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권력 도시 - 일본 식민 지배와 공공 공간의 생활 정치
토드 A. 헨리 지음, 김백영 외 옮김 / 산처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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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는 것 없었지만 어쩐지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제목부터 어떤 방식의 논의를 할 것인지 알 것 같아 읽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예상대로 미셸 푸코의 영향 속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를 인상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토드 A. 헨리의 <서울, 권력 도시>.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19101945) 서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 왕조의 수도였던 한양은 서서히 일본적 근대의 전시장으로 전환하면서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식민 지배를 위한 새로운 무대로 만들어졌다.

서울의 공공 공간 중에서도 특히 경복궁 터, 남산의 신토(神道) 신사, 그리고 근린 위생 캠페인의 장소 등은 식민지 조선인들을 충성스럽고 근면하며 공덕심을 지닌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 만들려는 폭력적이고 논쟁적인 '동화 정책' 과정의 핵심적인 현장이었다.

따라서 식민지 시기 서울의 이런 공공 공간의 분석을 통하여, 일제의 식민지 동화 프로젝트가 전개된 구체적 양상을 정신적(spiritual), 물질적(material), 공중적(civic)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식민지 근대'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당시 서울이라는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이 보고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어 흥미롭다.”

 

강점기 시대를 다루는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해외 학자의 글을 접한 건 처음이었고, 그래서인지 조금은 다른 시선을 혹은 놓치고 있는 부분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다만, 저자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쩐지 달리 볼 수 있다는 입장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저자의 논의를 아주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충분히 수긍하게 만들도록 생각을 정리해주고 있다.

 

토드 A. 헨리의 서울, 권력 도시: 일본 식민 지배와 공공 공간의 생활 정치(Assimilating Seoul: Japanese Rule and the Politics of Public Space in Colonial Korea, 1910-1945는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19101945) 서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 왕조의 수도였던 한양은 서서히 일본적 근대의 전시장으로 전환하면서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식민 지배를 위한 새로운 무대로 만들어졌다. 서울의 공공 공간 중에서도 특히 경복궁 터, 남산의 신토(神道) 신사, 그리고 근린 위생 캠페인의 장소 등은 식민지 조선인들을 충성스럽고 근면하며 공덕심을 지닌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 만들려는 폭력적이고 논쟁적인 동화 정책과정의 핵심적인 현장이었다. 따라서 식민지 시기 서울의 이런 공공 공간의 분석을 통하여, 일제의 식민지 동화 프로젝트가 전개된 구체적 양상을 정신적(spiritual), 물질적(material), 공중적(civic)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식민지 근대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당시 서울이라는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이 보고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어 흥미롭다.”

 

저자는 권력의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통치하려고 했는지 살펴보고 있고, 무단통치-문화통치-병참기지화의 과정 속에서 지배의 방식을 그리고 그에 대한 적극적-소극적 저항 혹은 아예 그게 먹혀들지 않는 모습까지 여러 가지를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서울의 역사를 다룬 해외 연구서로서는 단연 독보적인 학문적 경지를 개척하고 있으며, 20세기 한국사를 다룬 해외 한국학 저서들 중에서도 단연 빼어난 학술적 성취를 달성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뿐만 아니라 서울학이나 한국학의 협소한 범위를 넘어서 근현대 일본이나 동아시아의 사회·문화사나 도시·지역사 연구자에게도 큰 지적 자극을 주고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다년간 국내외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뜨거운 이슈가 되어온 식민지 근대문제를 재조명하는 독창적인 시각을 제공하고 있어, 연구자들은 물론 양식 있는 일반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역사의식을 고양시킬 것이다.

이 책에서는 무단통치-문화통치-병참기지화(또는 황민화)’로 이어지는 통념적인 정치사적 시기 구분을 깨고, 1920년대 중반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설정하는 도시사 혹은 사회·문화사적 관점에서 새로운 시기 구분법을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1910년에서 1925년까지, 1925년에서 1937년까지, 그리고 1937년에서 1945년까지 등 이 세 시기를 경성의 공공 공간을 탐사하는 시간적 좌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의 주된 연구 대상은 정책이나 추상적인 제도가 아니라 도시민들의 삶이 펼쳐지는 길거리, 전시장, 마을, 집 안과 같은 일상생활의 현장, 살아 있는 공간이다. 특히 저자는 식민지 시기에 지배 권력의 동화주의 프로젝트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의 공공 공간이 새롭게 출현했으며, 그 공간에서 다양한 도시적 주체들이 마주치고 뒤섞이는 접촉 지대(contact zone)’가 형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공공 공간에서 벌어진 접촉의 구체적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침울했던 민족사의 암흑기’, ‘일제의 억압과 수탈’, ‘친일과 반일의 유혈적 드라마로 통념화되어 있는 지배와 피지배의 식민지 시기 역사적 서사를, 각양각색의 인생 군상들이 빚어내는 예측불가의 왁자지껄한 스펙터클로 그려낸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총독부 당국자들, 재경성 일본인 유력자들, 친일파 조선인들, 민족주의 지식인들, 잇속에 밝은 각종 장사치들과 모리배들로부터 게이샤와 기생들, 샐러리맨과 소시민들, 학생들, 빈민들, 고아들, 소매치기와 날품팔이꾼 등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저자는 이 다양한 주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이들이 애써 의식적으로 연출한 표면적 행태의 이면에 감춰진 그들의 주관적 체험과 내면 정서까지 포착해내고 있어, 역사 연구서의 성격과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역사 교양서의 흥미로운 시각에서 스토리텔링이 발휘되고 있다.”

 

간단하게 어떤 식으로 조선이 쇠망하였고 일본의 지배가 이뤄졌는지 알려주면서 정신적 물질적 동화 정책과 청결과 위생 개선에 관한 정책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준 다양한 영향과 반응에 대해서 여러 방식으로 살펴보고 있어 그 시대를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식민지 동화 프로젝트라는 하향식 일방통행 정책이 결코 의도대로 관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동화 프로젝트에 의해 창출된 공공 공간에서 이루어진 실제 양상은 제각기 다른 속셈과 아비투스를 지닌 각계각층의 다양한 주체들이 속고 속이는 역동적인 한 편의 다중상황극을 연출하고 있는데, 이는 식민지 동화주의 정책이 그 구체적인 실행에 있어서는 대개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식민지 통치성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나게 입중하고 있다.

이 책은 광복 이후 반공반일을 국시로 하여 등장한 대한민국 정부가 그들의 통치 이념을 현대 서울의 도시공간에 새겨 넣는 과정에서 벌인 (그중 일부는 여전히 진행형인) 국가주의적 프로젝트들이 과연 일본 식민주의자들이 한양경성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저지른 만행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혹은 얼마나 닮은 것인지 성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 세기 한반도가 경험한 격동과 풍파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그것이 현대 서울에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심대하고도 복합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문제 제기가 새로운 것은 아닐 수 있지만 글로벌 초거대도시로 성장한 현대 서울의 심장부에 도사리고 있는 유형·무형의 식민지 유산의 문제를 예리하게 겨냥하여, 친일과 반일, 식민지 수탈론과 근대화론과 같은 익숙한 선악 이분법적 역사관을 뒤흔들고 있다.”

 

또한, 식민지 시대에 있었던 통치의 방식이 어떤 식으로 광복 이후에도 비슷한 식으로 반복되었는지, 다른 점과 닮은 점에 대해서도 알아봄으로써 단순히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닌 좀 더 고민해보며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여운을 주기도 한다. 그런 점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1부 경성 건설하기: 식민지 수도의 불균등한 공간>에서는 조선총독부가 어떻게 한양/황성이라는 왕도(王都)/제도(帝都)를 일본의 식민지 수도로 전환시켜갔는지 그 궤적을 추적한다. 초기 식민지 계획자들은 대한제국 시기(18971910) 지도자들에 의해 추진되었던 근래의 변화를 무시하고, 메이지 일본(18681912)에서 끌어온 도시 개혁이라는 자신들 나름의 재공간화 프로그램을 추구했다. 하지만 사람과 상품의 순환을 용이하게 하려고 도로를 격자로 만들고 로터리를 설치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이 도시의 원래 동맥 구조에서 그저 작은 부분만을 바꿨을 뿐이다. 이러한 시구개정(市區改正)의 시도는 공익의 추구라고 치장되었지만 토지 몰수라는 손이 많이 가는 정책을 필요로 했으며, 공덕심을 지닌 주민들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일련의 노력을 깎아내렸다. 1장 후반부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의 도시계획운동이 토지구획 정리와 수익자부담금과 같은 최신 방법을 도입하는 한편, 조선인 거주자와 같은 새로운 대상에 주목하면서 어떻게 도시계획의 범위를 넓혀갔는지를 검토한다. 하지만 재정적인 제약과 계속되는 저항으로 인해 경성은 고도로 불균등한 방식의 발전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으며, 순환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논리 또한 이 도시의 주요 간선도로만을 관통하는 데 그쳤다. 다른 식민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간선도로는 조선총독부의 과잉된 주권적 권력을 구현하게 되었는데, 이는 특히 태평로를 따라 늘어선 건축양식들을 통해 잘 드러난다.

<2부 정신적 동화: 남산의 신사와 제전>에서는 신토 신사와 이들의 문화적 활동이 천황가에 대한 충성의 감정을 주입하는 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최근까지도 식민지 신사 연구자들은 1937년의 신사참배 강요가 그 이전 시기에도 특징적이었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런 전시(戰時) 현상에 대해서, 식민지 신토의 내적 모순들을 이용하려는 사회적 행위자와 문화적 대행자들 사이에 갈등과 경쟁이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전개되어왔으며, 그 역사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본다. 특히 정신적 동화 프로젝트가 1925년 조선신궁이 건립되기 이전 경성의 유일한 신사 건축이었던 경성신사의 일본인 관리자들이 고안한 잠정적인 조치에서 시작된 것임을 보여주는데, 이들이 이런 조치를 마련한 것은 총독부의 동화주의 레토릭을 따라서라기보다는 이들의 제전(祭典)에서 식민지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컸음이 드러난다. 1925년 이후에야 식민지인 주민들은 참배를 위해 조선신궁을 방문했다. 하지만 많은 조선인들은 여전히 숭배의 장소보다는 관광의 장소 정도로 취급했다. 2장 후반부는 신사에 대한 이와 같은 색다른 관행이, 갈수록 경쟁적으로 되어가는 신토 정치의 분위기를 어떻게 반영하게 되는지 밝혀낸다. 총독부가 어떻게 규모가 작은 경성신사의 대체물로 남산 위쪽에 매머드급 신사인 조선신궁을 설치했는지를 묘사함으로써, 이 두드러진 전환을 설명한다. 경성신사의 일본인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이와 같은 유례없는 도전에 맞서, 종속적인 조선인들을 자신들의 제전에 훨씬 더 빈번하면서도 훨씬 더 선별적으로 포섭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식민 국가에 대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ㆍ강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몇 가지 새로운 전략들 중 하나였다. 이처럼 신토 신사들이 식민화된 주체들을 일본 혼의 이상화된 형식을 구현하도록 이끌었다.

<3장 물질적 동화: 경복궁과 식민지 박람회>에서는 옛 경복궁 터(조선총독부 건물이 신축된 터이자 두 차례의 중요한 박람회가 개최된 장소)를 통해 물질적 동화를 검토한다. ‘물질적 동화라는 용어를 통해 식민지 관료들이 제국 일본의 내부에서 조선 경제의 불균등한 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박람회는 조선인 방문자와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근대적 진보를 드러내 보일 뿐 아니라, 근면, 성실, 검소와 같은 부수적인 윤리를 이들에게 심어주는 데에도 중심 역할을 했다. 가령 1915년의 박람회에서 주최자들은 서구 건축물과 기계라는 보편적인 표현 양식을 통해 근면성의 이미지를 고취시켰는데, 이들 서구 건축물과 기계는 시대착오적인 궁궐의 공터와 신중하게 병치됨으로써 강력한 발전의 상징으로 작용했다. 물론 일부 교육받은 조선인들은 이런 근대화의 비전을 제대로 읽어내고 조심스레 수용할 수 있었지만, 엘리트가 아닌 이들 중에서는 박람회를 오락과 상업의 흥미로운 세계와 결부시키려는 경향이 훨씬 더 강했다. 1929년 대공황 기간에 개최된 조선박람회는 원래는 조선총독부 시정(施政) 15주년을 기념해서 1925년에 열릴 계획이었던 행사였는데, 식민지의 발전상을 전시하여 관객들에게 감명을 주려는 의도가 강했다. 동시에 주최자들은 한반도의 발전이 제국의 경제 내부에서 보다 제대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랐으며, 이를 범아시아 블록과 같은 자급자족적 형태로 생각하려는 패턴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형성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식민 모국에서 온 일본인 관광객을 매혹시키려는 목적으로 디자인되었던 이 1929년 박람회의 하이라이트는 행사장 중앙 대로를 따라 늘어선 전시 홀들이, 이를 만든 건축가들이 순수 조선 스타일이라고 부르길 좋아했던 양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궁궐과 흡사하게 만들어진 이러한 구조물들은 새로운 동서(東西)의 축을 만들어냈는데, 이 축은 남북 방향이었던 궁궐의 원래 공간성을 바꾸어버렸다. 이처럼 뻔뻔스러운 경복궁의 재공간화와 모조품 미학의 재창조는 이를 식민지 폭력이자 문화통치의 책략이라고 규탄했던 민족주의 논자들이 거세게 비판했다. 이들의 날카로운 비평에 따르면, 이런 조선 스타일을 수긍하려는 움직임은 부의 분배에 관한 차별적 논리를 은폐하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일본인 실업가들과 결탁한 조선총독부가 지휘ㆍ조율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박람회는 농촌의 가난한 조선인들에게 이처럼 큰 비용이 드는 기념행사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고 심지어 강요하기도 했으며, 이는 식민주의의 빈곤화 효과를 악화시킬 따름이었다. 산업박람회가 이들에게 식민지적 진보의 착취적 논리를 받아들이도록 북돋우었다.

<4장 공중적 동화: 주민 생활의 청결과 위생>에서는 경성 주민들의 삶에 주목하면서, 계절별 정화(淨化) 및 기타 지역 캠페인들이 개인 신체의 건강을 어떻게 보다 큰 공동체의 건강과 연결시키려고 지향했는지 살펴본다. 특히 위생 규칙과 관련한 경찰의 단속 활동과 값비싼 서양의학 처방 및 그것의 환영받기 어려운 결과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초기 경성(19101915)에서 공중위생이 성공적인 체계로 정착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했다. 일본인 식자층들은 한때 경성을 조선의 똥의 수도라고 경멸했는데, 실제로 경성은 1920년대 후반부에서 1930년대 초반 사이 제국의 병든 도시라는 수치스런 명성을 떠맡고 있었다. 당시의 의학 리포트를 통해 지금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재조선 일본인들은 이른바 비위생적인조선인들보다도 훨씬 더 전염병 발병률이 높았으며, 치사율도 훨씬 높았다. 또한 이 장에서는 위생적 근대성을 둘러싸고 일본인 식민주의자들과 조선인 민족주의자들이 경합하면서 추진된 의제들이 어떻게 도시 위생과 공중 복리라는 정치적으로 비난받는 문제와 더불어 수렴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식민주의자와 민족주의자 어느 쪽의 캠페인도 이 병든 도시를 치유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서로 결합하여 경성의 거주민들을 가로질러 권력의 그물망을 더 넓게 펼치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하층민들조차도 이 값비싼 그물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5장 황국신민화: 전시체제기 도시 공간의 재편>에서는 태평양전쟁(19371945)의 개시와 더불어 이처럼 서로 달랐던 동화의 프로젝트들과 장소들이 한데 뭉쳐지면서 이 도시의 공간성에서 유래 없는 순간을 낳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천황가에의 충성을 확인하려는 새로운 압력들은 공공 공간의 사용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내며,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전시 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 예컨대 갈수록 군사화되어가던 남산 신토 신사의 엄숙한 공간적 영역은 가미다나(神棚. 집 안에 두는 작은 신사)를 설치하고 이세신궁의 부적(符籍)을 보급함으로써 조선인 가정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이러한 수단들은 물론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 했지만, 조선인들이 천황이 주도하는 전쟁에 더욱 강력하게 일체감을 갖도록 강요했다. 1940년의 기념행사는 일본국 탄생 26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무대이기도 했는데, 조선인들을 고취시켜 이들 대다수가 후방에 남아 있더라도 태평양전쟁의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것을 독려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루어진 성화(聖火) 봉송이나 대경성박람회 같은 이벤트들은 대동아 신민이라는 상상된 공동체의 창출을 꾀하고 있었다. 한반도 전역을 가로질러 여러 장소에서 열린 이러한 제의들은 전시(戰時) 제국이라는 압축된 지형학(topography)을 창출해냈다. 이를 통해 식민지 인민들로 하여금 그들이 속한 지역과 가족에 대한 소속감을 제국 신민으로서의 전망에 종속시키도록 유도했다. 군대와 긴밀한 관련을 맺은 일부 조선인은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을 전환하기 시작했지만, 말기의 식민 국가는 그동안 진행되어온 동화 프로젝트의 완성에 도움이 될 법한, 민족, 계급, 그 밖의 다른 차이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일은 추진하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들은 말기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의 다민족적 수사학 속에 전략적으로 재통합되어갔지만, 점증하는 죽음의 위협이 엄습하는 전쟁의 최후 몇 년에 이르기까지도 이러한 차이는 황국신민화의 작동방식을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했다.

<에필로그 제국의 소멸 이후: 식민 이후 서울의 공공 공간 다시 만들기>에서는 식민 지배 35년 이후 1945년에 해방을 맞고 한국인들이 식민지 시기 경성의 대다수 상징 공간들을 '부분적으로는 일본인 당국자들로 하여금 남산의 조선신궁을 파괴하도록 만들고, 그것을 민족의 반식민주의적 기념물로 대체하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다시 만들었는지에 대해 다룬다. 해방된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1995년에 식민 통치 시대를 상기시키는 옛 총독부 청사 건물을 제거했다. 그전까지 이 건물은 중앙청(19481986)과 국립박물관(19861995)으로 사용되었다. 총독부 청사가 철거된 자리에 오늘날에는 절반쯤 복원된 경복궁이 들어서 있는데, 이것은 값비싼 탈식민화 프로젝트의 산물로, 복원 공사는 2030년이나 그 이후에 완성될 예정이다. 이 궁궐터는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조선왕조의 상상된 영광을 상기시키는 데 그 주된 목적이 있다. 그럼으로써 이 공간은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마찬가지로, 경쟁하는 두 개의 체제로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용도로도 부분적으로는 사용되어왔다. 현대 서울의 설계자들은 이러한 낭만적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서 제국 일본의 당국자들이 조선의 왕도(王都)/제도(帝都)를 일본적 근대성의 전시장으로 폭력적으로 재창조하려고 했던 시기를 계속해서 건너뛰려고 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한반도의 전근대사의 흔적을 최소화하려 했던 식민지 시기 그들의 선배들의 시도와 닮아 있다.“

 

옮긴이의 글을 통해서 이 책에 대해 너무 잘 설명해주고 있어 특별히 덧붙일 건 없을 것 같다. 식민지 시대에 관해 조금은 특별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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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 - 20주년 개정판
승효상 지음 / 느린걸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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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1996년 출간된 승효상의 첫 저서 <빈자의 미학>은 건축가 승효상의 자기 선언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정신이다. 1996, 대한민국은 성장팽창으로 내달리던 시기였다. 그런데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을 통해 비움절제라는 시대를 앞선 화두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이 발표한 빈자의 미학이 얼마나 큰 화제가 되었고 울림이 있었는지는 지금으로선 정확하게 알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책에 적혀져 있는 (아래에 있는) 내용대로라면 꽤 여파가 있었던 것 같다.

 

”‘빈자의 미학은 건축가 승효상과 동의어이다. 1996년 출간된 승효상의 첫 저서 빈자의 미학은 그가 지난 20여년 간 일관되게 말하고 실천해온 건축 철학의 밑그림이자 동시에 삶의 선언이었다. 건축학도들의 교과서이자 인문독자들의 숨은 고전인 책. 빈자의 미학은 건축서로는 드물게 15천 부 이상 판매되었고, 절판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 중고서점에서 10만원을 호가하며 경매에도 등장한다. 책을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저자인 승효상에게는 한 권도 없는 희귀본이기도 하다. 초판을 발간했던 미건사에는 찢어진 책이라도 구하고 싶다라는 문의도 이어졌다. 출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복간 자체가 뉴스인 책”“이라는 여러 일화들 때문에 어떤 권위가 느껴지기도 한다.

 

100쪽 분량의 얇은 부피지만 일반적인 책의 구성과는 조금은 다른 모양새라 짧게라도 거기에 대해서 짧게라도 말해야 될 것 같다. ”텍스트는 한글과 영어가 같은 면에 펼쳐져야 한다는 의도는 어떤 생각 속에서 나온 것일까? 국내만이 아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혀지길 원했던 것일까? 그것 보다는 아무래도 해외에 방문하거나 뭔가에 참여했을 때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을 잘 소개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마치 다짐과도 같은 혹은 독백과도 같은 저자의 글을 읽으며 조금은 불편한 기분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너도나도 졸부의 꿈을 이루려 염치도 버리고 정서도 버리고 문화도 버리고 오늘날의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냈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고,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더 많이 걷고 나눌 수밖에 없는 건축이 좋은 집이다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저자의 입장에 곧장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선언의 성격이 강한 글이고 짧은 글 속에 깊은 고민이 느껴져 빨리 읽히지만 어쩐지 속도를 늦추며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좀 더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것은 건축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삶의 혁명선언이다. 사람은 선언으로 산다. 그의 첫마음이 써낸 결정적인 말. 그것은 생을 건 약속이다.”라고까지 거창하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뭔가 큰 결심을 느끼게 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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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기와 거주하기 - 도시를 위한 윤리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임동근 해제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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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검색하던 중에 알게 된 짓기와 거주하기는 제목만 봐서는 뭘 다루는지 아리송하게만 느껴지지만 도시와 공간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척 흥미롭게 읽혀질 것이다. 그런 분야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대 아테네에서 21세기 상하이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도시에 대해 사유하고 제안한다. 파리, 바르셀로나, 뉴욕이 어떻게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면서 제인 제이콥스, 루이스 멈포드를 비롯하여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등 주요 사상가들의 생각을 살펴보는가 하면, 남미 콜롬비아 메데인의 뒷골목에서 뉴욕의 구글 사옥, 한국의 송도에 이르는 상징적 장소를 돌아다니며 물리적인 도시가 사람들의 일상 경험을 얼마나 풍부하게 하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킬 수 있는지, 혹은 그 반대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박학함에 놀라게 되지만 특유의 글쓰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읽게 해주고 있다.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그것을 곧바로 사회학적 이론과 사회 현실의 논의로 연결하며, 수시로 화제를 바꾸면서 좌충우돌하는 것 같지만 어느새 핵심을 말하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 글재주고 여러 논의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다루고 있어 편한 기분으로 글을 읽게 해준다. 다만, 다루는 영역이 무척 방대하고 여러 사상가들과 별의별 사례들이 순서 없이 이어지고 있어 뭘 얘기하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놓칠 수도 있으니 너무 느슨하게 읽진 말아야 할 것 같다.

 

건설되는 물리적 도시인 ville’과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정신적 도시 시테cite’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주되어 있는 이 책에서, 세넷은 넓고 깊은 지식과 섬세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닫힌 도시, 즉 건축적 분리와 사회적 불평등이 서로를 강화해주는 도시가 어떻게,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살펴보고, 그 대안으로 열린 도시를 제안한다. 열린 도시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받아들이며 복잡성을 다루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기후위기 같은 단기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위협과 불확실성에 맞서서도 더 잘 회복될 수 있다.”

 

도시와 공간에 대해서 기초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다루고 있어 그쪽 영역에 관심이 있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잘 다루지 않는 부분도 충실히 살펴보고 있어 폭넓은 시야에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입장이 확고한 점도 있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불편한 혹은 반박하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읽게 될 것 같다.

 

세넷은 지어진 것the built과 사는 것the lived, 즉 빌과 시테 사이의 균열이 세 가지 이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첫 번째는 도시의 팽창, 고속 성장이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도시지역 인구비율은 92%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도 55%,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며, 이 비율은 계속 증가하여 2050년이 되면 세계인구 10명 중 7명이 도시에 살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가 가장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상대적으로 저개발 상태였던 인도, 중국, 나이지리아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인데, 이들 지역의 델리, 상하이 같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폭발적 성장과 그에 따른 몸살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속 성장을 이루어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4)

두 번째는 타자의 배제다. 20151, 독일 드레스덴에서 페기다(PEGIDA)라는 반이슬람 단체가 시위행진을 했다. 이들은 우리 문화의 보존을 위해 독일에서 이슬람의 추방을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드레스덴 외의 대다수 지역에서는 반페기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더 많았고, 1년도 채 안 되어 독일은 시리아 내전에서 탈출한 난민들을 형제로서 맞았다. 이제 통합이 남았다. 세넷에 따르면 난민들에게 통합은 실제적으로는 구원이지만 경험적으로는 상실인데, 이들이 새로운 사회에 통합되어 이웃이 될 수 있을까? 난민 같은 종교적, 인종적, 민족적, 계급적 타자를 오늘날의 도시는 공간적으로 분리시킨다. 우리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다.(5)

세 번째는 테크놀로지 이슈이다. 테크놀로지는 삶을 부드럽고 매끈하게 만들어 타자의 무게를 가볍게 해준다. 꿈의 직장을 넘어 신의 직장이라고까지 불리는 구글. 세넷은 구글 사옥을 둘러보며 세탁소도 있고, 의사를 만날 수도 있으며, 체육관에서 체력 단련도 할 수 있는 이런 자족적 공간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묻는다. 이런 건축 양식은 주변 지역의 주택 가격과 임대료를 올려 젠트리피케이션을 조장하고, 회사가 외부의 자유 시장을 파괴할지라도 내부에서는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교환을 자극하도록 지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아무 저항 없는 내향적 환경이 정말로 창조성을 고무할까? 세넷은 마찰 없는 사용자 친화적이라는 가치가 사용자들에게 어떤 정신적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한국의 송도와 브라질의 쿠리치바 등 두 종류의 스마트 시티를 비교하며 보여준다.(6)

이것이 세넷이 읽은 오늘날의 도시와 속하지 않는 곳을 헤매면서 스스로를 정착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184)인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인생의 끝자락에서 낙관론자가 되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그게 정말로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말한 세넷은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에게 열린 도시를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의 실험과 도전을 공유하며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저자의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되고 그 고민을 함께 해보게 된다.

 

 

 

 

참고 :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잠시 언급되고 있다. 당연히... 부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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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없는 거리 1 - S코믹스 S코믹스
산베 케이 지음, 강동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참고 : https://namu.wiki/w/%EB%82%98%EB%A7%8C%EC%9D%B4%20%EC%97%86%EB%8A%94%20%EA%B1%B0%EB%A6%AC

참고 : https://namu.wiki/w/%EB%82%98%EB%A7%8C%EC%9D%B4%20%EC%97%86%EB%8A%94%20%EA%B1%B0%EB%A6%AC/%EC%95%A0%EB%8B%88%EB%A9%94%EC%9D%B4%EC%85%98

참고 : https://blog.naver.com/ghost0221/220858057926

 

 

 

 

 

 

지금보다 훨씬 커져서 혼자서 어디든 갈 수 있게 되면

먼 나라에 가보고 싶다

먼 섬에 가보고 싶다

아무도 없는 섬에 가보고 싶다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없는

그런 섬에 가보고 싶다

섬에는 어른도

아이도

반 친구들도

선생님도

엄마도 없다

그 섬에서 나는 올라가고 싶을 때 나무에 올라가고

헤엄치고 싶을 때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고 싶을 때 잠을 잔다

그 섬에서 나는 나만이 없는 거리를 생각한다

아이는 평소처럼 학교에 간다

어른은 평소처럼 회사에 간다

엄마는 평소처럼 밥을 먹는다

나는 나만이 없는 거리를 생각하면

기분이 가벼워진다

멀리 멀리 가고 싶다

 

 

12화로 된 TV 애니메이션을 꽤 재미나게 본 기억이 있어 나중에 원작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항상 그렇듯 생각만 하다가 어느 순간 잊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갑자기 떠올라 찾아보게 됐다. 원작의 완성도가 워낙 뛰어나서 준수한 완성의 TV 애니지만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아 억울할 것 같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정말 원작은 훌륭하다.

 

일반적으로 다른 추리물들은 범인의 정체를 밝혀가는 것으로 흥미를 유발하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는 '주인공이 사건을 막아낼 수 있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용의자로 지목할 수 있는 캐릭터도 몇 명 없고 일반적인 추리물에 비해 알기 쉽게 제공하는 단서가 많다. 주인공은 탐정보다 히어로에 가까우며 탐정 캐릭터가 가진 인물상과 거리가 멀다. 일반적인 추리물의 주인공들은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오히려 꽤나 감정적이고 행동적이다. 게다가 과거로 돌아가 어린아이가 되기 때문에 주인공은 살인범에 비해 신체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명백하게 약한 캐릭터다. 그로 인해 추리물보다는 서스펜스와 루프가 가미된 성장물에 더 가깝다는 평이 많다. 명탐정이 뛰어난 두뇌로 범인을 체포하는 추리물이 아니기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면모가 부각되는 작품이지만, 탄탄하게 엮인 개연성을 바탕으로 질 높은 추리를 하기에 추리물로도 완성도가 높다.”

 

최근에 인기를 끈 만화-애니치고는 무척 독특한 소재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결손가정, 아동학대와 같은 쉽게 다뤄낼 수 없는 부분을 잘 끌어들이고 있고, 거기에 추리와 시간여행 그리고 부모 자식 관계 등등 여러 가지가 짜임새 있게 담아져 있다.

 

가볍지 않은 현대의 가정 문제들을 튼튼한 플롯에 잘 녹여낸 명작. 추리물, 드라마, 타임루프물 중 어느 장르로 생각하고 봐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치밀한 스토리 구성과 복선 사용,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흡입력 있는 전개, 세련된 컷 배치와 문장력, 무거운 전개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소소한 개그 등으로 오락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짧은 분량(원작은 외전까지 포함해서 전체 9, TV 애니는 전체 12)이라 힘들지 않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사회 문제를 잘 녹여내고 있어 다들 보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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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 6 열린책들 세계문학 141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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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20533&cid=40942&categoryId=32174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76279&cid=60621&categoryId=60621

 

 

 

 

마지막 6권을 읽은 다음의 기분은? 어떻게 다 읽었다는 안도감이 앞선다. 과연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컸는데, 생각보다 재미나게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억지나 의무가 아닌 재미를 느끼며 읽어 기분 좋았고.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변주한 이야기도 접하게 되어 원래는 이런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

 

6권도 앞선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진 않다.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고 읽기 시작하면 어떻게 끝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마치 술탄이 느끼는 그 기분을 마찬가지로 갖게 해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은 이야기도 결국 끝이 나고 그 마무리 이후 어떤 식의 결말을 맞이하는지 이미 알고 있어도 직접 읽게 되니 조금은 다른 기분이 들게 된다.

 

마지막 권 끝자락에 넣기보다는 반대로 1권 가장 앞선 자리에 놓는 것이 더 알맞을 것 같은 번역자의 해설은 그런 점 때문에 아쉽긴 하지만 이 이야기가(혹은 앙투안 갈랑이) 어떤 위치-의미가 있는지를 무척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아직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해설부터 먼저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천일야화>는 결국 앙투안 갈랑의 작품이며, 아랍 문학의 걸작이 아닌 프랑스 문학의 걸작이다>라고 주장한이유와 동방에서조차 은폐되고 조각나 흐릿한 실체에 불과하던 <천일야화>에 앙투안 갈랑은 명확하고도 결정적인 형태를 부여하여 전 세계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잠들어 있던 <천일야화>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은앙투안 갈랑의 탁월한 재능-노력-능력을 잘 알려주고 있고,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 속에서는 넘치는 스릴과 호기심을, 끊임없이 등장하는 왕자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 속에서는 순수하고도 솔직한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힘차게 뛰고 있었던, 그리고 여전히 뛰고 있는 인간 마음의 진실인점을 말하며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도 강조해주며 이야기 자체도 관심 가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어떤 식으로 삶을 얘기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함을 놓치지 않고 있다.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가 지니는 중요성과 특별함을 생각하며 서두르고 급하게 읽은 그의 이야기를 잠시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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