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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연재를 마치며

 

지난여름 집결지의 언니들과 바다로 여름휴가를 떠났었다. 트랜스젠더 언니들을 포함한 12명의 여자들의 요란스러운 복장과 헤어스타일, 말투, 행동거지는 휴가지 휴양객들의 시선과 호기심을 몰고 다니기에 충분했다. 해수욕을 즐기고 수박을 잘라 먹으면서 뜨거운 낮을 보내고 한층 차분해진 밤을 맞이했다. 당시 성노동자 권리 운동을 하던 친구도 함께 있었는데, 그 친구가 총명한 언니들 몇 명에게 성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것 같다. 성노동자 권리 운동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 운동이 어떤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지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자 듣고 있던 한 언니가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면서 “나,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리곤 이내 자신은 미국에 남편이 있으며 지금 그 남편을 만나러 미국에 가기 위해 ‘이 곳’에서 잠깐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당시에 언니는 왜 그렇게 뜬금없이 손사래를 친 것일까? 사실 오래 전 성노동, 성노동자 정치학에 나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역사를 긍정하고 권리를 요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들이 성노동을 수행하는 성노동자라고 막연하게 정의하며 일상을 영위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여름휴가 날 밤의 에피소드 덕분에 나는 이들을 성노동자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연재 글은 이날부터 이어진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다. 나의 이 글이 실험적으로 아이디어를 던진다는 의미에서 불안한 시론이 되기를 바란다.

먼저 ‘노동자’, ‘성노동자’라는 말은 이 언니를 의식 고양할 수 있는 지칭이 아니었다. 언니는 ‘성노동자’라는 지시어를 ‘면전에서’ 듣고 자신의 상태를 낯선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창녀’, ‘갈보’라는 모욕적인 지칭은 당연하거니와, 심지어 ‘성매매 여성’이라는 지칭도 성판매 여성들 앞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종의 타인에 대한 예의이다. 한 번도 스스로 자랑스러웠던 적 없는 이들이 직업 자체를 근거로 이들을 ‘성노동자’라고 지칭하는 것은 매우 무례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어디론가 이동해서 다른 조건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현재의 ‘일시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이렇게 무례한 지칭을 퍼뜨려도 되는 것일까? 물론 ‘일시적’ 권리라는 말이 얼마나 요원한지 우리는 집결지의 수많은 나이 많은 언니들을 만나면서 진작 간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도 ‘멋진 왕자님 (사실은 돈 많은 할배)’을 만나 호강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이들이 누구인지 지칭하는 일이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이들이 특정 제도의 대상이었거나 대상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민 사회의 폭이 두텁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 운동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강력한 국가 권력에 ‘가해자’들을 처벌해줄 것을 호소하는 데 집중해 왔다. 아직도 많은 여성 단체의 활동에서 ‘무슨 무슨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김은실(2006: 28-29)은 한국의 사회 운동, 여성 운동의 전반적인 문제로 여성주의 운동이 여성 대중 일반과 연결되어 있다기보다는, 정부 통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성들의, 혹은 성적 마이너리티들의 집단적 전락의 전략이라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을 향한 낙인을 거두라면서 ‘나’를 향한 낙인에는 왜 문제제기하지 않는가?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동생이 일을 그만두고 직업 교육이라도 받고 싶어 한다는, 한 언니의 SOS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성매매로 인한 피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성매매 피해가 입증되어야만, 성매매 피해 여성이어야만, 직업 교육에 대한 지원이 가능한 것일까? 결국엔 사회 영역의 문제이고 복지 국가로서의 국가의 성격과 관련된 문제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조사를 해서 결과가 ‘합당해야’, 온정주의적인 손길을 내밀겠다는 국가의 태도는 내가 누구인지 조급하게 설명하도록 재촉하도록 하고, 결국 사회를 경직되게 만든다.

이런 결과로 여성 노동의 속성을 문제시하는 느긋한 움직임보다는 당장의 처벌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운동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시 ‘이들이 사실은 누구, 어떤 사람’이라는, 일시적인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운동이 뒤따른다. 조급함만 거두어들인다면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여성을 감정노동자라고 부를 필요가 없는 것처럼, 성노동을 수행하는 여성을 성노동자라고 무리수를 두어 명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이들이 강도 높은 노동을 통해서도 좀처럼 계급 이동을 하기 힘든 사회의 경직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 보자. 어쩌면 문제는 노동이 아니라 좀처럼 자기 경영이 불가능한 세상이 문제인 것 같다.

왜 언니들은 돈, 돈, 돈, 돈하면서 기둥서방과의 로맨스에 목을 매고 번 돈을 다 이들에게 갖다 바치는 것일까? 언니들의 삶의 조건에 도움이 되지 않을, 오히려 당장 해악이 될 발전과 성장이라는 ‘당파적’ 키워드에 홀려 보수 정권에 표를 몰아주는 것일까? 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어쩌면 주목받지 않은 채 현재의 시간을 빨리 지나 ‘목표’의 상태, ‘꿈’ 상태로 미끄러지듯 진입할 수 있는 성공의 속도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모른 척 해주기, 하지만 지켜보기’ 전략인 것 같다.

조바심 내며 이들을 누구라 명명하지 말고, 사회의 곪은 부분에 대해 관찰하고 연대해서 공론화를 시작하자. 그리고 행여 생길 위험한 일들을 대비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주자. 이런 일들에는 분명 예산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조급하게 이들이 누구라고, 어떤 상태에 처한 사람들이라고 성급하게 이야기해야만 했다.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겠지만, 운동 단체가 현장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담론을 생산하고 대중 운동을 하는 것을 지켜봐 줄 수 있는 시민 사회 영역의 여유가 필요하다. 국가로부터 예산을 할당받지 않아도 될 정도의 안정적인 후원만 있다면, 조급하고 거친 언어로 세상을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도 덜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 단체에서 언니들과 한숨 돌리면서 직업 선택권, 거주권에 대한 이야기도 해 보고, 우리 사회의 트랜스젠더 포비아를 효과적으로 비웃는 방법도 구상해볼 수 있길 바란다.

물론 삶이 고단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담론은 조급하게 생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별법들이 만들어지도록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애를 쓴 것이리라. 특히 성판매 여성들은 사회의 보이지 않던 영역에 있던 사람들이어서 이들에게 예산이 편성되고 많은 여성 단체들이 현장에 진입하게 되면서 기가 막힌 장면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예산의 효과는 꽤 놀라운 편이었다. 
 


2006년 9월 새로운 성매매 집결지에서의 활동 시작은 성매매 피해 상담소의 업무를 그대로 가져와 의료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한 일이었다. 이곳의 여성들이 온정주의적이고 시혜적인 법의 성격을 왜 모르겠는가? 사회복지 서비스의 수혜를 받으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불쌍한 인간이 되었구나. 나락으로 떨어졌구나’ 좌절하는 언니들이 있었다. 물론 자신과 연결된 사회의 끈을 확인하고 조금 안심하는 언니들도 있었다. 자신이 사회에서 완전히 내박차진 것은 아니란 종류의 확인을 거듭한 언니들은 ‘나보다 더 못 한’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부모 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애들’을 도울 방법은 없는지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예산의 효과가 굳이 성노동을 수행하는 여성들에게만 지원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목표화이고, 낙인화, 계층화이다. 어쩌면 ‘어떤 국가’에서 살고 싶은지 사회 성원들에게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때인지 모른다. 내가 사는 세상이 바뀌어야 이들이 사는 세상이 바뀌고 이들이 사는 세상이 바뀌어야 내가 사는 세상도 바뀔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이 사회에 퍼져 있는가?  



 

참고문헌  


김은실, “지구화 시대 한국 사회 성문화와 성 연구 방법”, <섹슈얼리티 강의, 두 번째>, 동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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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22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한집안의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을 지기 위한 수단으로 순진한 누나들이 성노동자가 되었다해서 나름대로 이해도 받았지만 요즘은 왜 성노동자가 되었는지 그 이유가 일반인들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것 같아요.
 


7. 성판매 여성의 자조, 연대의 준거틀

 

여성의 성판매 행위에 성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입장은 이제까지 남성들의 생산 노동을 신성화했던 역사를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노동의 영역은 일의 사회적, 도덕적 가치의 의미가 중시된 맥락이 있다. 이들의 노동은 가장으로서, 국민으로서, 가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땀방울’로 의미화되었다.

김은실(1999)은 한국의 근대화 프로젝트가 경제 발전을 통한 국가 건설을 위해 빠른 시간 내에 노동자들을 근대적인 개별 노동자나 계층적 범주라기보다는 ‘생산성 있는 민족주의적 집합체’로 만들어내야 했다고 지적한다. 이때 ‘일’의 개념은 노동자와 사업주의 계약 관계를 통한 거래라기보다는 국가와 가족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관계로서 형성된다. 특히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동 캠페인은 고된 노동을 국가 건설과 국가 안보와 동일시하면서 계층적 이해를 국가적 이해와 같은 것으로 만든다(김현미, 2000: 40).

특히 김현미(2000)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적 노동을 ‘보상을 바라지 않는 헌신’의 개념으로 규정해왔다고 읽어낸다. 이는 초남성화된 개발 국가에서 사회는 수동적이고 무력한 지배의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노동의 여성적 속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한 여성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성의 노동권을 확보하는 일은 민족주의적 집단주의가 여성에게 부여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의 개념을 벗어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긴 아직도 나이 많은 기지촌의 여성들은 자신을 ‘외화벌이 역군’으로 명명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외화벌이 역군’ 서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단속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거나 장사가 잘되지 않는다는 한탄 속에서이다.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 인정은 이들 언니들이 일상을 지속하는 중요한 동력이 되는 것 같다.

노동, 혹은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의미에 대해 이런 역사적 맥락을 담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성노동을 수행하는 성판매 여성들을 성노동자라고 호명하는 정치학이 어떤 희망적인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와 같은 의문을 던지는 데는 깁슨-그래함(Gibson-Graham, 2006)이 에서 제시한 계급 개념이 시사점을 준다. 이들은 헤게모니적인 담론의 해체와 다양한 범주의 정체성을 제시하고 개인들이 ‘차이’를 드러내는 개방적인 공간을 형성하는 것을 실천적 결론으로 제시했다.  



 



깁슨-그래함은 노동 시장에 여성이 유입되고 파트타임과 임시직이 증가하면서 노동을 정체성의 기본적인 근간으로 경험하지 않는 노동 인구가 생겼다는 시대적 특성에 주목한다. 여성의 프롤레타리아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과 관련된 노동 경험과 의식 모두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의문시한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 담론이 쇠퇴하는 것을 계급의 정치적 관련 정도가 변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에 깁슨-그래함은 사회를 중층적인 계급 형태를 가진 복합적인 분절체(disunity)로 이해해야 하며, 원시 공동체,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코뮤니즘적 계급 과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함을 지적하였다. 이 사회를 복잡하고 불균질한 것으로 이해하고 계급의 재개념화를 제안하는 것이다.

계급을 본질 없는 그저 과정으로 호명하는 이들의 논의 속에서는 실재 성판매 여성들의 노동 경험, 일터의 의미가 (그것이 ‘미국’이든, ‘미군의 와이프’든) 자신이 꿈꾸는 희망적 미래의 상태와 충돌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계급 변형 프로젝트는 언제나 가능하고, 필연적으로 사회 격변과 패권적 이행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은 한순간에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계급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주체의 의식 고양과는 관련이 없다. 사회적 그룹화보다 중층적 사회 과정 이론화가 계급 분석의 본질과 목적을 함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노동자라는 호명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굳이 깁슨-그래함의 계급 과정 개념을 가져오는 이유는 지난 연재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그녀들의 삶이 조금 더 다각적으로 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계급 과정 개념은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들의 삶의 언어와 방식에 대해 이해 가능한 맥락을 제공해준다. 업주에게 2차 수입을 5 대 5로 ‘착취’당하면서도 고용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고, 은행이 아닌 일수업자에게 고리의 돈을 빌릴 때도 그럴 만하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성판매 여성들의 노동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계급 과정 안에 있지만, 남편이나 남자친구와 가족을 이루고 사는 여성들은 가부장적 파트너와 봉건적 계급 과정에 놓여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들이 ‘아가씨 모임’을 꾸려 자본주의에 대항적인 정보를 유통시킨다면, 이들의 일상적 자조 모임은 코뮤니즘적 과정에 있는 것이다. 문화, 가족, 교제 실천이 이들의 착취 존재 조건을 제공한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기둥서방 혹은 미군의 애인으로서, 집결지 내 성판매자로서, 집결지 거주민으로서, 소비자로서, 때로는 피해를 입은 여성으로서 중층 결정된 이들의 존재를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노동 현장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깁슨-그래함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노동자의 아내가 응당 ‘노동자 계급’으로 설명되었던 것처럼, 타인들과의 관계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는 여성들의 서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이들은 계급의 개념을 유동적이며 다층적인 정체성으로 정의하면서 범주를 만드는 기준의 해체가 주요한 과제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이들은 자본주의 내에 존재하는 광범한 비자본주의적 공간에 주목하고 있다. ‘가정’은 그러므로 계급 과정의 주요한 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급 과정이 설명만 된다면 그들은 착취당해도 되는가? 그들의 노동 조건, 삶의 조건은 차별에 맞서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가? 사회 변혁을 상상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어디에 준거틀을 둘 것인가? 깁슨-그래함은 라클라우(1977)와 탐슨(1963)의 설명 방식에 주목한다. 이들이 계급을 종종 일터, 커뮤니티, 로컬, 국민 국가 장에서 투쟁의 결과로 구성된 사회적 그룹으로 설명했다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장소가 실제 계급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드러난다.

내가 활동하던 단체에서는 성판매 여성들을 ‘동네 사람’으로 명명하면서 이들과 일종의 ‘동네 접수하기 운동’을 실천한 바 있다. 집결지에 평균 10년 이상씩 오래 거주한 이들과 함께 자신의 동네에 대한 물리적, 인식론적 지도를 그려보는 작업이 그 시작이었다. 어느 목욕탕을 이용하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사는지부터 어느 골목은 어떻게 변했는지까지 다양한 질문과 답을 만들어보았다. 함께 동사무소에 가서 긴급 의료비를 신청해보았고, 동네 가게에 일부러 들러보기도 했다. 또한 이 동네에 오래 산 이들만이 알고 있는 동네 정보를 모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느 사진관에 가면 손바닥만 한 사진을 근사한 액자에 담아 주는지, 지구대의 어떤 경찰이 ‘착한 사람’인지, 일수를 어떻게 갚아나가는 것이 가장 손해가 덜한지, 어느 돼지갈비 집이 외상을 얼마까지 허용해주는지 등을 모아 공유했다. 이들에게 이 동네는 ‘튀는 외모’의 자신을 주시하지 않는 ‘안전한’ 곳이었다. 트랜스젠더 언니들이 옷가게에서 ‘여자 옷’을 골라도 전혀 이상한 시선을 보내지 않고, 이 옷 저 옷을 권해주는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동네를 매핑(mapping)하는 작업은 이들 개인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림을 그려보는 작업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각 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누구와 연대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는 자신의 노동자 계급 의식을 획득하여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을 도모하는 단선적인 정체성 운동과 맥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 동네 거주민으로서 정체화하면 당장 닥친 재개발 이슈에 대해 집결지 구멍가게 상인들이나 구두방 아저씨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을 수 있다. 물론 비가 많이 와서 골목의 하수도가 넘칠 것 같거나 눈이 많이 와서 골목길을 치우는 일 등의 사안들에 대해 이미 이들은 함께 모여 의논하고 행동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거주민’으로 정체화한다고 갑자기 ‘연대’하는 종류의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이 이들의 다채로운 삶을 조망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런 면에서 집결지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실험, 실천들이 이곳에, 이곳의 여성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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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은실, “한국 근대화 프로젝트의 문화논리와 가부장성”, <당대비평> 가을호, 1999.
김현미, “한국의 근대성과 여성의 노동권”, <한국여성학> 제16권 1호, 2000.
Laclau, Politics and Ideology in Marxist Theory. London: New Left Books, E. 1977.
Thompson,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New York: Vintage, E. P.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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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2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거주민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온전한 가정의 여자로 미안한 감이 드네요.
 


6. 성노동자 정체성에 대한 회의

 

6-3. 유연한 체제, '불성실한 언니들'

내가 활동하던 성매매 집결지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언니들이 함께 섞여 일하고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언니부터 갓 스물이 넘은 언니까지, 손님들의 취향이 워낙 다양해서 나이가 많은 언니와 나이가 어린 언니들은 한 가게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 ‘이 일’을 한 기간, 이 동네에서 산 햇수의 차이만큼, 이 언니들은 너무나 다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은 스스로를 ‘화류계’라고 칭하며 “나는 보통의 여인네들과는 뼛속부터 다른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언니들은 입만 열면 좋은 시절, 돈이 많던 시절, 손님이 많던 시절, 인기가 많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배운 일이 이것뿐이라 아직 이 동네에 남게 되었다”며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쉰다. 이 언니들은 ‘나이가 많아 인기가 덜하니 젊은 것들보다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무기로 삼는다. “성실함만큼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활동가인 나에게 “너희같이 순결한 애들은”이라고 운을 떼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언니들은 ‘너희’라는 말을 많이 쓰면서 나와 언니를 습관적으로 분리했다.

반면 나이가 어린 언니들은 ‘잠수를 타서’ 연락이 통 안 되는 언니들이 비일비재하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에게 그동안 뭐했는지 물으면 "좋은 남자 만나서 ‘잠깐’ 살림 차렸다"고 대답하기도 하고, "‘잠깐’ 바람 쐬고 돌아왔다"며 까맣게 탄 피부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잠깐’ 쉬었다는 언니, ‘잠깐’ 다른 일을 했다는 언니, ‘잠깐’ 집에 갔다 왔다고 말하는 언니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불성실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 언니들은 스스로를 ‘화류계’라고 칭한 적이 없다. 언니들은 나이가 비슷한 나를 ‘우리’로 묶는 경우가 많았다. 이 언니들은 나이가 많은 언니들을 아직도 이 장사를 그만두지 못한 ‘루저’로 폄하한다.

젊은 언니들의 경우, 자신들의 불성실함을 부정적으로 읽어내는 나이 많은 언니들에게 “노동 사회에서 탈출할 것인가, 노동에 헌신할 것인가”라는 홀거 하이데의 문장을 인용해서 반문할 수 있을 것 같다. 홀거 하이데는 <노동 사회에서 벗어나기>에서 노동 사회로부터의 탈출구를 모색하며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은 모든 인간 문명의 토대이다”라는 말과 앙드레 고르의 “오늘날 우리가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다”는 말을 인용한다. 인간의 ‘노동’은 인간의 ‘삶 그 자체’라는 맥락에서 존귀한 것으로 다루어지기도 했으나, 자본주의 시대 ‘노동’ 자체가 이미 ‘자본화’되어 있다는 맥락에서는 노동 역시 극복해야 하는 것이므로, 두 문장은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홀거 하이데는 “노동할 권리”라는 슬로건이 내세워진 사회에서 인간은 노동 중독증이라는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고 할 때 자본의 입장에서는 통제의 새로운 형태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연의 통제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 구조의 통제까지도 가능케 하는 ‘하이퍼 통제 사회’로의 발전 경향에 대해 경고를 한다.

매일 입만 열면 “돈, 돈, 돈, 돈” 하는 언니들이지만 저렇게 자주 잠수를 타는 것을 보면 “돈, 돈, 돈, 돈”은 그저 입버릇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니들의 수입은 대부분 나와 같은 활동가의 수입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돈이 그렇게 모자라나?' 싶은 순간도 많다. 물론 일수업자에게 갚아야 하는 채무 등 이곳저곳 나가는 돈이 일단 많아서 돈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언니들의 지출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기둥서방, 애인들을 챙기는 데 있다. 봄이면 바람막이 점퍼, 여름이면 한약, 가을이면 청바지, 겨울이면 거위털 점퍼. 월세도 언니의 몫, 생활비도 언니의 몫이다. 돈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예민하게 날을 세우고 있는 언니들이지만 이들과의 친밀함에서는 경제 문제를 배제하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은 세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라고 말해주는 사람에게 베푸는 일은 자기 위안일 수도 있고, 때로는 투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언니들의 ‘불성실함’을 시대의 변화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피자 회사의 매장에서 5년 넘게 일해 점장이 된 친구는 스스로를 ‘피자 전문가’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이 회사 매장 일이 특별히 싫지 않지만” 늘 다른 회사의 구인 정보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왜 스스로 피자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물은 적이 있는데, 피자는 “오늘 알바를 시작한 초짜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매장에서 주문된 음식을 요리한다는 것은, 이미 조리된 소스들을 다듬어진 토핑들에 버무려 피자 도우 위에 올리는 단순 작업, 매뉴얼 북을 따라 간단한 조립을 하는 과정 이상이 아니다. 매번 바뀌는 메뉴 탓이기도 했고, 모든 매장에서 같은 맛을 보장하고자 하는 본사의 평준화 전략이기도 해서 피자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 필요도, 외울 필요도 없다고 한다. 간을 볼 필요도 없고, 내가 만든 피자가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 일 해 볼까, 저 일 해 볼까, 묻는 것이 버릇인 친구에게 부모는 “한 우물 파지 못하고 이 일 저 일 기웃거린다”며 핀잔을 한다고 한다.

심지어 시민 단체에서 4년에 걸쳐 활동을 했던 나의 경험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전 세대 선배들은 20년 넘게 한 단체에서 ‘헌신’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내 동료들은 아무도 자신이 이 단체에서 20년 넘게 활동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우리는 활동 시간 중 일지를 쓰고, 매뉴얼 북을 만드느라 보낸 시간이 많았다. 이것은 예산을 분배하는 구청에서 요구한 것이기도 했지만, ‘민주적 소통’의 이름으로 우리 사이에서 합의된 바이기도 했다. 내가 만든 매뉴얼 북과 일지를 읽는다면 누구든 내가 하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내부 자료인 매뉴얼 북에는 활동 지역의 풍광의 변화, 내담자 여성들과의 관계 맺음의 시작, 중간, 끝, 성향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사실 매뉴얼 북에 기록된 활동 기록은 ‘나’와 ‘그녀’의 관계 맺음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관계의 시작을 모방하거나 대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일을 그만두고 누군가가 그 일을 이어가야 한다면 그 활동가와 내담자 여성은 다시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선배 활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조직에서 평생의 헌신을 약속할 자신은 없었다. 내가 만드는 매뉴얼 북은 (마치 피자 매장의 매뉴얼 북처럼) 누구든 그 관계를 이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지속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라는 위안을 주었다.  

 



내 친구들의 노동, 나의 노동과 언니들의 노동은 많이 다르지만, 우리 모두 ‘젊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는 꽤 비슷하다.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서 리처드 세넷은 이런 흐름을 체제의 유연화에 따른 변화로 읽는다. 세넷은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을 새롭게 조직된 근무 시간, 노동 경력으로 설명한다. 그 같은 변화의 가장 구체적인 징후로 “장기(long term)는 안 돼”라는 표어가 있다. 한두 개 직장에서 한 걸음씩 진급하는 전통적인 직업은 이제 퇴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평생 한 가지 기술만으로 먹고 사는 것도 어려워졌다. 물론 성매매는 원래 여성의 노동 경험이 자원화되지 않는 장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라서 여성들이 자신의 경력을 자원화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 낙인에 의해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낡은 여자’가 된다. 하지만 유연한 체계 속에서 이 직장, 저 직장을 떠돌다가, 이 직업, 저 직업을 가져보다가, 어떤 노동 경험도 경력으로 포장하지 못한 채 다시 집결지로 들어오는 젊은 언니들의 시대는, 신자유주의 시대 수평적 하향 이동을 하는 개인들이 사는 시대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피자 매장에서 일한 경험으로 스스로를 ‘피자 전문가’로 의미화하지 않고, 피자 만드는 일을 자신의 특별한 경력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언니들은 텔레마케터로 일한 경험으로 자신을 ‘텔레마케터 노동자’라고 정의하지 않고,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자신을 ‘성매매 전문가’나 ‘성노동자’라고 정의하지는 않는다. 단기, 계약, 임시 노동이 보편화된 세상 속에서 아무도 장기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단기적 사회 속에서, 그 중에서도 지우고 싶은 부정적 스펙이 될 것이 뻔한 성매매를 하며 사는 언니들의 삶의 태도는 나이 많은 언니들이 보기에 불성실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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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22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육체적노동, 단순노동, 보수가 만족스럽지않은 노동에 대해서는 직업이라기 보다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당연히 오래하려고도 생각하지 않지요. 요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일에 임하는 태도가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것 같아요.
 


6. 성노동자 정체성에 대한 회의

 

6-2. 탈구 위치, 이동의 욕망

   
 

생각하건대 기지촌이란 한국과 미국 사이에 떠 있는 섬과도 같다. 뭍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섬, 섬이 섬일 뿐이듯 이곳 여자들은 양갈보일 뿐이다. 미군들의 일시적인 <하니>이면서 조국에서도 외면당하고 있으므로 그 이름으로만 불린다.
미군이 <의무가 아닌 권리>로서 주둔하므로 기지촌이란 섬은 순수한 한국이 아니다. 그러다가 철군이란 정치 해일이 밀려오면 순식간에 불모지가 되는 섬. 내가 처음 발을 디뎠던 운천이 그랬다. 미군철수 제1호 캠프 카이저가 떠나자 운천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었다. 여기저기 휴업 표지가 나붙고 클럽엔 널빤지가 X자로 못질됐다. 몇 백 명의 여자들이 민들레씨처럼 흩어져갔다.
뿌리가 없는 섬이므로 여기 사는 여자들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여자들이 기둥서방을 두거나 미국행을 열망하는 것은 섬의 허망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강석경 <낮과 꿈> 중


 


위의 소설 속에서 작가는 기지촌을 한국과 미국 사이에 떠 있는, 뿌리 없는 섬에 비유한다. 기지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 집결지는 관음증의 공간으로, 마치 섬처럼 음시된다. 붉은 불빛으로 상징되는 낯선 외관 때문에 그곳은 ‘일상’에서 떨어져 고립된 것으로 상상된다. 그리고 이 섬에는 뿌리 없는 성판매 여성들이 유배된 채, 타락한 삶 혹은 노예와 같은 삶을 연명하고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사실 성매매 집결지는 섬이 아니다. 집결지 주변에서 성장하거나 살아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성매매 집결지는 보통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자리하는 편이다. 성매매 집결지를 구획하는 경계는 오히려 상상적이고 상징적인 것이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목적을 가지고, 혹은 목적 없이 드나드는 그곳의 경계에는 “미성년자 출입금지” 정도의 푯말이 유일하다. 그곳으로 출퇴근을 사람들도 있으며, 그곳에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집결지에만 발이 묶여 있는 여성들이 아니다. 요새 추세가 그렇듯, 이곳의 여성들 역시 여러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학생 신분이기도 하고, 공장 노동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심지어 가상공간으로의 이동도 용이하다. 나도 그렇듯, 이들도 여러 개의 선택 가능한 정체성들을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선택한다.

기지촌은 어떠한가. 한국 기지촌들은 대부분 그 특유의 이국성 덕분에 관광 특구로 지정되어 ‘미국적인’, 때로는 국제적인 음식이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핫’한 플레이스로 회자된다. 기지촌의 성판매 여성들 중에도 특유의 문화와 외국 남성들과의 연애가 재미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이 동네를 드나들었다는 유입 서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소비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화폐 권력으로 계급을 모방하고 자신을 포장하는 일은 손쉬워졌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일한다”고 말하는 언니들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하루빨리 이 동네를 뜨면 될 것이다. 여름휴가 때 한 언니가 계곡 물에 손을 씻으면서 “놀러 나왔으니 OO 동네 구정물을 다 씻어 버리고 놀아야지”라고 말한 장면이 기억난다. 언니 말대로라면 돈을 벌어 이 동네를 뜨는 것이 “구정물을 씻어 버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된다. 하지만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 좁은 한국 사회에서 ‘과거를 씻어버리고 싶다는’ 욕망은 ‘날강도 심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빨리 이 일 접고 새 삶을 살아야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가슴에는 주홍글씨를 달고 사는 언니들의 꿈은 ‘아주 먼 곳’으로 이동하는 일이다.

내가 활동하던 동네에는 (아주 나이가 많은 몇 언니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외국으로 데려가 줄 남성을 만나는 것을 최고의 소원으로 꼽는 언니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일하던 많은 여성들은 이미 미국, 남미, 유럽 등지로 결혼 이주를 했다. 아직 기지촌에 남은 여성들은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때로는 그것을 자신의 미래라 여기며 자랑스러워한다. 이들은 고된 일상을 매일 반복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판타지를 공유하고 있었고, 그것은 바로 결혼 이주 욕망이었다. 언니들은 대부분 미국으로의 결혼 이주를 꿈꾸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미국으로 이동시켜줄 마법 빗자루처럼 ‘다우니, 오스카 메이어 핫도그, 피넛버터, 젤로 푸딩, 원더브라, 블루베리 꿀’로 대표되는 ‘PX 물품들’이 자못 경건하게 소비되는 동네였다. 이 동네에서 미제가 욕망되는 이유는 이곳에서 구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미국 사람, 미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구매력, 파워에 그들이 소비하는 물품의 브랜드, 즉 그것이 유통되는 미군 부대 혹은 미국이라는 공간성이 부착된 결과이리라. 물론 이러한 결혼 이주의 욕망은 “구정물을 씻어 버리고 싶은” 현실 부정의 욕망이기도 하지만, 이 동네에서 가슴 설레는 로맨스를 가능하도록 하는 현실 지속의 동력이기도 하다. 많은 언니들은 ‘미국 남자의 매너’, 이들의 ‘레이디 퍼스트 정신’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이런 계통에 있는 많은 한국 여성이 미국인을 상대하고 싶어 하죠.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 남자들이 다소 폭력적이라 그래요. (중략) 미국 남자들은 다정하면 다정했지 여자를 못살게 굴진 않아요. - 산드라 스터드반트 외, <그들만의 세상>, 253쪽

 
   

  
라셀 파레냐스의 책 <세계화의 하인들>엔 로마와 로스앤젤리스로 이주해서 가사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필리핀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돈을 벌어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감’은 세계화 속에서 자신들이 물화됨이 끝남을 의미한다. ‘고향’은 이들이 쫓겨난 장소이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불완전한 시민권이라는 탈구 위치를 끝내기 위해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저자는 여성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삶 속에서 구성되는 탈구 위치(dislocation)-불완전한 시민권, 가족 별거의 고통, 모순적인 계급 이동, 무소속-야말로 이들이 공유하는 경험이라고 한다. 이때의 탈구 위치는 제자리(location)로 가기 위해 필요한 위치가 아닐 것이다. 그저 탈구된, 어쩌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이주민들은 필리핀 디아스포라 주체로서 상징적인 초국적 에스닉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 동네 여성들은 이러한 탈구 위치를 오히려 한국 땅에서 경험한다. ‘좁은’ 한국은 자신이 ‘정숙한 부인’이 될 수 없는 공간이다. 이런 면에서 때로 친구들은 다 떠난 동네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자신을 ‘루저’로 설명하기도 하고, 현재의 한국에서의 시간은 그저 미국에 가서 사는 것을 준비하는, 유예된 시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심지어 외국에 한 번 나가본 적 없는 여성이 “어렸을 때부터 왠지 ‘한국’과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한편 한국은 미국 사람과의 로맨스를 만들어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일 수도 있지만 일단 안전하게, 미국 사람의 부인의 자격으로 미국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법적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언니들도 많다. 하지만 미군 애인과의 현재의 로맨스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성의 경우도 ‘미국에서 자리 잡을 방법’으로 결혼을 약속한 미군이 아닌, 이미 미국에 정착해 있는 ‘아는 언니’를 꼽는다. “아는 언니가 미국에서 타투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아는 언니가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와 같은 보다 현실적인 레퍼런스는 위태로워 보이는 이들의 로맨스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들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간절하게 공간 이동을 욕망하지만 여전히 성매매 공간과 연결이 되어 있다. 결혼하여 ‘지긋지긋한 이 동네’를 떠난 여성들일지라도,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자신의 친구가 있는 이 동네에 아이를 안고 온다. 이 여성들은 뿌리 없는 사람들이 아니고, 이 동네 역시 뿌리 없는 섬이 아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는 NFL 슈퍼볼 MVP로 선정된 한국계 혼혈 흑인 하인즈 워드가 큰 화제가 되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하인즈 워드 덕분에 그의 어머니도 덩달아 유명세를 치렀다. 이 어머니는 동두천에서 일하던 25살 때 주한미군을 만나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간 지 불과 1년 만에 남편과 헤어지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억척스러운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하인드 워드 어머니에 대한 전 국민의 칭송은 가족에 헌신한 세월,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라면 여성들의 과거는 삭제될 수도 있다는, 관대함의 조건을 알려준다. 기지촌 출신 여성들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진입해야 자신을 향한 공적 낙인이 비로소 삭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여성들은 자신들의 욕망의 공간인 ‘먼 곳’에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안전하게 진입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매매 집결지 ‘여기’, ‘이곳’은 인생에서 명백하게 과도기적 공간이라는 성판매 여성들의 미래 계획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에게 성공은 ‘여기’, ‘이곳’의 흔적을 지우고 떠나야 가능한 일이다. 성매매에서는 대체적으로 젊은 여성의 몸이 주로 욕망되기 때문에 성판매 여성들에게 성노동은 ‘한철 장사’이다. 이들의 노동 시간과 경력은 커리어로서 자원화되지 않는다. ‘밥벌이의 지겨움’ 혹은 고된 삶에 환멸을 느끼고 가정주부 신화나 꽃뱀 신화에 기댄 꿈을 꾸는 것이라 해도 이 공간을 떠나겠다는 ‘성공’ 욕망은 이들이 일상을 설렘으로 대면하도록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런 과도기적 공간에서의 ‘시간성’ 때문에 이 공간이 그들의 역사에서 의미를 가진 공간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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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0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인즈워드의 어머니가 TV화면에 나오신 걸 보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라면 아마 한국에 공식자리에는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것이 아무리 아들이 성공한 환영자리라 할지라도...
 


6. 성노동자 정체성에 대한 회의

 

6-1. 낙인, 시선 회피의 욕망

법의 영역에서 성노동을 비범죄화하는 것은 성판매 여성들이 갖는 위축감을 완화시켜주고 보다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성노동을 비범죄화하는 것이 이들 여성들에 대한 낙인까지 제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매매 집결지 내에서 발생하는 큰 문제는 성매매의 합법/불법 여부보다 사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 혐오감, 편견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유영철 사건이나 최근의 청량리 여성 살해 사건의 경우 명백한 이들에 대한 (혹은 여성에 대한) 혐오 범죄이다. 즉 이러한 종류의 문제는 이들을 합법적인 노동자, 노동자 계급으로 명명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성노동 비범죄화를 시도하는 것과 이들 여성들을 성노동자로 명명하는 것에는 당위적인 연결 고리가 없다.

현실의 문제와 관련해 비비아나 젤라이저의 <친밀성의 거래>에 흥미로운 사례가 등장한다. 저자는 경제사회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친밀함의 정도와 경제적 거래, 보상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자, 이를 위해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한 경제적 분쟁에 대한 미국 법원의 판례를 분석한다. 사례로 사용되는 친밀한 관계는 ‘산부인과 의사-환자’에서 ‘남자 주인-여자 노예’, ‘남편-아내’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넓다.

당사자들이 분쟁 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를 살펴보거나, 인간의 친밀함의 정도를 경제적 관점에서 읽어내는 법원의 판결문을 검토하는 것은 흥미롭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 책은 시장 그 자체가 결속을 유지하는 인간관계를 약화시킨다는 광범위한 가정에 도전하며, 시장 거래와 인간적인 관계 간의 상호 작용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에 대안을 제공한다.”라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사례는 유명한 매춘부 호건을 1944년, 50대 초반 남성 아미티지가 고소한 사례이다. 아미티지는 출장 중 호건을 만났고 그녀는 시애틀에서 아미티지의 ‘현지처’ 역할을 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현금과 값비싼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청혼하면서 2000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반지와 호건이 운영할 호텔 구매 계약금 2500달러를 건넸다. 하지만 2개월 뒤 호건은 다른 남성과 결혼했다. 아미티지는 법원에 가서 호건이 결혼 약속을 위반했으므로 반지나 계약금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고소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증여는 ‘그들이 계획한 결혼에 대한 숙고 과정’에서 주어진 것들이었다. 그는 이전의 구애 과정에서 준 선물에 대한 보상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남자는 “호건이 숙녀다운 조신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매춘부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반면 호건은 “처음부터 호텔에서 그를 접대했다”며, 그는 결코 청혼한 적이 없고 그의 선물은 오직, 그녀의 사랑(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주어졌다고 했다.

법원은 두 가지 이유에서 아미티지의 소송을 기각했다. 첫째, 호건이 ‘유명한’ 매춘부라는 사실을 법원이 확증했고, 둘째, 아미티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법원은 청혼을 받은 적 없다는 호건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는데, 이는 매춘부에게 남자가 청혼할 리 없다는 전제 때문이다. 즉 호건이 승소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부인이 될 것이라고 가정되는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의 친밀한 관계는 누구와도 가능하지만, 제도적 영역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그럴 만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내가 일하던 동네에서 제3세계 이주노동자 남성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여성의 소송이 기각된 일이 있다. 여성이 '강간 이후 상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강간 이후 용서를 구하는 가해 남성이 돈을 가져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 이유'로 제시되었다. 이 여성은 결국 남성으로부터 돈을 받지 못했다. 이 판결에는 강간을 당한 '보통의 여자'라면 경찰서나 산부인과로 갔어야 한다는 전제와 '매춘부는 강간당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작용되었을 것이다.  

 

   
 

성노동자라는 이름은 성산업 현장에서 성서비스를 제공해서 소득을 창출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회적, 계급적 위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생존권으로서의 노동권을 당연히 주장할 수 있게 해준다. 생존권으로서의 노동권의 요구는 인권적 차원에서의 요구이기도 하다.
- 김경미, “성노동에 관한 이름붙이기와 그 정치성”, <성노동>, 여이연, 2007, 37쪽.

 
   

 

그들의 노동을 인정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성노동의 비범죄화와 관련이 있다. 취약한 위치에 놓이기 쉬운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이들의 노동은 법적으로 인정되는 것을 넘어서 보호되어야 한다. 그런데 성노동을 비범죄화하는 것은 이들의 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지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을 거두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회가 성판매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법의 영역을 통해 전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들의 권리에 대해 고민한다면 이들의 시민, 거주민으로서의 권리를 확장하고 이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성노동을 수행하는 여성들을 성노동자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이들은 현실에서 자신을 향한 시선을 회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

내가 활동하던 동네의 언니들은 외모가 매우 ‘화려한’ 편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보통 '예쁘다', '여성스럽다'고 통용되는 느낌보다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좀 드세 보이는 이미지였다. 동네 언니들 특유의 스타일이 참 독특하다고 느꼈는데 외국인 남성들을 주로 만나는 언니들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언니들도 자신들과 스타일이 다른 나에 대해 늘 지적하며 옷을 좀 ‘신경 써서’ 입고 다니라고 충고했다. “더 깊게 파진 옷을 입어야 남자들이 좋아한다”, “옷이 너무 수녀복 같다”와 같은 여간해선 듣기 힘든 코멘트를 언니들로부터 듣곤 했다. 젊은 언니들은 까맣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피부를 까맣게 태닝하고, 몸의 커다란 문신이 보이는 깊게 파인 옷을 즐겨 입는 편이었으며, 나이가 많은 언니들 역시 까맣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무대 화장 같이 짙은 화장을 즐겨 하는 편이었다.

이처럼 스타일이 ‘튀는’ 언니들과 병원에 갈 때나 택시를 타게 될 때면, 많은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왔다. 연극배우, 연예인, 무당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간혹 “술집 나가요?”라고 무례하게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를 넘은 관심에 그냥 “네” 하고 넘길 것도 같은데, 이럴 때 언니들은 꼭 대답을 한다. 특이한 것은 대다수의 언니들이 자신을 “그냥 주부”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질문을 건넨 사람들은 언니들의 “그냥 주부”라는 대답에 더 증폭된 호기심을 드러내건만, -예를 들어, 남편은 한국 사람이냐,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느냐, 아이는 있느냐는 추가 질문이 이어진다- 언니들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시선을 덜 받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안 그러면 사람들이 무시한다”, “남편 없는 여자인 줄 알고 함부로 대한다”는 귀엣말을 덧붙인다.

언니들은 남들이 자신을 특이한 사람으로 보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많이 사용한다. 물론 ‘패씽(passing)’되길 바라는 이러한 전략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 번 더 시선이 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행동이 그러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공손한 태도가 그러하다. 병원 수납창구에서 무뚝뚝하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수납원에게 과도할 정도로 공손하게 몸을 낮추는 모습은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과장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한 채 택시를 타고는 “그냥 주부”라고 대답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 언니들의 노동, 삶의 양식이 보호되어야 하는 것처럼, ‘동네의 땟국물’을 지우고자 하는 일상의 노력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 노동 공간, 시간 외에 어떻게 하면 ‘티가 나지 않을까?’ 고민하는 언니들의 노력에 ‘패씽’으로 응답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들 노동의 역사와 속성을 드러내는 작업과 이들을 ‘누구’라고 정의하는 일은 별개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례가 이야기해주듯이 우리 사회에서 성노동을 수행하는 여자들에 대한 다양한 지시어, 이미지들에는 이미 성적 낙인을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낙인을 극복하는 일은 단순히 성노동을 수행하는 여자들에 대한 낙인을 거두는 작업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들을 비하하는 말들은 집단으로서의 여자들의 위치, 존재, 삶의 양식을 비하하기 위한 말인데, 이때 여자들은 결과적으로 ‘이들’로 대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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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1-2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의 필요악.모순. 이슬람 남성들은 여성가족의 부정행위는 살인으로 징죄하면서 남자들은 3-4혼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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