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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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고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 것, 첫사랑인 아내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것, 아내에게 쓴 편지를 책으로 발간한 것, 그리고 둘이 함께 죽은 것에 대해 내가 처음 알게된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의 과거로 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집에서 구독하는 C신문사의 주말섹션 'Books' 코너를 통하여 신간 리뷰로 만난 것이다. "첫 동침 후 60년... 죽을 때까지 우린 한몸이었소"라는 굵은 명조체의 인상적인 소개 문구는 신문지면의 한 부분에 내 눈이 응시되게끔 만들었다. 더욱이 젊은 연인의 춤추는 사진과 죽음까지 함께 한 실화라는 점이 나를 더욱 자극시켰고, 구독하지 않으면 안될 단계로 이끌었던 것이다. 

  두껍지 않은 책의 첫 장은 앙드레 고르가 아내 도린 케어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한다. 자신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오직 『배반자』에서만 아내를 소개했다고 고백하는 앙드레 고르는 그 작품에서 아내에 대한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고 후회한다. 당신에게로 온통 빨려드는 내 마음이 나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었음을 『배반자』는 보여주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자신의 과오를 곱씹는다. 사랑이야기를 재구성해서 그 온전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며, 함께 겪은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는 헌사를 시작으로 아내를 향한 사랑의 고백을 들려준다. 

  84세의 남편이 스무 해 넘게 불치병과 싸운 83세의 아내에게 보낸 연애 편지인 『D에게 보내는 편지』는 한 남자의 한 여자에 대한 뜨겁고 강렬한 사랑의 심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돈도 없고 국적도 없는 유대인 앙드레 고르의 일상에 영국 여자 도린 케어는 혜성처럼 등장하여 한 남자의 일생을 바꾸어 놓는다. 고르는 도린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부터 마지막 함께 죽는 날까지를 회고하며, 자신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절대적이며 유일한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마치 이 우주에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고르의 관찰자적 카메라는 사랑하는 아내 도린만을 향한 접사모드로 구속되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앙드레 고르는 정말 대단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다양한 면모를 상찬하는 고르의 편지에는 사랑에 대한 열정과 선망이 오롯이 담겨있다. 동시에 자신의 허물과 부족을 토로하는 고르의 고백은 지나치게 간절하고 지극히 솔직하기에 깊은 감동을 준다. 1974년 아내 도린이 근육 위축병에 걸리자 다니던 신문사를 퇴사하고 아내의 병시중을 들기 시작하는 고르는 스무 해가 넘는 기간동안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죽음에 임박해서는 아내가 없는 세상은 텅 빈 세상일 수 밖에 없음을 자각하며 자신의 존재이유가 상실되었음을 고백한다. 결국 2007년 9월, 60년 동안 흔들리지 않았던 둘의 사랑은 동반자살함으로써 고르 자신의 고백을 완성시킨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p. 90>
 

  한결같다는 것, 더군다나 오랜 시간동안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사랑한다는 언어가 소음수준으로 중구난방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는 주변의 상황에 적지않은 부담을 느끼는 내게, 첫사랑으로 시작하여 죽음까지 함께한 고르와 도린의 러브 스토리는 웅숭깊게만 느껴진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내의 옆자리를 지키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가슴이 아팠을까? 아마 고르는 자신의 우주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는 아내 도린의 존재감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은 물론이요, 신의 불꽃을 확인한 남자였을 것이다.  

  마치 영화같은 그들의 러브 스토리에 굳이 빈정거릴 필요는 없다. 또한 동반자살로 종결된 그들의 죽음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도 없다. 에로스의 농밀함이 점점 밋밋해져만 가는 작금의 시대에 서로를 위해 존재했고, 전적으로 사랑했던 그들의 삶은 아름답고 부럽기만 하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덞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p. 6>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인가? 이런 언어를 발산할 수 있는 남자는 물론, 이를 선사받은 여인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과연 나는 앙드레 고르의 고백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감성과 열정을 갖고 있는 남자일까? 그처럼 자신의 우주를 전부 채울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날 수 있을까? 나를 불태우고, 소멸시키며, 신의 불꽃을 발현시킬 수 있는 갈비뼈에 대한 목마름, 스물아홉의 나이를 넘어가는 한 젊은 남자의 가슴이 왠지 모르게 두근거린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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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 2011-09-3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