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문과 조선통신사비  

 하치만궁 신사에서 나와 왼쪽 마을로 들어서서 10여분정도를 걸어가면 대마역사민속자료관이 있다. 가는 길에 마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가정집 처마 끝에 난을 매달아 놓고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팔고 있다)

 몇 집 건너 있는 신사에, 작은 화단 가득 만발한 여름 꽃들이며 독특한 식물들이며 날씨가 덥긴 해도 버스 타고 휘리릭 다니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이라 대마 역사관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고려문에 앉아 사진 한 장을 찍고 조선통신사비만 봤다.

 

  고려문은 조선통신사 맞이문이라고 한단다. 조선에서 통신사들이 오면 이 문을 통과해 맞이 하였기 때문이란다

 





.우리 나라에서 일본으로 조선 통신사를 실제로 보내기 시작한 것은 1429년 세종 때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왜구가 우리 나라에 출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통제를 요청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일본의 정세를 살피는 역할과  바쿠후 쇼군(실질적이 나랏일을 맡고 있던 장군)즉위를 축하사절로서의 성격을 띄기 시작했다. 일본에 간 통신사와 일본 관리들은 학문이나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 지기도 했는데 통신사가 일본 문화에 미친 영향은 아주 컸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1811년까지 12번의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외교사절로 파견했는데 조선에서 일본으로 통신사가 한 번 올 때 움직이는 인원이 300-500명 정도였단다. 대마도 번에서 조선 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들인 비용이 그 당시 돈으로 100만냥 정도였다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5580역 정도가 된단다. 일본이 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3년정도 준비를 했다고 하니 비용과 기간을 헤아려 보니 우리 나라 통신사는 귀비중의 귀빈이었던 모양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사진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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