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의 심리학 - 아버지의 부재와 무신론 신앙
폴 비츠 지음, 김요한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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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많다. 시간의 힘은 강하다. 개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독서는 항상 세월보다 앞선다. 인생은 짧지만 양서는 수없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다독가라 할지라도 거대한 책더미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책 중에서 보석과 같은 책을 만날 때는 "인생은 짧고 독서는 길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것이다. 어딘가 구석에 숨어 있어 널리 읽히지 않은 책들 중에서 보물을 발견할 때만큼 큰 희열은 없다.

   폴 비츠의 <무신론의 심리학>은 보석과 같은 책이다. 인파가 없는 해변가 끝자락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진주 같은 책이다. 저자 폴 비츠는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로 무신론자들의 삶을 추적해보니 공통적으로 아버지에게 결함이 있다는 놀라운 논증을 시도한다. 부정적인 아버지상이 무신론을 향하는 정신적 토대가 된다는 것인데 저자의 여러 논거들을 훑는 과정은 상당히 재미있다. 출판사 새물결플러스에서 2012년에 번역·출간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일차적으로 '아버지'와 '무신론' 사이의 연관성을 역사적 천착과정을 통해 논증한 데 있다. 니체, 흄, 쇼펜하우어, 러셀, 사르트르, 홉스, 포이어바흐, 프로이트 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철학자들을 논증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책 속에는 대(大) 사상가들의 가정환경과 유년기의 기록과 증언이 생생하게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신과 종교에 대한 비존재와 불필요성을 역설한 열세 명의 무신론자들의 삶을 추적한다. 그들이 아버지와 어떤 부정적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사상과 철학에서 어떤 방식으로 신을 기각하게 됐는지 힘차게 논증한다.

   저자는 반대사례인 '유신론의 심리학'도 함께 다룬다. 이는 무신론 철학자의 삶과 반대되는 입장에서 저자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한다. 저자는 파스칼, 페일리, 윌버포스, 슐라이어마하, 토크빌, 슈바이처, 바르트, 본회퍼 등 위대한 유신론자들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꼼꼼하게 추적한다. 또한 '정치적 무신론자'를 별도로 추가했다.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 히틀러, 모택동의 어긋난 권력의지의 기저를 파헤치고 그 태동에 파괴된 아버지와의 관계가 놓여있다는 것을 논증한다. 그 외에도 남성과 여성이 자신의 논리적 맥락 위에서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는 점을 논증하기도 한다. 또한 예외사례(드니로)와 개인적 사례를 더해 논증의 넓이를 크게 확보했다.

   이 책의 주제는 간명하다. 신에 대한 이해가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심리학적 표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무의식적으로 신에 대한 부정을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의 파괴된 관계(부재, 결핍, 학대)가 유년기의 가정환경은 물론 훗날의 인격형성을 좌우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해소되지 않아 삶을 둥개고 인격이 고장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존재한다. 가정의 상처는 가정 외에서 치유받기가 대단히 힘들다. 현대 교육학과 사회학의 공통된 목소리다. 저자는 이를 무신론과 아버지의 상관관계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신(神)'이다. 커가면서 부모보다 더 큰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어린 시절에 교제했던 부모에 대한 잔상은 그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절대적 전거이다. 아이의 내적 성품은 오롯이 가정에서 결정된다. 여기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보편적으로 어머니는 자식과 모생애적 친밀성으로 긴밀하게 맺어져 있다. 반면 아버지는 보다 독특하고 난해한 위치를 점한다. 어머니는 존재만으로 친밀하지만 아버지는 꼭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대개 아들에게 더 그렇다. 유년 시절에 아버지의 부재 혹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자아가 굴곡된 이들을 나는 주변에서 수없이 봐왔다. 그들의 분노는 타자를 겨누고 사회를 향한다. 자신의 현존을 갉아먹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치유되지 않는다. 비극이다. 

   '다윗의 서재'에 자주 방문해온 이웃이라면 내가 '가정'이라는 공동체에 녹록지 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가정학을 공부했고 그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해왔다. 관련된 많은 책을 읽었고 주변 지인들과 여러 담론을 쌓아왔다. 나에게 있어 가정은 내 '양심'과 '신앙'과 '책임'을 하나로 집약시킨 단 하나의 천국이다. '가정 행복'이야말로 내 인생 성공의 절대 원칙이자 숭고한 증거이다. 이러한 나의 보수적 가정관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과 가정교육에 기인한 부분이 크다. 그러나 모호하거나 원론적인 선언에 함몰되어 있지는 않다. 이런 배경에서 이 한 권의책은 나에게 무척 소중하다.

   인간은 가정에서 만들어진다. 사회는 개별인간의 본성과 궁극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회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바꿔 말해서 인간은 사회가 구원할 만한 싸구려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부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류사를 빛낸 여러 철학자들의 삶을 추적하여 여기에 대입해보는 연구는 굉장히 매력적인 주제이다. 그 수고의 연장선상에 이 책의 존재성이 놓여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을 다루다보니 개괄적으로 짧게 훑고가는 방식으로 씌어진 점은 아쉽다. 제시한 거대담론에 비해 적은 분량도 아쉽다. 깊이와 디테일보다는 넓이와 개괄성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다. 이를 감안하면 꽤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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