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 장르와 목적이 결락된 채 밀려들어오는 수많은 책 추천 문의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하지만 이웃님들이 간절하게 부탁하는 진정성을 무시할 명분 또한 없다. 이에 나름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몇 차례로 나눠서 카테고리별로 선정하여 책을 추천해보는 것이다. 본래 미천한 리뷰어이기에 수준있고 깊이있는 책 추천은 힘들다. 그저 읽은대로 아는대로 느낀대로 정리할 뿐.

  일전에 '책좋사(네이버 독서카페)'에서 한 가지 테마를 정해서 책을 추천해달라는 문의를 받은 적이 있다. 어떤 테마를 선정할 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 운영행태가 가관도 아닐 때였다.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했다. 더 나아가 선배세대가 피와 땀으로 쟁취해왔던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작업에까지 자연스럽게 유도되었다. 이런 되돌아봄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이해와 통찰'이라는 테마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와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게 되었다.

  최근 황석영 작가의 『강남몽』을 통해 오욕과 굴곡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들을 훑어봤다. 다시 한 번 분노했다. 화가 나고 쓰라렸다. 그 책을 읽던 시기에 한국은 미국과 동해안에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고 중국은 뿔이 났다.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의 도발적 발언과 위협은 꾸준했다. 간 나오토 일본총리의 식민지배 공식사과 담화문이 연일 계속해서 핫뉴스로 방송을 타고 있었다. 불과 얼마전의 일들이다. 나는 깊이 생각했다. 우리는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 과거의 역사를 있는 사실 그대로 알 수 있는 혜안과 용기는 어디서 공급되는가. 그리고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내적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오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순간, 한 시대에 한 획을 그었던 주옥같은 명저들이 있음을 생각해냈다.

   -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 『태백산맥』, 조정래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 『해방전후사의 인식』, 송건호 外 
   -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 『제 3의 길』, 엔서니 기든스


  위의 책들은 한국사회에 가장 영향을 준 책들로 손꼽히는 명저들이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금서 목록으로 올랐던 책들도 있다.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베트남 전쟁으로 세계를 시끄럽게 했던 미국의 추악함을 드러냈다. 동시에 중국 사회주의 속에 내재된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리영희 교수의 『우상과 이성』도 읽어볼 만하다. 기존 지식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도전하게 하는 힘있는 책이다.

  읽든 안 읽든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거대서사 또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매우 큰 영향을 준 소설이다. 조정래의 강한 저력과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는 이 소설은 또 다른 대하소설 『아리랑』, 『한강』과 궤를 같이 한다.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인 민중의 발견, 민족의 비극인 분단과 민족의 비원인 통일의 자각, 민족의 현실을 망치고 미래를 어둡게 한 친일파 문제. 조정래는 세 작품을 관통하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한민족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여러 지식인들이 함께 공저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준 교과서다. 송건호, 진덕규, 오익환, 백기완, 유인호 등이 참여해 '해방의 민족사적 의미', '분단의 배경과 과정, '친일파 문제'를 다뤘다. 지금까지 대략 50만 권 정도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손꼽는 불후의 저작이다.

  현상을 이해하고 학습하는데 내부보다 외부의 시각이 더 객관적일 때가 많다. 그런 차원에서 해외 저술을 살피는 것은 응당 필요하다. 그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은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현대사에 관심있는 사람 중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공개되지 않았던 미국정부의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한국전쟁의 원인과 배경을 분석했다. '침략 야욕으로 가득찬 북한의 남침' 일변도의 기존 6.25 해석에 '수정주의'라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당시 사회를 뒤흔들기도 했다. 냉전적 사고방식에 함몰되어 있던 한국 학계에 전회에 가까운 쇼크를 준 의미와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또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기든스는 이 책에서 사회주의의 처절한 실패와 자본주의의 불평등이라는 모순을 극복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한다. 한국 사회에 '실용주의', '중도론', '사회적 민주주의'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된 대안적 진보이념의 목마름을 상당 부분 해갈해주며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등도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준 저서들이다.

  상기 추천했던 것들 외에도 눈여겨볼 만한 책들은 많다.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에서 엮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한홍구 교수의 『특강』 등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고찰하는데 필요한 책들은 두루두루 추천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통찰력 있는 명저들을 통해 보다 명확한 사고와 지성있는 행동을 실행할 수 있다. 인간 삶의 기준을 물질에서 정신으로, 결과에서 과정으로, 감각에서 의미로 전환시키는 일은 비단 지식인만의 의무는 아니다. 바로 '내'가 알고 '내'가 느끼며 '내'가 행동해야 한다. 그럴 때야만이 비로소 우리 사회는 변혁될 수 있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인간은 아는 만큼 행동한다. 앎의 크기가 곧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속담은 종언을 고해야 한다. 과거 사실을 직시하자. 우리 국민은 아는 만큼 행복했고 모르는 만큼 불행했다. 제대로 알아야 비판할 수 있다. 올바른 앎이 정의를 만든다. 지성있는 국민이 살기 좋은 국가를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무엇이 진실이었으며, 어떤 통찰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유를 맛본 사람들은 다시는 그 자유를 뺏기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는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다시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자유의 주체자로서 우리는 과거를 알고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엿봐야 한다. 추천한 책들이 그것을 위한 앎과 용기의 전도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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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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