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 행운의 절반
스탠 톨러 지음, 한상복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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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이가 들어가면서 확실히 깨닫는 게 한가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십 대 중반 전까지는 돈이나 능력, 리더십, 자신감 등이 좋은 삶을 이루기 위한 일차적 요소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의 연차가 늘어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난관에 자주 봉착하면서 행복한 삶의 필요충분조건은 바로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삶의 진리를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부(父)와 모(母)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완성된 우리의 형체는 10개월 동안 모성의 몸 속에서 발육기간을 거친 후 때가 되어 자궁문을 박차고 세상에 등장한다. 엄마의 몸 속에서 성장하는 10개월의 작은 우주는 사회적인 동물로의 학습과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어미로부터 공급받는 영양분과 심리적 영향을 수용받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수동성에 구속된 약한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10개월이 지나 어미의 자궁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는 수많은 인간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인간, 그 첫 발을 디디게 되는 것이다. 

  작년 한 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 중 하나인 『배려』의 저자 한상복 씨는 새로운 자기계발 우화를 들고 나타났다. 스탠 톨러가 집필하고 한상복 씨가 옮긴 『행운의 절반 친구』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잔잔한 우화 속에서 그려놓고 있다. 삶에서 쉽게 만나고 끊임없이 교제하는 <친구>라는 존재를 주제 삼아 진정한 친구의 의미와 바람직한 대인관계의 모범이 어떤 것인지를 얘기하고 있다.  

  상당히 『배려』틱하며, 지나치게 『청소부 밥』스럽다. 광고회사의 광고팀 팀장 조 콘래드가 커피숍 주인인 맥 달튼을 만나면서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며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삶의 소중한 진리들을 들려주는 멘토를 만나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청소부 밥』의 구조를, 이기주의를 버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과 정성으로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있어서는 『배려』의 내용을 답습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전형적인 '위즈덤하우스'식의 인간계발우화는 책의 구조와 내용의 측면에서 적지않은 진부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나 <인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하려는 메시지가 내용의 진부함을 압도하기에 식상한 느낌은 금새 소멸된다. 

  책의 막장을 덮은 후 내 주변을 돌아본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친구가 아닌, 심장을 나눌 수 있는 진심어린 친구가 과연 내게 몇이나 있을까를 생각한다. 조건과 효율의 개념이 아니라 진심과 평안의 정의로 소통하는 친구, 전두엽과 이성이 아니라 심장과 감성으로 교제하는 친구, 그런 친구의 숫자를 카운팅한다. 더욱이 과연 나 자신은 내 베스트들에게 어느 정도의 이타성을 갖고 대했는지를 반추한다. 사람이 소중한 것을 알고, 좋은 친구가 좋은 나를 만드는 것을 알며, 성공한 자의 공통분모는 사람이었다는 진리를 이미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 내가 과연 이를 내 삶 속에서 얼마나 <실천적>으로 누리며 살아가는지를 계속해서 사유한다.  

  최근 직장을 비롯한 수많은 행동반경에서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들을 자주 발견한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나친 이기심의 극대화를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개인의 이기심이 다른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압박하는 모습을 볼 때에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혐오스럽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가식과 위선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들로 인해 지구는 병들고 초라해졌다. 자신의 소우주 안에 철저하게 구속되어 비겁하고 비열한 선택과 결정을 하는 이들로 인해 우주의 넓이는 더욱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일 지 모를 일이리라.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돌아본다. 

   1980년 대에는 '지능지수(IQ)'가, 1990년 대에는 '감성지수(EQ)'가 부각되는 사회였다면, 21C에 이른 작금의 2000년 대에는 '의사소통지수(CQ: Communication Quotient)'와 '공존지수(NQ: Network Quotient)'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남과 인연을 맺으며 그 관계를 잘 꾸려나가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각광받고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다시말해 작금의 사회는 의사소통이 뛰어나고 공존 능력이 비범한 자에게 사랑과 기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요즘같은 정보통신이 발달된 복잡다단한 사회에서는 거미줄처럼 얽히는 인간 네트워크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친구를 둘 것인가보다 얼마나 좋은 친구를 둘 것인가를 고민하는 친구철학이 필요하다. 따뜻하게 공감하고, 따뜻하게 소통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런 친구가 되어가는 것, 그것이 돈과 명예보다 훨씬 더 소중한 행복의 원리임을 되새기며, 핸드폰에 저장된 친구 목록을 한 명, 한 명씩 확인하는 여유를 가져본다. 그리고 행운의 절반으로서 명확하게 현현(顯現)하는 <친구들>의 웅숭깊은 존재감을 재확인한다. 
 

외로움은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따지고 계산하는 데 익숙한 우리들이..   <p. 57>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수록 우리는 더욱 강해진다네."   <p. 237>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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