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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의 사전적인 정의는 '책 읽기'이다. 그렇다면 '왜 읽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접근으로 독서의 정의를 재론한다면 어떠한 해석이 가능할까. 이는 개인마다의 독서 성향과 가치관, 철학과 우주관이 모두 다르기때문에 천차만별의 다양한 문장의 완성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정의는?
독서는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책을 통하여 작가를 만나고, 작가가 만난 인물을 만나며, 작가가 가공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불특정다수 생면부지의 인물을 만나는 과정이 독서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며, 이러한 독서의 역할은 그 정의로까지 대체된다. 독서라는 작업을 통하여 전개되는 많은 인간 군상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것을 통한 다양한 우주의 탐구, 더 나아가 그런 탐구를 통한 자아의 재발견은 독서가 얼마나 고차원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더욱이 문학이라는 장르는 인간에 대한 농밀한 공복감을 갖고 있다.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을 탐구하며 재조명하고 천착한다. 독자는 문학을 통하여 나를 보며, 너를 보기도 하고, 우리를 보기도 하면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문학을 위시한 모든 활자들의 집합체는 종국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감에 대한 성찰과 탐구로 귀결된다는 것이 내 독서관이며 소신이다. 그렇기에 내 미천한 독서는 언제나 '인간'과 맞닿아 있다.
꽤 매력적인 인간을 만났다.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를 통하여 '허삼관'이라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하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주인공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이야기이다. 피를 판다는 설정 자체가 기묘하지만, 작가 위화는 이 작품에서 한 남자의 희극과 비극의 합일된 서사를 통하여 모순과 오류로 점철된 중국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소설의 초중반은 자신의 장남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흥분한 허삼관의 분노와 조악한 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 아들 중에서 장남 일락이만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님이 밝혀진 이후, 소설의 초중반은 아버지 삼관과 장남 일락의 계부자繼父子간의 첨예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일락의 친아버지 하소용의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삼관과 일락 사이의 깊은 정情은 그간의 오해와 반목을 산산히 부서뜨리며 부자간의 화해와 사랑을 완성시킨다.
소설속에서 '피'는 인간의 생명을 포함한 매우 소중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한 번 피를 팔면 35원을 받는 최고의 부가가치 장사지만, 그 내면에는 그늘지고 어두운 한 가난한 평민의 번민이 내포되어 있다. 허삼관 가족에게 허삼관의 피는 어려울 때마다 고비를 넘어가게 하는 돌파구요, 돈이요, 힘이요, 하나님이다. 피를 팔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들네의 암울한 현재상은 읽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할 만큼 연민스럽다.
허삼관은 꽤나 인상깊은 인물이다. 허삼관에게 '매혈賣血'은 매우 소중한 작업이다. 소설은 허삼관의 매혈을 통하여 새로운 서사의 명멸明滅을 주도한다. 일락이가 방 철장의 아들 머리를 박살냈을 때에 피를 팔아 위기를 모면하고, 식구들이 57일간 죽을 마실 정도로 가난에 굶주렸을 때에 피를 팔아 배부른 음식을 먹여준다. 더욱이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서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아프게 되었을 때에 상해까지의 먼 여정 가운데 목숨을 건 반복된 매혈 장면은, 한 가족의 아버지로서의 웅숭깊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지극히 애절하면서도 감동어린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허삼관은 '양심'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장남 일락이의 친아버지인 하소용의 죽음 앞에서 개인적인 사심과 분노를 억제하고 일락에게 양심있는 행동을 요구한다. 하소용이 자신과 가족에게 안겨준 한과 고통의 과거적인 무게감을 극복하고 한 사람의 생명으로서, 일락이의 친아버지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며 양심있는 자의 행동을 역설한다. 비록 일락이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었고, 누구보다 증오했던 일락의 친아버지 하승용 앞에서라 할지라도 결국 허삼관은 양심있는 아버지로서, 그리고 용기있는 사나이로서의 기백을 보여준다.
문화대혁명 당시 아내 허옥란의 과거(하소용과의 동침)가 빌미가 되어 가족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세 아들의 매서운 목소리가 어머니를 질타했을 때에도 허삼관은 자신과 임분방과의 과거를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아내를 보듬어준다. 비겁하지 않고 용기있고 양심을 강조하는,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강했던 허삼관이라는 인물에 나는 적잖이 경도되었다.
이야기는 희극으로 종결된다. 평생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남과 가족을 위해 피를 팔 수밖에 없었던 허삼관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고자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세월이 지나 자신의 피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늙은 피가 되었다는 자괴에 빠지며 격정의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마지막 허삼관의 서글픈 눈물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평생을 되돌아보는 과거의 눈물이자, 현재적 삶의 허탈을 목도하는 현재의 눈물을 동시에 아우르는 한恨의 눈물이리라.
『허삼관 매혈기』는 희비극이다. 소설은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교차交叉가 아닌 합일合一이다. 다시 말해서 비극의 문장이 결코 슬프지만은 않고, 희극의 문장이 결코 기쁘지만은 않은 아이러니한 문장이라는 것이다. 결코 어렵지 않은 단어들의 조합 속에서 '희喜'와 '비悲'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위화의 문장에 나는 빨려들었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슬픔과 기쁨을, 가벼움과 무거움을, 공감과 비공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위화리즘'은 앞으로 그의 활자들을 거듭 만날 수밖에 없게 하는 기대감과 의무감을 안겨주었다.
역시나 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이라는 것이 재증명되었다. 허삼관이라는 아이러니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을 통하여 나는 조국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곱씹었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묵상했으며, 가족의 의미와 책임감, 더 나아가 나 자신까지 사유하게 되었다.
언제나 독서를 통하여 새로운 인간상을 만난다는 것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허삼관 매혈기』에 내가 선사한 별점 4개 반 중에서 허삼관의 몫은 4개 그 이상이다. 위화가 만들어낸 허삼관이라는 인물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내 자신의 독서철학을 반추한다. 독서는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Thanks to Veron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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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