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남-남 동성 서사에서 여성은 어디에?

   

전 회에서 팬픽 등속의 동성서사를 ‘여성들의 포르노’라 지칭하는 것이, 그러한 이야기를 욕망하는 여성들의 정치적 올바름을 문제 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재현물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은 그 환상이 현실과 맺는 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데 근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선, 팬픽에서 보이는 서사 중심적 성애적 표현이 기존 남성 중심적 포르노의 일회적이고 절편화된 욕망의 분출과 어떻게 다른지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주지하듯 팬픽의 서사에는 소위 ‘씬’이라 불리는 높은 수위의 성관계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장치는 기존 영상 포르노에서 무한 반복되는 컨셉으로만 존재하고 있지는 않다. 여기서 남-남 관계는 수치와 직결되거나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팬픽의 ‘씬’은 직접적인 욕구의 충족이라기보다 본질적인 욕망을 유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이는 근접하지 않아야 할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두고 주인공은, 아니 ‘나’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다름없다.

필자는 이러한 포지션의 문제를, 서사를 통해 동성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춰 논의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포르노 영상은 삽입이라는 성행위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팬픽은 사회 내의 인정, 혹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을 향해 나아가는 구조를 취한다. 해피(happy) 혹은 새드(sad)로 서사의 엔딩을 구분하는 것은, 이 낯선 세계와의 만남에서 주체가 취할 수 있는 태도 및 그로 인한 사회적 결과들이 이 이야기에서 중요함을 보여준다. 이성애적 성 도덕과 일치하지 않는 팬픽의 성애적 장면은 반드시 서사적 차원에서 녹록치 않은 상황 및 그에 따른 감정을 그려내기를 요구한다. 성적 지향이 이성애에 합당치 않은, 이 세계와 자아 사이에 놓이는 심각한 낙차를 어떻게 설득 가능하게 그려낼 것인가, 이것이 팬픽의 동성 서사가 목적하는 바이다. 작가에게 이 간극을 보다 로맨틱하게 메워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독자는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서사가 중심인 쌍방향적인 팬픽의 창작 및 소비 과정은 기존 시각 영상들과는 다른 궤도를 그려낼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러한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다시 팬픽이 기본적으로 유명인을 매개로 한 욕망의 발현이라는 지적으로 돌아가자. 왜냐하면 이제까지 팬픽은 여성이 남성 스타를 소유하려는 환상에서 생성된 것이라고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은 당연히 여성이 남성을 욕망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전술했듯 팬픽 속 남성 인물, 특히 수는 남성적이지만은 않고, 공의 남성성 역시 사회적 남성으로 기능하는데 바쳐지고 있지 않다. 팬픽은 동성애 금기를 위반할 뿐 아니라 남성성조차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러한 서사에서 여성만이 그 텍스트와 단지 여성으로만 관계한다고 읽을 필요가 있을까. 기본적으로 팬픽에서 여성은 소거되어 있다. 이는 앞에서 여성들의 시장, 혹은 인형조종술로 거칠게 일별했다. 그러나 여성들이 팬픽을 구체적으로 읽고 쓰는 순간, 그 경험의 상이한 맥락에 대해서는 보다 세심히 접근해야 한다.

여성의 동성애 선호에 관한 논의는 보통 ‘환상성(fantasy)’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원초적인 환상적 실천이 기본적으로 1인칭을 취할 수 없다면, 그 속에서 주체는 오히려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위치를 수행하게 된다. 라플랑슈와 퐁탈리스는 “환상과 섹슈얼리티의 기원”에서 환상은 분명하고 변함없는 1인칭 시점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 이야기들이 주체를 이동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조안 리비에르는 “가면무대회로서의 여성성”에서 성적 정체성이란 남/녀 양성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역할에서 파생된 전이와 역전이를 통해 끊임없이 미끄러져나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관련 논의는 임옥희, “환상, 그 위반의 시학”, <여/성이론> 2,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0, 82~86쪽 참조.)

그렇다면 여성이 기본적으로 남성 1인칭을 수행하는 팬픽은 어떨까. 서사의 공수 구도에서 여성이 자연적 특질의 유사성으로 수의 측에 위치한다는 가정은 여성으로서의 1인칭 시점에 대한 거부로, 스스로를 소거했던 애초의 의의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사이토 다마키는 소위 오타쿠의 성에 대한 태도에 있어 성별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즉 남성은 우선 스스로를 욕망의 주체로 확립하여 시각적인 실현에 몰두한다고 했다. 이에 반해 여성은 자신을 말소한 무대에서 연기되는 남성끼리의 관계성에 열광한다. 이때 전자는 대상을 ‘가지고 싶다’고, 후자는 대상 그 자체가 ‘되고 싶다’고 바란다. 이 소유와 수행의 차이는 중요하다. 관련 논의는,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분석>, 김영진 역, 황금가지, 2005, 2장 오타쿠와 야오이의 섹슈얼리티 참고.) 

 

   

사이토 다마키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 분석>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여성은 남성 스타의 가면을 쓰고, 공 혹은 수의 입장에서 팬픽을 쓰고 읽는다는 것이다. 팬픽을 즐기는 주체는 공과 수, 그리고 그 사이에서 다양한 남성성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 어떠한 위치에서 누구에게 동일시되고 또 누구를 대상화할 것인가. 이 이입되는 주체와 몰입하는 대상은 수시로 변화할 수 있다. 이 순간들을 포착하고 그 의미에 대해서 논하기는 용이치 않다. (그러나 팬픽을 읽고 쓰는 경험을 공과 수, 그리고 스타와 나 사이에 교차되는 수행적 관계라는 점에 착안하여 보다 단순한 구도로 다음처럼 이해해볼 필요도 있다. ① 스타를 공에 놓고 나도 공에 두기, ② 스타를 공에 두고 나는 수에 두기, ③ 스타를 수에 놓고 내가 공이 되기, ④ 스타를 수에 놓고 나도 수에 두기. 이때 스타와 나의 관계에서 ①과 ④에서는 동일시, ②와 ③에서는 대상화가 일어날 수 있으며, 성애적 측면에서 ①과 ③에서는 새디즘적 욕망이, ②와 ④에서는 마조히즘적 쾌락이 감지될 만하다. 물론 이것은 이해를 위한 기계적인 도식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유림은 특히 팬픽은 공수의 할당뿐 아니라, 자신이 선호하는 ‘담당(맴버)’와의 관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관련 논의는, 강유람, 앞의 글, 108~114쪽 참조.)

다시 말해 어떤 이야기에 열광하는 여성이 그 텍스트와 맺는 관계는 다층적이다. 그리고 종종은 젠더 교차적이기도 하다. 이는 앞서 분석했던 최근의 <성균관 스캔들>에 열광했던 다음 여성 A, B, C의 태도 및 위치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A는 여자 주인공 김윤희에 빙의되어 이선준과의 로맨스 성취와 더불어, 여성으로서는 접근할 수 없었던 남성 동성사회성의 혜택에 흐뭇해했던 것이다. 반면 B와 C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각자 스스로가 남자 주인공 이선준에 이입되어 갔다. 그러면서 B는 모든 이에게 인정받는 중요 인물이 되고 싶은 동시에 여자 주인공과 어떤 관계를 이룰 수 있을지에 주목했고, 그에 반해 C는 이선준을 둘러싼 다른 남성 인물들 사이의 보다 진전된(?) 관계를 상상해보는 데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렇듯 일정한 이야기에 대한 반응은, 공수의 관계가 그러했듯 남녀라는 양성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동일시 혹은 대상화할 수 있는 인물이 한명이 아닌 두 명일 수 있고 또 아예 없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야기와 여성 주체가 맺는 관계는 더욱 다양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팬픽을 즐기는 여성의 위치에 관해 다음의 당혹스러운 질문 역시 가능할 수 있다. 만일 여성이 공에 이입을 하고 수인 스타를 욕망하는 것과 공인 스타에 자신을 함께 얹고 수를 욕망하는 것 등등은 이 남성 동성애 구도 속에서 여성이 남성으로서 동성애적으로 개입하는 것인가, 아니면 여성으로서 이성애적으로 이입되는 것인가. 질문은 끝도 없이 만들어질 수 있다. 여성성, 남성성의 고착점을 팬픽의 스타와 나, 그리고 공과 수의 무한한 교차장에서 명확히 찾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 무수한 ‘정상’적 언설에도 불구하고, ‘이상’적 징후는 도처에 있다. 특정 젠더형은 언제나 흔들릴 수 있고 그에 적합지 않은 수행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 다음 회에서는 마지막으로 이 동성 서사를 통한 여성들의 문화적 실천이 지난 10년간 어떠한 이슈를 만들어내었는지, 그 사회적 효과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는 여성들의 역능이 기존 이성애 기반의 성 규범을 균열내고 있었다는 주장에 맞닿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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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5-27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드라마에 아이돌스타를 썼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