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시대 최고의 여류작가 공지영의 존재성은 어떤 것일까. 공지영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독자들은 그녀의 문장에 열광하고 환호하며 가슴을 두근거린다. 그녀는 분명 신경숙과 다르고, 은희경과 차별되며, 정이현과 구분된다. 출간되는 책마다 히트, 라는 공지영신드롬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작년 여덟 번째 장편소설인 『즐거운 나의 집』을 통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개했던 소설가 공지영이 이번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그녀의 신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공지영이 자신의 친딸 위녕에게 전하는 편지를 담은 산문집이다. 책 속에는 유명한 작가로 살아가는 엄마의 딸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 충만하게 넘쳐흐르고 있다.

  세 번의 이혼과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여자 공지영.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비전형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그녀의 가족은 보다 다양하고 특별한 소통의 전제에서 존재할지 모른다. 고통과 슬픔, 다양성과 결핍의 빈도가 다른 가정에 비해 비교우위로 점철되는 두 모녀 사이의 소통은 지독한 미안함과 이해심, 그리고 여느 모녀와는 다른 차원의 사랑을 함의하고 있어 특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낸다.

  공지영의 편지 구성이 자못 특이하다. 그녀는 아프면서 성숙한 자신의 과거를 곱씹으며 삶과 우주의 통찰을 늘어놓는다. 더욱이 각 편지마다 공지영 자신이 읽은 책들의 명문구를 인용하면서 딸을 향한 사랑의 아포리즘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각 편지의 맺음마다 수영을 하려고 하지만 계속 미루는 형편없는 자신의 <현재>적 삶을 토로한다. 하지만 이 토로는 딸에게 전하는 자신의 거시적인 메시지와 통합되는 특별한 의미를 상징한다.

  공지영은 있는 그대로의 '자아'로 살 것을 딸에게 주문한다. 닐 기유메트 신부의 단편집 《내 발의 등불》에 있는 짧은 천사 이야기를 소개하며 인간의 다양성 안에 내재된 신의 확고한 의지를 들려준다. 어떤 눈송이도 똑같이 생긴 것이 없고 나뭇잎이나 모래알도 두 개가 결코 똑같지 않은 이유, 그리고 그것을 통해 명징하게 빛나는 '나'라는 존재의 신비함과 숭고함에 대해서 말이다. 창조된 모든 것은 하나의 '원본'으로 실존하게 한 신의 창조성에 대해 다음의 멋난 명문장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나는 너 없이도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지만 만일 그랬다면 세계는 내 눈에 영원히 불완전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p. 42>

  또한 무엇이 되느냐의 삶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의 삶을 살 것을 주문한다. 산도르 마라이의 《어느 시인의 고백》으로부터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하는' 원리를 발췌하여 딸에게 전달한다. 인생을 잠시 스치는 수많은 대극적 순간들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닌,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생을 한 순간으로 압축하여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의 초월적 인식, 그것이야말로 천 년을 하루처럼 여기는 신의 절대성에 호흡하는 삶이자, '행복'이라는 산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거시적 인생관의 원동임을 공지영은 딸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리라.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   <p. 165>

  또한 공지영은 작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고뇌와 아픔을 털어놓기도 한다. 본래 시인 지망생이었지만 시는 천재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고 시를 포기했다는 소설가 공지영. 모든 예술에는 천재가 있지만, 유독 천재가 없는 장르가 있는데 그게 바로 '소설'이라고 말하는 소설가 공지영. 두꺼운 종이들을 다 글자로 채워 넣어야 하는 손가락의 끈질김과 엉덩이의 힘, 요컨대 '소설'의 완성은 시간과 체력과 고통과 인내로 채워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소설가 공지영에게서 겸손한 작가의 고뇌와 번민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신을, 신의 창조를 닮으려고 한 불경의 죄 때문에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p. 153>

  에필로그는 딸 위녕의 답장을 배치했다. 엄마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가혹할 정도로 요구한 것이 딱 하나 있음을 위녕은 밝히고 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라, 언제나 깨어있어라.'라는 시간의 숭고한 정신과 책임이 담겨있는 말 한마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고 말하는 대신, 하루하루를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라고 하는 엄마의 유일한 조언. 그 말은 위녕의 가슴속에 강렬히 각인된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남은 생애의 두려움의 농도를 희석시키는 근원적 힘이 될 것임을 위녕은 고백하고 있다.
  당신이 수없이 상처입고 방황하고 실패한 저를 언제나 응원할 것을 알고 있어서 저는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p. 250>

  딸을 향한 공지영의 편지는 앞으로 살았던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많은 딸에게 결국 <현재>적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전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매 편지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수영' 얘기를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이유도 결국 딸에게 시간의 숭고함에 대해 전하려는 내밀함의 목소리리라. 이미 지나가 버린 정지된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아직 손에 잡을 수 없는 상상의 미래에 경도되지 말며, 내 힘과 의지가 유일하게 발현될 수 있는 현재적 시간에 대한 최선과 숭고의 삶. 그것이 이 한 권의 산문집을 통해 공지영이 딸에게 전하려는 응원 메시지의 본질이다.

  좋은 시는, 좋은 문학작품은, 아니 좋은 예술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잠시 멍청하게 만들고 잠시 망연하게 만들고, 마치 큰 징이 울리는 것처럼 우리 존재를 존재로서 온전히 느끼는 순간의 시간을 허용한다. 

  공지영의 말이다. 실로 전율이 느껴지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힘 있는 활자는 독자에게 잠시 정지할 것을 요구한다. 사유와 곱씹음, 앎과 도전, 공감과 희열을 허용하는 그 짧은 순간을 통해 독자는 '책 읽기'라는 위대한 작업에 대한 보람과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공지영의 이 멋진 문장은 공지영 자신의 작품을 수식하는 적확한 '형용사'가 된다. 

  읽으면서 수없이 <정지>할 수밖에 없었던 공지영의 산문을 살포시 추천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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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2010-05-1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세요..전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책이던데요...
그저 그냥 딸에게 쓴 편지나 또는 글을 춮판했어야 했는지..
저도 공지영씨 좋아하고 책도 많이 봤지만..
이 책은 영~~ 가슴에 와닿지 않았어요.. 진짜 그냥 잘 만들어서 딸에게나 주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