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없음.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소설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처음 만났다. 두 여인의 기구한 삶을 통해 관통한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를 평범한 활자로 그려낸 호세이니의 작업에 나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감동을 선사받았었다.  

  호세이니는 평범한 문장의 연속으로 독자를 부담없이 인도한다. 하지만 두꺼운 책의 막장을 덮은 후, 범상한 것처럼 보였던 활자들이 재조합되면서 장난이 아닌 감동을 발현시킨다. 그리고 한동안 독자를 가만히 <정지>하게끔 만든다.  

  한 작가의 작품을 현재에서 과거로 역행하여 만나는 것은 굉장히 흥미있는 일이다. 나는 그 흥미로움이 주는 달콤함을 예찬한다. 개인적으로 문학에 늦게 손을 댄 이유도 이유거니와, 작가의 존재성을 탐구하는 데 그만큼 객관화할 수 있는 방법도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두 권의 작품을 발표한 호세이니에 대해 시간의 선후를 언급한다는 것이 다소 우습지만 그의 처녀작 『연을 쫓는 아이』는 바로 이러한 내 독특한 독서방식에 의해 만나게 된 작품이다. 그리고 기대했던 만큼 나를 감동시켰고, 기대했던 이상으로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연을 쫓는 아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각기 주인과 하인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 하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두 아이의 우정, 한 사건으로 인해 변질되며 아파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 긴 세월이 지나 회복되는 양심과 속죄 등의 이야기를 호세이니는 장장 500페이지가 넘는 장대한 스케일의 서사로 완성시킨다. 빠르게 읽히면서도 전혀 가볍지 않은 이 거대한 드라마는 인간의 비열함과 악함, 이에 대한 상처와 아픔, 이를 회복하기 위한 양심과 용기의 네러티브를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니파 이슬람교도 파쉬툰인으로 태어난 아미르. 반면 억압받는 소수 시아파 이슬람교도 하자라인으로 태어난 하산. 둘의 태동은 주인과 하인으로 구분되며 아프가니스탄 인종문제의 전형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나누며 자라나는 아미르와 하산. 더욱이 둘다 엄마의 존재를 모르는 동질성을 공유한다. 항상 동일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성장하기에 가장 먼저 입 밖으로 내보내는 단어는 상대방의 이름 '아미르'와 '하산'이다. 이런 둘 사이의 농밀한 관계는 1975년 연날리기 대회가 있던 겨울 어느 날, 하산에게 벌어지는 참혹한 광경을 아미르가 목도하면서 급반전된다.  

  이후 아미르는 하산 가족에게 누명을 씌워 자신의 집에서 내쫓는다. 이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아미르와 아버지 바바. 그곳에서 아미르는 첫 눈에 반한 여인 소라야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평생을 흠모하며 동경했던 바바의 죽음. 오랜 기간 동안 평온하게 흘러가는 미국 생활. 그리고 어느 날 바바의 평생지기 친구였던 라임 칸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이 한 통의 전화는 아미르 자신의 트라우마인 1975년 겨울의 일을 현실의 시공간으로 불러들이며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만들어낸다. 아프간에 가서 만나게 되는 생면부지의 어린 아이 소랍. 그리고 알게 되는 진실들.  

  아미르가 1975년의 겨울에 경험한 고통은 그의 양심을 계속해서 두드리며 삶을 옥죈다. 사실 아미르가 겪은 고통은 세상 어느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성질의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알지 못했고, 용기가 없었고, 지나친 이기심이 있었기에 비겁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삶의 편린들. 어쩌면 호세이니가 그린 아미르의 고통과 상처는 우리네 과거와 현재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했고, 존재하는 삶의 단면일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었을,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바로 그런 상처와 아픔들 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고통이 그저 고통 자체로만 끝난다면 인생의 나침반은 결코 행복을 가리킬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성장하는 법이다. 아픈 만큼 성숙하고, 힘든 만큼 진보하며, 희생한 만큼 승리한다. 이는 명징한 삶의 원리다. 그것이 육체적 고단함이든, 정신적인 아픔이든, 양심의 고뇌든, 그 어떤 고통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훗날의 영광을 보증하는 힘이 된다. 아미르가 자신의 아픈 과거를 비겁하게 묻어두지 않고, 용기와 양심으로 맞서 싸우며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승리하는 인생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교훈받게 된다. 

  『연을 쫓는 아이』는 분명 성장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 주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차원의 가슴 뭉클함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것은 이야기 속에 투영되어 있는 작가 자신의 내밀한 눈물을 인지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호세이니는 고국 아프가니스탄에 내재된 사회적 인종적 오류와 모순을 극도의 절제된 표현으로 소설 배경 곳곳에 배치한다. 있는 그대로의 굴곡진 역사와 사회적 변화, 토종 음식과 아프간 민중들의 일상 등이 소설의 배경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조국 아프가니스탄을 동경하며 바라보고 있는 작가 호세이니의 또 다른 차원의 아픔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한 남자의 성장통이라는 기본적 스토리를 조국의 현실에 대한 작가 자신의 눈물과 가슴으로 내밀하게 녹여놓은 위대한 서사시리라. 

  호세이니 소설의 특징을 새삼 인식한다. 그의 소설은 그다지 대단한 문장들을 열거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평범한 활자로 조합된 그의 서사는 얼핏 보면 뛰어난 가독성만을 제공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야 비로소 호세이니의 진면목은 드러난다. 왜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할 수밖에 없는지를 말이다.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 나는 한동안 멍하니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미르가 소랍의 작은 미소를 얻기 위해 떨어지는 연을 쫓아서 달려가는 장면은 소설의 모든 서사를 한 순간으로 통합하면서 내 가슴속에 아로새겨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존재감을.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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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8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8-04-2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