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 거꾸로 읽는 책 25 거꾸로 읽는 책 25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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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에겐 잊혀지지 않는 부끄러운 추억이 있다. 중학생 때까지 나는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으로 알았고, 정치인 김대중을 공산주의자로 알았다. 당시 내 오류는 철저히 주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연유했다. 당시의 뉴스와 신문은 그리 알렸고, 주변 사람들도 그리 인지했다. 학교에서는 이와 관련된 제대로 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부모님의 인식 또한 다를 게 없었다. 호도된 역사를 인지하고 있던 내 부끄러움은 고등학생을 지나 대학에 와서야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대학 시절 잘못된 역사에 대한 진실의 전복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 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명징히 깨달았다. 역사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불과 몇십년 전의 역사조차 진실되게 인식하지 못하는 터에 수백 년, 아니 수천년 전의 역사는 얼마나 호도되어 우리에게 전해질까 하는 깨달음이 용솟음치곤 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역사의 대부분은 기록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사회와 문명의 변화 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주관적 인식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역사에 대해 '내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객관적 실재로서의 역사를 인지하는 데 있어 매우 소중한 작업이다.

  유시민의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역사에 대한 깊은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객관적 실재로서의 역사와 주관적 인식의 표현으로서의 역사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다. 이런 차원에서 저자는 그 어떤 역사책이든 읽는 이의 '비판'이 반드시 내재되어야 하며 자신의 책 또한 여기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밝힌다.

  저자 유시민은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역사에 대해 꽤 흥미있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크게 여덟 개의 카테고리로 역사에 대한 다양한 주제화를 시도한다. 첫장에서 『삼국사기』가 집필될 당시의 정치적·사상적 배경과 이로써 의도되어진 왜곡된 역사를 지적한다. 사대주의적 관점과 노예 사상을 기반하는 『삼국사기』의 한계와 모순을 비중있게 다룬다. 진실을 떠나서는 생명력을 읽을 수밖에 없는 역사의 성질을 감안할 때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가 김부식이 '그러했으리라고 믿고 싶어했거나 그러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역사'로 씌어진 『삼국사기』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는 꽤 인상적인 논지의 시작이다.

  이어서 불멸의 고전 사마천의 『사기』를 무게감 있게 소개한다. 세계 최초로 기전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역사를 기술한 『사기』의 가치는 자연이나 우주가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상황과 생활상을 서술한 데서 더욱 찬연히 빛난다. 역사를 '기록'이 아닌 '서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더욱이 정치적 모함으로 궁형에 처하는 고통을 이기면서까지 대작을 완성한 역사가 사마천의 기백을 저자는 매우 구체적으로 상찬한다.

  이 책의 강점은 무엇보다 동서양의 역사학을 두루 훑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사마천은 물론이고, '실증적 단계'를 인류문명의 최고 단계로 설정했던 오귀스트 콩트, 변화의 철학을 창안하며 프로이센의 절대주의 체제를 역사 발전의 완성 단계로 인정했던 프리드리히 헤겔, 공산주의 혁명을 '계급 투쟁의 역사'의 종말로 설정했던 카를 마르크스 등 서양 철학자와 역사가들을 비중있게 소개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민중의 독립의지를 일깨운 단재 신채호 선생과 백암 박은식 선생의 민족주의 역사학을 자세히 정리하기도 한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한국의 민족역사학까지 다루고 있어 균형적이다.

  <역사에서의 우연과 필연> 카테고리에서는 매우 흥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면."이라는 통속적 문장을 소개하면서 역사의 작동이 우연적이냐 필연적이냐 하는 담론을 끄집어낸다. 한국 현대사의 찬란한 태양인 '6월 항쟁'의 예를 들어 역사 속에서의 일반화, 특수화, 인과성을 논증한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우·필연 담론은 진지하게 역사를 연구하고 과거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큰 쓸모가 없다고 일갈하기도 한다.

  저자는 진보주의자답게 이 책의 말미를 역사의 진보성으로 마무리짓는다. 역사에서 '심판'과 '진보'는 넓은 의미에서 동의어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고 논지한다. 진보가 없는 역사에서는 오직 변화만이 있을 뿐 심판은 없다고 일갈하는 저자는 현 세대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상규명과 심판의 의무를 후세에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응당 고개가 주억거린다.

  쿠데타로 집권하여 민주헌법을 파괴하고 민중을 대량 학살한 범죄자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기세등등한 삶을 살고 있으며, 과거 군사정부로부터 녹을 먹고 악랄한 짓을 일삼았던 정치인이 아직도 금뺏지를 달고 입법 활동을 하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목도한다면 일그러진 역사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 왜 절실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영국의 역사가 카(E.H.Carr)는 말했다. '기록과 서술로서의 역사'는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대화"이자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이며, 그와 동시에 "과거의 여러 사건과 점차 나타나게 될 미래의 여러 목적 사이의 대화"라는 것을. 카의 이 말은 결국 우리에게 명료한 의무를 제시한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라는 것은 결국 현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보내는 현재의 실재에 대한 신호이며, 이는 결국 우리 세대 자체의 진심과 양심을 내재하는 함의가 담겨 있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미래를 살아갈 후세에게 오직 진실된 역사를 전하기 위해서 수고와 용기를 감내해야 함은 당연한 의무이다.

  지난날의 일그러진 역사를 단호하게 심판하지 못하는 민족의 미래에는 진보도 없다. 서두에 고백한 내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땅의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정직과 양심을 훈육하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역사관의 정립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는 우리 민족이 감내했던 굴곡진 역사를 재차 되돌리는 실수를 막는 근본적 보험이 될 것이다. 현 세대로서 역사에 대한 이러한 의무감을 재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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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아이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사라지는 아이들』은 가정의 파괴로 인한 청소년들의 방황과 번민을 그린 소설이다. 부모의 이혼 후 새아빠로부터 받는 학대와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여 거리에 내앉게 된 소년 링크의 노숙 생활을 처연하게 그리고 있다. 런던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소년의 구걸과 노숙의 삶을 매우 생생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자못 흥미로운 구성을 띠고 있다. 가출하여 홈리스의 삶을 살아가는 링크의 1인칭 시점과 거리의 부랑아를 대상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정신병자 쉘터의 1인칭 시점이 교차되고 반복되면서 서사를 이끌어간다. 만약 이 소설이 링크의 단선적 시점으로만 서사를 풀어갔다면 그리 힘있고 매력적인 소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기와 같은 링크의 이야기와 살인의 작업일지 형식으로 고백하는 쉘터의 이야기를 교차한 것은 서사의 생동감과 긴장감을 더욱 확장시키는 인상적인 구성이다.

  이러한 의도된 구성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노숙과 이를 외면하는 사회적 시선과 대중의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의하는 장치가 된다. 전직 군인이었던 미치광이 살인범 쉘터의 광적인 살인 행위를 범죄자의 시각에서 그려냄으로써 극히 위험한 바깥의 시선에서 청소년의 방황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고백하는 암울함과 위험한 외부에서 바라보는 어두움이 교차되며 만들어내는 서사의 조화는 이 소설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매우 잘 뒷받침하는 힘이 된다. 쉘터가 링크의 친구 게일에 의해 검거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확인하기까지 독자로부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하는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 

  나는 이 소설에 별 다섯 개를 부여했다. 이러한 내 주관은 평소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신념에 대한 내 의지이자 고백이며 꿈이자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철저한 가정예찬론자이며, 결혼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기독교적 환경에서 자란 이유도 이유거니와 무엇보다 인간의 불완전한 유동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서부터 내 신념은 출발한다. 이를 풀이하기 위해서는 꽤나 긴 논설이 필요하다.

  인간은 매우 불완전한 종족이다. 사랑과 믿음, 꿈과 인내 등 인간의 모든 정신적 가치들은 나약한 인간상 앞에서 초라해진다. '결혼'이라는 계약은 좁은 의미로 남과 여가 만나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정의된다. 좁은 의미에서의 결혼은 당사자들의 사랑이 식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 이혼이라는 수단으로 정리하면 그만이다. 사실 작금의 세상에서 이혼은 흠이 아닐 정도로 대중적인 키워드가 되어 있다. 비단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이혼율을 자랑하는 한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혼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계약 철회'의 의미로 수없이 이뤄지고 있다.

  결혼은 넓은 의미로 해석될 때만이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가지는 강력한 힘을 증명할 수 있다. 결혼은, 다시 말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훗날의 세대를 창조하는 일이고, 아가페(agapē)를 실현할 수 있는 성스러운 기회의 장이며, 지구라는 공간의 주인을 다음 바톤자에게 물려주기 위한 고결한 패스 작업이다. 우리의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를 창조하고 우리가 만들고 가꾼 시공간을 물려줌으로써 안정된 미래를 보증키 위한 수고와 열정이 결혼이라는 넓은 의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의 가정을 이룬 남녀가 서로 간의 사랑의 열매로 얻는 다음 세대의 존재와 필요성을 인정할 때만이 결혼 제도의 긍정에 대한 힘은 탄력을 받는다. 실례로 수많은 미래학자와 민족연구가들은 현재의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민족으로 유대인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소수민족 유대인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미국 부의 55%를 차지하고 있고, 각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에게 수여되는 노벨상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고 있으며, 세계의 정치는 물론 경제, 문화, 예술, 의학, 사회 등의 전 영역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 내 900만이 채 되지 않은 이들 민족이 어떻게 미국과 세계를 지배하는 집단으로 서나갈 수 있었을까. 유대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에 대해 한결같은 목소리로 답을 낸다. 바로 유대민족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가정상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자녀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원칙. 이 단순한 원칙이 유대인의 가정교육에 가장 중요한 제 일의 원칙이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대판 싸우는 광경은 전쟁터에서 가장 친한 전우가 바로 옆에서 죽는 공포감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 공포는 하루에 600회 정도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면서 아이의 마음을 비좁게 만든다고 한다. 그렇기에 부모의 싸움이 잦은 집에서 자라는 아이는 마음이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고 크고 다양한 것들을 가슴속에 품지 못하게 된다고 아동심리학자들은 얘기한다. 유대인이 다른 민족에 비해 유난히 위인의 출현이 잦은 이유가 바로 이러한 안정감 있는 가정적 환경에 기반한다는 학자들의 연구는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데 충분하다.

  소위 가정이 파괴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편부모 가정의 증가와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의 세계적 확대로 인한 물질만능주의의 만연은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어둡고 굴곡진 곳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 증산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세대로부터 바톤을 이어 받아 지구를 경작하고 운영해야 할 젊은 세대들의 방황과 요동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가정이 안정될 때 사회는 행복하고 국가는 번영한다고 믿는다. 이 땅의 청소년들은 그 자체로서 고결하고 존귀한 존재이다. 그들이 어떠한 꿈을 갖고, 얼마만큼의 안정감을 누리며, 어느 정도의 농밀함으로 사랑과 관심을 받는가에 따라 지구의 미래는 결정된다. 이러한 사유는 곧바로 우리의 책임과 의무로까지 연장된다. 우리는 윗세대들로부터 넘겨받은 지구를 잘 가꾸고 운영하여 아랫세대에 넘겨줘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우리의 다음 바톤자들이 지구라는 공간을 더욱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결코 녹록지 않은 사랑으로 보듬어야 한다.

  부모가 서로 싸우지 않을 때, 탄탄한 안정감으로 흔들리지 않는 가정이 될 때, 세상에서의 고민과 아픔을 가정 안에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을 때 이 땅의 청소년들은 정신이 건강해지고, 가슴이 확장되며, 작은 천국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미래라면 아무런 걱정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아랫세대의 행복은 곧 우리의 축복이며, 그것은 바로 안정된 가정이라는 전제를 담보할 때만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행복의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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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과 서 - 동양인과 서양인은 왜 사고방식이 다를까 - EBS 다큐멘터리
EBS 동과서 제작팀.김명진 지음 / 예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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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어머니께서 허리가 아파 고생하셨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어머니는 허리와 다리가 동시에 아파서 신경외과를 안방 드나들 듯하셨다. 엑스레이와 CT촬영을 통하여 원인을 분석했고, 의사에 지도에 맞도록 착실하게 물리치료를 받으셨다. 하지만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수술 외에는 답이 없다고 대부분의 여론이 모아졌을 때 누군가의 소개로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셨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몇 번 맞지 않고 어머니의 허리 통증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나는 그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바늘 같이 생긴 얇은 쇠붙이를 사람의 몸에 꼽았다고 해서 어떻게 그리 말끔하게 병이 치료될 수 있는지 의아했다. 침술은 이미 서양 의학에서도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고차원적 의술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의 몸은 전체적으로 기氣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가 얼마나 잘 열려있고 역동하는지에 따라 건강은 판가름 난다는 게 동양 의학의 기본 전제이다. 침술은 이러한 기를 다스리는 의술이며 현재의 서양 의학으로는 풀 수 없는 다양한 병들을 침을 통해 치료하고 있다.

  이러한 동서양 의학의 차이는 근원적인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가름하는 좋은 실례가 된다. 동양은 전체를 중요시하는 반면 서양은 개체를 소중히 여긴다. 동양의 사람과 문화, 습속과 예술은 철저히 '전체'의 관점을 지향한다. 반면 서양은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개체들을 분석화하여 각 사람이나 물체 자체의 존재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러므로 동양에서는 인간이 사회와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함께 일체를 이루려는 집단주의와 물아일체의 정신이, 서양에서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분석하려는 개인주의와 과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예담출판사에서 출간된 『동과 서』는 바로 이러한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흥미있게 소개하는 책이다. EBS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것을 책으로 출간한 것인데, 다양한 실험 사례와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동서양의 본질적 상치를 잘 구분했다. 문화, 습속, 언어, 예술, 인성,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와 각도에서 동서양의 차이점을 증명한다.

  이 책은 독특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제시한 주제에 대한 실험과 테스트를 먼저 소개한 뒤, 이를 풀어서 설명하고, 전문가와 석학들의 인터뷰를 통해 내용을 부언한다. 특히 인터뷰 전문가들을 동서양에 걸쳐 골고루 소개하고 있어 균형적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도판을 통한 다양한 실험을 독자를 피험자로 삼아 실행한다는 점이다. 책 속에 담겨진 많은 테스트를 통과할 때마다 어찌나 정확히 동양인인 내 자신의 선택을 미리 예고하는지 신비스럽다. 저자는 동양은 한국·중국·일본의 동아시아 3국(유교·한자 문화권)을 기본으로 삼았고, 서양은 미국·영국·호주 등을 샘플링했음을 밝혀둔다. 오래전부터 유교와 한자로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했던 동아시아 3국인들의 사고방식이 비슷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독자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 실행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흥미를 배가시킨 점은 이 책의 강점이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존재한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만을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내용은 시종 동서양을 대극적으로 분리할 뿐이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나 작금의 시대에 필요한 문명에 대한 올바른 식견 등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과거와 현재까지의 사실적 정보의 전달에만 그칠 뿐 미래를 내다보며 독자에 요구하는 논설이 없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아쉬운 결핍으로 지적된다.

  한 때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옥시엔탈리즘(occidentalism)에 대한 활기찬 담론 형성이 이뤄졌었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이 펼쳐지는 작금의 시대에서는 동양과 서양에 대한 단선적인 가치 우위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조화'에 있다. 개체 자체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서양의 시각과 각 개체 간의 관계와 그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탐구하는 동양의 관점이 서로 조화와 화합을 이룰 때에 인류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힘있고 지혜로운 문화가 탄생되리라 나는 믿는다. 서양인이나 동양인이나 모두 같은 인간이며, 모든 문화는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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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아 - 참 나를 찾는 진정한 용기
파올라 마스트로콜라 지음, 윤수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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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기독교적 관점으로 서평을 썼음.


오래전 비행기를 처음 탈 때의 경험을 떠올린다. 세상에 태어난 후 가장 먼 거리에서 인간을 바라보게 되었다. 비행기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인간의 모습은 미세한 모래알과 같이 희미하고 작은 존재였다. 나는 생각했다. 비행기에서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데 만약 인류보다 훨씬 뛰어난 과학문명을 갖고 있는 외계가 있다면 그들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지구인들의 아우라는 어떨까. 또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신이 계시다면, 지구라는 자그만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크기가 어떻게 사유되실까. 당시 비행기에서의 내 경험은 인간이 영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우주와 자연 앞에서 극히 미세하고 누추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하면서 인간과 자아를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겸손하게 천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드넓은 우주 속에서 작디 작기만 한 인간의 '크기'는 당연히 겸손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 의무를 안겨준다. 현미경이 아닌 망원경의 시각으로 인간의 존재성을 탐구할 때 깨닫게 되는 이러한 사유는 신 앞에서, 대자연 앞에서, 다른 인간들 앞에서 겸손해야만 하는 근원적 질문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고만고만한 존재들끼리 지구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부디끼며 펼치는 기싸움과 정력 낭비를 바라보고 있는 신의 눈망울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눈물이 고여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어리둥절하면서도 유의미한 질문이며, 한 인간의 일생에서 한 번 이상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는 명제이기도 하다. 지구상 모든 청소년들의 시기에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번민과 고독의 시간을 갖는다. 각 나라마다의 문화와 습속과 교육 환경이 천차만별이라 할지라도 십대의 나이를 관통할 때만이 겪는 의문과 호기심은 인류의 창조적 유전자 속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신의 흔적이다. 나는 어디서 왔고, 도대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인간 스스로의 존재론적 질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유의 실타래를 엉키면서 세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인간은 다른 어떤 종족보다 힘과 권력에 경도된 특징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정치는 이미 인류에게 가장 밀접한 키워드가 되어 있다. 타자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길 원하는 상대적 우월 의식, 다스리고 명령하길 원하는 권력과 권위에 대한 인간의 태생적 호기심, 이기利己를 위해 소원하며 힘쓰는 인간의 보편적 자아상 등은 인간이 힘과 권위에 대해 얼마나 큰 집착을 갖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왜 인간들은 극히 시각적인 부문을 강조하며 살아갈까. 60억 인류는 뭉뚱그려진 객체들이 아니라 각기 하나의 소중한 주체이다. 단 한 존재도 동일한 유사성을 성립하지 못하는 고유함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 창조의 소중한 원리인 다양성의 가치를 배리한다. 눈에 보이는 몇몇 시각적 카테고리 안에서만 특별함의 의미를 부여하고, '다름(different)'과 '틀림(wrong)'의 정의를 혼동하는 인간의 오류와 모순은 인류가 공존함으로써만이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약하게 하는 원흉이 된다.

  과연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미 지구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인간의 무차별한 남용으로 인한 가치 저질화 현상으로 심한 정신적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랑이 아니면서 사랑이라 포장된 거짓 사랑의 범람으로 인간은 번민하고 지구는 쓸쓸하다. 신이 설계한 사랑의 신성적 DNA 구조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자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설계도대로 '행'하는 자는 또 얼마일까. 어쩌면 현생 인류가 겪는 고통의 절반 이상은 지구상의 수많은 사랑의 실타래 속에서 신의 요구하는 수준의 아가페(agapē)의 발현을 실행치 못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유럽 문단과 대중의 사랑을 농밀하게 받고 있는 이탈리아 작가 파울로 마스트로콜라는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우화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아』를 통해 삶과 자아에 대한 통찰을 훈훈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노란 깃털의 오리의 모험을 통해 앞서 언급한 인간의 고독과 사랑, 권력과 명예, 연약함과 결핍 등 삶의 근본적 주제들을 관통한다.

  자신을 품어 주었던 슬리퍼를 엄마로 알고,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는 오리의 모험을 통해 인간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를 시도하는 작가의 맛깔난 필력이 돋보인다. 일관된 대화체 구성과 왕왕 등장하는 무게감 있는 아포리즘이 조화를 이루며 삶과 자아에 대한 따뜻한 문장을 완성시킨다.

  이야기의 말미, 사막의 고통을 인내하며 그곳에서 친구가 되는 두더지를 통한 깨달음으로 자신이 날개가 있음을 인식하고 하늘을 향한 날개짓으로 떠올라 세상을 조망하는 오리의 모습은 자아를 찾는 용기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극히 아름답게 그려낸 명장면이다. 내가 누구인지 명징화되는 것을 거부할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성찰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도출하면서 진정한 자아 찾기의 지혜를 따뜻하게 교훈한다.

  인간으로 살아갈 때 경험하는 수많은 질문과 번민, 인간의 지난한 오류와 모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다양한 역설 등. 이러한 사유를 통해 깨닫고 성찰할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라도 있을 때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증명된다. 유익하고 재미있으며 깊이있고 많은 생각을 유도하는, 참으로 따뜻하면서도 힘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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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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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공식 - 인생을 변화시키는 긍정의 심리학
슈테판 클라인 지음, 김영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어려운 책을 읽었다. 쉽지 않은 내용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부담이자 도전이다. 하지만 마지막장을 넘겼을 때 오는 앎의 크기과 만족의 포만감을 확인할 때면 읽을 때의 부담감은 어느새 산산조각 나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의학, 철학, 심리학, 물리학, 뇌과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이 한 권의 인문서는 책의 첫장을 넘기자마자 과학적인 용어들로 독자를 난사한다. '행복의 공식'이라는 편안하고 부담없는 책제목은 일독한 후의 느낌을 적용해볼 때 내용과는 다소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인문학에서 찾는 행복', ' 과학과 행복의 상관 관계' 정도가 책제목으로 적확하다고 여겨질 만큼 학술적 내용이 즐비하다. 하지만 고통이 큰 만큼 영광도 크다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세상의 속담을 위안 삼아 마지막까지 인내심을 갖고 완독하기에 이른다.

  슈테판 클라인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행복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나이가 들어서도 변화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 노력으로 행복을 지향하는 뇌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매우 다양한 과학적 실험을 소개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뇌의 구조 및 각 기관의 역할, 수많은 인체 호르몬의 종류와 그 기능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책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과학 용어는 '앞이마뇌(전두엽)'와 '도파민'이다. 책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와 책이 전달하는 내용과의 연결적 중요성과는 대개 비례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성경에서 '다윗'이라는 인물명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라는 사실 자체가 신의 구속사역에서 다윗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임을 자연스럽게 입증하듯이 이 책에서 앞이마뇌와 도파민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 또한 인간의 행복을 조정하는 가장 소중한 두 가지 기제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불행은 부르지 않아도 온다. 그러나 행복은 노력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공포나 분노 또는 슬픔은 외부세계의 위험에 대한 답변인 반면, 쾌적한 감정은 우리를 좀더 가치 있는 상태로 유혹하기 위해 자연이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p. 50>

  행복은 결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철저한 노력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강조하는 저자는 "행복에 이르는 길의 비밀은 결단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다"라는 달라이 라마의 명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부연한다.

  간뇌와 뇌하수체의 역할과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호르몬의 방출 기작 등의 지루한 의학적 설명부터 '바람 피우는 이유', '담배 끊기 어려운 까닭' 등의 흥미있는 과학 이야기까지 시종 행복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사회적 담론들을 줄지어 기술한다. 책에 소개된 내용 중에 고개가 주억거리는 흥미있는 두 가지 테마가 있어 소개한다. 그 첫 번째는 <불행으로 이끄는 6가지 착각>이라는 테마로 행복에 대한 잘못된 인식 여섯 가지에 대해 소개한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착각 하나 : 만족을 행복으로 여기다.
사회심리학자 노버트 슈워츠(Norbert Schwarz)의 실험을 통하여 만족하는 것과 행복한 것은 다른 개념이며 이를 동일시하여 착각에 이르는 자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려주고 있다.
착각 둘 : 최고의 순간은 길수록 좋다.
미국 프리스턴 대학의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실험은 "뇌가 입력하는 것은 단지 감각적 느낌의 절정과 그 느낌이 줄어들기 직전의 마지막 몇 분일 뿐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입증한다.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마지막 인상이므로 뇌는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꽤나 들뜬 파티에서 만약 가장 즐거운 순간에 집에 가겠다고 일어선다면 당신은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예로써 설명한다.
착각 셋 : 최악의 상황은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
비관적인 기대는 우리의 삶을 기억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뜨린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사회심리학자인 빅토리아 메드체크(Victoria Medcec)와 앨런 파두치(Allen Parducci)의 관찰과 이론을 통하여 이를 확인시킨다.
착각 넷 : 행복에는 어느 정도의 기준이 있다.
"그저 행복하기만 원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보다 더 행복한 상태로 상상하기 때문이다."라는 철학자 몽테뉴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는 사람은 지는 사람이라고 역설한다.
착각 다섯 : 질투는 당연한 감정이다.
"난쟁이는 언제 기뻐하는가. 자기보다 더 큰 혹을 달고 있는 다른 난쟁이를 보았을 때."라는 동유럽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속담을 인용하여 인간 안에 깊숙이 스며있는 질투의 감정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러한 만족은 지속되지 못하며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질투하였고,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질투하였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마도 헤라클레스를 질투하였을 것이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를 말이다."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더욱이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인 에펙테토스(Epiktetos)의 악담을 예로 소개하며 질투라는 감정이 당연한 감정이라는 공식을 차단하는 논지를 펼친다.
착각 여섯 : 사회적 성공이 행복을 보장한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을 위시한 많은 나라들에서 발표된 논문 150여편은 한결같이 동일한 결과에 다다른다고 말한다. 돈은 만족을 가져다주지만 그 효과는 아주 미미하다는 것이다. 월급 액수가 몇십만원 또는 몇백만원 더 올라간다는 것은 일반 샴페인과 그해 최고의 샴페인을 마시는 것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다시 말해서 그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위와 같이 여섯 가지 행복에 대한 착각을 언급한 뒤 이에 대한 탈출구 두 가지를 연이어 소개한다. <다른 사람을 모델로 삼지 말라>와 <행복 일기 작성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선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본인 스스로 알아내야 하며 인생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지점에서 출발해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님을 설파하면서 이 테마를 마무리한다.

 
두 번째 테마는 <심리적 만족을 위한 마법의 삼각형>이다. 저자는 각 나라의 행복지수를 1인당 소득(구매력평가환율 기준)을 기준으로 개발도상국, 선진국으로 구분하여 도표화한다. 돈과 행복 사이의 아이러니, 미국 펜실베니아주 동쪽의 작은 도시 로제토시의 발전 과정, 경쟁보다는 연대의 중요성, '나-주식회사'보다 공동체 인식의 중요성, 신뢰에 기반을 둔 시민의식, 실업이 가져오는 무기력, 자기결정의 축복, 민주주의의 강점 등 다양한 소주제를 통하여 삶에 대한 심리적 만족을 이루는 마법의 삼각형을 설명한다. 정리하자면 '시민의식', '사회적 균형',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 이 세 가지가 한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적 만족감을 이루는 마법의 삼각형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테마 외에도 행복에 대한 소중한 지혜의 양식이 많이 담겨 있다. 처음 책장을 넘길 때 뇌의학 참고서가 아닐까 할 정도로 전문적인 뇌지식이 소개되다가 호르몬의 종류와 역할로까지 설명이 이어진다.  대입 수험생에게 과학 과외를 시키듯 호르몬 이야기로 일관하다가 다양한 동물적 실험을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고대 철학자들이 주장한 명언에 반기를 들기도 하며, 책의 말미에는 정치학과 사회학까지 망라하고 있다. 이 책은 '행복의 공식'을 설명하기 위해, 엄밀히 말하면 '입증'하기 위해 뇌의학에서부터 사회학까지 이르는 인문학 전 분야를 두루 경유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중국인들이 100년을 기다렸다는 베이징올림픽이 개막했다. 웅장한 개막식과 화려한 성화 점화보다 더욱 내 관심을 끄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수단 입장 장면이었다. 두 시간이 넘게 204개국에 달하는 각국의 선수단이 입장하는 장면을 보면서 지구상에 정말 많은 나라가 있고 각기 다양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204개국 중에서 단연 흥미있게 다가온 나라가 있었는데, 남태평양의 자그만 군도 바누아투 공화국이었다. 30만이 되지 않는 인구와 1인당 GDP가 고작 1500달러밖에 되지 않는 열대성 기후의 이 자그만 최빈국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고 한다. 덥고, 조그맣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바누아투 공화국의 국민들은 왜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는 걸까. 왜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들일까. 그 이유는 행복의 본질이 외연이 아닌 내포에 존재하고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적 가치 위에 있는 행복이라는 소중한 비밀을 천착키 위해 『행복의 공식』은 꼭 필요한 책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내용 자체가 전문성이 많아 쉽게 읽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초반부의 과외 수준에 이르는 의학 참고서와 같은 지난한 터널을 통과할 수만 있다면 중후반부터 이어지는 달짝지근한 행복학 개론과 조우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초중반의 지루한 의학 담론이 전혀 필요없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철저한 과학적 실례와 논리적 입증을 토대로 구성된 책이기 때문에 앞부분의 쓴맛과 뒷부분의 단맛을 균형있게 섭취해야 이 책이 선사하는 영양분을 제대로 소화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는이의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밋밋한 정보의 전달밖에는 되지 못한다. 이에 대한 부담을 느낀 탓인지 저자는 행복을 찾아나서는 길에서 가장 중요한 연습은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임을 책의 말머리에 강조해놓는다. 굉장히 유의미한 문장이다. 지구상에는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따라서 행복에 이르는 길 역시 60억 개가 된다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행복의 공식을 풀어가는 가장 중요한 본질을 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행복에 이르는 공식은 바로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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