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세계의 신화 아비투어 교양 시리즈 2
크리스타 푀펠만 지음, 권소영 옮김 / 비씨스쿨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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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 우주의 기원, 신이나 영웅의 사적(事績), 민족의 태고 때의 역사나 설화 따위가 주된 내용이다. 내용에 따라 자연 신화와 인문(人文) 신화로 나눈다.

  대한민국 최대 인터넷포털이 제시하는 '신화'에 대한 정의다. 신화 속에는 인류의 근원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열정이 반영되어 있다. 세계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누구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인류의 태동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인간의 갈증이 수많은 신화들의 명멸을 이끌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위시하여 각 나라별, 각 민족별로 태동된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함 그 자체이다.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했던 신화의 정체성은 수천년이 지난 작금의 시대에서도 매우 흥미있는 고전이 되어 있다. 부활절 토끼, 아더왕과 용맹한 그의 부하들, 세계를 구원한 노아의 방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헬레나 등의 이야기는 '상상력'이라는 의미 부여만으로 그 흥미의 본질을 구속하기에는 너무나 재미있고 충분히 스펙타클하다. 신화가 선사하는 페이소스는 인간의 본성 속에 내밀하고 오묘하게 존재하는 자아정체성과 종교성에서 그 색깔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권으로 읽는 세계의 신화』는 세계의 많은 신화들을 소개하는 인문서다. 이 책은 인문, 사회, 과학 등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하는 교양서를 보급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아비투어 교양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서 부담없는 적은 분량으로 세계의 신화들을 정리했다. 독자에게 알맹이 정보만을 주기 위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전달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불필요한 부언과 장황한 설명은 배제한 채, 물리적으로 가름된 카테고리 내에서 신화와 영웅의 이야기를 설명한다.

  책 속에는 많은 신화들이 소개되고 있다. 창조신화, 제물신화, 태양신화, 문명신화 등 다양한 신화들의 원류와 흐름을 설명한다. 기독교와 힌두교를 위시한 주류 종교들의 뿌리와 근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중후반부터 이어지는 신들의 이야기와 소설과 영화에서 자주 접했던 익숙한 영웅들의 활약이 소개되기도 한다. 도판의 적절한 삽입을 통해 해당 신화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뒷받침한 부분은 이 책의 장점이다.

  하지만 적은 지면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전체적으로 설명의 통일성이 미흡하다. '신화'라는 거대한 테마를 쉽게 이해하는 데에는 부족하다. 독자 중심이 아닌 철저하게 필자 중심의 서술이 그러하고, 소제목별로 끊어지는 설명의 흐름은 몹시 아쉽다. 전체적 내용을 요약하기보다 각 신화의 지엽적 부분을 발췌해 설명하는 정도여서 깊이가 덜하다. 또한 '아는 척 하기'를 비롯한 기본 설명 바깥에 있는 참고박스가 너무 많아 다소 난잡한 구성을 이루기도 한다. 

  책의 설명 구도는 더욱 산만하다. 크게 네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신화를 설명하고 있는데, 설명 방식이 한 편의 신화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신화의 성격을 구분하는 테마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통일성이 떨어지고 읽는 이의 집중도를 희석시킨다. 암기를 위한 중고생 위주의 정리집으로서는 적절하지만 세계의 신화를 흥미있게 일독한다는 차원에서는 무언가 부족하다.

  고대사회를 기준으로 조망하는 신화가 현세대에서도 읽혀야 하는 이유는 현대까지를 아우르는 원형성에 있다. 우주의 태고, 인류의 탄생과 죽음, 자연환경 등 삶과 관련된 극도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세계를 보는 넓이와 각도를 확장한다. 요컨대 신화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원형성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이러한 신화의 보편적 속성을 발산시키지 못한 점은 '한 권으로 읽는 세계의 신화'라는 기대섞인 제목을 감안한다면 매우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충분히 흥미있고 가슴이 두근거릴 수 있는 신화를 참고서화하여 건조하게 풀이한 점은 아쉽지만 읽을 대상을 명확히 한정한다면 나름 괜찮은 책이다. 신화에 다소 조예가 있는 자의 정리된 참고서로, 학생들의 교양 정리나 암기를 위한 포켓집으로, 다양한 신화들을 부분적으로 소개하며 기본적 맥락을 읽는 얇은 인문서로는 무난하다. 집에 한 권 있어서 굳이 나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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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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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듬어진 성장소설의 매력을 청소년보다 오히려 어른이 더 많이 얻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내 믿음은 일생에서 가장 빠르고 많이 성장하는 청소년기에 대한 성인과 청소년의 상이한 이해와 기억에 기초한다. 청소년에게 그 시기는 가장 복잡하고 힘든 시간이면서도 불가해한 '현재'라면, 성인에게는 이미 지나갔지만 가슴 한 켠에 소중히 자리잡고 있는 가해한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고 괴로웠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시간. 그것이 성장기가 갖는 오묘한 비밀이리라.

  성장소설은 독자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은 문학계의 아이콘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전세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데미안』과 『양철북』이 그랬고, 『어린왕자』와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랬으며, 『연금술사』와 『리버보이』가 또한 그랬다. 한 인간이 성장하며 겪는 꿈과 희망, 성취와 좌절을 통해 얻는 개인의 보편적 깨달음, 곧 자기실현이라는 가치를 제시하는 성장소설의 감동은 매우 농밀하다. 과거를 안고 현재를 깨닫고 미래를 소망하는, 요컨대 일차원의 모든 시간대의 가치를 아우르는 성장소설의 아름다움을 나는 결코 멀리 할 수가 없다.

  한국 문단계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김형경과 성장소설이 만났다. 그녀의 최신작 『꽃피는 고래』는 교통사고로 엄마와 아빠를 잃은 한 소녀의 상실과 이를 회복하며 한 단계 성장해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낸 소설이다. 열일곱의 나이에 크나큰 상실감에 허둥되는 소녀 니은이의 아픈 현실에 아빠의 고향인 처용포 마을에서 듣게 되는 바다와 고래의 이야기가 씨줄처럼 엮여 있다. 작가 김형경은 한 소녀의 상실과 번민과 회복의 네러티브를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문체로 그려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니은이는 열일곱 살 소녀다. 엄마와 아빠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혼자 남게 된 니은이는 방황한다. 부모의 죽음 후 아빠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처용포 마을로 가게 된다. 초반, 니은이의 상실감은 심각하게 그려진다. 가장 친한 친구 나무에게 화를 냈던 것도, 그래서 나무가 떠났던 것도,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에 들르는 손님이 다들 미운 것도, 결국 편의점 유리창을 깨고 쫓겨났던 것도, 어울리지 말아야 할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도, 무기력하고 건조한 삶을 지속했던 것도, 그 모든 분노와 불만, 고독과 번민은 바로 상실감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니은이의 방황은 처용포에서의 경험, 곧 두 어른과의 대화를 통해 서서히 희석되기에 이른다.

  그곳에서 평생 고래잡이의 삶을 살아온 장포수 할아버지와 식당집을 운영하는 왕고래집 할머니를 만난다. 장포수 할아버지로부터 '바다'라는 절대적 공간과 '고래'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의 깊이를 배우게 된다. 왕고래집 할머니의 한글 공부를 통해서도 삶의 원리를 알아가게 된다. 또한 영호언니가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니은이는 점차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니은이는 깨닫는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실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통과의례라는 것을. 이 소중한 깨달음의 연장에서 엄마가 강아지를 잃고 이십년년간 울지 못했던 것, 왕고래집 할머니가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돌보는 것, 장포수 할아버지가 뒷산에 나무를 심는 것까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얘기한다. 상실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떠나보내면서 '기억'할 때에 비로소 온전한 상실이 완성된다는 것을. 또한 바로 그것이 좋은 떠나보냄의 공식이라는 것을. 시간은 흘러간다. 인간 의지의 바깥영역에 존재하는 시간의 일관된 흐름은 항상 동일한 속도로 흐르며 묵묵히 흐른다. 이 도도한 시간의 일차원에서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소설 속에서 니은이가 상실의 아픔을 다듬고 그것을 기억으로 치환시켜 가슴으로 밀어넣는 모습이 압권이다. 니은이의 가슴속에 봉인된 '그' 기억은 훗날 또 다른 인간을 성장시키는 밀알이 될 것이리라.

  앞서 언급했지만 아름다운 성장소설 한 권은 비단 아이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깊이있는 사유와 소중한 깨달음을 안겨준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라고 상실의 아픔은 계속된다. 떠나보내는 것, 이해하는 것, 그리고 기억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 조합을 메타포하여 한 소녀의 성장기로 아름답게 그려낸 작가 김형경의 문장력이 인상깊다. 한마디로, 참 따뜻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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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8-07-0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날려요~^^

다윗 2008-07-1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이 쌓아주시는 '땡스투', 너무 감사드립니다. ^^
 
풍선 + 작별 세트 - 전2권 - 정이현 산문집
정이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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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소설가를 문학적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근원적 존재성의 시각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천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작품 속의 필력과 세계관만으로는 한 명의 소설가를 실재적이고 입체적으로 아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드리블과 패스만으로 펠레의 인간성을 알 수 없고, 가창력만으로 이승철의 삶의 소신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소설은 소설가의 필력과 사유와 의지로 창조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소설 속에서 작가에 대한 다양한 '객관'을 얻어낸다는 것은 제법 힘든 일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작가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나마 간접적으로 작가에 대한 탐구를 객관화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픽션'이 아닌 '논픽션'의 글로 작가를 읽는 것이다. 소설이 아닌 산문이나 수필로 만나게 되면 소설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소설가를 탐구하는 데 보다 객관적이 된다. 소설의 서사는 작가적 상상력이 기반하지만, 수필과 산문은 작가의 진실된 고백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내가 매번 소설가가 쓴 수필집을 만날 때마다 흥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1C가 낳은 한국문학의 특별한 아이콘 정이현의 첫 산문집 『작별』은 소설가 정이현을 보다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텍스트다. 작년에 출간된 정이현의 산문은 '작별'과 '풍선'의 제목으로 가름되어 두 권으로 구성되었다. 두 권 중에서 내가 『작별』을 먼저 손에 든 이유는 책의 부제 때문이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는 인상적인 부제는 즉각 내 마음속에 꽂혀 책의 선택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바로 그렇게 정이현의 산문 『작별』은 내 손에 들어왔다.

  어떤 책은 덮고 난 후에 더 가까이 사귀게 된다. 작별하고 나서야 한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책의 서두 <작가의 말>에서 정이현은 위의 문장으로 산문을 시작한다. 책 제목 '작별'이 갖는 실질적 의미와 작가의 책에 대한 사색, 그리고 이 책의 골격까지 정갈하게 메타포한 문장이다. 책 속에는 작가의 일상적 고백과 주관, 다양한 책을 읽은 후의 느낌과 단상, 소설가로서의 고독과 번민이 매우 잘 담겨 있다. 수많은 '당신'을 만난 것도 책이었고 수많은 '당신'을 떠나보낸 것도 책이었다, 라고 말하는 작가 정이현. 과거 읽었던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독서 세계와 주관적 단상을 늘어놓는 진솔한 그녀의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보다 '객관적'으로 작가 정이현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책 속의 「가득하게」 카테고리에 있는 다섯 편의 산문이 자못 인상적이다. 작가는 다섯 편의 산문 속에서 소설가로서의 책읽기에 대한 열정과 자존감, 문자문화의 본질적 가치와 위대함, 문학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 문단의 아픈 현실 등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했다. 대형서점에서 점점 그 차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문학과 외국문학의 지리적 점령비율의 현실 앞에서 독자에게 '응원'을 주문하는 소설가 정이현의 목소리가 처연하다. 그리고 그 처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나 또한 가슴이 일렁인다.

  잘 다듬어지지 않는 산문집은 '산만집'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이현은 산만한 글의 구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앞부분의 일기와 같은 몇몇 글을 제외하고는 전부 책을 읽은 후의 리뷰의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어 산문집의 전체적 통일성을 보증한다. 문학을 위시하여 다양한 방면의 책을 두루 읽고, 그 읽음 속에서 자신과 사회를 뒤틀고 해석하는 작가의 글담이 흥미있다. 비단 문학과 사랑뿐만 아니라 소외된 여성성과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신랄한 작가의 논지가 담겨있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균형적이다.

  매번 확인하지만 정이현은 글을 참 잘쓰는 작가다. 문학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고민에 대한, 사회적 오류와 모순에 대한 정이현의 솔직하고 담백한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산문집의 존재성은 충분하다. 글 잘쓰는 한 인기 여류작가의 타자 문학으로 관통한 사랑과 문학과 사회에 대한 '논설'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한 권의 산문집을 살포시 권한다. 그리고 한 세트로 함께 구성된 다른 산문 『풍선』으로 손을 옮긴다.



『풍선』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영상문화가 문자문화의 결락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오래전에 조각났다. 영양가 없는 고만고만한 이야기로 매주 반복되는 연속극이나 시청자의 말초적 신경을 건드리기 분주한 쇼·오락프로그램의 부박한 수준은 심히 넌덜머리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즐겨보는 TV프로가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금년에 신설된 M본부의 <명랑 히어로>를 매우 즐겨본다. 소위 '막말'로 대변되는 리얼리티 쇼프로의 골격을 답습하곤 있지만, 방송의 구성과 취지가 마음에 들어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편이다. 점차 희망과 행복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명랑'한 사회를 꿈꾸며 수다를 떠는 그들네의 '막말'이 내게는 그닥 밉게 다가오지 않는다.

  정이현의 산문을 연이어 만나고 있다. 『작별』과 함께 한 세트로 구성된 산문집 『풍선』의 부제 또한 인상적이다.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 라는 부제는 '명랑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책의 첫장을 넘기게 한다. 하지만 부제를 통해 예견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라는 부제의 『작별』보다는 한결 '명랑한'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는 것을.

  『작별』이 타인의 문학을 통해 정이현이 관조한 삶과 사랑과 문학의 네러티브를 얘기한 산문이라면, 『풍선』은 영화와 음악, 드라마 등의 문화 미디어를 통해 사유하고 또 사유한 정이현의 외침이다. 정이현표 아포리즘은 영화와 드라마 속 주제와 인물을 통해 '사랑'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선 동시대 코드를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들로 우리사회의 모순된 문화와 습속을 꼬집는다. 역시나 톡톡 튀는 새콤발랄한 그녀의 활자는 가벼움이 아닌 '가벼움'으로 독자의 부담을 희석시킨다.

  같은 리뷰라도, 동일한 주제의 칼럼이라도, 소설가가 쓰면 다르다. 단언컨대, 분명히 다르다. 필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소설이 아닌 글에서 빛나는 소설가의 특별함은 바로 '관찰력'이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특별한 관찰력을 갖고 있다. 정이현이 리뷰한 영화의 대부분은 특출날 것 없는 평범한 대중영화들이다. 별 것 없이 보였던 영화 속 인물과 대사로부터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것들을 콕 찝어서 활자화의 재료로 삼는 세심한 관찰력은 그녀가 왜 소설가로 존재하는지를 은근하게 표상한다. <섹스 & 더 시티>에서 뉴요커의 멋진 삶이라는 피상성보다 '관계'라는 핵심 키워드를, 영화시상식에서 배우가 아닌 한 인간의 맨 얼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원작'과 '각색'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일 수밖에 없음을 관찰해내는 그녀는, 역시나 '소설가'다.

  정이현의 글은 소위 '공감'이라는 코드로 독자와 쉽게 호흡한다. 책 속에서 가장 공감이 된 부분은 「별, 별, 별」이라는 제목의 텍스트다. 그녀는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은 언제부터인가 지상에 내려와 '점수'가 되었다며 한탄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글로써 세상의 수많은 프로·아마추어 비평가들을 일침한다.

제발 쉽게 가치판단하지 마시라. 당신의 판단 기준은 당신 눈에만 옳을지도 모른다. 계몽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으니, 부디 남을 함부로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 마시라. 텍스트 생산자는 당신의 '권위 있는' 한마디에 제 모자람을 깨닫고 회개하는 어린 양이 아니다. 문화 텍스트에는 정답과 중심이 없다. 그러니 무언가를 '읽는다'는 행위는 어차피 오독을 한다는 뜻이다. 자기 취향을 이념화시키고 절대화시키는 비평이 아니라 '내 오독의 가능성'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비평, 텍스트의 쉼표와 말줄임표, 숨결을 섬세하게 읽어주는 비평을 기다린다.   <p. 203>

  이런 글을 쓰는 소설가를 내 어찌 멀리할 수 있단 말인가. '싫다'와 '나쁘다'의 정의를 정확하게 가름하고 다양성 침범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우리사회의 건전한 비평문화를 기대하는 소설가 정이현의 목소리에 나는 오롯이 동의할 수밖에 없다. 쉼표와 말줄임표, 숨결조차도 하나의 문장으로 읽어내고 음미하면서 타자의 창조된 텍스트에 대한 겸손한 의무를 전제할 줄 아는 독자. 바로 이러한 책읽기와 비평의 고차원적 기준을 소설가 정이현을 통해 새삼 학습한다.

  정이현의 첫 산문집 『작별』과 『풍선』은 소설가 이전의 인간 정이현의 맨얼굴이 많이 배어 있다. 무겁지 않고,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무엇보다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소설 쓰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쓰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라고 고백하는 소설가 정이현. 그녀의 '외로움'과 '명랑'은 산문의 활자 속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잘 드러나 있다.

  그녀의 문장을 조금 수정하면 두 권의 산문집을 읽은 내 느낌이 잘 정리된다. 소설 읽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읽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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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
정이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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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영상문화가 문자문화의 결락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오래전에 조각났다. 영양가 없는 고만고만한 이야기로 매주 반복되는 연속극이나 시청자의 말초적 신경을 건드리기 분주한 쇼·오락프로그램의 부박한 수준은 심히 넌덜머리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즐겨보는 TV프로가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금년에 신설된 M본부의 <명랑 히어로>를 매우 즐겨본다. 소위 '막말'로 대변되는 리얼리티 쇼프로의 골격을 답습하곤 있지만, 방송의 구성과 취지가 마음에 들어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편이다. 점차 희망과 행복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명랑'한 사회를 꿈꾸며 수다를 떠는 그들네의 '막말'이 내게는 그닥 밉게 다가오지 않는다.

  정이현의 산문을 연이어 만나고 있다. 『작별』과 함께 한 세트로 구성된 산문집 『풍선』의 부제 또한 인상적이다.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 라는 부제는 '명랑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책의 첫장을 넘기게 한다. 하지만 부제를 통해 예견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라는 부제의 『작별』보다는 한결 '명랑한'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는 것을.

  『작별』이 타인의 문학을 통해 정이현이 관조한 삶과 사랑과 문학의 네러티브를 얘기한 산문이라면, 『풍선』은 영화와 음악, 드라마 등의 문화 미디어를 통해 사유하고 또 사유한 정이현의 외침이다. 정이현표 아포리즘은 영화와 드라마 속 주제와 인물을 통해 '사랑'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선 동시대 코드를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들로 우리사회의 모순된 문화와 습속을 꼬집는다. 역시나 톡톡 튀는 새콤발랄한 그녀의 활자는 가벼움이 아닌 '가벼움'으로 독자의 부담을 희석시킨다.

  같은 리뷰라도, 동일한 주제의 칼럼이라도, 소설가가 쓰면 다르다. 단언컨대, 분명히 다르다. 필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소설이 아닌 글에서 빛나는 소설가의 특별함은 바로 '관찰력'이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특별한 관찰력을 갖고 있다. 정이현이 리뷰한 영화의 대부분은 특출날 것 없는 평범한 대중영화들이다. 별 것 없이 보였던 영화 속 인물과 대사로부터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것들을 콕 찝어서 활자화의 재료로 삼는 세심한 관찰력은 그녀가 왜 소설가로 존재하는지를 은근하게 표상한다. <섹스 & 더 시티>에서 뉴요커의 멋진 삶이라는 피상성보다 '관계'라는 핵심 키워드를, 영화시상식에서 배우가 아닌 한 인간의 맨 얼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원작'과 '각색'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일 수밖에 없음을 관찰해내는 그녀는, 역시나 '소설가'다.

  정이현의 글은 소위 '공감'이라는 코드로 독자와 쉽게 호흡한다. 책 속에서 가장 공감이 된 부분은 「별, 별, 별」이라는 제목의 텍스트다. 그녀는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은 언제부터인가 지상에 내려와 '점수'가 되었다며 한탄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글로써 세상의 수많은 프로·아마추어 비평가들을 일침한다.

제발 쉽게 가치판단하지 마시라. 당신의 판단 기준은 당신 눈에만 옳을지도 모른다. 계몽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으니, 부디 남을 함부로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 마시라. 텍스트 생산자는 당신의 '권위 있는' 한마디에 제 모자람을 깨닫고 회개하는 어린 양이 아니다. 문화 텍스트에는 정답과 중심이 없다. 그러니 무언가를 '읽는다'는 행위는 어차피 오독을 한다는 뜻이다. 자기 취향을 이념화시키고 절대화시키는 비평이 아니라 '내 오독의 가능성'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비평, 텍스트의 쉼표와 말줄임표, 숨결을 섬세하게 읽어주는 비평을 기다린다.   <p. 203>

  이런 글을 쓰는 소설가를 내 어찌 멀리할 수 있단 말인가. '싫다'와 '나쁘다'의 정의를 정확하게 가름하고 다양성 침범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우리사회의 건전한 비평문화를 기대하는 소설가 정이현의 목소리에 나는 오롯이 동의할 수밖에 없다. 쉼표와 말줄임표, 숨결조차도 하나의 문장으로 읽어내고 음미하면서 타자의 창조된 텍스트에 대한 겸손한 의무를 전제할 줄 아는 독자. 바로 이러한 책읽기와 비평의 고차원적 기준을 소설가 정이현을 통해 새삼 학습한다.

  정이현의 첫 산문집 『작별』과 『풍선』은 소설가 이전의 인간 정이현의 맨얼굴이 많이 배어 있다. 무겁지 않고,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무엇보다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소설 쓰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쓰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라고 고백하는 소설가 정이현. 그녀의 '외로움'과 '명랑'은 산문의 활자 속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잘 드러나 있다.

  그녀의 문장을 조금 수정하면 두 권의 산문집을 읽은 내 느낌이 잘 정리된다. 소설 읽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읽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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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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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정이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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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문학적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근원적 존재성의 시각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천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작품 속의 필력과 세계관만으로는 한 명의 소설가를 실재적이고 입체적으로 아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드리블과 패스만으로 펠레의 인간성을 알 수 없고, 가창력만으로 이승철의 삶의 소신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소설은 소설가의 필력과 사유와 의지로 창조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소설 속에서 작가에 대한 다양한 '객관'을 얻어낸다는 것은 제법 힘든 일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작가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나마 간접적으로 작가에 대한 탐구를 객관화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픽션'이 아닌 '논픽션'의 글로 작가를 읽는 것이다. 소설이 아닌 산문이나 수필로 만나게 되면 소설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소설가를 탐구하는 데 보다 객관적이 된다. 소설의 서사는 작가적 상상력이 기반하지만, 수필과 산문은 작가의 진실된 고백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내가 매번 소설가가 쓴 수필집을 만날 때마다 흥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1C가 낳은 한국문학의 특별한 아이콘 정이현의 첫 산문집 『작별』은 소설가 정이현을 보다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텍스트다. 작년에 출간된 정이현의 산문은 '작별'과 '풍선'의 제목으로 가름되어 두 권으로 구성되었다. 두 권 중에서 내가 『작별』을 먼저 손에 든 이유는 책의 부제 때문이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는 인상적인 부제는 즉각 내 마음속에 꽂혀 책의 선택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바로 그렇게 정이현의 산문 『작별』은 내 손에 들어왔다.

  어떤 책은 덮고 난 후에 더 가까이 사귀게 된다. 작별하고 나서야 한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책의 서두 <작가의 말>에서 정이현은 위의 문장으로 산문을 시작한다. 책 제목 '작별'이 갖는 실질적 의미와 작가의 책에 대한 사색, 그리고 이 책의 골격까지 정갈하게 메타포한 문장이다. 책 속에는 작가의 일상적 고백과 주관, 다양한 책을 읽은 후의 느낌과 단상, 소설가로서의 고독과 번민이 매우 잘 담겨 있다. 수많은 '당신'을 만난 것도 책이었고 수많은 '당신'을 떠나보낸 것도 책이었다, 라고 말하는 작가 정이현. 과거 읽었던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독서 세계와 주관적 단상을 늘어놓는 진솔한 그녀의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보다 '객관적'으로 작가 정이현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책 속의 「가득하게」 카테고리에 있는 다섯 편의 산문이 자못 인상적이다. 작가는 다섯 편의 산문 속에서 소설가로서의 책읽기에 대한 열정과 자존감, 문자문화의 본질적 가치와 위대함, 문학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 문단의 아픈 현실 등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했다. 대형서점에서 점점 그 차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문학과 외국문학의 지리적 점령비율의 현실 앞에서 독자에게 '응원'을 주문하는 소설가 정이현의 목소리가 처연하다. 그리고 그 처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나 또한 가슴이 일렁인다.

  잘 다듬어지지 않는 산문집은 '산만집'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이현은 산만한 글의 구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앞부분의 일기와 같은 몇몇 글을 제외하고는 전부 책을 읽은 후의 리뷰의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어 산문집의 전체적 통일성을 보증한다. 문학을 위시하여 다양한 방면의 책을 두루 읽고, 그 읽음 속에서 자신과 사회를 뒤틀고 해석하는 작가의 글담이 흥미있다. 비단 문학과 사랑뿐만 아니라 소외된 여성성과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신랄한 작가의 논지가 담겨있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균형적이다.

  매번 확인하지만 정이현은 글을 참 잘쓰는 작가다. 문학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고민에 대한, 사회적 오류와 모순에 대한 정이현의 솔직하고 담백한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산문집의 존재성은 충분하다. 글 잘쓰는 한 인기 여류작가의 타자 문학으로 관통한 사랑과 문학과 사회에 대한 '논설'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한 권의 산문집을 살포시 권한다. 그리고 한 세트로 함께 구성된 다른 산문 『풍선』으로 손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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