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등 껍질 모양이야 王자를 새긴 것도 있고, 새처럼 깃털을 새끼고 날개를 달아준 이도 있지만 거북 네 다리를 몸통 가운데 새긴 건 처음 본다. 얼핏 봤을 때는 등에 작은 거북을 업고 있는 것 같아서 다가가가 머리를 보니 아니다. 등껍질 무늬 조각도 웃긴다.  아이들이 새 깃털을 대충 그려놓은 것 같다.
 

  관음사는 고려 시대(970년)에 건립된 사찰로 대웅전 건물과 7층 석탑이 남아있다.



천년을 넘은 유서 깊은 사찰인 만큼 입구에는 몇 백년 된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관음사 오르느라 지친 어른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경내로 들어가니 대웅전 안에 스님 한 분이 보인다. 우리나라 스님처럼 머리를 깎지는 않았지만 장삼 위에 가사를 입고 계셨다.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게 삼배를 올리고 경내를 돌아보았다.

  대웅전 왼쪽에 관음굴이 있다.



관음굴 안에는 백색 대리석으로 조각한 관세음보살 좌상이 한 분 계신다.



 원래는 두분이었지만 한 분은 평양 중앙역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단다. 관음굴 앞에는 관음사 약수를 먹을 수 있는 옹달샘이 있다. 이 물을 한 번 먹을 때 마다 10년씩 젊어진다는 안내원 말을 듣고 어르신들은 좋아라 하시고 옆에 있던 꼬마에게 ‘너 젖병 물고 내려오는 거 아니니?’하고 놀렸더니 물 안 먹겠단다.그래서 그런지 약수물 앞에는 약수 먹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



  단아하게 생긴 대웅전 건물도 볼거리가 많다.  우선 문살.



특히 가운데 문살이 참 예쁘다. 여러꽃이 섞혀 있어 꽃밭 같다. 가운데 문살을 중심으로 왼쪽 문살 무늬는 패랭이 꽃을 조각해 놓은 것 같고 오른쪽 문살은 잎 끝 모양이 감꽃 같다. 앞을 차근차근 살펴보고 뒤편으로 가니 안내원이 버스에서 얘기했던 그 유명한 설화의 주인공이 조각된 문이 있다. 이 문은 두짝으로 된 문인데 오른쪽 문은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400년 전, 이 절을 조성할 때 아주 조각 솜씨가 뛰어난 운라라는 소년이 있었단다. 대웅전 뒤 문에 조각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문 조각을 맡긴 공사책임자에게 고향엘 좀 다녀와야 겠다고 했단다. 그러자 그 책임자는 완성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소년의 부탁을 외면했단다. 그런데 며칠 후 고향에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더란다. 그러자 운라라는 소년은 재주를 가진 손 때문에 부모의 임종 조차 보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자신의 왼쪽 손목을 잘라버렸단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이가 왼쪽 문에 운라 소년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고 왼쪽 문은 그대로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7층 석탑,



 기단부 하단에 연꽃을 옆어 놓은 듯한 모양을 상단은 연꽃이 하늘을 향해 핀 모습을 조각해 불상대좌 같은 느낌을 준다. 아담한 대웅전에 비해 탑은 규모가 큰 편이다.

  관음사를 보고 내려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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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초, 개성을 다녀왔다. 부산서 무박 2일에 걸쳐 개성을 다녀오는 여행사들도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이 아니라 갑자기 생긴 연휴를 이용해서 다녀오려니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관광차를 타고 갔다.  학생들 수업을 마치고 밤 11시에 출발하는 무궁화 호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4시 30분쯤 ,역내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아침밥 먹고 5시 50분에 출발하는 대화관광 버스를 타러 광화문 앞으로 갔다.그런데 대부분 60이 넘은 분들이다.

대화관광 버스를 타고 도라산역에 도착한 시간이 7시. 서울에서 남측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도라산 역까지 50분 남짓, 북한이 작정하고 미사일을 쏘면 2분만에 서울은 초토화 된다는 말을 실감하겠다.남측 출입국 사무소에서 수속을 마치고 10분정도 가니 북측 출입국 사무소에 닿았다. 12대의 차량 출국 심사는 금강산 가던 때와 비교도 안되게 빨리 끝났다. 출발이 상쾌하다.  

*개성을 향해 가다 

  북한 출입국 사무소를 지날 때 두명의 안내원이 탔다. 한 사람은 앞에 한 사람은 뒤에 앉았다. 뒤에 앉은 사람은 사진 찍는 것을 감시하는 것 같았고, 앞에 앉은 분은 가는 길에 개성의 유명한 유적지나 지명의 유래 같은 것을 안내해 주었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는 개성에 거주 하는 인구가 70만명에 달했다는데 현재는 오히려 줄어 30만명 정도 밖에 살지 않는단다. 그 까닭은 이성계가 ‘왕’ 성의 가진 이들을 잡아죽이는 바람에 목숨을 부지 하기 위해 뿔뿔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인구가 더 이상 늘질 않는단다 . 

  개성 변두리 마을을 지나갈 때는 마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협동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 몇몇만 보인다. 차가 지나가는 길목에 띄엄띄엄 어린 군인들이 부동자세로 서서 지키고 있다. 이유는 마을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서란다. 그런데 자연의 힘을 위대하다. 회색 건물 마당에 울타리 너머로  어머니가 담배꽃이라 부르는 노란 꽃을 풍성하게 단 꽃나무가 늘어져 있다. 주변이 환하다. 야생화도 곳곳에 피어 삭막함이 덜하다. 금강산 갈 때는 겨울이라 회색 건물과 민둥산만 끝없이 보여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개성 시내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자유로워 보인다. 우리가 탄 차가 지나가자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거리낌없이 웃으며 구경하고 서 있는 사람들도 있고, 아파트 창문가에 서서 아이와 함께 손 흔드는 사람도 있다.  놀라운 것은 창가에 작은 화분 몇 개가 놓여져 있는 집도 있고 유리병에 노란 꽃을 꺾어 꽂아 놓은 집도 보인다. 이것도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행위인지는 몰라도 몰라도 암튼 놀랍다.

  개성은 유서 깊은 고장 답게 가로수가 몇 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은행나무였다. 오가는 차량도 많지 않고 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찬 것도 아니어서 대로변의 우거진 은행나무 숲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시내 유적지 곳곳( 숭양서원이나 선죽교, 고려 박물관 등)에도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가게 간판을 읽으면서 가는 재미도 있다. 칼라 사진관은 천연색 사진관, 부식 가게는 남새 상점, 한복집은 조선옷 상점...으로 표기되어 있다. 북한은 우리 말을 그대로 살려 쓰고 있다.

  거리를 지나가다 정말 특이한 사람을 봤다. 북한 공산단원 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기타를 메고 지나간다. 신기해서 웃으면서 손을 흔드니 자기도 씩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은 썬글라스도 끼고 다닌다.

  도로 표지판이 아주 단순하다. 우리 나라처럼 길이 사방으로 나 있는 게 아니라 큰 도로가 거의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직선이거나 삼거리는  ‘ㅢ’와 같은 식이다. 지명 이름만 표기 되어 있고 거리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표지판도 높다랗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 키 높이 정도로 나지막하게 꽂혀 있다.

  개성의 유명한 송악산은 어머니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악’이라는 글자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바위가 많은 산이다. 산 능선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누워있는 것 같다.북측 안내원이 이 산에 얽힌 설화를 들려주셨다.

  어느 양반가에 얼굴이 아주 못생긴 딸이 있었단다. 얼마나 못생겼는지 아무도 이 처녀와 결혼하려는 사람이 없었단다. 딸이 나이가 다 차도록 시집을 가지 못하자 그 부모는 자기 집에 부리던 종과 처녀를 맺어주려 했단다. 속상한 처녀가 산으로 올라가 누워 넋두리를 하다가 그대로 돌로 굳어져버렸단다.  산 등성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싶은 맘 굴뚝 같았으나 금지된 행위라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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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 큰언니랑 연곡사를 갔을 때 ‘ 매화가 피면 참 아름다운 절’이겠구나 했었다. 그런데 매화 필 무렵 연곡사엘 가자는 지인들이 있어 때맞춰 다녀왔다. 지난 번 여행 때 감기 기운이 있던 언니가 서두르는 바람에 미처 못보고 온 문화재도 있어 보기로 했다.

연곡사는 요란하게 불사를 하지 않아서, 지리산 자락에 순하게 안긴 듯 자연에 거스름이 없어서 마음에 담긴 사찰이다.  너른 터에 띄엄띄엄 앉아 있는 요사채와 대웅전 해우소 , 삼신각,범종각 같은 몇 개의 건물이 보는 이의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한다.

  연곡사 가는 길은 지리산 품 속으로 들어간다. 3월 초만해도 산과 들이 푸스레한 생기만 돌 뿐 회색빛 이었는데 그 사이 노란 산수유와 매화가 만발해서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연초록 잎이 산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연곡사 앞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들어가며 보니 대웅전 오르는 길에 선 매화나무들이 활짝 꽃을 피워 은은한 매화향이 온 몸을 휘감는다.


안도현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꽃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 속에 있기 때문에

꽃은 핀다

솔직히 꽃나무는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게 괴로운 것이다
........

.....

불과 20여일만에 이렇게 활짝핀 매화를 보며 감탄을 하다가 문득

나도 ‘꽃이 허공으로 꽃대를 밀어올리듯’ 이 봄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겠지 싶다.

 

매화 나무들 사이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선 연곡사 3층 석탑이 보인다. 함께 간 지인은 3층 기단인 독특한 이 탑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돌이 이상하단다’ . 천년이 지난 석탑 몸돌 군데군데 뭔가가 번쩍거리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연곡사 뒤 북부도 보러 가는 산길에서 봤던 그 돌들도 금가루 같은 것이 묻어 있는 것처럼 반짝 거렸는데 탑을 구성하고 있는 돌도 그 돌들과 비슷하다. 지리산 자락과 탑이 어우러진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는데 이상하게 사진을 찍으면 잡히지 않는다. 

(연곡사 3층석탑-3층 기단에 3층 석탑인 독특한 탑이다)


  경내를 둘러보니 군데군데 만발한 하얀 매화들 사이에 발그레한 홍매화도 보이고  대웅전 앞 마당에는 늙은 산수유 두 그루가 노란꽃을 피워 벌떼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은 뜰에는 쑥이랑 머위 같은 봄나물도도 고개를 제법 쑤욱 내밀고 있고, 큰 개불알꽃, 양지꽃 같은 봄 꽃들도 피어나 절 안에 환하다. 꽃샘 추위가 몰아치던 3월초, 회색 나무들 사이로 몇 째의 건물만 오롯이 앉아 있는 듯 했는데 봄기운이 연곡사의 표정을 바꿔 놓았다. ‘참한 사찰이네’ 했더니 곱고 아름다운 사찰이다.





범종각 옆 노란 산수유 아래서 사진도 찍고 대웅전 앞에서 지리산자락을 배경 삼아 사진도 찍고 한참을 이리저리 경내를 거닐다가 동부도와 북부도를 보러 갔다.


(동부도탑비 앞 모습-탑신은 없고 거북등딱지 양쪽에 새 날개를 달고 있다. 등 무늬도 새날개 무늬를 새겼다.)


(동부도-도선국사 부도비로 추정된단다)


(북부도)

 


(북부도 옥개-기와골을 섬세하게 파놓았다)

 

북부도를 보고 내려 오는 길에 지난 번에 보지 못한 서부도와 몇 기의 부도, 동백 나무 아래 선 고광순 순절비를 보고, 부도비를 보았다. 부도비 비신은 없고 귀부와 이수만 남았다.커다란 거북 등껍질에 가운데 다양한 꽃 무늬를 새겨놓아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느낌을 준다.


(서부도와 주변에 있는 몇기의 부도들, 서부도는 고려시대 작품이다)


(고광순의병 순절비 주변 동백 나무들-안내판을 읽다가 문든 고개들어 붉은 동백을 보니 동백조차 애닯픈 느낌이다)

 

봄날의 연곡사, 볕바라기하며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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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개천면에 있는 옥천사엘 갔다. 사천읍서 친구와 만나 큰이모가 사는 정동 마을도 지나고 외갓댁이 있었던 상리도 지나 갔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마다 오갔던 상리를 지나니 낯선 길들이 이어진다.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한참 달려 옥천사에 도착했다.

 옥천사는 의상조사가 신라 문무왕 때 세운 화엄십찰 중에 하나로 정유재란 때 불에 타 폐허가 된 것을 인조 17년에 중창을 시작했다고 한다. 폐사지로 남을 뻔한 이 곳에 지금과 같은 건물들이 남아 있는 까닭은 학인대사가 이 근방을 지나가다 대둔리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절터를 현몽해 주었단다. 이튼날 신인이 가르쳐 준 곳을 찾아와 보니 과연 절터가 있어 중창을 시작했다고 한다.


(옥천사 천왕문)

천왕문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다양한 표정을 읽을 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맨밑 둥치 오른쪽에는 원숭이가, 가운데는 쭈글쭈글한 주름이 잡힌 두꺼비가, 그 옆 오른쪽은 입을 쩍 벌린 사자 같은 모습이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대웅전은 보이지 않고 너른 마당가에 길다란 큰 건물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자방루다. 정면 7칸에 측변 3칸 짜리 기-인 건물이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으니 아주 폐쇄적인 느낌이 든다. 표지판을 읽어보니 왜구들로부터 경내 건물들을 지키기 위함과 호국 사찰이었던 만큼 군사들의 넓은 회합 장소가 필요한 까닭에 이렇게 건물을 크게 짓고 그 앞에 군사들이 모일 수 있는 너른 마당을 두었다고 한다.


(자방루 바깥모습)

 

 2월 포황 오어사 답사를 갔을 때 길눈이 하신 분의 말씀에 귀에 남아 자방루 주렴에도 눈길이 갔다. 자방루 주렴 글귀는 조선말에 이조판서를 지낸 김성근이 썼다고 한다.이 절은 관람객을 배려한 마음이 돋보인다. 마당에 세워놓은 안내판과 별로도 자방루 주렴 해설도 써 붙여 놓았고, 대웅전이나 다른 건물들에도 안내판에 없는 내용까지 첨부해서 안내판보다 훨씬 쉬운 낱말로 안내문을 써 붙여놓았다.



(자방루 주렴 해설)

  너른 마당 왼쪽에 범종각이 있다.


(옥천사 범종각)

  자방루 왼쪽에 난 작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자방루 안과 대웅전이 보인다. 자방루 안은 밖과 다른 느낌을 준다. 밖에서 본 자방루는 웅장한 방패 같았지만 안은 화려하게 치장을 해 만든이의 미적 감각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야누스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자방루 왼쪽에 있는 대웅전 들어가는 입구문)

(자방루 내부)

대웅전은 양쪽에 늘어선 건물들로 인해 좁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석축을  쌓아 마당에서 올려다 볼 수 있게 지어놓아 작아도 야무지고 당차 보인다..대웅전 안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그런데 극락전이라고 하지 않고 대웅전이라고 하는 까닭은 옛날에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실 때 쓰던 편액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이란다.



 대웅전 왼쪽으로 산영각, 독성전 조사전 같은 건물들이 쭈욱 늘어서 있다. 그런데 산영각과 독성전은 아담하다는 표현보다 앙증맞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아주 작다.


  대웅전 오른쪽에는 이 절 이름이 유래된 옥천(玉泉)이 있다.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먹어보니 달작지근하다.이 물을 꾸준히 먹으면 위장병을 고치기도 해서 한국의 100대 명수(名水)에 든단다.



  유물 박물관에 들러 유물 몇 점을 봤다. 이 곳엔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임자명반자가 있다. 타악기의 일종으로 보물 495호다.  급한 일을 알리거나 대중들을 불러모을 때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향로와 같은 유물 1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성은 왜군들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했던 지역이다. 옥천사 뿐만 아니라 운흥사도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이끈 6,000 여명의 승병들의 거점 사찰이었다. 경내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 갑갑해 보이던 자경루가 경내 건물들을 지켜낸 굳건한 담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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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고 달려 강원도 폐사지들을 보러 갔다.작년 겨울 보령 성주사지를 갔다가 겨울 폐사지의 매력에 빠져 올 겨울엔 강원도 폐사지를 찾아갔다.눈 쌓인 강원도 폐사지 풍경이 한 동안 눈에 어른거릴 것 같다


첫번째 답사지는 한계사지.한계사는 신라 진성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 아미타불상존을 모셨다는 곳이다.

설악산 장수대 분소 옆 200미터 거리에 있는 한계사엘 도착하니 하얀 눈을 수북이 이고 선 삼층 석탑만 보인다. 눈 구경하기 어려운 경상도 사람들은 문화재 답사는 뒷전이고 눈 밭을 노루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논다. 산 기슭에 는 귀퉁이가 깨진 광배도 보인다. 수많은 유구들이 눈에 파묻혀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하얀 눈 위에 홀로 선 석탑을 주변에 주춧돌을 놓고 그 옛날 한계사지를  상상해 보니 재미있다. 




(훼손된채 남아 있는 광배에 새겨진 부처, 마모가 되어 잘 보이지 않더니 설본을 했더니 형태가 보였다)

 

한계사지 뒤, 비탈길을 따라 70미터 정도 올라가니 북탑이 있다. 이 탑은 감은사지 탑 같이 크고 잘 생겼다.



  한계령을 넘어 선림원지에 갔다. 선림원은 9세기 중엽 홍각선사라는 분이 창건했다는데 많은 건물지들로 보아 규모가 아주 컸던 사찰 같다.

동네 있는 곳에 차를 대고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눈이 엄청나게 왔던 모양이다. 온 사방이 하얗다. 이 곳은 한계사지보다 눈이 더 쌓였다. 눈 속을 걸어보니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이곳에서도 답사는 뒷전이고 눈 속에 파묻고, 파묻히고, 눈싸움하느라 난리가 났다.



선림원지는 3층석탑, 석등,탑비 귀부와 이수 등 볼 거리가 참 많은 폐사진데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유물들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특히 탑비의 귀부를 보고 싶었는데 눈을 걷어내도 밑에 있는 눈이 얼어 볼 수가 없어 아쉽다. 귀부에 날개가 달렸다는데, 다행히 눈을 쓸어 보니 한 쪽 날개랑 앞 발이 보인다.귀부를 조각한 조각가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진전사지로 향했다.진전사지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8세기 말경에 창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건너편에 진전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진전사지 삼충석탑은 겨울 아닌 계절에 오면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조금씩 드러나는 탑 모습이 참 예쁘단다.봄에 오면 참 좋을 것 같다. 오르는 길 양쪽에 수령이 제법 오래된 벚꽃나무가 있어 그 꽃이 필 때쯤 풍경을 그려보니 아닌게 아니라 볼만하겠다.진전사지 삼층석탑은 하층 기단에는 비천상이 ,상층기단에는 팔부중상이, 1층 몸돌에 사방불을 새겼다.탑 규모도 크고 상당히 정성을 들여 만든 탑이다. 탑 뒤로 보이는 산은 동양화 한 폭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뒤에 올라가니 진전사지 부도가 있다.  기단은 탑을 쌓듯이 쌓아 올리고 탑신과 지붕은 신라시대 전형적인 부도양식인  팔각원당형이다. 탑 같기도 하고 부도 같기도 한 독특한 모습이다.



 진전사지를 보고 나니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속초 불축제를 보러 갔다. 준비가 부실해서 볼게 없다.그래서 설악산 켄싱턴스타 호텔 앞에 있는 항정리 3층석탑을 보러 갔다. 눈이 많이 내려 제설 작업을 하고 있어 차 댈 데가 마땅이 없다. 길가에 차를 대고 호텔 불빛에 의지해서 석탑을 대충 둘러봤다. 한계사지 북쪽 석탑과 비슷한 분위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낙산사로 일출을 보러 갔다 와서 밥을 먹고 , 관세음보살이 연꽃을 베고 누운 형상이 발견되었다는 휴휴암을 갔다가 강릉 신복사지엘 갔다. 신복사는 효통대사 범일이 문성왕 12년에 창건한 사찰로 조선 초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 곳에서 나는 내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탑으로 담길 탑 한 기를 봤다. 아랫기단에 새긴 복련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고 몸 돌을 바쳐 주는 돌이 하나씩 끼여 있어 경상도 지방에서 본 탑들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는 탑이었다. 

탑 앞에는  지권인을 한 식영보살이 정성드려 공양을 드리고 있다. 월정사 9층석탑 앞에 있던 문수보살처럼 이곳 명주 지방의 사찰만이 지닌 독특한 모습이다. 일행 중 한 분이 부르기에 가 보니 탑 앞에 있는 공양상을 뒤에서 보란다. 약간 비튼 듯한 허리가 제법 요염해 보인다. 조각하는 분이 꽤 재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신계사지를 나와 간 곳은  굴산사지. 굴산사는 문성왕 때 창건한 사찰로 구산선문 중에서 가장 컸던 사찰로 알려져 있다. 아닌게 아니라 굴산사지가 있었다는 학마을 앞 너른 터에 있는 당간을 보니 우람하다.가까이 가서 보니  돌을 다듬지 않고 형태만 잡아 당간으로 세워놓았다. 참 당당하고 자연스럽다.



 당간의 규모로도 절의 규모를 추측할 수 있다는데 이렇게 큰 당간을 세울 정도의 절이라면 그 사세가 엄청났을 것이다. 기거하는 스님이 최고로 많을 때는 1,600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 같다. 당간 지주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학마을 뒤 도로 난 곳까지가 다  절터라니 전성기의 굴산사지 모습이 어떠했을 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당간 지주가가 있는 곳에서 왼쪽 마을 가는 길을 따라 가면 석불이 있다. 그런데 석불은 조성하다가 만 것 같다. 얼굴 부분이 깨진 것인지 다듬다가 만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옷이나 손모양 등으로 보아 미완성 작품인 것 같다.



학마을 회관 앞에서 야트막한 산을 오르면 밭 한가운데 굴산사지를 창건하셨다는 범일 국사 사리탑으로 전해지는 부도가 있다. 부도 가는 길에는 범일 선사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한 학바위와 우물이 보인다. 전설이 개연성을 띄고 다가온다.



개인 주택 옆 밭에 있는 이 부도는 참 멋을 많이 부렸다. 이 부도를 만든 석공은 담백한 것 보다 화려하게 꾸미는 걸 좋아하셨던 분 같다. 부도기단에  아주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를 새겨놓았다.

 

이번 폐사지 답사는 ‘눈덮힌’ 이라는 낭만적인 낱말이 주는 느낌만으로도  망설임 없이 떠났다.폐사지 곳곳에 널린 유구들을 눈 때문에 다 볼 수 없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곳곳에서 설매도 타고 눈밭에 뒹굴며 동심으로 돌아갔던 즐거운 답사였다. 가며 오며 주변 유적지도 돌아보며 후회없는 답사를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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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2-27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하세요. 부럽습니다.

다솜 2008-02-2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시간만 나면 답사 다니느라 정작 써 올려야 할 책 리뷰는 한 편도 못 쓰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