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작가의 처녀작을 만나는 것은 그 작가의 작품 세계와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관찰이 된다. 더욱이 그 작가의 현재적 나침반이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과 전율을 일으키고 있음을 가리킨다면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작가의 현재적 우주를 과거의 시간대와 함께 음미함으로써 미래의 우주를 기대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전 세계 120개국에서 2,000만 부 이상 판매된 『연금술사』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첫 작품인 『순례자』를 통해 이미 『연금술사』의 감동을 내용적으로 암시한 바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의 길)’를 코엘료 자신이 직접 걷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집필한 『순례자』는 한 개인의 신비롭고 기적같은 경험을 통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들려주고 있다.
책 속에서 코엘료는 자신의 삶과 신앙의 고백을 깊은 사색과 깨달음에서 정제된 주옥같은 언어들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사랑, 열정, 삶, 죽음, 결혼, 광기 등 인간의 가장 중요한 내면적 가치들을 순례의 경험으로 관통하고 있다. 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오만과 편견으로 호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웅숭깊은 아포리즘의 물결은 책장을 넘기는 내 자신의 전두엽과 심장이 철저하게 그의 활자에 구속되게끔 만들었다.
넓디 넓은 우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별들의 존재로 설명된다. 만약 상상할 수 없는 크기로 존재하는 우주가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 대부분이라면 설계한 자의 공간 낭비요, 오만으로 비춰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수없이 많은 항성과 행성과 운석과 성운 등의 다양한 물질로 구성된 <우주>라는 거대 공간의 존재감은 인간의 불가해함을 넘어선 신비함의 극치라 할 만 하다. 더욱이 작은 소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의 존재감 또한 수없이 다양한 인간과 피조물로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그 신비함과 역동성을 인정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은하수는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길을 안내해주죠. 어떤 종교도 모든 별을 한데 모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주는 거대한 빈 공간으로 변해버려 그 존재 이유를 잃고 말 겁니다. 각각의 별, 그리고 각각의 인간은 자신만의 공간과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요.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혜성, 유성, 운석, 성운, 고리 모양의 각기 다른 별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똑같이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상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공간에 흩어져 있는 수없이 많은 각기 다른 존재들이죠. <p. 137>
역시나 코엘료는 <사랑>의 가치를 지나치지 않는다. 에로스니 필로스니 하는 사랑의 다양한 기류는 종국에는 아가페라는 으뜸 사랑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전적인 사랑 아가페는 그 사랑을 경험하는 이를 소멸시킨다. 신이 당신의 아들을 통해 인류의 구속사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던 위대한 사랑은 신이 인간을 바라보는 사랑의 차원과 수준을 농밀하게 보여준다. 수많은 인간들이 아가페의 포로가 되어 있지만, 정작 아가페를 발산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든 것을 태워서 소멸시키는 전적인 사랑 아가페는 인간으로 사는 최고 수준에 대한 신의 질문과 답변을 동시에 자각하게 한다.
당신은 다시 태어나는 법과, 자신에게 잔인해지지 않는 법과, 자신의 사자와 대화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모든 것, 당신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취할 수 있는 모든 유익한 것은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사랑을 체험했을 때만 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p. 156>
코엘료는 자신의 멘토 페트루스로부터 아가페의 두 가지 형태를 듣게 된다. 앞서 언급한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아가페는 신이 아닌 인간에게는 쉽게 행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비록 적용 대상은 다르지만 인간이 행사할 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아가페는 바로 <열정>이라는 것이다. 열정은 하나의 생각이나 대상을 향한 아가페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무언가를 사랑하고 믿게 되면, 자신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더 강하다고 느끼게 되며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신념을 깨뜨리지 못할 거라는 확신에 차 평온함을 맛보게 된다. 더욱이 이런 특별한 힘은 적절한 순간에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아름답고 정제된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찬란한 빛이 발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열정은 대개 우리 삶의 초반부에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시기에 인간은 아직 신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자신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커다란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인형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고 작은 장난감 병정들이 움직이기도 하죠.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씀은, 열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아가페를 두고 한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예수께서 행하는 기적이나 지혜로움, 바리새인, 사도들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에게 곧장 왔죠. 오직 열정에 이끌려, 행복한 모습으로 온 것입니다. <p. 158>
인간은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지나치게 압박되어 있다. 사실 어느 누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죽음에 대한 보다 깊은 사유는 두려움으로 점철된 죽음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어찌 보면 죽음은 우리의 가장 큰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자각은 더욱 우리를 치열하게 살도록 만든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느끼게 되는 모든 욕망과 공포의 실체를 알 때, 진정한 죽음의 모습을 응시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에 관해서는, 우리 모두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죽음이 아가페의 또다른 현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페트루스에게 말했다. 성전에서의 수년 동안의 수련 끝에 사실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었다고. 사실 내가 더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죽음 자체보다는 어떻게 죽느냐라고. <p. 180>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검(劍)을 찾기 위한 순례의 길을 통하여 매우 소중한 진리를 하나 인식하게 된다. 사실 순례의 초반부터 종반까지 그의 관심은 오직 검을 찾는 것에 있었다. 검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 페트루스의 행동은 검을 찾고자 하는 코엘료의 갈증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코엘료가 그토록 알고자 했던 검의 비밀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것이지만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깨달은 코엘료의 삶의 목적 의식이 추동되어 작가로서의 삶과 『연금술사』의 창조가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순례의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내가 알고 싶어했던 것은 오직 검이 숨겨져 있는 장소였다. 왜 그것을 찾고 싶어하는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자문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보상만을 생각하는 데 소진되었다. 무언가를 원할 때는 그 욕망의 대상에 아주 확실한 목정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보상에 대한 유일한 동기였다. 그것이 내 검의 비밀이었다. <p. 311>
코엘료가 선사하는 삶과 우주와 사랑과 열정과 죽음에 대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영혼의 언어들은 내 자신의 현재적 영혼에 빙의(憑依)되게 만들었다. 그가 고민하고 사색하고 갈증했던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이 내 삶과 사랑과 열정과 신앙의 메모장에 오롯이 입력된 것이다. 코엘료의 우주를 목도할 때마다 새삼 느끼는 것은 주옥같이 아름다운 고결한 가치들을 동시적이고 다발적으로 사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의 활자를 좋아하며, 그에 대한 전작(全作)을 선포한 이유가 거기에 있기도 하다.
비범한 삶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명문장인가? 코엘료는 이 문장을 반복적으로 들려주며 자신이 걸었던 산티아고의 험난한 순례의 길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작가로서의 자신의 비범이 평범의 길 위에서 탄생된 것이라는 정제된 겸손을 부연하려는 듯이..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