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내 단단해진 그의 성기를 귀두부터 살짝 핥아 보았다. 앞니가 귀두에 닿지 않도록 입술을 오므리고 혀끝으로 조심스레 성기를 감싸며 불알을 향해 내려갔다. (p. 208)


  간만에 보는 쎈 표현이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기억하지 않는가. 미도리가 와타나베의 성기를 애무하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제 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제리』는 서스럼없는  성애묘사가 즐비한 소설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이십대다. 작가 김혜나 또한 이십대의 나이다. 이십대 여작가의 등단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섹스와 밤문화의 과감한 묘사와 적나라한 표현이 소설 『제리』 속에는 가득 차 있다.

  개인적으로 소설 속 섹스씬에 깊은 관심을 피력해왔다. 섹스씬 자체에 관심이 있다보다는 섹스묘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묘사 수준은 그 다음의 문제다. 작품 속에서 섹스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소설과 인간을 이해하는데 매우 긴요하다. 문학 안에서 섹스는 반드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담지 않은 섹스씬의 병렬식 배치는 포르노와 하등 다를 게 없다. 일본에서 하루키 소설의 섹스씬을 연구한 논문만 수십 편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학과 섹스가 얼마나 농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소설 『제리』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20대 남녀가 술 먹고 섹스하기를 반복하는 내용이다. 여대생들이 노래빠에서 남자 도우미들을 불러 선택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왠지 고독하고 공허한 소설 속 화자 '나'의 파트너는 '제리'라는 이름의 연하 도우미다. 특별히 잘 생긴 것도 특출난 것도 없는 제리에게 '나'는 끌린다. 하지만 그 '끌림'이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저 끌릴 뿐이다.

  '나'에게는 '강'이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둘 사이에 사랑이나 그 어떤 진정성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만나고 섹스하는 관계다. '강'과의 섹스는 항상 아프고 불편하다. 성기의 크기가 지나치게 클 뿐만 아니라 철저히 자기자신만의 만족과 쾌감을 누리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의 섹스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아프면 참으면 된다. 그냥 섹스할 뿐이다.

  그에 반해 제리는 부드러운 편이다. 제리의 성기는 평균보다 작고 몸도 왜소하다. 섹스의 하드웨어면에서 '강'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보다 부드럽고 배려가 있다. 내가 아프다고 느낄 때 사정도 하지 않고 섹스를 중간에 중지한 남자는 제리가 유일하다. 수많은 남자와 자봤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다. 제리에게 더 끌린다. 왠지 모르게 연락하고 싶고 함께 있고 싶다. 하지만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제리』의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모두 불확실한 현실을 살아간다. 내 속에 내가 없다. 자아를 찾지 못한 불안과 공허를 타자와의 섹스를 통해 잠시 잊는다. 삶의 뚜렷한 방향이나 목적 없이 방황하는 이십대 청년들의 공허한 단면을 작가 김혜나는 적나라한 묘사를 통해 그려냈다. 거듭 반복되는 섹스씬의 나열이 충격적이거나 파괴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뒷부분으로 가면 갈수록 아프고 쓰라리다. '나'의 실존의 불확정성 가운데 고작 무의미한 섹스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 이십대의 벌거벗은 형상이 가슴 시리도록 아프게 다가온다.

  원인과 형태는 다를지라도 어느 누구에게나 이십대의 방황은 존재한다. 힘들고 괴로운 삶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시야를 어느곳에 두는지에 따라 해결의 인과果는 다르게 작동한다. 어릴수록 외부를 보고 어른일수록 내부를 본다. 삶의 무게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변화한다. 이십대는 어쩌면 '상실의 시대'다. 그 시절 만큼 다양한 자아를 볼 수 있는 시기는 없다. 다양한 자아 속에서 자신의 진본을 찾아 헤매는 시기가 바로 이십대라는 상실의 시대인 것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매우 진지한 고백을 한다. '소설가로서의 삶'이 아닌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꿈꾸게 되었을 때 소설은 비로소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는 것이다. 이는 소설 속 화자 '나'의 삶과도 상통한다. 나를 괴롭히고 구속하는 것, 동시에 나를 해방하고 구원하는 모든 것이 오직 나 자신뿐, 이라는 저자의 깨달음은 곧 소설 『제리』의 한 줄 리뷰가 된다.

  전체적으로 역량이 부족한 소설이다. 하지만 작가의 가능성은 충분히 엿보인다. 충격적이고 파괴적이며 반도덕적인 게 소설의 질을 규정하지는 못한다. 이런식으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뇌와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다음 작품의 진보를 기대한다. 82년생 작가의 미래가 밝다. 이제 이런 소설은 다시는 쓰지 않았으면 한다. '충격'과 '파괴'보다는 '사유'와 '문장'으로 승부하는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 감각보다 의미를 담아내는 묵직한 소설을 써주길 희망한다. 이런 기대의 부응에서 별 반 개를 더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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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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