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근대적 남성 이상(理想)과 변태(queer)
데카르트의 정신-육체 이분법은 엄밀하게 말해 근대적 남성에게나 해당하는 철학/윤리다. 비규범적인 존재는 “육체와 정신, 그리고 도덕성과 신체 구조의 연관 관계를 반영”(George L. Mosse, 2004b, 47)하며 그들의 부적절함이 몸에 드러난다는 믿음이 지배적이었다. 인간의 육체가 아름다워 보인다면 그것은 도덕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며, 추하다면 도덕성을 결여했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비이성애 실천을 추함과 죄악으로 여기는 인식이 프렉쇼가 흥행하던 바로 그 시대에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근대 자본주의 발달이 한창이던 19세기의 주요 기획 중 하나는 근대적 남성성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었다. 물론 남성성을 정립하고 그 표본을 만드는 일은 모든 시대에 걸쳐 발생했다. 하지만 19세기에는 기존의 남성성과는 다른 남성성이 필요했다. 이전까지의 남성성이 공손하고 부드러우며 노동하지 않는 몸이었다면, 식민지 개척과 제국주의 확장에 따라 시대에 맞는 ‘새로운’ 남성성을 필요로 한 것이다.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배를 타고 이국으로 떠나는 용기, 타국을 침략하는 데 필요한 힘, 과감한 결단력 같은 것이 남성성으로 부상했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미의 양식이었고, 규범적 남성성을 실천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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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다루는 시기와는 100년 정도 앞서 출간한 다니엘 디포의 책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 1719년판 표지. 이 책은 식민주의, 인종 차별과 근대적 남성성 형성의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크루소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인간상의 표본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하지만 크루소는 프라이데이를 만나기까지 외로움에 치를 떨었다.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Robinson_Cruose_1719_1st_edition.jpg 2010.11.16. 접근
역할 모델은 고대 그리스의 남성이었다. 철학자이자 건강한 신체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항해라는 거친 모험을 경험하며 지혜를 갖춘 존재로 (재)구성된 고대 그리스의 남성은 제국주의 시대가 요구하는 남성의 표본이었다. 아울러 빅토리아 시대 도덕 윤리에서 성적인 것은 그 자체로 죄악이었다는 점에서 섹슈얼리티는 금기였다. 국가와 민족을 인간으로 형상할 수 있는 몸은 고대 그리스 남성의 미를 갖춘 몸이며, “아름다운 몸은 섹슈얼리티를 초월”(George L. Mosse, 76)해야 했다. 이 말은 곧 아름답지 않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존재란 뜻이었다. 이런 이항대립은 분명 매우 단순하고 문제가 많은 구도였다. 하지만 근대적, 민족적 남성성을 구축하는 데 있어 규범적 남성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대척점에 놓일 존재가 필요했다. 그것은 아름답지 않은 외모에 성적인 것과 관련 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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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백작, 에드몽 당테스, 혹은 암굴왕으로 알려진 이 인물(이미지에서 왼쪽)은, 선원의 용기와 힘, 지혜 등 당대의 남성성을 재현한다. 근대 이후 철학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상당수가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철학을 배웠다는 서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서사는 선원 당테스의 것과 겹치면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와 근대적 남성을 동일시하는 효과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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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경험을 지배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하는 시대에 막연한 이상은 충분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형상이 필요했다. 그것이 제 민족의 모습을 대표하는 남성이건, 타락한 몸이건 마찬가지다. 문제는 민족을 대표하는 존재는 남성이어야 하지만 타락한 존재는 남성일 필요가 없었다. 규범적 남성의 몸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는 모두 타락한 존재였다. 즉 비규범적인 존재는 여성 범주로 설명되었다. “여성적 외형과 병든 몸은 통제할 수 없는 상상과 환상에 바탕을 둔 성적 실천”을 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George L. Mosse, 77). 타락은 피부 표면에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기 마련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프렉을 태생부터 죄악이자 신의 저주로 여기는 것은 그 시대의 규범적 반응이었다. 아름다운 것, 오직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만이 남성의 상징일 수 있었다. 그 시기 유행했던 고대 그리스 남성의 조각상이나 회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아름다운 형상으로서의 남성성은 그 시대 남성들이 진정 사랑해야 하는 남성 이상이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회화와 조각을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 남성상은 근대적 남성성의 이상형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당대 유명한 작가들이 비이성애자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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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남성미와 순수, 도덕과 같은 미적 규범이 모든 남성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적인 남성상은 부르주아의 생활양식이었다(George L. Mosse, 76). 그리고 “부르주아의 행위 규범을 공격하거나 남성적 행위와 여성적 행위의 구분선을 넘어서려는 모든 사람은 비정상적인 존재–공동체 외부의 이방인–로 간주되어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선고 받았다”(George L. Mosse, 2004a, 46). 성도착이나 호모섹슈얼리티(현재의 맥락에서 레즈비언, 게이, 바이, 트랜스젠더, 퀴어 등을 포괄하는 용어)는 성적 과잉의 상징이자 남성성과 여성성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르는 존재였다. 호모섹슈얼리티는 당대의 남성성 규범에 따라 “원시인으로 간주”되었고, “모든 종류의 모반과 연관”되었다(George L. Mosse, 2004a, 46).
물론 호모섹슈얼리티에 여성이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포섭되는가는 다소 모호하다. 여성은 다른 프렉처럼 애당초 국민국가를 대표하는 존재일 수 없고, 남성성을 체현할 수 없는 비규범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남성만이 규범이며 남성성을 체현할 수 있었다. 여성이 남성성을 체현/재현하는 것은 남성성 규범과 젠더 이분법의 경계를 위반한다는 점에서 호모섹슈얼리티에 포섭되지만, ‘남성’의 경우와 동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성이 남성성을 체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성이 남성성을 부인하는 것은 모두 남성/남성성 규범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다. 이럴 때 사회가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기존의 남성/남성성 개념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 첫 번째고, 기존의 남성/남성성 개념을 고집하며 기존의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을 병리화하는 것이 두 번째다. 근대 남성성 기획이 대응한 방법은 두 번째였다. 당대 규범에서 호모섹슈얼리티에 해당하는 이는 추방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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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대부분의 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뮐러의 역할은 법정을 위해 ‘성도착자’를 감식해주는 것이었다. (……) 그는 생물학적 원인을 전제로 동성애의 외형적인 징후들을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동성애의 외형적 특질은 은밀한 악덕의 표시다. 그런 징후에는 충혈된 눈, 연약함, 우울증적 발작, 단정하지 못한 외관, 맥없이 머리를 떨구는 경향 등이 포함된다. (George L. Mosse, 2004a,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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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착/호모섹슈얼리티는 이렇게 병든 몸, 그래서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지각할 수 있는 몸으로 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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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가 그린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단테는 그의 작품 <신곡>에서 그가 싫어했거나 그 시대의 비규범적인 존재를 지옥으로 추방했는데, 호모섹슈얼리티 역시 폭력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미지 출처: http://goo.gl/ogCKv 2010.11.16. 접근
물론 이성애자라고 해서 그가 하는 모든 성적 실천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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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예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악행’을 저질러 정신착란에 빠진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청년이었던 모양이지만, 아직 앞날이 창창한 열여덟의 그는 지금 너무나 창백하고 야윈 모습을 하고 있다.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는 힘없이 축 늘어뜨린 채 더러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중략) 구속복이 입혀진 그의 두 손은 등 뒤로 묶여 있다. 뭔가를 말하려 하지만 혀가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듯 숨 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그의 뇌세포는 미쳐서 기능을 못한다기보다 쇠약해져 허탈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중략) 자연은 섭리를 거역한 악행에 대해 이렇게도 무서운 벌을 내리는구나!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나카노에서 재인용,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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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정신병원 견학은 프렉쇼처럼 일종의 유흥이었고, 병원 입장에서는 주요 수입원이었다. 그리고 위의 글은 클라이스트가 정신병원을 견학하다 보게 된 모습을 그의 애인에게 편지로 보낸 구절 중 일부다. 그렇다면 “자연의 섭리를 거역한 악행”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위였다. 당시 자위를 금지하게 하려고 사내아이의 손을 이불 밖으로 내놓고 자도록 했을 정도로 ‘남성의 생산성 없는 성적 행위에 대한 금기’는 이 시대의 강박이었다. 자위를 하다 발각되었을 경우 정신병원에 구금되었고, 클라이스트가 본 모습처럼 변해갔다. 정신병원에 구금된 이상 이렇게 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비규범적인 성적 실천에 따른 병든 외모는 정신병원에 구금되어 겪은 고초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위행위 자체, 호모섹슈얼리티 실천 자체에 의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쇠약하고 병든 몸은 그 시대 비규범적인 존재의 규범적인 모습이다. 따라서 호모섹슈얼리티/퀴어, 아프리카인, 장애인/프렉 등은 모두 현생 인류의 이전 단계 ‘인간’이자 죄악이었다. 이들은 정신병원에 구금되거나 서커스 무대나 우리에 갇혀 전시될 뿐이었다. 이것은 그 시대 과학의 이름으로,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정당한 실천으로 소비되었다. 그래야만 소위 규범적이라고 여길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3. 용광로: 규범적인 몸 이미지 구축하기
차이는 언제나 시대 지배 규범의 기획에서 발생한다. 차이는 동질성에 바탕을 두며, 동질성은 차이를 필요로 한다. 정말 ‘다르다’면 굳이 차이를 강조할 필요가 없으며, 정말 ‘같다’면 굳이 이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른 말로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다른’ 몸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규범적인 몸 이미지에 따른 발명이다. 발명한 ‘다른’ 몸은 신의 저주로 설명되었다. 그렇다면 기독교 세계에서 프렉쇼나 정신병원 관람은 신의 저주를 받지 않은 제 운명을 감사하기 위한 순례였던 걸까? 그래서 무대에 올라간 이들을 그토록 열심히 구경하려고 했던 것일까?
프렉쇼나 정신병원은 차이를 끊임없이 발명하고 유지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문화였다. 프렉이나 퀴어는 사회가 요구하는 지배 규범과 비규범적인 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와 차이를 재현할 때 비로소 인식되었고, 병리적인 존재로만 사회에 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이를 통한 출현이 다양한 차이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프렉쇼와 정신병원(정신병원은 나중에 좀 더 설명할 예정임)은 모든 몸의 차이를 동질화했다.
즉 “관객의 시선에서 프렉쇼는 차이와 타자성의 커다란 용광로”(Clare, 72)였다. 관객에게 배우 개개인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배우들은 그저 프렉일 뿐이었다. 이성애를 규범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동성애, 양성애, 트랜스젠더, 인터섹스는 그냥 변태일 뿐이듯, 프렉쇼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렉쇼 무대는 프렉 개개인의 ‘차이’를 동질의 것으로 만들었다. 무대의 배우들이 인간인 것도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닌 존재라는 점에서 몸의 ‘다양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관객과 다르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관객은 자신이 규범적이라고 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런 점에서 프렉쇼는 정신병원과 함께 근대적 인간을 (재)생산하는 핵심 장치였다.
앞서 인용한 마샤와 다샤의 경우, 언젠가 동물원 구경을 간 적이 있다고 한다(줄리엣 버틀러, 114~115). 그들이 동물원에 도착하자 시민들은 동물이 아니라 마샤와 다샤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결국 동물원 구경을 포기해야 했던 마샤와 다샤는 이 경험을 전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마샤와 다샤는 자신의 생애를 구술하며,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을 구경하려 해서 불쾌했고, 그래서 종종 구경꾼을 괴롭히거나 복수했다고 말했다. 마샤와 다샤를 구경하려한 사람들의 반응, 그들을 ‘동물’로 만든 사람들의 인식은 도대체 무엇일까?
근대 이후 끊임없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주요 인식 중 하나는, 몸과 정신 사이의 분리를 당연시 한다는 점이다. 기독교식의 몸-영혼 이분법과 데카르트식의 이분법에 바탕을 둔 개인은 개별적이고 분리된 개인이다. 모든 인간은 의존적이고 상호 밀접한 관계를 통해서만 제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음에도 개별적인 몸, 독립된 몸을 인간의 기본값으로 설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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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근대적 인식론을 주창한 그는 어릴 때부터 병약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데카르트의 외모가 딱히 ‘아름다운’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외모가 그 시절의 ‘미남’이었나?
이미지 출처: http://goo.gl/WIvhi 2010.11.10. 접근
사람들이 마샤와 다샤를 구경하고 기괴하게 여기며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장애 정도가 아니라…… 결합형 신체의 모호함”(Shildrick, 85)이다. 마샤와 다샤가 태어난 직후 의사들이 시도한 실험은 마샤에게 약물을 주입하거나 고통을 가하면 다샤도 아플까(혹은 다샤가 아프면 마샤도 아플까)였다. 근대 인식론으로는 샴쌍둥이 혹은 결합형 일란성 쌍둥이가 두 개인의 몸이 붙어 있는 것인지, 한 개인이 둘로 나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없었다. 인간의 몸은 매우 명징하게 구분된다는 전제에서, 개인은 그 자신만의 주체성이 있다는 가정에서, 마샤와 다샤의 몸은 그 어느 것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들이 한 명인지 두 명인지 결정할 수 없다”(Shildrick, 85). 그래서 결합형 일란성 쌍둥이가 태어나면 의학은 분리 수술을 시도한다. 결합한 몸을 견딜 수 없고, 그것을 지배 규범에서는 ‘괴물’/‘기형’/‘장애’라는 범주 외엔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없으며, 괴물은 곧 질병이란 점에서 유일한 처방은 분리 수술뿐이다. 그것이 둘 중 한 명의 목숨을, 때때로 둘 다의 목숨을 잃게 할 수 있어도 분리 수술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분리 수술이 최선이라는 것은 누구의 판단일까? 마샤와 다샤는 아니다. 쉴드릭이 지적했듯, 결합한 몸을 참지 못하는 이는 이 쌍둥이가 아니라 사회다(Shildrick, 86). 지배 규범의 불안을 증폭하는 몸은 치료해야 하는 몸이며 사 생활을 할 수 없어 병동에 갇혀야 하는 몸이다. 지배 규범의 한계(‘차이’라고 부르는 것)를 생산하고 폭로하는 몸은 언제나 단지 괴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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