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5살의 아가씨가 우연히 책에서 밑줄을 발견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상상으로 그와 같이 있고, 그의 목욕가운을 사는 그 집요한 아가씨의 사랑에 혹 반쯤 정신이 나간것은 아닌가 했다. 가끔은 도가 지나치다 싶어 '뭐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있나?'싶다기도 했다. 그러다 이내 든 생각....맨 정신으로 어디 사랑을 할 수 있던가?

추리소설 같았다. ^^....밑줄 긋는 남자를 찾아야 할테니 말이다. 여자가 집착하고 여자의 남자가 집착하고 나도 덩달아 급박하게 집착하고 그러나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여자는 다른 밑줄 긋는 남자를 찾는다.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위해 밑줄을 그었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남자도 정신이 나갔다. 맞다. 사랑은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밑줄을 통해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여자와 밑줄 긋는 남자는. 결국 밑줄이 사랑이라는 것인데...그렇다. 사랑과 밑줄은 같다. 왜냐면 적당히 암시적이고 숨겨져 있으며 실제적이기 보다는 자신의 잣대로 보기 때문이다. 맘에 드는 구절하나가 나에게는 전 우주를 바꿀 말이 될 수도 있고 그 구절하나가 어느 날엔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렇다. 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전부이다가도 차갑게 식는다. 그리고 바뀐다. 그래도 그 여자는 행복하다. 다른 사랑의 실체를 찾았기 때문이다. 여자를 위해 짐짓 밑줄을 긋는 남자, 그 사랑의 힘으로 밑줄 긋는 남자를 찾는 남자. 하지만 사랑이란 것이 또한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어주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밑줄 긋는 남자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사랑의 정의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이다.

책을 훼손하고 사소한 구절을 가장 중요하게 만들고 책 한권을 통째로 읽도록 만들고 눈에 불을 켜고 찾도록 만들고 결국은 나타나지 않는 그 밑줄 긋는 남자의 신원....사랑 또한 찾는 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닐것이다. 또 상상한 대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오지 않는 것이다. 사랑이란...

밑줄 긋는 남자의 실체처럼 사랑은 그저 오래된 책에 그어진 금같은 것이다. 누군가 그 의미를 받아들여주고 진지하게 그 실체를 찾아 나서야 되는 그러나 결국 그 실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해야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에 함부로 밑줄을 긋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한편 우연히 보게 되는 그 밑줄 들 속에서 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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