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개성을 다녀왔다. 부산서 무박 2일에 걸쳐 개성을 다녀오는 여행사들도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이 아니라 갑자기 생긴 연휴를 이용해서 다녀오려니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관광차를 타고 갔다.  학생들 수업을 마치고 밤 11시에 출발하는 무궁화 호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4시 30분쯤 ,역내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아침밥 먹고 5시 50분에 출발하는 대화관광 버스를 타러 광화문 앞으로 갔다.그런데 대부분 60이 넘은 분들이다.

대화관광 버스를 타고 도라산역에 도착한 시간이 7시. 서울에서 남측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도라산 역까지 50분 남짓, 북한이 작정하고 미사일을 쏘면 2분만에 서울은 초토화 된다는 말을 실감하겠다.남측 출입국 사무소에서 수속을 마치고 10분정도 가니 북측 출입국 사무소에 닿았다. 12대의 차량 출국 심사는 금강산 가던 때와 비교도 안되게 빨리 끝났다. 출발이 상쾌하다.  

*개성을 향해 가다 

  북한 출입국 사무소를 지날 때 두명의 안내원이 탔다. 한 사람은 앞에 한 사람은 뒤에 앉았다. 뒤에 앉은 사람은 사진 찍는 것을 감시하는 것 같았고, 앞에 앉은 분은 가는 길에 개성의 유명한 유적지나 지명의 유래 같은 것을 안내해 주었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는 개성에 거주 하는 인구가 70만명에 달했다는데 현재는 오히려 줄어 30만명 정도 밖에 살지 않는단다. 그 까닭은 이성계가 ‘왕’ 성의 가진 이들을 잡아죽이는 바람에 목숨을 부지 하기 위해 뿔뿔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인구가 더 이상 늘질 않는단다 . 

  개성 변두리 마을을 지나갈 때는 마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협동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 몇몇만 보인다. 차가 지나가는 길목에 띄엄띄엄 어린 군인들이 부동자세로 서서 지키고 있다. 이유는 마을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서란다. 그런데 자연의 힘을 위대하다. 회색 건물 마당에 울타리 너머로  어머니가 담배꽃이라 부르는 노란 꽃을 풍성하게 단 꽃나무가 늘어져 있다. 주변이 환하다. 야생화도 곳곳에 피어 삭막함이 덜하다. 금강산 갈 때는 겨울이라 회색 건물과 민둥산만 끝없이 보여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개성 시내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자유로워 보인다. 우리가 탄 차가 지나가자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거리낌없이 웃으며 구경하고 서 있는 사람들도 있고, 아파트 창문가에 서서 아이와 함께 손 흔드는 사람도 있다.  놀라운 것은 창가에 작은 화분 몇 개가 놓여져 있는 집도 있고 유리병에 노란 꽃을 꺾어 꽂아 놓은 집도 보인다. 이것도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행위인지는 몰라도 몰라도 암튼 놀랍다.

  개성은 유서 깊은 고장 답게 가로수가 몇 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은행나무였다. 오가는 차량도 많지 않고 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찬 것도 아니어서 대로변의 우거진 은행나무 숲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시내 유적지 곳곳( 숭양서원이나 선죽교, 고려 박물관 등)에도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가게 간판을 읽으면서 가는 재미도 있다. 칼라 사진관은 천연색 사진관, 부식 가게는 남새 상점, 한복집은 조선옷 상점...으로 표기되어 있다. 북한은 우리 말을 그대로 살려 쓰고 있다.

  거리를 지나가다 정말 특이한 사람을 봤다. 북한 공산단원 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기타를 메고 지나간다. 신기해서 웃으면서 손을 흔드니 자기도 씩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은 썬글라스도 끼고 다닌다.

  도로 표지판이 아주 단순하다. 우리 나라처럼 길이 사방으로 나 있는 게 아니라 큰 도로가 거의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직선이거나 삼거리는  ‘ㅢ’와 같은 식이다. 지명 이름만 표기 되어 있고 거리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표지판도 높다랗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 키 높이 정도로 나지막하게 꽂혀 있다.

  개성의 유명한 송악산은 어머니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악’이라는 글자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바위가 많은 산이다. 산 능선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누워있는 것 같다.북측 안내원이 이 산에 얽힌 설화를 들려주셨다.

  어느 양반가에 얼굴이 아주 못생긴 딸이 있었단다. 얼마나 못생겼는지 아무도 이 처녀와 결혼하려는 사람이 없었단다. 딸이 나이가 다 차도록 시집을 가지 못하자 그 부모는 자기 집에 부리던 종과 처녀를 맺어주려 했단다. 속상한 처녀가 산으로 올라가 누워 넋두리를 하다가 그대로 돌로 굳어져버렸단다.  산 등성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싶은 맘 굴뚝 같았으나 금지된 행위라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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