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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평점 :
역사와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러셀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드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의 하나다. 철학, 수학, 과학, 윤리학, 사회학 등 다채로운 영역을 탐구했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살아생전에 40여권의 책을 남길 만큼 열정적인 집필가였다. 하지만 러셀에 대한 내 평가는 애증의 선상에서 출발한다. 솔직히 그의 사상과 저작들 대부분에 냉소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호도된 조롱, 뼛속까지 가득한 좌익적(무정부주의적) 세계관, 철학에 대한 성급환 주관화(일반화), 기존질서를 대하는 경박한 태도 등 내가 그를 멀리해야 할 이유는 많다. 그러나 무조건 까고만 볼 수 없는 학자로서의 '박력'이 그에게 있다. 특유의 파워풀한 문장력과 어마어마한 글쓰기력에 압도당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가끔 그것이 나를 헷갈리게 한다.
러셀에 대한 내 호감을 단적으로 드러낸 예를 소개하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네이버에서 주최하는 큰 규모의 어워드가 있었다. 각 분야별로 우수한 콘덴츠를 생산해낸 블로거를 선정하는 행사였다. 당시 나는 책리뷰 부문에서 우승을 했다. 시상식에서 나는 러셀의 말을 인용해 수감소감을 말했다. 러셀의 자서전을 인용한 것인데 그 내용은 상당히 유명하고 매혹적이다. 러셀은 그의 자서전의 서문에서 자신의 전 일생을 지배했던 세 가지 열정에 대해 고백한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다. 러셀은 이것들이 자기 삶에서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책읽기'였음을 역설한다. 러셀의 이 말을 인용해 나는 수상소감의 절반을 채웠다. 요컨대 나에게 러셀은 보편적 부정과 일면적 긍정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복잡한 인물인 것이다.
러셀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 나는 『행복의 정복』을 최고로 꼽는다. 가장 유명한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호불호가 갈린다. 철학책치고 재미있고 박력있는 문체로 유명하지만 러셀의 지나친 주관과 삐딱한 편견 때문에 철학전공자에게는 증오의 책이다. 하지만 『행복의 정복』은 그런 불편한 호오가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시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조롱을 당하긴 했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현재의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행복의 정복』은 보편적으로 두루 널리 읽히는 고전이 됐다.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수학, 철학, 과학 등 전문분야를 다루지 않았고 러셀 스스로 작정하고 쉽게 썼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무엇보다 인간의 영원한 화두인 '행복'에 대해 20세기의 대학자가 논증한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의 이목을 끌었다.
이 책이 활력있는 고전이 된 이유는 행복에 대한 저자의 태도에 있다. 러셀은 행복을 정복의 대상으로 본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약속된 미래가 아니고 노력해서 정복해야 할 것으로 규정한다. 행복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불행의 원인을 아는 것이 필수다. 러셀은 책을 크게 '불행의 원인(Causes Of Unhappiness'과 '행복으로 가는 길(Causes Of Happiness)'로 나누어 설명한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일반적인 불행의 원인은 어두운 인생관이나 세계관, 경쟁, 피로, 권태, 질투, 부질없는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의 횡포 등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타파하여 행복으로 이르는 길에 올라타야 한다고 힘있게 논증한다.
행복을 가로막는 여러 원인들을 뭉뚱그리자면 그것은 바로 자기집착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몰입은 자아를 바깥 세계와 단절시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자기도취나 과대망상, 모두가 나만 미워한다는 합리적이지 못한 자기비하 등의 감정은 우리를 자기 안에 가두어 행복이 머물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러셀은 '나'에 대한 관심을 멈추고 되도록 외부 세계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는 것, 그리고 외부의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마흔인 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한 방의 충격이 있는 통찰이다.
행복은 자기 자신의 문제이다. 동일한 환경인데도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행복에 관한 성찰은 일상의 편린이 아닌 삶의 총체성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인생의 비루한 속성은 외면한 채 삶의 디테일 하나하나마다 행복의 공식을 적용하는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신의 내면과 외연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부분을 전체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자아에 구속될수록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 육신이 건강한 사람은 시선을 외부로 향한다. 결국 행복은 학습과 환경이 아니라 자아와 관점의 문제인 것이다.
내 주변에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이 꽤 있다. 오래 사귄 사람들 중에도 여럿 있다. 자존감 자체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자신의 현존을 엉뚱한 방식으로 공격하는 경우라면 곤란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눈쌀이 찌푸려진다. 이는 관계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데 자기도취에 함몰된 사람은 타인과의 대화와 소통을 자아의 실존에 묶어두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은 대화의 기결(起結)을 자기자랑으로 채운다. 하지만 내용은 빈곤하고 맥락은 부재하다. 뜬금없기도 하다. 정작 자기 자신은 모른다. 더욱이 나이가 한참 어린 후배들이 이런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걸 보면 안쓰럽다. 정말 안타까운 건 대개 그들이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친 나르시시적 자존감은 열등감의 역설적 분출이라는 건 심리학계의 오래된 정설이다. 지나친 자기애를 불행의 본질적 요인으로 본 건 시대를 초월한 러셀의 통찰력이다.
행복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역설한 점에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은 건강한 에세이다. 어떻게 보면 뻔한 내용으로 보일 수 있지만 대철학자다운 탄탄한 논리로 자신의 논증을 이끌어간다. 러셀이 책에서 제시한 여러 논거들은 백년 전 사람이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시공을 초월하고 역사를 꿰뚫는 통찰이 있다. 시중의 천편일률적인 자기계발서를 읽을 바에는 러셀의 행복론을 일독하는 게 훨씬 더 유익하다. 읽을 때마다 그 울림이 매번 다른 고전이다. 사상, 종교, 정치와 무관하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보편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