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한 소식을 전한다.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 4부작이 드디어 완간된다는 소식이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최근 공지에 의하면 금월 24일에 마지막 4권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로써 작년 10월에 1권이 출간된 이래 만 1년 만에 새로운 번역본이 완간되었다. 국내 톨스토이 번역의 최고 권위자인 고려대학교 박형규 명예교수의 노고와 열정으로 무려 만이천 매의 원고에 달하는 거대한 분량의 대작이 원전에서 단 한 줄의 누락없이 완전하게 번역된 것이다. 박 교수와 편집자,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오래전 범우사(박형규 역)판으로 이 소설을 읽었다. 아주 오래전이라 소설의 내용과 맥락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작년 허리수술로 한 달간 요양할 기회가 있었을 때 이 소설을 다시 읽고 싶었다. 인간에 대한 환멸과 인생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때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고 삶과 인간에 대한 기존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린 때이기도 했다. 나에게 남은 건 하나님과 가족, 그리고 책밖에 없었다. 인간과 역사 사이의 함수관계를 힘있고 거대하며 입체적으로 묘사한 <전쟁과 평화>의 장대한 한복판에 나 자신을 침잠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박형규 교수가 새롭게 번역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할 수 없이 완간 때까지를 기다려오게 된 것이다.

   <전쟁과 평화>를 포기하고 읽은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이 또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소설이어서 손에 땀을 쥐고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문학평론가 이현우는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세계문학사의 양대산맥으로서 두 작가에 의해 세계문학(소설)은 전부 덮인다"고 말한다. 즉 세르반테스 이후 우리가 '소설(小說, novel)'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모든 개별성들은 두 작가의 작품으로 오롯이 커버된다는 얘기다.

   도스토옙스키과 톨스토이는 소설을 쓰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세계관 자체에 차이가 있다. 전자는 항상 삶을 얘기했고 후자는 끊임없이 죽음을 얘기했다. 전자는 정통 기독교적이며 후자는 변형 기독교적이다. 전자는 시선이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며 후자는 내부에서 외부로 향한다. 전자는 인간 내면의 디테일 속으로 끊임없이 밀고 들어가는 반면 후자는 인간을 넘어 세계와 우주의 거대함 속으로 치고 올라간다. 톨스토이의 기본 세계관은 자아에 대한 무한대의 확장이다. 그 확장 과정에서 보편 인간을 만나고 러시아를 목도하며, 종국적으로 세계(우주) 전체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다보니 나도 모르게 '거대한 것'에 대해 탐구하게 된다. 이는 마음의 넓이와 정신의 크기에 관한 것인데 나 자신과 세계, 그리고 신(神) 사이의 삼각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의 방정식에서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타자와 세계는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신은 얼마나 광대한 존재인가. 그리고 역사에서 그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등. 곧 마흔을 앞둔 나에게 이 장대한 소설이 어떤 울림을 선사할 것인지 자못 흥분된다.

   데카브리스트에 관한 탐구로 계획된,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을 무대로 한, 나타샤의 성장소설이자 장엄한 역사소설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완벽한 번역으로 곧 다시 읽는다. 올겨울은 '전쟁과 평화'의 한복판에 서 있을 것 같다. 지갑을 크게 열어 양장판 셋트로 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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