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없음.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소설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처음 만났다. 두 여인의 기구한 삶을 통해 관통한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를 평범한 활자로 그려낸 호세이니의 작업에 나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감동을 선사받았었다.  

  호세이니는 평범한 문장의 연속으로 독자를 부담없이 인도한다. 하지만 두꺼운 책의 막장을 덮은 후, 범상한 것처럼 보였던 활자들이 재조합되면서 장난이 아닌 감동을 발현시킨다. 그리고 한동안 독자를 가만히 <정지>하게끔 만든다.  

  한 작가의 작품을 현재에서 과거로 역행하여 만나는 것은 굉장히 흥미있는 일이다. 나는 그 흥미로움이 주는 달콤함을 예찬한다. 개인적으로 문학에 늦게 손을 댄 이유도 이유거니와, 작가의 존재성을 탐구하는 데 그만큼 객관화할 수 있는 방법도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두 권의 작품을 발표한 호세이니에 대해 시간의 선후를 언급한다는 것이 다소 우습지만 그의 처녀작 『연을 쫓는 아이』는 바로 이러한 내 독특한 독서방식에 의해 만나게 된 작품이다. 그리고 기대했던 만큼 나를 감동시켰고, 기대했던 이상으로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연을 쫓는 아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각기 주인과 하인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 하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두 아이의 우정, 한 사건으로 인해 변질되며 아파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 긴 세월이 지나 회복되는 양심과 속죄 등의 이야기를 호세이니는 장장 500페이지가 넘는 장대한 스케일의 서사로 완성시킨다. 빠르게 읽히면서도 전혀 가볍지 않은 이 거대한 드라마는 인간의 비열함과 악함, 이에 대한 상처와 아픔, 이를 회복하기 위한 양심과 용기의 네러티브를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니파 이슬람교도 파쉬툰인으로 태어난 아미르. 반면 억압받는 소수 시아파 이슬람교도 하자라인으로 태어난 하산. 둘의 태동은 주인과 하인으로 구분되며 아프가니스탄 인종문제의 전형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나누며 자라나는 아미르와 하산. 더욱이 둘다 엄마의 존재를 모르는 동질성을 공유한다. 항상 동일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성장하기에 가장 먼저 입 밖으로 내보내는 단어는 상대방의 이름 '아미르'와 '하산'이다. 이런 둘 사이의 농밀한 관계는 1975년 연날리기 대회가 있던 겨울 어느 날, 하산에게 벌어지는 참혹한 광경을 아미르가 목도하면서 급반전된다.  

  이후 아미르는 하산 가족에게 누명을 씌워 자신의 집에서 내쫓는다. 이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아미르와 아버지 바바. 그곳에서 아미르는 첫 눈에 반한 여인 소라야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평생을 흠모하며 동경했던 바바의 죽음. 오랜 기간 동안 평온하게 흘러가는 미국 생활. 그리고 어느 날 바바의 평생지기 친구였던 라임 칸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이 한 통의 전화는 아미르 자신의 트라우마인 1975년 겨울의 일을 현실의 시공간으로 불러들이며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만들어낸다. 아프간에 가서 만나게 되는 생면부지의 어린 아이 소랍. 그리고 알게 되는 진실들.  

  아미르가 1975년의 겨울에 경험한 고통은 그의 양심을 계속해서 두드리며 삶을 옥죈다. 사실 아미르가 겪은 고통은 세상 어느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성질의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알지 못했고, 용기가 없었고, 지나친 이기심이 있었기에 비겁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삶의 편린들. 어쩌면 호세이니가 그린 아미르의 고통과 상처는 우리네 과거와 현재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했고, 존재하는 삶의 단면일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었을,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바로 그런 상처와 아픔들 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고통이 그저 고통 자체로만 끝난다면 인생의 나침반은 결코 행복을 가리킬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성장하는 법이다. 아픈 만큼 성숙하고, 힘든 만큼 진보하며, 희생한 만큼 승리한다. 이는 명징한 삶의 원리다. 그것이 육체적 고단함이든, 정신적인 아픔이든, 양심의 고뇌든, 그 어떤 고통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훗날의 영광을 보증하는 힘이 된다. 아미르가 자신의 아픈 과거를 비겁하게 묻어두지 않고, 용기와 양심으로 맞서 싸우며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승리하는 인생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교훈받게 된다. 

  『연을 쫓는 아이』는 분명 성장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 주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차원의 가슴 뭉클함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것은 이야기 속에 투영되어 있는 작가 자신의 내밀한 눈물을 인지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호세이니는 고국 아프가니스탄에 내재된 사회적 인종적 오류와 모순을 극도의 절제된 표현으로 소설 배경 곳곳에 배치한다. 있는 그대로의 굴곡진 역사와 사회적 변화, 토종 음식과 아프간 민중들의 일상 등이 소설의 배경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조국 아프가니스탄을 동경하며 바라보고 있는 작가 호세이니의 또 다른 차원의 아픔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한 남자의 성장통이라는 기본적 스토리를 조국의 현실에 대한 작가 자신의 눈물과 가슴으로 내밀하게 녹여놓은 위대한 서사시리라. 

  호세이니 소설의 특징을 새삼 인식한다. 그의 소설은 그다지 대단한 문장들을 열거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평범한 활자로 조합된 그의 서사는 얼핏 보면 뛰어난 가독성만을 제공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야 비로소 호세이니의 진면목은 드러난다. 왜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할 수밖에 없는지를 말이다.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 나는 한동안 멍하니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미르가 소랍의 작은 미소를 얻기 위해 떨어지는 연을 쫓아서 달려가는 장면은 소설의 모든 서사를 한 순간으로 통합하면서 내 가슴속에 아로새겨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존재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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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8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8-04-2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내생에 최고의 축복 3장16절
맥스 루케이도 지음 / 두란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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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했다. 9일 저녁 한국의 모든 미디어와 대중들은 한민족 최초로 우주를 향하는 젊은 여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예정된 시각에 발사된 우주선은 90분에 한 번씩, 총 33차례 지구를 돌며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도킹하게 된다. 초속 7.4Km로 움직이는 ISS와의 성공적인 도킹을 위해 한국의 우주인은 가슴을 설레이며 우주로 향하고 있다. 지구 지면 350Km 상공에 진입하기 위한 인류의 이 작은 진보를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과 많은 사람들의 노고, 그리고 한국인들의 간절한 열망과 소망이 지불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광경을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지실까. 태양보다 훨씬 큰 별 1,000억 개 이상과 태양계보다 거대한 은하계를 10억 개 이상을 창조하신, 인간의 두뇌로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의 우주를 완성하신 창조주 하나님. 과연 당신께서 지구 대기권을 살짝 벗어난 인류의 작은 도약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가지실지 제법 궁금해진다.  

  하나님의 스케일은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계에 오롯이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유독 웅숭깊게 빛나는 테마가 있는데, 바로 신의 사랑 아가페(agapē)다. 하나님의 무한한 창조성과 차원을 논할 수 없는 고결한 신성은 결국 아가페라는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통해 더욱 명징하게 완성된다. 성경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한 불변 진리의 러브 스토리다. 하나님의 거대하고 숭고한 사랑의 찬란함을 활자로 승화시킨 성경은 신약성서의 어느 한 구절에 이르러 그 모든 내용을 축약시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개역개정> 

  복음적인 영성과 문학적 감성의 최고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3:16 - 내 생애 최고의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적 본질을 얘기한다. 세상 모든 기독교인들이 의무감으로 암송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문장 속에서 루케이도는 아름답고 도전되는 글귀들을 추출해낸다. 루케이도 특유의 강렬하고 간결한 문장은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 속에 숨어있는 참된 진리를 깔끔하게 수식한다. 

  루케이도는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시는 중에 나온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말씀을 사분화하여 네 가지의 타이틀을 뽑아낸다. 추출된 네 가지 주제를 통해 요한복음 3장 16절의 웅숭깊은 본질을 해부하고 분석한다. 성경의 인용과 자신의 고백, 주변인의 간증과 예화를 소개하면서 이 말씀이 왜 '내 생애 최고의 축복'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파한다. 

  사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은 성경 전체의 압축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 인간 구원에 대한 그분의 결단, 그분의 놀라운 사랑과 공의 모두를 함의하고 있는 명문장이다. 더욱이 한 문장 안에 완벽한 논리와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어 고백하면 고백할수록 신비로움이 지수적으로 배가되는 말씀이기도 하다. 전 세계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명구절을 암송하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언젠가 비행기 안에서 창 밖의 지면을 목도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좁쌀보다 작은 존재로 바글바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인간은 한없이 작고 초라한 존재라는 것을. 고만고만한 사람들 중에 누가 좀 더 착하고 누가 좀 덜 착한가를 구분하는 세상의 기준이 우습게 느껴졌다. 만약 구원의 잣대가 인간의 불완전한 선(善)에 기반하고 있다면 기독교는 정녕 초라하고 힘없는 종교로 추락하여 몰락했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기준,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인간의 구원이 완성될 수 없다는 참된 진리가 무너지지 않는 한 기독교의 번영은 계속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다. 근본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고초를 당할 수밖에 없는, 죽을 수밖에 없는 당신 자신의 결단에서 신적인 사랑 아가페는 태동했고 발현했다. 그리고 그 팩트를 <믿는> 것만으로 무임승차하는 구원론의 진수를 요한복음 3장 16절은 명징하고 적확하게 드러낸다.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을 해부하여 강렬한 단문장으로 승화시킨 맥스 루케이도의 작업에 새삼 감동을 선사받는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셨고, 당신 자신을 주셨으며, 이를 믿음으로 내가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단순한 진리를 곱씹으며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속으로 안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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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의 쾌변독설
신해철.지승호 지음 / 부엔리브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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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독특한 캐릭터다. '독특하다'라는 형용사엔 많은 함의가 담겨 있다. 88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신해철은 음악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많은 이슈를 던지는 인물이다. 가수로서의 음악적 완성도와 수준 못지않게 외모와 발언, 행동에 이르기까지 언론과 대중은 밀도있게 그를 조명하고 관찰해왔다. 신해철. 과연 그는 한국 가요계에, 아니 한국 사회에 어떤 아이콘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신해철의 쾌변독설』은 지난 이십여 년간 끊임없이 진화해온 신해철이라는 인물의 현재형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는 책이다. 국내 첫 인터뷰 전문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지승호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인간 신해철의 음악과 가족, 철학과 이념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들려준다. 제목의 문구대로 신해철은 'ㅈ'과 'ㅆ' 등 한국인 특유의 욕지거리를 이용하며 독설의 독설을 늘어놓는다.

  지승호와 신해철은 칠일 동안 함께 마주 앉아 깊고 다양한 얘기를 주고 받는다. 리더십, 정치, 대중음악, 종교(기독교), 평론, 가족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에서 술안주가 되는 다양한 담론을 관통한다. 신해철 개인의 가치관과 우주를 아는 일도 흥미롭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오류와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흥미는 배가된다. 

  신해철이 피력한 음악의 정의가 디테일하면서도 이채롭다. 그는 음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음악은 인생 전체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그 한 개인을 포함하고 있는 사회 전체 혹은 세계 전체의 반영이자, 거꾸로 그걸 반사시켜서 세상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라고. 그의 음악에 유독 사회참여적이며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가사가 많은 이유에 대해 깔끔하게 답변해주는 정의가 아닐까 한다. 사랑타령에만 함몰되어 있는 한국 대중가요의 현실을 목도한다면,  외국 청년들이나 뮤지션들에게 '스탠다드'로 통하고 있는 그의 음악적 정의는 글로벌 한국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그대로 방증한다.

  신해철이 주장한 아마추어와 프로에 대한 인식도 자못 솔깃했는데, 평단을 예로 들어 아마추어와 프로의 위치와 역할을 구분화한다. 신해철의 언급대로 아마추어는 아마추어 안에 머물러 있을 때의 미덕이 있다. 또한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눈여겨볼 만한 점도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마추어가 프로인 척하고, 그 능력과 자질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활개를 허용한다. 비단 평단뿐만 아니라 정계, 재계, 문화계, 스포츠계, 연예계 등 폭넓게 뻗어 있는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의 애매한 구분선과 이에 대한 심각한 '아마추어리즘'은 엄연한 팩트이기에 신해철의 지적을 깊이 공감하게 된다.

  신해철의 이념적 성향 또한 확실한 진보임을 알 수 있다. 이미 그는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오픈한 바 있다. 책에서는 체게바라, 러셀, 레닌, 호치민, 마오쩌둥 등의 인물을 트루 리더의 전형으로 소개하며 존경한다고 고백한다. 비서민적 기성에 대한 혁명, 사회 주류적 시각에 대한 비판성 견지를 지지하는 신해철이 보수와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인물임을 책을 통해 명확하게 재인지한다. 

  사실 이러한 인터뷰식의 담론집이 가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에 대한 역설적인 단점도 있다. 저자 자신이 직접 쓴 글은 일방적인 전달이기에 '객관화'를 비보증한다. 하지만 질문자와 답변자가 분리되어 생각과 논지를 끌어내다 보면, 요컨대 질문자(인터뷰어)의 역할과 자질에 따라서 훨씬 더 풍성하고 균형있는 담론화의 구현이 가능하다. 인터뷰어 지승호에게 아쉬웠던 것은 신해철에 대해 지나치게 칭찬코드, 공감코드로만 일관했다는 점이다. 포지티브는 자신이 직접 논지를 펴고, 네거티브는 각종 미디어의 편린을 발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우리시대 전문 인터뷰어라는 지승호의 존재감에 적잖이 실망을 했다. 신해철이라는 아이콘이 갖는 양면성을 인식했다면, 보다 객관적으로 호오의 관점을 분리하여 인터뷰하는 게 더욱 용기있고 균형있는 책의 완성을 이끌지 않았을까 한다.

  사실 신해철 만큼 극렬 팬과 강성 안티로 대극적인 관심을 받는 연예인도 드물다. 어떨 때는 감동적인 음악과 소름 돋는 가사로 팬들의 마음을 빼앗아가고, 어떨 때는 지나친 독설과 괴이한 행동으로 불편함을 전달한다. 아름다운 음악 <날아라 병아리>를 만들고 부른 사람과 대마초, 간통죄의 합법화를 설파하는 사람이 동일인이라면, 그 양면성의 본질을 탐구하는 일은 응당 흥미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신해철의 쾌변독설』은 한국사회의 모순과 오류에 대한 담론화를 통해 인간 신해철이라는 독특한 아이콘의 스펙트럼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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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루케이도의 희망 메시지
맥스 루케이도 지음, 정성묵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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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해 뚜렷한 확립을 이루지 못했었다. 한 분이시면서 삼위로 존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창세 전에 미리 예정을 하셨다면 인간은 신의 꼭두각시란 말인가, 왜 세상에서 주를 믿지 않고 악한 사람들이 번영을 누리도록 내버려 두신단 말인가, 등의 의아한 질문들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몰이해를 분출하곤 했다. 하지만 이후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해서인지, 하나님과 인간은 다른 <차원>의 존재임을 인지하게 되었고 우주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고 움직이는 피조의 세계임을 인정하면서 그 모든 해답이 명징하게 풀리게 되었다. 하나님, 그 분은 우리와 다른 존재인 것이다. 

  복음주의 계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의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그의 신간 『희망 메시지』를 통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과 계획, 희망과 치유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무지와 불신으로 하나님의 투명하고 완벽한 사역을 목도치 못하는 인간들에게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웅숭깊고 고차원적인지를 얘기한다. 총 여덟 가지 파트로 정리하여 전하는 루케이도의 희망과 치유의 이야기는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근본 성품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한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비단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품었을 의문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라는 단호한 답변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분이시다. 인간의 오감으로 탐색할 수 있는 분이 아니며,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라는 창조주를 인간의 과학과 잣대로 형상화하려는 의도는 결코 온당치 않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신성을 묵상하며 섬기는 것, 그것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임을 루케이도는 일깨우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과연 얼마나 농밀할까. 흔히 사람들은 신적인 사랑을 '아가페(agapē)'라 부르며 상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는 당신께서 본래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던 점에서부터 완성된다. 인간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하늘 보좌에서 이 낮은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 갖은 고초를 겪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당신의 사랑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떠한 형용사로도 형언할 수 없는 찬란함의 극치리라.  

  사탄은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의 활개를 인내하시는가. 이에 대한 답변 또한 적확하다. 하나님께서는 사탄까지도 그리스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악의 번영과 악인의 활개, 선의 핍박과 의인의 고통은 잠시뿐이다. 적어도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그렇다. 지구에서의 삶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면, 다른 차원에서 선과 악,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복수심은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마음이다. 본래 인간은 창조적 관점에서 '신뢰'할 존재가 아니다. 그저 사랑하고 보듬어주면 된다. 우리가 신뢰할 존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신뢰가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바라보면 '원수'나 '복수' 등의 단어는 사전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비판과 복수와 정죄는 오직 하나님의 권한이다. 하나님에게 이것들을 맡기고 사랑의 마음으로 남을 대할 때에 우리의 삶을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나님의 뜻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창세 전에 미리 계획하신 수많은 디테일은 한 점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는 불변의 진리이다. 하지만 이와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기도>라는 것을 통해 말이다. 기도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중 가장 고차원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신다. 모든 일은 누군가 기도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길, 그것은 기도뿐이다.

  한 시간도 안 되어 완독할 수 있는 이 짧은 메시지는 다양한 주제와 각도에서 하나님의 희망을 증거한다. 맥스 루케이도는 간결하지만 힘있는 문장으로 힘들고 지쳐있는 이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힘겨운 순간을 위한 우리의 기도'로 책을 끝맺음한다. 기도의 힘은 기도하는 자가 아닌 기도를 들으시는 분께 있다, 는 명문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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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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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여류작가 공지영의 존재성은 어떤 것일까. 공지영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독자들은 그녀의 문장에 열광하고 환호하며 가슴을 두근거린다. 그녀는 분명 신경숙과 다르고, 은희경과 차별되며, 정이현과 구분된다. 출간되는 책마다 히트, 라는 공지영신드롬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작년 여덟 번째 장편소설인 『즐거운 나의 집』을 통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개했던 소설가 공지영이 이번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그녀의 신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공지영이 자신의 친딸 위녕에게 전하는 편지를 담은 산문집이다. 책 속에는 유명한 작가로 살아가는 엄마의 딸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 충만하게 넘쳐흐르고 있다.

  세 번의 이혼과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여자 공지영.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비전형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그녀의 가족은 보다 다양하고 특별한 소통의 전제에서 존재할지 모른다. 고통과 슬픔, 다양성과 결핍의 빈도가 다른 가정에 비해 비교우위로 점철되는 두 모녀 사이의 소통은 지독한 미안함과 이해심, 그리고 여느 모녀와는 다른 차원의 사랑을 함의하고 있어 특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낸다.

  공지영의 편지 구성이 자못 특이하다. 그녀는 아프면서 성숙한 자신의 과거를 곱씹으며 삶과 우주의 통찰을 늘어놓는다. 더욱이 각 편지마다 공지영 자신이 읽은 책들의 명문구를 인용하면서 딸을 향한 사랑의 아포리즘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각 편지의 맺음마다 수영을 하려고 하지만 계속 미루는 형편없는 자신의 <현재>적 삶을 토로한다. 하지만 이 토로는 딸에게 전하는 자신의 거시적인 메시지와 통합되는 특별한 의미를 상징한다.

  공지영은 있는 그대로의 '자아'로 살 것을 딸에게 주문한다. 닐 기유메트 신부의 단편집 《내 발의 등불》에 있는 짧은 천사 이야기를 소개하며 인간의 다양성 안에 내재된 신의 확고한 의지를 들려준다. 어떤 눈송이도 똑같이 생긴 것이 없고 나뭇잎이나 모래알도 두 개가 결코 똑같지 않은 이유, 그리고 그것을 통해 명징하게 빛나는 '나'라는 존재의 신비함과 숭고함에 대해서 말이다. 창조된 모든 것은 하나의 '원본'으로 실존하게 한 신의 창조성에 대해 다음의 멋난 명문장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나는 너 없이도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지만 만일 그랬다면 세계는 내 눈에 영원히 불완전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p. 42>

  또한 무엇이 되느냐의 삶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의 삶을 살 것을 주문한다. 산도르 마라이의 《어느 시인의 고백》으로부터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하는' 원리를 발췌하여 딸에게 전달한다. 인생을 잠시 스치는 수많은 대극적 순간들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닌,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생을 한 순간으로 압축하여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의 초월적 인식, 그것이야말로 천 년을 하루처럼 여기는 신의 절대성에 호흡하는 삶이자, '행복'이라는 산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거시적 인생관의 원동임을 공지영은 딸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리라.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   <p. 165>

  또한 공지영은 작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고뇌와 아픔을 털어놓기도 한다. 본래 시인 지망생이었지만 시는 천재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고 시를 포기했다는 소설가 공지영. 모든 예술에는 천재가 있지만, 유독 천재가 없는 장르가 있는데 그게 바로 '소설'이라고 말하는 소설가 공지영. 두꺼운 종이들을 다 글자로 채워 넣어야 하는 손가락의 끈질김과 엉덩이의 힘, 요컨대 '소설'의 완성은 시간과 체력과 고통과 인내로 채워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소설가 공지영에게서 겸손한 작가의 고뇌와 번민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신을, 신의 창조를 닮으려고 한 불경의 죄 때문에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p. 153>

  에필로그는 딸 위녕의 답장을 배치했다. 엄마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가혹할 정도로 요구한 것이 딱 하나 있음을 위녕은 밝히고 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라, 언제나 깨어있어라.'라는 시간의 숭고한 정신과 책임이 담겨있는 말 한마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고 말하는 대신, 하루하루를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라고 하는 엄마의 유일한 조언. 그 말은 위녕의 가슴속에 강렬히 각인된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남은 생애의 두려움의 농도를 희석시키는 근원적 힘이 될 것임을 위녕은 고백하고 있다.
  당신이 수없이 상처입고 방황하고 실패한 저를 언제나 응원할 것을 알고 있어서 저는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p. 250>

  딸을 향한 공지영의 편지는 앞으로 살았던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많은 딸에게 결국 <현재>적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전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매 편지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수영' 얘기를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이유도 결국 딸에게 시간의 숭고함에 대해 전하려는 내밀함의 목소리리라. 이미 지나가 버린 정지된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아직 손에 잡을 수 없는 상상의 미래에 경도되지 말며, 내 힘과 의지가 유일하게 발현될 수 있는 현재적 시간에 대한 최선과 숭고의 삶. 그것이 이 한 권의 산문집을 통해 공지영이 딸에게 전하려는 응원 메시지의 본질이다.

  좋은 시는, 좋은 문학작품은, 아니 좋은 예술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잠시 멍청하게 만들고 잠시 망연하게 만들고, 마치 큰 징이 울리는 것처럼 우리 존재를 존재로서 온전히 느끼는 순간의 시간을 허용한다. 

  공지영의 말이다. 실로 전율이 느껴지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힘 있는 활자는 독자에게 잠시 정지할 것을 요구한다. 사유와 곱씹음, 앎과 도전, 공감과 희열을 허용하는 그 짧은 순간을 통해 독자는 '책 읽기'라는 위대한 작업에 대한 보람과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공지영의 이 멋진 문장은 공지영 자신의 작품을 수식하는 적확한 '형용사'가 된다. 

  읽으면서 수없이 <정지>할 수밖에 없었던 공지영의 산문을 살포시 추천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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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2010-05-1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세요..전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책이던데요...
그저 그냥 딸에게 쓴 편지나 또는 글을 춮판했어야 했는지..
저도 공지영씨 좋아하고 책도 많이 봤지만..
이 책은 영~~ 가슴에 와닿지 않았어요.. 진짜 그냥 잘 만들어서 딸에게나 주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