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조성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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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1년째를 맞고 있다. 당초 예상을 깨고 장기전에 들어간지 오래다. 출구도, 끝도 보이지 않는다. 애꿎은 젊은이와 민간인만 희생되고 있다. 인명피해는 물론 곡류와 가스 값이 폭등하여 세계 경제 침체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반도체 공급망 대란과 함께 작년 한 해 가장 큰 국제 뉴스가 됐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에 대한 세계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다. 국내에서도 북한, 중국,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호감 국가가 됐다. 러시아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러시아에 대한 내 인상은 복잡하고 입체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푸틴이 지도하는 러시아'에 대한 호감은 매우 부정적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全體主義, totalitarianism)를 혐오한다. 현재 지구상에서 북한, 중국과 함께 가장 전체주의적인 나라가 러시아다. 하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러시아 문학만큼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푸시킨(푸슈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 19세기 러시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인(文人)을 여럿 배출한 곳이다. 환언하자면 나에게 러시아는 스탈린과 푸틴에 의해 혐오스러운 나라이면서 동시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로 인해 사랑스러운 나라이다. 이 아이로니컬한 이질감이 최근 나를 더 러시아 문학에 빠져들게 했다.

저자 이현우의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는 제목 그대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강의한 책이다. 저자가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 것인데 러시아문학 전공자답게 깊이 있는 분석이 백미다. 19세기 초 푸시킨부터 19세기 말 체호프까지 총 7명의 작가를 훑는다. 저자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푸시킨으로 시작해 체호프로 끝맺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체호프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20세기를 여는 작가가 고리키라고 안내한다. 7명의 작가를 소개한 뒤 작가의 대표 작품을 한 개씩 리뷰한다. 도스토옙스키만 특별히 두 작품을 실었다. 작가의 필명 '로쟈'에서 알 수 있듯이 도스토옙스키를 친애하는 작가의 사심이 담긴 듯 보인다.

저자에게 러시아는 매력의 아이콘이다. 동시대에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를 한꺼번에 배출한 나라가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으랴. 러시아가 태동적·역사적으로 왜 서구식 개인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설명한다. 19세기 모든 작가가 관통하는 서구 유럽주의와 러시아주의 사이의 긴장과 간극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 톨스토이가 러시아적이며 전 세계적인 가치를 대변한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오직 러시아적인 작가로 남았다고 분석한 대목은 흥미롭다. 거대한 러시아 문학에 진입하려는 독자에게 입문서 역할을 하는데 적확한 책이다.

내가 오래전 출간된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앞서 언급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준 당혹감 위에서 다시 한번 제대로 러시아 문학을 톺아보기 위함이다. 러시아 문학은 나라의 땅덩어리 못지않게 방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작품은 세르반테스 이후 올곧게 이어져온 소설이란 장르의 규격을 초과하는 거대함으로 세계 문학사에 웅장함을 선물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분량이지만 막상 읽고 난 후에는 깊은 감동에 빠져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기념비적인 소설인 것이다. 

최근 나는 '거대함'이란 주제에 깊이 천착해 있다. 일터에서 사람과 부딪히면서, 가정에서 머리가 커지는 아이들을 대하면서, 교회에서 신앙의 일에 헌신하면서 '인간의 크기'에 대해 숙고하는 중이다. 생뚱맞겠지만 나이가 드니 이 숙고가 더욱 간절해짐을 느낀다. 마음의 크기가 넓다는 건 무엇일까. 한 인간의 내적 스케일과 그 사람의 언어는 존재론적으로 어떤 함수관계에 놓인 걸까. 나이가 든다는 것과 내면의 그릇이 커진다는 건 항상 비례하는 걸까. 하루하루 고단하고 남루한 일상을 버티어가면서 나 자신의 '존재의 크기'에 대해 사유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절실하다. 그리고 흥미롭다.

톨스토이의 걸작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는 나에게 청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가장 큰 지적·정서적 영감이었다. 최근 머리가 나빠진 탓인지 스토리 라인도 헷갈리고 있지만 말이다. 두 작품 외에도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의 대작을 얹어볼 생각이다.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로 시작해 볼 요량이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OTT 영상에 빠져 있는 나 자신을 목도한다. 이 직시(直視)를 한탄하며 다시 책으로, 고전 속으로, 러시아 문학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항시 그랬듯이 고전은 성경과 함께 내 지성과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 절대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그 심연으로 여행하려 한다. 러시아 문학의 다부진 찬란함 속으로.

로쟈 이현우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는 이런 나에게 좋은 애피타이저다. 러시아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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