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균관 스캔들>을 둘러싼, 여성들의 ‘올바르지(straight)’ 않은 욕망들 (2)

  

   
 

“남색이 추문입니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계율이나 삐뚤어진 잣대를 들어 추문이라 손가락질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성균관 스캔들> 14회 대사에서

 
   

 


 

 

 

 



<성균관 스캔들> 속 커플링: 위로부터 선준-윤식, 재신-윤희, 재신-용하, 초선-윤식, 효은-선준>
 


앞서 <성균관 스캔들>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주인공 윤희가 제기하는 사회적 입지의 비대칭을 문제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미를 말할 때는 윤리보다 조금 더 나아간, 혹은 그로부터 살짝 비껴난 지점까지 시야에 넣을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오락을 추구할 뿐이라는 드라마에서 때로는 모랄, 그 이상이 생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성스 폐인’ 누나들의 또 다른 초점은 주인공 윤희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남자들, 즉 전술했던 ‘(오줌을 잘금잘금 지리게 할 정도라는) 잘금 4인방’ 사이의 관계에 놓여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윤희를 “몸은 계집이나, 계집이어서는 안 되게” 했던 남장이라는 장치다. 남장은, 애초에 윤희가 글을 팔 수 있게 하는, 다시 말해 공적 영역으로 접근케 하는 최소한의 요건이었다. 그러나 거관수학(居館修學) 이후의 윤희는 여성이 아닌 남성의(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기존 남성 그 자체는 아닌) 정체성을 최대한 창출해야만 했다. 이때 남장은 일시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재조직하는 적극적 기제가 된다.

이 여화위남(女化爲男)의 장치는, 이제 공중파에서 일정한 계보를 형성할 만큼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남장여자는 시청률을 보증하는 수표가 된다. 또한 여배우들이 다른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선호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공중파에서만 해도 <커피프린스 1호점>(2007), <바람의 화원>(2008), <선덕여왕>(2009), <미남이시네요>(2009) 등등 그러한 사례로 꼽힐 수 있는 일련의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그런데 여장남자를 테마로 사용한 이 드라마들을 살펴보면, 마찬가지로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여기에 젠더교차적 즐거움이 더불어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자이건 외계인이건 상관 안 해, 갈 데까지 가보자”(<커피프린스 1호점>)라거나, “사내 녀석인 니가 좋아졌다”(<성균관 스캔들>) 정도까지 상황이 진전될 때 반응은 더욱 열광적이었다. 요컨대 여성의 시련 극복 프로젝트에서 멈추지 않고, 동성 서사로의 우회로를 통해 이야기가 증산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편적 이성애로의 전환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이 낯선 관계의 극적 긴장을 효과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결국 옷을 벗고 단지 ‘여자’로 돌아가지 않아야한다. 이는 젠더의 경계를 교란시키는 것은, 단지 양성‘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남/녀’라는 구분 자체를 무화시킬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공중파에서 일어난 이 유사 동성애적 이야기의 성공을 두고 보통은 성별의 차원조차 넘어서는 지고지순한 이야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운운되어왔다. 그러나 오로지 ‘사랑-때문’이라는 설명은 종종, ‘비단 ~(종종 동성애)가 아닌’이 전제되는 신경증적 단언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오히려 이 남장여자 이야기의 즐거움은 남-녀라는 자질, 혹은 그 양성 관계를 넘어서는 가능한 변화를 다채롭게 드러내는 데 있다고 적극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다시 <성균관 스캔들>로 돌아가보자. 애초에 윤식이 윤희임을 알고 보는 시청자에게, 이 드라마는 능청을 떨고 다음의 커플링을 가능하게 제시한다. 즉 선준-윤식, 재신-윤희의 남남(원래는 남녀, 전자와 후자는 윤희의 존재를 아는지 여부에 있어 또 차이를 가지는) 커플 수행을 중심에 놓고, 여기에 우정의 범주를 넘는 모호한 재신-용하의 관계가 이야기를 더한다. (드라마에서 구용하는 호모포비아가 없는, 또 한편 양성적인 인물들이다. 재신-용하 커플은 원작에서는 키스조차 하는 훨씬 에로틱한 관계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흥미롭게도 이 둘이 연말 시상식 베스트커플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도 들린다. 참고로 작년 모 방송사의 연말 베스트커플상은 <바람의 화원>의 윤복-정향, 즉 여여 커플이 수상했다.) 더불어 외곽에 선준-효은의 남녀 커플, 윤식-초선의 남녀(그러나 여여) 커플도 적절히 배치되고 있다. 이 커플링을 놓고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팬들이 제작하는 패러디 텍스트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향유된다. 여기에는 선준-재신, 선준-용하 등 주인공 급을 두고 벌이는 의외의 커플 짓기뿐 아니라, 장의-약용, 정조-약용 등 조연을 놓고 해보는 장외의 커플 조합도 가능하게 나타난다. 또한 <성균관 스캔들>이 흥행가도에 들어섰을 때, 여타의 드라마까지 불려나와 상호텍스트적인 패러디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바람의 성균관’이라는 편집 동영상에서, <바람의 화원>의 윤복은 윤희에 반해 성균관에 잠입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독학으로 영상편집을 익혔다는 ‘적혈야화’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꽤 인지도 있는 드라마패러디제작자이다. 최근 <성균관 스캔들>을 중심으로 패러디영상물 상연회을 하겠다고 했으나, 참여인원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저작권 문제가 우려되어서 계획이 무산되었다고 알렸다.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소위 ‘적혈’st이라는 것이, 팬픽을 둘러싼 여성들 사이의 문화적 양태 등을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장여자로부터 촉발된 이 이야기들은 추가적인 커플링 과정을 거쳐서 무한 증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남녀의 경계는 무화되고, 젠더 위반은 더해진다.  

 

 



<성균관 스캔들>의 남색지사(男色之事) 에피소드  


사실 이와 관련해서, <성균관 스캔들> 자체가 이전의 남장여자 이야기와 달리 동성 서사적 정향을 보다 극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공중파에서 전면화하기 쉽지 않았을 14회 남색(男色) 소동 에피소드가 그러하다. 이 회에서 윤희는 부상을 입고 숨어든 홍벽서 재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때 왜 그곳에 둘만 있었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으되,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진다. 보통 이러한 소동은 남자가 아니라 남장일 뿐이야, ‘사실은 (동성애가) 아니잖아’로 합의하는 선에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오히려 폭력적으로 형성되는 호모포비아적 상황을 대담히 구현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윤희에게 던져지는 ‘더러운 자식’이라는 비난은, 동성애 정체성이 오염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관련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재신이 무작위로 유생을 덮쳐 안고 이렇게 되면 너도 남색이냐며 응수하는 것은, 그 동성 지향이 쉬이 전염된다고 여겨지는 것과 연결된다. (임옥희는 <젠더의 조롱과 우울의 철학―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이연, 2006)에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간주되면 남성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온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동성애자’라는 자기규정 발화가 외설적이고 전염적인 행위가 되는 까닭은 동성애 금지가 오히려 욕망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강도가 높을수록 전이성이 활성화된다고 편집증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이 에피소드는 모두(冒頭)에 인용한 대사처럼 벗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 즉 인(仁)을 전유하여 ”그렇다면 나도 남색이다“라는 선언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즉 남색지사를 비난한 그들에게, 도와 법도를 아는 유생이라면 당연히 행해야 할 인의예지신을 저버렸다면서 비난의 화살을 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젠더 전복에 뒤이은 동성 서사 정향은, 사실 버틀러식으로 다음처럼 함께 이해할 만하다. “보편성에 대한 기존의 역사적 명료화에 담겨 있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것은 보편성 자체의 관념을 확대하고 실질적으로 만들려는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주디스 버틀러, “문화의 보편성”,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한계 논쟁>, 삼인, 2003, 79쪽 참조.) 다시 말해 여자가 남자가 되고, 이 여자 아닌 자가 또 남자를 사랑하는 행위들은 보편의 확장을 시도하는 ‘수행적 모순(performative contradiction)’이라는 측면에서 동궤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으로서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또 한편 동성 서사로의 편향과 관련되어가는 과정에, 여성의 공간은 어디에 마련되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성균관 스캔들>에서 주인공 윤희를 제외한 초선, 효은 등 여성 인물들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특히 고전판 F4, 잘금 4인방에 대한 호응이 높아질수록 아웃포커싱 되어갔다. 이는 전면적인 여성 인물의 부재화라는 남성 동성 서사의 구조적 특징과 오버랩될 수 있다. 전 회에서는 후경화된 효은의 존재가 오히려 여성 로망스에 대한 충동이 은밀히 여겨지는 것과 관련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이 물러섬의 이면에, 가늠되지 않는 저변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음 회에서는 팬픽을 중심으로 지금-여기의 동성 서사 생산과 소비의 실천적 의미를 짚어보기 전에 그러한 이야기를 둘러싼 여성들의 문화적 토대를 일별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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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5-2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