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블로그 - 역사와의 새로운 접속 21세기에 조선을 블로깅하다
문명식 외 지음, 노대환 감수 / 생각과느낌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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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역사의 호오에 대해 각기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개 전자의 경우 과거를 곱씹는 과정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있다는 이유를 거론한다면, 후자의 경우는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역사 자체가 갖는 딱딱함과 건조함으로 인한 접근의 비수월함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알고 탐구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호감도가 떨어지기에 많은 독서가들로부터 역사책들이 외면 받고 있다는 지적은 그리 틀린 진단은 아닐 것이다. 

  역사의 사전적 정의를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니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1.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2.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
3. 자연현상이 변하여 온 자취.

  즉, 역사는 과거의 '사실'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역사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만을 역사라고 인정할 수 있기에 역사는 '사실'로 시작해서 '사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목 하에 과거의 역사가 적잖이 손질되는 것도 사실로의 귀결을 지향하는 역사의 성질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반 대중들이 역사를 탐구하면서 따분하고 지루함이 발산될 수밖에 없음은 십분 이해될 만 하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에 의한 종속으로 인하여 정통역사가 갖는 비대중성을 인식, 최근의 역사소설과 사극드라마의 경향은 상상력의 비율을 점차 높이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입증된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과의 오묘한 결합과 긴장감 사이에서 대중들은 정통역사가 주지 못하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정통성과 사실 관계를 훼손한다는 역사학계의 지적이 많지만 일반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최근에 역사 미디어의 시류로 형성되어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다. 

  저명한 역사학자 노대환 교수가 감수하고 생각과느낌社에서 출간한 『조선 블로그』는 역사와의 새로운 접속을 시도하고 있다.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몇몇 유명 인물과 사건, 배경을 소재삼아 내용에 있어서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블로그'라는 21세기적 아이콘을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재미있는 역사책으로서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위시하여 정도전, 세종, 이순신, 광해군 등의 역사인물을 21C 인터넷 개인공간의 아이콘인 '블로그'라는 메커니즘 속에서 풀어놓고 있다. 블로그 주인장이 포스트를 올리면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덧글과 반론이 이어지고, 포스트와 덧글의 등록 시간과 안부게시판의 활용까지 매우 그럴 듯하고 흥미있게 조선시대를 다루고 있다. 더욱이 의병, 실학, 풍속화 등의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사건과 시류에 대해서는 '카페'라는 공간을 통하여 녹여놓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블로그'에 대한 공감적인 흥미 유발로 인한 뛰어난 가독성에 불과 두 시간만에 완독할 수 있다. 문장의 이해를 돕는 컬러 도판의 삽입과 역사용어에 대한 번호달기 참고 설명도 이 책이 가진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권위있는 역사학자의 감수와 각 내용에 대한 출처를 밝힌 것 등은 가벼워질 수 있는 부분을 감안한 저자와 출판사의 노력이라 할 만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풍속화 카페' 파트였는데,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경쟁구도를 흥미있게 표현한 대목이 압권이다. '단원빠'나 '혜원빠'와 같은 시쳇말을 사용한 덧글 전쟁은 코믹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부분이다. 마치 『바람의 화원』의 몇몇 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두 화가의 경쟁구도와 컬러판의 그림을 보는 재미는 쏠쏠함을 넘어 짜릿한 페이소스와 맞닿아 있다. 

  아쉬운 점은 조선 후반의 역사가 빈곤하게 다뤄졌다는 것이다. 태조, 정도전, 태종, 세종 등의 초기 조선의 인물들은 많이 다루고 있지만,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뤘던 영·정조 시기나 한 번쯤 곱씹을 필요가 있는 고종 대의 망국기를 다루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조선역사 전체를 순차적으로 다루지 않고 부분적으로 역사를 발췌하여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다루다보니 전체 구성면에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단속적인 역사 훑어보기는 '블로그'와 '카페'라는 아이콘을 부각하기 위한 흔적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의 매끈한 흐름 구도와 역사의 거시적 완결성을 위해 왕조 중심의 '블로그' 아이콘만을 배치했으면 더 좋았을 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선한 시도에 있어 그 어찌 완벽함만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작가후기에서 역사에 대한 가벼운 접근이 아닐까 하는 우려감을 표현했지만, 내용에 있어 상상력을 배제하고 정통역사를 다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구성의 신선함과 흥미도가 탄탄하다는 점은 그런 기우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 

  과거 조선 역사와 21세기 인터넷 블로그 메커니즘의 합일. 그 조화가 만들어내는 흥미는 독자로 하여금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 시대의 역사상을 훑어보게 할 수 있는 힘이 되기에 살포시 추천한다. 더불어 이러한 신선한 구성의 역사책들이 많이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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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목돈만들기 -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직장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시리즈 2
김창수 지음 / 새로운제안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친하게 지내는 교회 후배가 있다. 교회 담임목사님의 장남 녀석인데 나이는 같지만 생일이 빠른 내가 형으로 불리우고 있는 그런 사이다. 동년배들보다 결혼을 일찍 해서 벌써 돌이 지난 아들 하나를 갖고 있는 녀석이기도 하다. 항상 그 녀석을 보면서 많은 부분에서 경외심을 갖고 있는데,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바로 재테크 분야이다. 대학 때부터 과외를 여러개 뛰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기 시작했던 녀석의 재테크 신화는 서른 이전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집까지 장만한, 이미 기술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다.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지만 돈을 쓰는 것은 예술이다, 라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녀석을 보면서 많이 느끼고 있다. 

  자본주의는 많은 발전을 진행해왔다. 이미 고전자본주의와 수정자본주의를 지나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개편되면서 작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철저한 시장중심과 경쟁논리로 자본주의의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경제'라는 단어는 비단 국가와 기업만이 아닌 가정과 개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아이콘이 되어 있다. 모든 것이 경제논리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성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독립체로서의 경제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해야 돈을 잘 벌 수 있고, 어떻게 해야 돈을 잘 모을 수 있단 말인가? 전자의 경우 창의적인 직장생활과 꾸준한 자기계발을 통하여 실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철저한 재무 설계와 실행, 그리고 절제를 통하여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은행의 재테크팀장인 김창수 씨의 『직장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목돈만들기』는 번 돈을 관리하는 후자의 경제학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신간이기에 최근의 경제상황을 잘 반영하여 최대한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노하우를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사실 CMA, MMF, 파생상품, 청약저축, 리벨런싱, 인덱스펀드, 크레디트 뷰로 등은 용어만 들어도 고개가 설레설레 흔들어지는 쉽지 않은 단어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 초년생들의 수준에서 쉽고 평이하게 재테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더욱이 책의 구조가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수입과 지출, 저축과 투자에 대한 경험적이고 공감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승장구했던 코스피 지수가 잠시 주춤한 것은 사실이나 역시나 펀드 열풍은 가시지 않고 있다. 더욱이 차이나펀드를 위시하여 해외펀드는 꾸준히 큰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저자 또한 이를 놓치지 않고 매우 많은 부분을 펀드상품에 할애하고 있다. 자신의 능력과 특성에 맞는 펀드상품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각 상품별 특징과 주의점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이며 평이하게 설명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통장 관리와 관련된 한 가지 실용적인 제안이 눈에 띄었는데 '저수지 통장'의 활용이 바로 그것이다. 저수지 통장이란 비상 예비자금을 예치해두기에 편리한 통장을 말한다. 내 경우에 상여금을 비롯하여 월급여 외의 수입이 생기는 달이 적지 않다. 그런 경우 그 돈은 고스란히 계획하지 않은 지출로 이어지게 되는데, 만약 저수지 통장을 활용한다면 긴급한 자금이 필요할 때나 소액 고금리 저축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존의 월급통장 하나만을 운영할 것이 아니라 증권사의 MMF나 CMA 등을 이용한 저수지 통장의 활용이 나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바야흐로 투자의 시대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제 주식과 펀드는 재테크에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환경에 어떻게 적용하는가다. 나의 경우 심장이 콩알만해서 펀드상품의 금액이 월급여의 20%가 채 되지 않는다. 금년 2월이면 정기적금 만료일이기에 3월부터는 새로운 계획이 절실하다. 정기적금과 적립식 펀드의 비율 설정에 있어 이 책이 효율적인 참고를 제시해주고 있어서 참 좋다. 

  월급통장의 관리에서부터 구체적인 투자 포트폴리오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서평의 한계로 인해 좋은 내용을 전부 소개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 저자가 논하는 재테크의 고수와 하수의 차이점이 참으로 흥미롭고 공감된다. 실행을 하느냐, 못하느냐가 고수와 하수를 가르는 동기라고 말한다. 재테크 특정 전문분야에 대해 전문가 이상의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다 할지라도, 투자에 대한 빠른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과감하게 실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응당 맞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된다. 버는 것은 기술, 쓰는 것은 예술, 이라는 돈의 공식을 말이다. 자신의 재정 수준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여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자산 관리자가 되고 싶은가. 재테크의 아티스트로서 단기 미래와 장기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행복한 경제상을 건설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한권의 책은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기본 참고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 사변에 머물지 않고 실천하고 행동한다는 전제 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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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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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서의 사전적인 정의는 '책 읽기'이다. 그렇다면 '왜 읽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접근으로 독서의 정의를 재론한다면 어떠한 해석이 가능할까. 이는 개인마다의 독서 성향과 가치관, 철학과 우주관이 모두 다르기때문에 천차만별의 다양한 문장의 완성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정의는? 

  독서는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책을 통하여 작가를 만나고, 작가가 만난 인물을 만나며, 작가가 가공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불특정다수 생면부지의 인물을 만나는 과정이 독서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며, 이러한 독서의 역할은 그 정의로까지 대체된다. 독서라는 작업을 통하여 전개되는 많은 인간 군상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것을 통한 다양한 우주의 탐구, 더 나아가 그런 탐구를 통한 자아의 재발견은 독서가 얼마나 고차원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더욱이 문학이라는 장르는 인간에 대한 농밀한 공복감을 갖고 있다.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을 탐구하며 재조명하고 천착한다. 독자는 문학을 통하여 나를 보며, 너를 보기도 하고, 우리를 보기도 하면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문학을 위시한 모든 활자들의 집합체는 종국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감에 대한 성찰과 탐구로 귀결된다는 것이 내 독서관이며 소신이다. 그렇기에 내 미천한 독서는 언제나 '인간'과 맞닿아 있다. 

  꽤 매력적인 인간을 만났다.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를 통하여 '허삼관'이라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하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주인공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이야기이다. 피를 판다는 설정 자체가 기묘하지만, 작가 위화는 이 작품에서 한 남자의 희극과 비극의 합일된 서사를 통하여 모순과 오류로 점철된 중국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소설의 초중반은 자신의 장남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흥분한 허삼관의 분노와 조악한 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 아들 중에서 장남 일락이만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님이 밝혀진 이후, 소설의 초중반은 아버지 삼관과 장남 일락의 계부자父子간의 첨예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일락의 친아버지 하소용의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삼관과 일락 사이의 깊은 정은 그간의 오해와 반목을 산산히 부서뜨리며 부자간의 화해와 사랑을 완성시킨다. 

  소설속에서 '피'는 인간의 생명을 포함한 매우 소중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한 번 피를 팔면 35원을 받는 최고의 부가가치 장사지만, 그 내면에는 그늘지고 어두운 한 가난한 평민의 번민이 내포되어 있다. 허삼관 가족에게 허삼관의 피는 어려울 때마다 고비를 넘어가게 하는 돌파구요, 돈이요, 힘이요, 하나님이다. 피를 팔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들네의 암울한 현재상은 읽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할 만큼 연민스럽다. 

  허삼관은 꽤나 인상깊은 인물이다. 허삼관에게 '매혈血'은 매우 소중한 작업이다. 소설은 허삼관의 매혈을 통하여 새로운 서사의 명멸을 주도한다. 일락이가 방 철장의 아들 머리를 박살냈을 때에 피를 팔아 위기를 모면하고, 식구들이 57일간 죽을 마실 정도로 가난에 굶주렸을 때에 피를 팔아 배부른 음식을 먹여준다. 더욱이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서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아프게 되었을 때에 상해까지의 먼 여정 가운데 목숨을 건 반복된 매혈 장면은, 한 가족의 아버지로서의 웅숭깊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지극히 애절하면서도 감동어린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허삼관은 '양심'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장남 일락이의 친아버지인 하소용의 죽음 앞에서 개인적인 사심과 분노를 억제하고 일락에게 양심있는 행동을 요구한다. 하소용이 자신과 가족에게 안겨준 한과 고통의 과거적인 무게감을 극복하고 한 사람의 생명으로서, 일락이의 친아버지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며 양심있는 자의 행동을 역설한다. 비록 일락이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었고, 누구보다 증오했던 일락의 친아버지 하승용 앞에서라 할지라도 결국 허삼관은 양심있는 아버지로서, 그리고 용기있는 사나이로서의 기백을 보여준다. 

  문화대혁명 당시 아내 허옥란의 과거(하소용과의 동침)가 빌미가 되어 가족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세 아들의 매서운 목소리가 어머니를 질타했을 때에도 허삼관은 자신과 임분방과의 과거를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아내를 보듬어준다. 비겁하지 않고 용기있고 양심을 강조하는,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강했던 허삼관이라는 인물에 나는 적잖이 경도되었다.  

  이야기는 희극으로 종결된다. 평생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남과 가족을 위해 피를 팔 수밖에 없었던 허삼관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고자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세월이 지나 자신의 피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늙은 피가 되었다는 자괴에 빠지며 격정의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마지막 허삼관의 서글픈 눈물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평생을 되돌아보는 과거의 눈물이자, 현재적 삶의 허탈을 목도하는 현재의 눈물을 동시에 아우르는 한의 눈물이리라. 

  『허삼관 매혈기』는 희비극이다. 소설은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교차가 아닌 합일이다. 다시 말해서 비극의 문장이 결코 슬프지만은 않고, 희극의 문장이 결코 기쁘지만은 않은 아이러니한 문장이라는 것이다. 결코 어렵지 않은 단어들의 조합 속에서 '희喜'와 '비悲'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위화의 문장에 나는 빨려들었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슬픔과 기쁨을, 가벼움과 무거움을, 공감과 비공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위화리즘'은 앞으로 그의 활자들을 거듭 만날 수밖에 없게 하는 기대감과 의무감을 안겨주었다. 

  역시나 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이라는 것이 재증명되었다. 허삼관이라는 아이러니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을 통하여 나는 조국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곱씹었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묵상했으며, 가족의 의미와 책임감, 더 나아가 나 자신까지 사유하게 되었다.  

  언제나 독서를 통하여 새로운 인간상을 만난다는 것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허삼관 매혈기』에 내가 선사한 별점 4개 반 중에서 허삼관의 몫은 4개 그 이상이다. 위화가 만들어낸 허삼관이라는 인물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내 자신의 독서철학을 반추한다. 독서는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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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발견 - 5,000년의 사랑 이야기
이수현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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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다소 기독교의 창조적 관점으로 서평을 썼음.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많이 천착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일 것이다. 인간은 사랑에 민감한 종족이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구의 역사를 완성해가며 사랑에 대한 수많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인간의 종교적, 철학적, 사상적, 정치적, 문화적 경향성 또한 넓은 의미에서 사랑의 함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신을 사랑하며,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며, 인류를 사랑하는 인간. 어떻게 보면 인간은 사랑을 위해 창조된 종족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위대하고 찬란한 가치다. 사랑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사랑 안에는 인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사랑은 그 과정에 질문하지 않는다. 사랑은 절대선絶對善이며 오류가 없는 완전한 것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고, 그 행복이 완성되어진 시공간이 바로 천국이다. 천국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충만한 곳, 그리하여 다른 비본질적 물질들이 들어설 공간이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인간은 사랑의 절대적 힘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한다"며 사랑의 가치를 역설하지만, 그 열정은 '입'을 초월치 못하여 가슴에 도달하지 못한다. 입과 머리로 사랑을 발산하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던가?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는 것을. 진정한 사랑은 우리의 가슴에 안착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 본연의 위대한 힘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주어가 되고 <사랑하고 싶은 것만>을 목적어 삼아서 사랑의 문장을 완성시키려고 한다.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전체>가 아닌, 마음에 드는 부분적 <객체>만을 찝어서 사랑한다. 66억의 인류가 어느 누구 하나 동일할 수 없는 질서로 설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은 공간 속의 '너'를 희망하며 종속된 사랑을 갈구한다. 어쩌면 지구는 사랑과 관련된 수많은 인간들의 연기로 인해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훼손하고 있는 행성일지도 모른다. 

  우연인가, 운명인가, 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류는 꽤나 이성적이고 현명한 종족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더욱이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미숙하고 아마추어다. 때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며 낭만적이다. 현실의 우연을 이상의 운명으로 교체하길 원한다. 우연과 운명의 논쟁은 사랑 앞에서는 부질 없다. 사랑이 다가오는 것은 우연이지만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은 운명이다. 사랑은 운명으로 바꾸어진 우연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강한 동질성에 기초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성숙한 사랑의 완성은 격렬하고 가슴아프게 서로의 차이점을 발견하는 과정을 전제한다. 나와 다른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 가는 의지이며, 내 우주와는 다른 우주를 가슴에 품는 희생이 사랑이다. 결국 상대방의 완전체를 내 심장에 오롯이 품으며 미소지을 수 있는 힘. 그것이 완결된 사랑의 본질이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자와 웅으로 이분화되어 창조되었다. 인간의 경우, 여성과 남성은 창조 메커니즘이 상이하다. 두뇌의 구조는 물론, 생체의 리듬과 호르몬의 분비, 행동 기작에 이르기까지 판이하게 다른 창조 설계도를 갖고 있다. 이는 사랑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명확히 목도된다. 어느쪽이 더 능수능란하게 사랑을 다루는지는 증명되지 않았고 증명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둘 다 모두 사랑의 영역 안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수많은 사랑의 태동과 번성의 반복에 의하여 인류는 지금까지 영장의 자리를 지키면서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5,000년의 사랑 이야기'라는 강렬한 부제를 달고 있는 얇은 양장본 우화소설 『사랑의 발견』은 수만 년 전을 배경으로 크로마뇽인 연인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사랑의 의미와 남녀의 차이 등을 잔잔하게 들려주면서 지루하지 않은 '사랑학'을 강의한다. 많지 않은 분량의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 들려주는 사랑학 아포리즘은 남자로서 여자에 대한 방향성, 여자로서 남자에 대한 방향성의 차이와 성질을 생각하게 한다.  

  농밀한 깊이를 선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류 불변의 뜨거운 감자 <사랑>을 탐구하는 데 있어 그 무엇을 따지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랑 그 자체다. 내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게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은 신이 인류를 축복하기 위해 준비한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사랑의 아마추어인 이 젊은 남자는 눈 내리는 창밖을 응시하며 사랑에 대한 사유의 연못에 잠시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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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지 슬픔 - 엘리자베스 김의 자전 실화 소설
엘리자베스 김 지음, 노진선 옮김 / 지니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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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5일은 대한민국 스포츠 메스컴이 난리가 난 날이었다. 이날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미식축구의 결승전(수퍼볼)이 열린 날이다. 미국 내 1억 4천만 명, 전 세계 10억 명의 동시 시청자 수를 자랑하는 이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가 매년 미국에서 열린다는 점은 비단 새로울 사건은 아니였다. 중요한 것은 그날 MVP를 받은 선수 있다. 그는 하인스 워드. 피츠버그 스틸러스 소속의 와이드리시버인 그가 대한민국 메스컴의 조명을 폭포수처럼 받게 된 이유는 그의 어머니가 바로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자가 보여준 절망의 극복, 꿈과 희망, 그리고 성공의 메시지에 대해서 동일 민족의 피가 섞여 있는 동질감을 갖고 있었기에, <혼혈>이라는 보다 깊은 태생적 아픔이 존재했기에, 지구 반대편의 자그만 반도국가 국민들은 감동하고 열광했던 것이다. 

  미국 언론을 비롯해서 아마존 독자들이 극찬한 『만가지 슬픔』은 하인스 워드와 동일한 아픔을 갖고 있는 저자 엘리자베스 김의 자전 실화 소설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혼혈인이라는 아픔속에서 저자 자신이 겪은 만가지 슬픔이 어떠한 것인지를 진정성있게 고백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 여인의 자전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잘못된 사회상에 의해 고통받는 여인의 삶과 혼혈인으로 살아가는 상처와 아픔을 목도하게 된다. 미군 병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잉태한 여인의 처신은 철저한 유교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저자는 엄마가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광주리 안에서 바라본다.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고아원 생활을 하다가 미국인 목사 부부로부터 입양되어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양부모로부터 받는 수모와 고통의 미국생활은 저자의 가슴을 칼로 재단질할 정도로 아프기만 하다. 더욱이, 이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여 감내해야만 했던 폭력과 비인간적 삶은 한 여인의 기구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오랜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저자에게도 기쁨이 찾아온다. 남편과 약속했던 피임 규정을 어기며 용기있게 아이를 갖고 딸을 출산한 것이다. 자신의 딸아이를 통하여 저자 자신이 겪은 수많은 슬픔들을 한가지의 기쁨으로 막아내며 힘을 얻는다. 더욱이 남편과 이혼한 후에는 딸과 단둘이 살면서 이전엔 경험하지 못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간다. 저자는 기억조차 희미한 어렸을 적 완성되지 못했던 친엄마와의 모성적 환희를 자신이 직접 엄마가 됨으로써 완성하게 된 것이다. 

  딸 리가 대학 생활로 분가한 이후 저자 엘리자베스는 자아에 대해 사유한다. 혼혈인으로 수모를 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태생적 아픔, 양부모의 핍박과 수모, 남편으로부터의 인격 모독과 폭력의 상처, 그리고 딸 리를 통한 기쁨의 회복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자아 탐구는 철저히 과거에 구속되면서 또다른 성질의 슬픔을 분출한다. 자살에 대한 숱한 강박관념과 수많은 사랑의 실패로 인해 찢어질대로 찢어진 그녀의 가슴은 소중한 하나의 깨달음을 통하여 치유된다. 자신이 겪은 만가지의 슬픔들 속에 가려져 잊었던 소중한 그것. 바로 <자기애>라는 것을 통하여. 

  사랑에는 여러가지 기류와 성질이 있다. 신, 자식, 부모, 연인, 인류 등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대상은 매우 광범위하며 우주는 수많은 사랑의 방향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매우 소중한 사랑의 기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건강한 이타는 좋은 이기에 기초한다. 남을 사랑하는 진정성의 본질에는 반드시 자기애가 내재되어야 한다. 국내외 저명한 심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역설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존중히 여기는 사랑을 시작으로 신과 타인을 향한 <건강한> 사랑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가 자기 자신의 존재성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깨달으면서 행복의 불씨를 목도하게 된 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하고도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나르시시즘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장면이 아닐까. 

  역시나 모성性이다. 모성은 위대하고 찬란하다. 저자 자신이 자기애를 찾아가는 과정은 지나치게 험난하고 지독하게 처절하기만 하다. 숱한 고통과 상처속에서 저자는 결국 모성이라는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특권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본질을 깨닫는다.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은 각각 상처받은 슬픈 모성과 희망의 기쁜 모성을 보여준다. 저자의 만가지 슬픔은 <모성>이라는 위대한 한가지 기쁨을 통하여 <자기애>를 발견하게 되고, 이로써 만가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의 불꽃으로 변화된다. 

  최근 나는 독서를 통하여 여성의 기구한 삶을 많이 만나고 있다. 이런 독서 경험은 내게 '모성'과 '인내'로 집약되는 여성성의 위대함을 새삼 인식하게 해주었다. 여성은 정말 위대한 종족이다. 저명한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가 생물학적, 생태학적 자료를 통해 굳이 입증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뇌량의 굵기와 기능이 남성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적 근거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분명 여성은 남성보다 고등한 종족이다. 남성이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모성>이라는 여성성의 찬란한 태양은 여성 안에 내재된 신의 <아가페>적 성품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친엄마의 죽음, 혼혈인으로서의 수모, 양부모의 핍박과 경멸, 남편의 폭력, 가정의 실패, 거듭된 사랑의 실패 등을 겪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자전적 서사로 재창조한 『만가지 슬픔』은 기쁨과 슬픔, 사랑과 자기애, 모성과 여성성에 이르는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깊이있게 사유하게 한다.  

  한 여인의 기구하지만 생동감있는 희비극喜悲劇을 저자 특유의 시적인 문체와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 만들어 낸 이 한 권의 감동 드마라를 자신의 현재적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여 삶을 둥개며 <만가지 기쁨>을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 살포시 추천한다.
 

사랑만으로 충분하다. 비록 세상이 이지러지고
숲에서는 오직 불평의 목소리만 들린다 해도,
하늘이 너무 어두워 침침한 눈으로는
하늘 아래 아름답게 피어 있는 골드컵과 데이지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언덕에는 그늘이 드리우고 바다에는 어두운 경이가 일고,
과거의 모든 행동 위로 오늘이 베일을 드리운다 하더라도,
그대의 손은 떨리지 않으며 그대의 발은 넘어지지 않으리.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들의 입술과 눈동자는
공허도 싫증나게 하지 못하며 두려움도 바꾸지 못하리니.
<p. 276>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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