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가지 슬픔 - 엘리자베스 김의 자전 실화 소설
엘리자베스 김 지음, 노진선 옮김 / 지니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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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6년 2월 5일은 대한민국 스포츠 메스컴이 난리가 난 날이었다. 이날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미식축구의 결승전(수퍼볼)이 열린 날이다. 미국 내 1억 4천만 명, 전 세계 10억 명의 동시 시청자 수를 자랑하는 이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가 매년 미국에서 열린다는 점은 비단 새로울 사건은 아니였다. 중요한 것은 그날 MVP를 받은 선수 있다. 그는 하인스 워드. 피츠버그 스틸러스 소속의 와이드리시버인 그가 대한민국 메스컴의 조명을 폭포수처럼 받게 된 이유는 그의 어머니가 바로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자가 보여준 절망의 극복, 꿈과 희망, 그리고 성공의 메시지에 대해서 동일 민족의 피가 섞여 있는 동질감을 갖고 있었기에, <혼혈>이라는 보다 깊은 태생적 아픔이 존재했기에, 지구 반대편의 자그만 반도국가 국민들은 감동하고 열광했던 것이다. 

  미국 언론을 비롯해서 아마존 독자들이 극찬한 『만가지 슬픔』은 하인스 워드와 동일한 아픔을 갖고 있는 저자 엘리자베스 김의 자전 실화 소설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혼혈인이라는 아픔속에서 저자 자신이 겪은 만가지 슬픔이 어떠한 것인지를 진정성있게 고백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 여인의 자전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잘못된 사회상에 의해 고통받는 여인의 삶과 혼혈인으로 살아가는 상처와 아픔을 목도하게 된다. 미군 병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잉태한 여인의 처신은 철저한 유교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저자는 엄마가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광주리 안에서 바라본다.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고아원 생활을 하다가 미국인 목사 부부로부터 입양되어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양부모로부터 받는 수모와 고통의 미국생활은 저자의 가슴을 칼로 재단질할 정도로 아프기만 하다. 더욱이, 이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여 감내해야만 했던 폭력과 비인간적 삶은 한 여인의 기구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오랜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저자에게도 기쁨이 찾아온다. 남편과 약속했던 피임 규정을 어기며 용기있게 아이를 갖고 딸을 출산한 것이다. 자신의 딸아이를 통하여 저자 자신이 겪은 수많은 슬픔들을 한가지의 기쁨으로 막아내며 힘을 얻는다. 더욱이 남편과 이혼한 후에는 딸과 단둘이 살면서 이전엔 경험하지 못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간다. 저자는 기억조차 희미한 어렸을 적 완성되지 못했던 친엄마와의 모성적 환희를 자신이 직접 엄마가 됨으로써 완성하게 된 것이다. 

  딸 리가 대학 생활로 분가한 이후 저자 엘리자베스는 자아에 대해 사유한다. 혼혈인으로 수모를 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태생적 아픔, 양부모의 핍박과 수모, 남편으로부터의 인격 모독과 폭력의 상처, 그리고 딸 리를 통한 기쁨의 회복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자아 탐구는 철저히 과거에 구속되면서 또다른 성질의 슬픔을 분출한다. 자살에 대한 숱한 강박관념과 수많은 사랑의 실패로 인해 찢어질대로 찢어진 그녀의 가슴은 소중한 하나의 깨달음을 통하여 치유된다. 자신이 겪은 만가지의 슬픔들 속에 가려져 잊었던 소중한 그것. 바로 <자기애>라는 것을 통하여. 

  사랑에는 여러가지 기류와 성질이 있다. 신, 자식, 부모, 연인, 인류 등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대상은 매우 광범위하며 우주는 수많은 사랑의 방향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매우 소중한 사랑의 기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건강한 이타는 좋은 이기에 기초한다. 남을 사랑하는 진정성의 본질에는 반드시 자기애가 내재되어야 한다. 국내외 저명한 심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역설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존중히 여기는 사랑을 시작으로 신과 타인을 향한 <건강한> 사랑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가 자기 자신의 존재성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깨달으면서 행복의 불씨를 목도하게 된 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하고도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나르시시즘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장면이 아닐까. 

  역시나 모성性이다. 모성은 위대하고 찬란하다. 저자 자신이 자기애를 찾아가는 과정은 지나치게 험난하고 지독하게 처절하기만 하다. 숱한 고통과 상처속에서 저자는 결국 모성이라는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특권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본질을 깨닫는다.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은 각각 상처받은 슬픈 모성과 희망의 기쁜 모성을 보여준다. 저자의 만가지 슬픔은 <모성>이라는 위대한 한가지 기쁨을 통하여 <자기애>를 발견하게 되고, 이로써 만가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의 불꽃으로 변화된다. 

  최근 나는 독서를 통하여 여성의 기구한 삶을 많이 만나고 있다. 이런 독서 경험은 내게 '모성'과 '인내'로 집약되는 여성성의 위대함을 새삼 인식하게 해주었다. 여성은 정말 위대한 종족이다. 저명한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가 생물학적, 생태학적 자료를 통해 굳이 입증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뇌량의 굵기와 기능이 남성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적 근거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분명 여성은 남성보다 고등한 종족이다. 남성이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모성>이라는 여성성의 찬란한 태양은 여성 안에 내재된 신의 <아가페>적 성품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친엄마의 죽음, 혼혈인으로서의 수모, 양부모의 핍박과 경멸, 남편의 폭력, 가정의 실패, 거듭된 사랑의 실패 등을 겪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자전적 서사로 재창조한 『만가지 슬픔』은 기쁨과 슬픔, 사랑과 자기애, 모성과 여성성에 이르는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깊이있게 사유하게 한다.  

  한 여인의 기구하지만 생동감있는 희비극喜悲劇을 저자 특유의 시적인 문체와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 만들어 낸 이 한 권의 감동 드마라를 자신의 현재적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여 삶을 둥개며 <만가지 기쁨>을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 살포시 추천한다.
 

사랑만으로 충분하다. 비록 세상이 이지러지고
숲에서는 오직 불평의 목소리만 들린다 해도,
하늘이 너무 어두워 침침한 눈으로는
하늘 아래 아름답게 피어 있는 골드컵과 데이지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언덕에는 그늘이 드리우고 바다에는 어두운 경이가 일고,
과거의 모든 행동 위로 오늘이 베일을 드리운다 하더라도,
그대의 손은 떨리지 않으며 그대의 발은 넘어지지 않으리.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들의 입술과 눈동자는
공허도 싫증나게 하지 못하며 두려움도 바꾸지 못하리니.
<p. 276>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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