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송원

대마도 역사 자료관이 휴관이어서 시간이 남을 것 같아 가이드에게 물었다. 혹시 만송원 가냐고. 만약 안간다고 했으니 대충 위치를 가르쳐 주면 혼자 다녀올려고 그랬다. 그런데 대마도 역사 자료관을 못 본 대신 만송원에 간단다.어제 오따쯔미 신사와 더불어 인상깊은 여행지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일본 3대 묘지 중 하나인 만송원(반쇼인)은 일본 3대 묘지중의 하나로 일본 국가사적으로 지정 된 곳이다. 초대 번주 요시토시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찰로 사찰 안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일본 역대 장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찰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제 10대 번주 사다쿠니부터 32대번주 가족들의 묘가 있다. 묘로 올라가는 곳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수령이 1600년이나 된다는 삼나무도 있다.



  만송원은 사찰이지만 우리 나라와 다른 점이 참 많다. 인왕상이 지키고선 천왕문으로 경내를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옆문으로 들어간다. 경내에는 조선시대 신문고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칸코가 있다.



삼태극 모양의 북을 똬리를 튼 용이 힘차게 올라라오고 있는 조각이 새겨진 기둥이 바치고 있다. 안내판에는 이 북을 칠 일이 없어 새들만 놀다갔다고 적혀있다.

법당 안에는 고려시대 건너간 우리 나라 불상을 모셔 놓았다. 불상 옆이 아닌 복전함 왼쪽에 조선 임금이 일본과 조선이 다시 국교를 맺을 수 있게 애써준 당시 대마도 번주 ‘쇼우요시토시’의 죽음을 애도하며 하사했다는 지장 보살이 왼쪽에 빨간 턱받이를 하고 있다. 우리 나라 법당 모습과 많이 다른 모습이 색다르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법당 한켠에 조선시대 임금이 하사한 제사용품 삼족구(향로,화병,촉대)도 있다.



향로도 멋스럽고 특히 촉대 모습은 아주 독특하다. 벽에 조선 국왕이 하사한 것이라는 설명을 붙여놓았다.

 법당 건물 건물 정면에 일본의 귀족 가문의 문양으로 쓰인다는 등나무 문양이 조각돼 있다. 난 처음에 이것이 포도 덩굴인줄 알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자료를 찾다보니 등나무였다.



법당 건물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130여개의 계단을 올라가니 영주와 그 일족들의 묘가 있다. 



 


 번주와 그 일가족들의 무덤이라 다르긴 다르다. 아침에 갔던 국분사는 공동묘지 같은 느낌이 들었고 오전 답사 때 봤던 서산사 납골당은 가족묘 같았는데. 
그런데 묘지 주변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너무 많아 맑은 날인데도 햇볕이 들지 않고 습하고 어둡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보면 명당 자리는 아니라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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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혀옹주 결혼 기념비
고려문이 있는 곳에서 내려오다 오른쪽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덕혀옹주 결혼 기념비가 있는 긴세키조에 다다른다. 1669년 쇼소오시자네가 지었다는 긴세키조(金石城)는 성문이랑 성벽 일부가 남아있는데 성문이 참하다.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貴人)양씨 사이에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공부를 한 탓인지 정신질환을 앓았는데 일본 총독부 관리의 중매로 1931년 대마도 번주의 아들 소 다케유키(宗武志)백작과 강제 혼인했다. 이 때 세운 기념비가 이 곳에 있다. 그런데 정신질환을 다시 앓게 되면서 이혼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이 기념비로 쓰러뜨린 것을 한국인 역사 탐방객들이 늘어나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여행사 가이드가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 모습과 번주의 아들과 결혼해서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참 영리하게 생겼다. 덕혜옹주의 삶을 이야기하던 가이드가 갑자기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한다.

  '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곳에서 낯선이와 결혼 생활을 하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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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문과 조선통신사비  

 하치만궁 신사에서 나와 왼쪽 마을로 들어서서 10여분정도를 걸어가면 대마역사민속자료관이 있다. 가는 길에 마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가정집 처마 끝에 난을 매달아 놓고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팔고 있다)

 몇 집 건너 있는 신사에, 작은 화단 가득 만발한 여름 꽃들이며 독특한 식물들이며 날씨가 덥긴 해도 버스 타고 휘리릭 다니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이라 대마 역사관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고려문에 앉아 사진 한 장을 찍고 조선통신사비만 봤다.

 

  고려문은 조선통신사 맞이문이라고 한단다. 조선에서 통신사들이 오면 이 문을 통과해 맞이 하였기 때문이란다

 





.우리 나라에서 일본으로 조선 통신사를 실제로 보내기 시작한 것은 1429년 세종 때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왜구가 우리 나라에 출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통제를 요청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일본의 정세를 살피는 역할과  바쿠후 쇼군(실질적이 나랏일을 맡고 있던 장군)즉위를 축하사절로서의 성격을 띄기 시작했다. 일본에 간 통신사와 일본 관리들은 학문이나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 지기도 했는데 통신사가 일본 문화에 미친 영향은 아주 컸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1811년까지 12번의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외교사절로 파견했는데 조선에서 일본으로 통신사가 한 번 올 때 움직이는 인원이 300-500명 정도였단다. 대마도 번에서 조선 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들인 비용이 그 당시 돈으로 100만냥 정도였다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5580역 정도가 된단다. 일본이 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3년정도 준비를 했다고 하니 비용과 기간을 헤아려 보니 우리 나라 통신사는 귀비중의 귀빈이었던 모양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사진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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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관궁 신사(하찌만구신사)
  둘째날 9시 30분부터 이즈하라 시내 관광을 시작했다. 우리가 묵었던 대마호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하찌만 신을 모시고 있다는 하찌만궁 신사엘 갔다. 아침에 산책을 왔던 곳이다.

 어제 갔던 와따쯔미 신사에도 신과 사람이 사는 영역을 구분해 준다는 토리이 옆에 고마이누가 양쪽을 지키고 섰더니 이 곳에도 삽살개를 닮았다는 고마이누가 양쪽에 지키고 섰다.

신사에 들어서기 전에 테미즈야에서 양손과 입을 씻었다.



. 양손을 씻는 것은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를 씻는다는 의미이고, 입을 씨는 것은 말로서 지은 죄를 씻는 의미란다. 손을 씻고 사찰의 천왕문 같이 생긴 곳을 들어서는데 특이한 것은 사찰 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사천왕상 같이 생긴 조각상이 2층 루 양쪽 앉아 계신다. 신사 안으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인가.



신사 안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이 신사를 지을 때 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을 적은 비가 쫘악 늘어서 있다. 그 옆에는 작은 탑도 보인다.



 신사 배례전 앞에는 청동 방울이 달린  빨간 천이 늘어져 있다. 부처님 앞에 놓이 복전함처럼 ‘奉獻’이라고 쓰인 나무 함에 돈을 넣고 소원을 빌면서 빨간 줄을 잡아 당겨 방울을 울리고 합장 두 번과 박수를 두 번을 친다.  일행들 중 몇몇 분들은 신사 본전 건물 처마(?) 달려있는 빨간 천을 잡아 당기고 기도를 한다.





신사 안에는 소원을 적은 하얀 종이를 접어 나무에 매달아 놓기도 하고 새끼줄에 매달아 놓은 곳도 있다.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나무 가지에는 나뭇잎 만큼이나 소원을 적은 하얀 종이도 많이 걸려있다.


소원을 적은 나무판(에마)도 주렁주렁 걸려있다. 에마를 읽다 보니 우리 나라 사람들이 ‘독도는 우리 땅’,‘나는 천재’ 등의 글들을 적어 걸어놓기도 했다. 일본 신들이 한글을 알 수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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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관교

러일 전쟁 당시 일본이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한 개였던 큰 섬 가운데를 잘라 군함이 지나갈 수 있게 하고 상대마도와 하대마도를 나누어진 가운데 다리를 놓았단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이즈하라가 있는 하대마도로 건너가게 된다.



 일본의 철저한 대비로 그 유명한 발틱함대는 일본까지 오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던 탓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본 군에게 무참히 패했고. 지금의 만관교는 3번째 건설한 다리란다. 빨간 다리를 걸어서 하대마도로 건너갔다. 가는 길에 아래를 쳐다보니  두섬을 휘감고 내려오는 물살이 아주 세다. 


(하대마도 쪽 섬을 휘감고 돌아내려오는 급물살을 보니 아찔했다)


(상대마도쪽에 있는 등대- 이 곳은 물살이 그렇게 급하게 내려가진 않는다 )



 (만관교를 건너오니 지붕을 돌로 이은 휴게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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