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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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단에서 소설에 가장 가까운 작가를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신경숙을 꼽을 것이다. 신경숙은 자신 스스로 문체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고백한다. 소설 각각의 문장들이 갖는 함축적 속성, 비유적 울림 등이 시적 문체의 효과를 거둘 정도로 세밀하기에 읽는이의 가슴 구석구석을 매우 섬세한 울림으로 일렁이게 한다. 문단과 문장마다 빼곡히 박혀있는 그의 완벽한 단어조합은 시와 소설의 경계에서 정교하고 감동적인 서사를 창조한다. 독자는 그의 조사에 되새김하고 그의 동사에 희비하며 그의 쉼표에 멈칫한다. 그랬다. 신경숙의 모든 소설들은, 항상 '온전'했다.

  통속적 소재지만 철저히 문학적인 방식으로 밀리언을 울렸던 『엄마를 부탁해』의 소름돋는 감동이 채 가시지 않았다. 한국 문학사를 새로 쓴 이 한 권의 소설로 인해 내 가슴은 흥건하게 젖어 한동안을 정지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장편으로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적신다. 고백한다. 나는 항상 신경숙의 문장을 통해 실존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아의 현재상을 궁구해왔다는 것을.

  '성장'과 '청춘'이라는 코드는 작가라면 한 번쯤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과 같은 영역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작가의 손길 속에 인간의 자라남에 대한 탐색이 결핍된 적은 드물다. 대상을 잃어버린 아픔과 그것을 치유해가는 과정, 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과 자아의 진본을 찾는 여정 등은 청춘이라는 명명 속에 언제나 살아 숨셨던 유전자들이다. 문학은 항상 그것에 관심을 기울였고 세계의 글쟁이들은 그 관심의 원심력 안에서 역동했다. 그리고, 썼다.

  신경숙의 일곱번째 장편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청춘'이라는 불멸의 풍경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네 청춘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 우정, 꿈까지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투사하는 젊은 날의 원형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위로가 찬란한 열병을 지나는 청춘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윤'과 '단', '명서'와 '미루'는 개인적 상처를 짊어진 채 비극적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잃어버림'이다. 윤은 병으로 엄마를 일찍 여의었다. 미루는 언니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도했다. 단은 자신의 영원한 사랑 윤을 저 도시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리고 윤과 명서는 단과 미루의 죽음을 통해 큰 상처를 다시 한 번 겪는다. 예상치 못한 시기에 불현듯 찾아오는 상실의 아픔은 그들이 서로 마주보고 교감하게 되는 원초적 동기가 된다. 그들은 서로의 상처에서 공통했고 치유의 과정에서 농밀했다. 

  구성이 독특한데 소설의 각 장이 두 인물의 교차식 서술로 흘러간다. 윤과 명서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된다. 윤의 1인칭 서술은 소설 전체의 이야기를 추동한다. '갈색노트'로 명명된 명서의 메모는 분량은 짧지만 윤이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서사를 보다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보완한다. 두 시점 모두 차분하고 독백적이다. 대상을 보고 느끼는 관점 속에 설익은 젊은 날의 진지함이 잘 배어있다. 작가는 이십대 젊은 남녀의 시각에서 문장을 만들어냈고 사유를 이끌어냈다.

  소설 속에서 유독 '걷기'와 '죽음'이 많이 보인다. 윤이가 도시에 올라와 가장 많이 했던 것은 걷는 일이었다. 그녀는 걷는 것을 통해 스쳐간 생각을 불러오고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바라봤다. 걷는 동안 지나간 것과 잃어버린 것을 되돌아봤다. 하지만 아프지만은 않았다. 걷는 일은 현존을 탐색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윤은 묵묵히 걸음으로써 이미 지나가버린 정지된 과거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현재의 시간대를 통합하며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걷는 시간은 '지금'을 읽는 시간이었고 '마음'을 쓰는 시간이었다. 윤에게 걷기는 존재의 내외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인 동시에 현존의 무게를 지탱하는 초월론적 자기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작가는 작정한듯이 죽음의 장면을 소설 곳곳에 배치했다. 아주 친밀한 누군가를 당장 볼 수 없게 됐을 때 그 사실에 가장 영혼이 훼손되고 가장 강렬하게 자문할 시간은 바로 이십대의 청춘의 시기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현존을 이탈한 것은 다르다. 지각을 벗어난 상실은 대상이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능케 한다. 하지만 현존이 부정되는 현실은 상실의 최전선이다. 사랑했던 대상의 소멸은 내 자신이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버림받는 것이다. 청춘의 시기는 존재한 대상이 갑자기 소멸되어 실존에 이탈된 현실의 엄연함을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자라나고 단단해지는 시간이다.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 청춘의 의미를 사유했다. 그 시절은 왜 그토록 아름다운 걸까. 그 시기에 우리는 가장 크게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좌절하고, 사랑하고, 헤어진다. 또한 누구보다 비극적인 시간을 만나고, 오래, 깊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과연 이것만으로 청춘의 아름다움은 설명되는 걸까. 아니다. 청춘의 아름다움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자.신.의.전.부.를.걸.기.때.문.이.다. 우리는 그 시기에, 행하는 모든 의지적 발산에 대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투사한다. 비록 그것이 원치 않는 귀결을 만들어 낼지라도 자신의 모든 유한성을 단 하나의 시공간에 투사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청춘의 아름다움의 진본인 것이다. 

  신경숙의 힘을 실감한다. 나는 이 소설을 두 번 읽었다. 한 번 읽어도 충분한 텍스트가 있는 반면 두 번 이상 읽어도 부족한 텍스트가 있다. 난이도나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감동의 밀도를 말하는 것이다. 감동적인 소설은 많이 읽어야 그 밀도를 포착할 수 있다. 완성된 작품이 본래 지니고 있는 감동의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읽어내고 받아들이는 독자의 부피가 변할 뿐이다. 사실 신경숙의 질량과 독자의 부피를 계산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신경숙이 가진 질량이 워낙 크기에 부피와 무관하게 감동의 밀도는 언제나 무한대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감동의 무한대. 바로 신경숙 문학의 감동 밀도 함수값이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신경숙은 자신과 소설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소설과의 이별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고백한다.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진한 뒤 떠나고 싶다는 것을. 소설 속으로 완벽히 소멸하고 말 것임을.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을 것임을. 천상 소설가다. 소설은 신경숙을 사랑했고 신경숙은 소설로 존재했다. 이 세계에서 신경숙과 소설은 '하나'였다. 이 일체성의 현발은 우리에게 존재론적 암유喩를 유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곧 신경숙의 세계라는 것을. 그렇다. 우리는 신경숙의 세계에 살고 있다. 

 


[사진출처: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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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 장르와 목적이 결락된 채 밀려들어오는 수많은 책 추천 문의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하지만 이웃님들이 간절하게 부탁하는 진정성을 무시할 명분 또한 없다. 이에 나름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몇 차례로 나눠서 카테고리별로 선정하여 책을 추천해보는 것이다. 본래 미천한 리뷰어이기에 수준있고 깊이있는 책 추천은 힘들다. 그저 읽은대로 아는대로 느낀대로 정리할 뿐.

  일전에 '책좋사(네이버 독서카페)'에서 한 가지 테마를 정해서 책을 추천해달라는 문의를 받은 적이 있다. 어떤 테마를 선정할 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 운영행태가 가관도 아닐 때였다.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했다. 더 나아가 선배세대가 피와 땀으로 쟁취해왔던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작업에까지 자연스럽게 유도되었다. 이런 되돌아봄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이해와 통찰'이라는 테마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와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게 되었다.

  최근 황석영 작가의 『강남몽』을 통해 오욕과 굴곡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들을 훑어봤다. 다시 한 번 분노했다. 화가 나고 쓰라렸다. 그 책을 읽던 시기에 한국은 미국과 동해안에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고 중국은 뿔이 났다.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의 도발적 발언과 위협은 꾸준했다. 간 나오토 일본총리의 식민지배 공식사과 담화문이 연일 계속해서 핫뉴스로 방송을 타고 있었다. 불과 얼마전의 일들이다. 나는 깊이 생각했다. 우리는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 과거의 역사를 있는 사실 그대로 알 수 있는 혜안과 용기는 어디서 공급되는가. 그리고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내적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오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순간, 한 시대에 한 획을 그었던 주옥같은 명저들이 있음을 생각해냈다.

   -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 『태백산맥』, 조정래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 『해방전후사의 인식』, 송건호 外 
   -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 『제 3의 길』, 엔서니 기든스


  위의 책들은 한국사회에 가장 영향을 준 책들로 손꼽히는 명저들이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금서 목록으로 올랐던 책들도 있다.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베트남 전쟁으로 세계를 시끄럽게 했던 미국의 추악함을 드러냈다. 동시에 중국 사회주의 속에 내재된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리영희 교수의 『우상과 이성』도 읽어볼 만하다. 기존 지식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도전하게 하는 힘있는 책이다.

  읽든 안 읽든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거대서사 또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매우 큰 영향을 준 소설이다. 조정래의 강한 저력과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는 이 소설은 또 다른 대하소설 『아리랑』, 『한강』과 궤를 같이 한다.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인 민중의 발견, 민족의 비극인 분단과 민족의 비원인 통일의 자각, 민족의 현실을 망치고 미래를 어둡게 한 친일파 문제. 조정래는 세 작품을 관통하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한민족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여러 지식인들이 함께 공저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준 교과서다. 송건호, 진덕규, 오익환, 백기완, 유인호 등이 참여해 '해방의 민족사적 의미', '분단의 배경과 과정, '친일파 문제'를 다뤘다. 지금까지 대략 50만 권 정도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손꼽는 불후의 저작이다.

  현상을 이해하고 학습하는데 내부보다 외부의 시각이 더 객관적일 때가 많다. 그런 차원에서 해외 저술을 살피는 것은 응당 필요하다. 그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은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현대사에 관심있는 사람 중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공개되지 않았던 미국정부의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한국전쟁의 원인과 배경을 분석했다. '침략 야욕으로 가득찬 북한의 남침' 일변도의 기존 6.25 해석에 '수정주의'라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당시 사회를 뒤흔들기도 했다. 냉전적 사고방식에 함몰되어 있던 한국 학계에 전회에 가까운 쇼크를 준 의미와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또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기든스는 이 책에서 사회주의의 처절한 실패와 자본주의의 불평등이라는 모순을 극복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한다. 한국 사회에 '실용주의', '중도론', '사회적 민주주의'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된 대안적 진보이념의 목마름을 상당 부분 해갈해주며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등도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준 저서들이다.

  상기 추천했던 것들 외에도 눈여겨볼 만한 책들은 많다.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에서 엮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한홍구 교수의 『특강』 등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고찰하는데 필요한 책들은 두루두루 추천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통찰력 있는 명저들을 통해 보다 명확한 사고와 지성있는 행동을 실행할 수 있다. 인간 삶의 기준을 물질에서 정신으로, 결과에서 과정으로, 감각에서 의미로 전환시키는 일은 비단 지식인만의 의무는 아니다. 바로 '내'가 알고 '내'가 느끼며 '내'가 행동해야 한다. 그럴 때야만이 비로소 우리 사회는 변혁될 수 있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인간은 아는 만큼 행동한다. 앎의 크기가 곧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속담은 종언을 고해야 한다. 과거 사실을 직시하자. 우리 국민은 아는 만큼 행복했고 모르는 만큼 불행했다. 제대로 알아야 비판할 수 있다. 올바른 앎이 정의를 만든다. 지성있는 국민이 살기 좋은 국가를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무엇이 진실이었으며, 어떤 통찰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유를 맛본 사람들은 다시는 그 자유를 뺏기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는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다시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자유의 주체자로서 우리는 과거를 알고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엿봐야 한다. 추천한 책들이 그것을 위한 앎과 용기의 전도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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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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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내 단단해진 그의 성기를 귀두부터 살짝 핥아 보았다. 앞니가 귀두에 닿지 않도록 입술을 오므리고 혀끝으로 조심스레 성기를 감싸며 불알을 향해 내려갔다. (p. 208)


  간만에 보는 쎈 표현이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기억하지 않는가. 미도리가 와타나베의 성기를 애무하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제 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제리』는 서스럼없는  성애묘사가 즐비한 소설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이십대다. 작가 김혜나 또한 이십대의 나이다. 이십대 여작가의 등단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섹스와 밤문화의 과감한 묘사와 적나라한 표현이 소설 『제리』 속에는 가득 차 있다.

  개인적으로 소설 속 섹스씬에 깊은 관심을 피력해왔다. 섹스씬 자체에 관심이 있다보다는 섹스묘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묘사 수준은 그 다음의 문제다. 작품 속에서 섹스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소설과 인간을 이해하는데 매우 긴요하다. 문학 안에서 섹스는 반드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담지 않은 섹스씬의 병렬식 배치는 포르노와 하등 다를 게 없다. 일본에서 하루키 소설의 섹스씬을 연구한 논문만 수십 편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학과 섹스가 얼마나 농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소설 『제리』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20대 남녀가 술 먹고 섹스하기를 반복하는 내용이다. 여대생들이 노래빠에서 남자 도우미들을 불러 선택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왠지 고독하고 공허한 소설 속 화자 '나'의 파트너는 '제리'라는 이름의 연하 도우미다. 특별히 잘 생긴 것도 특출난 것도 없는 제리에게 '나'는 끌린다. 하지만 그 '끌림'이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저 끌릴 뿐이다.

  '나'에게는 '강'이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둘 사이에 사랑이나 그 어떤 진정성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만나고 섹스하는 관계다. '강'과의 섹스는 항상 아프고 불편하다. 성기의 크기가 지나치게 클 뿐만 아니라 철저히 자기자신만의 만족과 쾌감을 누리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의 섹스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아프면 참으면 된다. 그냥 섹스할 뿐이다.

  그에 반해 제리는 부드러운 편이다. 제리의 성기는 평균보다 작고 몸도 왜소하다. 섹스의 하드웨어면에서 '강'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보다 부드럽고 배려가 있다. 내가 아프다고 느낄 때 사정도 하지 않고 섹스를 중간에 중지한 남자는 제리가 유일하다. 수많은 남자와 자봤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다. 제리에게 더 끌린다. 왠지 모르게 연락하고 싶고 함께 있고 싶다. 하지만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제리』의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모두 불확실한 현실을 살아간다. 내 속에 내가 없다. 자아를 찾지 못한 불안과 공허를 타자와의 섹스를 통해 잠시 잊는다. 삶의 뚜렷한 방향이나 목적 없이 방황하는 이십대 청년들의 공허한 단면을 작가 김혜나는 적나라한 묘사를 통해 그려냈다. 거듭 반복되는 섹스씬의 나열이 충격적이거나 파괴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뒷부분으로 가면 갈수록 아프고 쓰라리다. '나'의 실존의 불확정성 가운데 고작 무의미한 섹스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 이십대의 벌거벗은 형상이 가슴 시리도록 아프게 다가온다.

  원인과 형태는 다를지라도 어느 누구에게나 이십대의 방황은 존재한다. 힘들고 괴로운 삶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시야를 어느곳에 두는지에 따라 해결의 인과果는 다르게 작동한다. 어릴수록 외부를 보고 어른일수록 내부를 본다. 삶의 무게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변화한다. 이십대는 어쩌면 '상실의 시대'다. 그 시절 만큼 다양한 자아를 볼 수 있는 시기는 없다. 다양한 자아 속에서 자신의 진본을 찾아 헤매는 시기가 바로 이십대라는 상실의 시대인 것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매우 진지한 고백을 한다. '소설가로서의 삶'이 아닌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꿈꾸게 되었을 때 소설은 비로소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는 것이다. 이는 소설 속 화자 '나'의 삶과도 상통한다. 나를 괴롭히고 구속하는 것, 동시에 나를 해방하고 구원하는 모든 것이 오직 나 자신뿐, 이라는 저자의 깨달음은 곧 소설 『제리』의 한 줄 리뷰가 된다.

  전체적으로 역량이 부족한 소설이다. 하지만 작가의 가능성은 충분히 엿보인다. 충격적이고 파괴적이며 반도덕적인 게 소설의 질을 규정하지는 못한다. 이런식으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뇌와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다음 작품의 진보를 기대한다. 82년생 작가의 미래가 밝다. 이제 이런 소설은 다시는 쓰지 않았으면 한다. '충격'과 '파괴'보다는 '사유'와 '문장'으로 승부하는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 감각보다 의미를 담아내는 묵직한 소설을 써주길 희망한다. 이런 기대의 부응에서 별 반 개를 더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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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설명서 - 감자탕교회 조현삼 목사에게 글로 듣는 주례사
조현삼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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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주변의 인생선배들로부터 결혼에 대해 많은 조언을 들어왔다. 결혼한 것은 천국을 이룬 것이라며 마냥 축복하고 즐거워한 지인이 있었는가 하면 결혼은 곧 지옥이라며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에 왜 진입했느냐며 비아냥거리는 지인도 있었다. 한 사람을 만나 자식을 낳고 사는 비슷한 입장에서 도대체 무슨 차이로 천국과 지옥이 가름되는 것일까. 결혼한 지 두 달밖에 안되는 신혼남이 이런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인가.

  책을 한 권 선물받았다. 생명의말씀사 출판사의 『결혼설명서』는 제목 그대로 결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 조현삼 목사는 이 책을 통해 결혼에 대한 성격적 통찰과 방법을 들려주고 있다. 교훈적이면서 합리적인 결혼 조언들을 매우 흥미있는 방식으로 전달한 점이 눈에 띈다. 더욱이 지나친 신학적 서술을 탈피하여 비독교인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넓은 포용력을 가진 책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철저히 성경적 관점에서 결혼을 풀이하고 해석했다는 데 있다. 저자가 설파하는 결혼의 의미는 간명하다.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자 주권이며 축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로 주신 결혼의 예를 통해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지, 그 방법론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들이 이어진다. 세상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요, 인간을 만드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가정을 만드신 이도 하나님이시라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을 건설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본분이다. 저자는 이 중요한 원칙 하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독특한 전달방식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찾아온 교회 청년 민수에게 주례의 조건으로 예비신부와 함께 자신의 결혼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마다할 리 없는 민수는 응당 여자친구와 함께 저자의 결혼강의를 듣게 된다. 바로 그 강의의 방식과 내용이 이 책의 얼개가 된다. 저자와 두 예비부부 사이의 대화와 질답이 책을 구성하는 기본 뼈대가 된다. 이러한 에피소드의 대화식 구성은 결혼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데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한다. 

  총 열 개의 강의로 구성된 내용들은 결혼을 준비하고 가정을 세워나가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인지해야 할 소중한 잠언들이다. 저자는 결혼을 남편과 아내의 연합으로 정의하되 크게 세 가지 연합으로 정리한다. '결정권'의 연합, '몸'의 연합, '돈'의 연합이 그것이다. 결혼 전 부모에게 있던 결정권은 결혼 후 자신에게로 이양되며 그 소중한 결정권을 남편과 아내가 '하나'로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도 마찬가지다. '섹스'와 '사랑'과 '결혼'은 하나다. 사랑으로 결혼한 남녀가 몸을 연합하는 일이 하나님의 선물이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강조한다. 부부관계는 성실히 하면 할수록 좋다는 게 하나님의 뜻이자 저자의 부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돈 또한 연합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부부 사이에 내 돈 네 돈은 없다. 두 사람의 돈을 잘 연합하고 관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곳에 사용해야 함은 당연한 주문이다.

  사실 주변에 결혼생활이 삐걱거리는 분들이 많다. 이혼도 부지기수다. 현재 전 인류적으로 빈번한 우울과 일탈, 범죄와 자살 등의 근본적 원인은 가정의 파괴에 있다. 인류사적으로 가정이 파괴될 때 죄악은 관영했고 인간은 고통스러웠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만드셨다. 태초에 인간에게 축복으로 주신 가정을 인류는 얼마나 진지하고 숭고하게 건설해왔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혼식 때 '하나님 중심주의'의 가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내 자신도 이 대목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죄악이 관영한 이 시대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가정을 세우기 위한 내 소원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숭고해진다. 이러한 내 도전의 작은 교두보 위에 이 한 권의 책이 놓여있다.

  정말 좋은 책이다. 철저한 성경적 관점과 해석, 술술 잘 읽히는 대화식 구성, 깔끔하고 일목요연한 주제별 정리, 이해하기 쉬운 비유식 설명, 군더더기 없는 문장 등은 이 책이 가진 긍정적 존재성을 잘 보여준다. 결혼을 위해 꼭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다루고 있다. 신앙과 생활은 별개가 아니다. 삶이 곧 신앙이 될 때 하나님은 웃으시고 인간은 행복하다. 이 얇은 책 한 권이 결혼을 준비하고 사모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적잖은 도전과 지혜를 줄 것이라 믿는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시 한 번! 정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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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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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김영하와 만났다. 여기서 '만났다'는 표현에 글을 읽는 분들이 오해할 수 있겠다. 한 권의 소설이 완성되어 독자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곧 작가와 독자의 만남을 의미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자와 만나고 호흡하며 대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와 '만났다'는 것이다.

  김영하는 한때 한국 문학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작가 중에서 제일 선봉장에 서 있었다. 문단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김연수보다 더 관심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김연수가 그를 넘어선 것 같다. 그것도 한참 넘어선 느낌이다. 이러한 원인은 그간 임팩트 있는 작품을 써내지 못한 김영하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김연수보다 김영하를 더 좋아한다. 엄밀히 말해서 김영하의 문학에 더 박수를 보내는 편이다. 김연수의 '성실함', '진지함', '소탈함'보다 김영하의 '댄디함', '자신감', '쿨함'의 이미지가 작가로서 더욱 매력적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예술가보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예술가를 사람들은 더 흠모해오지 않았던가. 내게 김영하는 그렇게 읽힌다.

  6년만의 소설집이다. 매우 매력적인 제목이다. 김영하의 최신 텍스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매력적인 제목만큼이나 각 단편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단편의 분량, 문체, 주제, 무게 등 동일한 작가가 쓴 것이라고는 쉽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김영하의 작가적 다양성이 작품 곳곳에서 확인된다.

  총 열세 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문예지를 위시하여 그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발표했던 작품들과 공개하지 않았던 신작을 한데 엮어서 출간했다. 소설집은 정통적인 단편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가진 개성있는 단편들을 담았다. SF적 요소와 현실과 환상이 기묘하게 뒤섞인 이야기나 한 장 분량의 콩트와 같은 짧은 작품들도 있어 이야기꾼으로서 김영하의 면모를 만끽할 수 있다. 

  표지 사진이 인상적인데, 야간의 차로에서 주행하는 차들과 차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표지로 삼았다. 표지 속 여인은 왜 차도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일까. 여인의 얼굴과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고독과 불안함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표지는 소설집을 관통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불확정성과 불안감이 가득한 일상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모프 박사의 '로봇 3원칙'을 소재로 과학기술이 발달된 고도의 정보통신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확정성을 그린 「로봇」이 소설집 전면에 배치됐다. 수경이라는 한 여자를 사랑하며 거듭 로봇의 3원칙을 말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다. 로봇은 수경과 강렬하게 몸을 섞은 후 수경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결국 로봇은 수경을 떠날 수밖에 없다. 수경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물질문명에 오염되어 공허한 삶을 사는 한 여성과 인간보다 순수한 양심으로 자신의 태동성을 지키려는 로봇의 모습을 통해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행」도 꽤 인상적인 작품이다. 오래전 헤어진 한선과 수진의 재회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박사과정을 밝기 위해 미국유학을 떠났던 한선은 오랜만의 수진과의 전화통화에서 그녀의 결혼소식을 듣게 된다. 한선은 수진에게 갑자기 결혼 전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하며 수진의 집 앞에서 그녀를 납치하듯 차에 태우고 바다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테러를 당한다. 헤어진 여자친구의 결혼소식을 듣고 불안의 자장에서 비상식적인 행위를 벌이는 엘리트의 광기와 공교롭게도 폭력으로 귀결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그려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단연 「밀회」다. 소설집의 제목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밀회」의 한 대목에서 따온 것이다. 분명히 죽었지만 자신이 죽었는지 모르는 한 남자의 독백적 서술이 소설의 흐름을 지배한다. 남자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현재에서 과거로, 타자에서 자신에게로 이동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한 것은 남성화자의 애절함을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남자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는 소설 속에 나타나 있지 않다. 남자는 왜 죽었으며 무슨 일이 있어난 걸까.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는 아무도... 

  이 책에 실린 13편의 이야기는 누구도 최종적인 심판을 내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고 다음 사건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그린다. 어느 날 사고로 가족과 친밀감을 갖지 못하는, 그래서 자신을 가짜 아내라고 의심하는 남편과 사는 여자(「밀회」), 로봇과 원나잇스탠드 하는 여자(「로봇」),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가수(「악어」) 같은 인물 말이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속도감 있는 '수단'을 선사했을지는 몰라도 진실이라는 '목적'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한 정신은 황폐화시켰다. 진실을 갈망하지만 바쁜 삶 속에서 그것을 성찰할 여유나 방법을 모르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소설은 잘 포착해내고 있다.

  김영하 특유의 도시적 감수성과 속도감으로 일상의 단면을 예리하게 오려내는 솜씨는 여전히 발군이다.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문장에 실린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자유분방함은 단편에서 더 큰 여운을 발휘한다. 작가는 이 소설집에 대해 내용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낸 소설들이라고 했다. 마음 놓고 자유롭게 쓴 소설이기에 현실 세계와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적 상상력이 더 강력하게 내뿜는 듯하다. 게다가 13편의 단편들은 유쾌하고 쉼 없이 읽히지만 동시에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김영하의 힘 아니겠는가.

  김영하는 고백한다. 지금의 나보다 더 '살아 있는' 것은 지금껏 내가 '쓴 것'들이라는 것을. 햄릿의 비현실성을 질문한 어느 독자에 대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답했던 대목을 인용하며 자신과 소설과의 관계를 되돌아봤다는 김영하의 작가적 진지함이 멋지다. 내 영혼은 풍랑에 흔들리는 조각배이며 그것을 저 수면 아래에서 단단히 붙들어주는 게 바로 자신이 쓴 책들이라는 김영하의 고백은 실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소설 상찬론은 인간의 가변성과 불확정성의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작가보다 작품이 우선한다는 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이끌어내고 있다. 작가는 반드시 작품을 통해서 말해야 하며 만들어진 작품의 존재성이 창조자인 작가의 실존을 규정하는 것이다. 근데 이게 왠 일인가. 김영하에게 이런 겸손함이 있었단 말인가.

  항상 댄디한 그의 작품들을 만나는 게 참 좋다. 매번 그의 신간을 만날 때마다 새롭고 다채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단에서도 인정하는 속필이라고 하지만 쓰고싶을 때 내키는대로 쓴 작품들을 모아 이 정도 퀄리티의 소설집을 낼 정도라면 과히 천재 소설가의 역량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서평을 정리하자. 김영하의 최신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불안과 공허의 자장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일탈된 모습과 그것의 성찰과 변혁에 한계를 지닌 현대인들의 다양한 단면을 유쾌하면서도 묵직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굳이 박민규의 추천사를 인용해야겠다. 이 작품에 대해 호평을 하는 것조차도 살짝 화가 난다. 왜냐하면 김영하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소름이 돋았을 독자들이 널리고 널렸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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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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