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당연히 열려 있어야 할 미래이건만, 눈앞에서 셔터가 내려져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24 손목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오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구리코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생각한다.

그 피는 실날같이 가늘어서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계속 흐르고 흘러 어느샌가 구리코의 발밑에 피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하루하루가 힘든 건 아니다. 답답함에 소리치고 싶은 심정도 아니다.

즐거우냐고 묻는다면 즐겁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조금씩 구리코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이대로라면 피와 함께 진짜 자기까지 흘러나가, 어느사이엔가 텅 비어버릴 것만 같다.

친두들은 다른 이런 감정을 못 느끼고 사는 걸까. 이런 말을 했다간 이상한 아이라며 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언젠가, 피가 멈췄다고 느낄 날이 있을까. 나 자신이 흘러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있는 걸까.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듯, 텅 비어버리면 분명 아무것도 모르게 되리라.

27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방황하는 사람일수록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그건 연기에 섞어 한숨을 토해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32 이런 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어른이 되는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어른도 그리 쉽사리 받아들이진 못하는 것 같다. 아마, 운명이니 팔자니 하는 말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40 세상일이란 각도를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76 원래부터 없던 것과 있던데 사라지는 것은 전혀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정반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르다.

144 그래, 초초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인생은 길다.

147 사랑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확 달라지는 일 따윈 없는 것이다.

150 그래도 늘 같은 장소에 있던 사람이 그곳에 없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에 작은 구멍이 뚫린 듯한 기분이 든다.

261 마음에도 배수구가 있는지 모른다.

288 "굳이 믿을 필요도, 확실하게 결정나기 전부터 비관적이 될 필요도 없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저 나나세씨에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면 돼. 우울해 하는 건 확실하게 밝혀지고 나서 해도 되잖아.

"하지만 만약 좋은 가능성만 생각하고 있다가 실제로 나쁜 결과가 나오면, 그 때 받은 충격은 더 크지 않을까."

289 우울할 때는 '분명히 아닐거야'라고 믿고, 그러다 기운이 나기 시작하면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여 가는 것.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 하느님은 봐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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