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부인하는 오점인가? : 괴물스러운 몸의 역사

 

메리 셸리의 유명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피조물은 그를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달아나고 부인하는 이 세상의 오점, 괴물인가?”(메리 셸리, 180)라는 말을 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 혹은 창조물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생명을 창조하겠다는 빅터(혹은 외과의사)의 욕망에서 태어났다. 빅터는 우연하게도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기술을 발견했고, 그래서 묘지와 도살장에서 구한 각종 시체 조각으로 피조물을 만들었다. 시작은 좋았다. 힘들었지만 그럴 듯했다. 신체 비율은 당대 미(美)적 규범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완성한 피조물이 생명을 부여받고 눈을 떴을 때, 빅터는 “음산한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고 회고했다(메리 셸리, 88~89). 그는 자신이 만든 형상을 보고 기절하고 말았다. 그 모습은 너무도 무시무시했다. 봉합사와 칼로 만든 완벽한 신체 비율의 이 피조물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존재였다. 피조물은 빅터를 피해 떠났고, 산에 숨어 지냈다. 한 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줬지만, 피조물이 아이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으로 여긴 부모는 서둘러 도망을 갔다. 어떤 이들은 피조물의 외모만 보고서도 돌을 던졌다. 외모만으로 개인의 성격과 존재 자체를 결정하고 규정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1931년, 영화로 제작한 <프랑켄슈타인>의 포스터.
흔히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피조물을 만든 이의 이름이다. 괴물/피조물은 이름이 없는 존재다.
출처: http://www.posterart.com/ourposters/frankenstein.html 2010.11.11. 접근 

 

그 피조물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괴물 형상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괴물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빅터와 피조물의 관계는 의사와 트랜스젠더의 관계를 암시하고, 괴물 형상은 장애인, 외국인, 이방인, 퀴어 등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피조물/괴물은 내게 타자일 수 없다. 나는 셸리의 책을 읽으며 피조물을 나의 이야기로 읽는다. 피조물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절할 만큼 끔찍한 형상이란 걸 깨달았다는 구절을 읽고 심란했다. 글자도 모르고 세상에 대한 지식도 없는 피조물은 어떻게 제 모습이 끔찍하다는 것을 알았을까?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은 본질이라는 당대 철학적 흐름을 반영했기 때문일까?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기괴한 걸 혐오하는 건 본질적인 지식이지, 학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만들었기에, 괴물 형상을 끔찍하게 여기는 감정도 같이 만든 걸까? 나 역시 거울을 볼 때면 종종 피조물이 느끼는 그런 감정을 느끼곤 한다.

인간이 먼저 위해만 가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해치지 않았을 이 피조물은, 외모만으로 제 운명이 결정 난 이 괴물은 이 책이 발표되었을 당시(1818년 최초 발표, 1831년 개정판 발표)의 인간 범주를 반영한다. 그 시대는 일종의 기형쇼로 일컫는 프렉쇼(freak show)가 인기를 끌었고, 근대적 남성 이상을 기획하던 시기며, 근대적 식민주의/인종주의의 등장으로 근대 자본주의 발달에 적합한 인간만을 인간 범주로 얘기하던 시기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은 바로 이런 시대의 비인간, 혹은 괴물스러운 타자를 상징한다. 
  

 

2-1. 기형쇼(freak show)와 낯선 몸

앞서 얘기한 마샤와 다샤는 그들이 태어난 1950년대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태어날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떨어져 외딴 시설에 격리되었다. (……) 시설에 보내진 장애아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생활 예절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식사 때 나이프와 포크를 주지 않는 시설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 당시 소비에트에서 장애가 있다는 것은 동물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 그러나 우리는 단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정도가 아니었다. 우리는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괴물’이었다. (……) 지금도 의학도서관에 가서 결합 상태의 일란성 쌍생아에 관해 조사해보려면 ‘우롯츠이’의 항목을 찾아야 한다. ‘우롯츠이’(чудовище)란 도깨비나 괴물이라는 의미이다. (줄리엣 버틀러, 18~19)

 
   


소비에트 연방에서만 이런 분위기였던 것은 아니다. 서구 사회에서 인터섹스나 프렉처럼 ‘다른’ 몸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관련 의료 기준이 정립되기 전까지 골방에 갇혀 지냈다. 그들은 마을 공동체 구성원일 수 없었다. 가족부터 마을 사람들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들을 방치했다. 그렇게 세상은 소위 규범적이라고 여기는 몸만 존재한다는 환상/신화를 구축하고 있었다. 괴물스러운 몸이 공공에 등장하면 이들은 단지 볼거리일 뿐이었다.

장애-퀴어 이론가 엘라이 클레어(Eli Clare)는 그의 책
<Exile and Pride>에서 볼거리로 존재했던 프렉(freak)의 역사를 개괄한다. 클레어에 따르면 프렉으로 불리는 이들은 총 네 가지 다른 유형으로 프렉쇼의 배우로 활동했다(엘라이 클레어, 71): ㄱ. 백인 장애인과 비백인(non-white) 장애인은 팔 없는 경이, 개구리인간, 거인, 난쟁이, 낙타소녀와 같은 명칭으로 불렸고, ㄴ. 미국으로 납치되었거나 노예로 팔려온 비백인 비장애인은 카니발과 미개인으로 불렸다. ㄷ. 미국의 비백인 비장애인은 야생에서 온 원주민으로 불렸으며, ㄹ. 시각 경험으로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여기는 차이가 있는 비장애인―수염 난 여성, 뚱뚱한 여성, 매우 마른 남성, 인터섹스 등―은 불가사의하고 끔찍한 전시물로 불렸다.  

  

수염 난 여성으로 소개된 줄리아 파스트라나.
하지만 수염은 ‘남성의 것’이며 여성의 털은 감춰야 하는 것이란 인식은 여전하다.
사진출처: http://goo.gl/8KYcC 2010.11.06. 접근
 

프렉으로 분류된 이들은 당시 최고의 오락거리였던 프렉쇼 무대에 올랐다. 아프리카 출신의 여성을 우리에 가둬놓고선 원인(原人)으로 소개했던 유명한 인종-젠더 폭력처럼, ‘다른’ 몸을 전시하고 이를 공연으로 기획하는 일은 그 당시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돈을 내고 이들을 구경하며, 무대에 선 프렉에 놀라고 공포를 표현하는 관음증은 그 시절의 윤리적인 행동이었다. 사실 관음증은 금기된 행동도 아니며 금기된 적도 없다. 시선의 권력과 관련한 논의에서 기본 전제는 ‘보는 자-보여지는 자’라는 이분법이다. 이런 이분법에서 ‘보는 자’는 시선 권력을 행사하며 타인을 대상화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관음증은 이런 믿음(혹은 망상)을 실천하는 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프렉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프렉이 아님을 확인하는 일이었으며, 자신에게 시선 권력이 있음을 객석의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일이었다. 시각 경험을 중시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보르네오에서 온 야만인으로 소개된 히람 데이비스와 바니 데이비스.
하지만 이들은 미국 오하이오에서 살았던 발달장애 백인이었다. 마샤와 다샤에 따르면 소련은 자국에 장애인이 없다고 홍보했는데, 데이비스 형제를 이국의 원주민으로 소개한 미국 문화 역시 소련의 태도와 큰 차이가 없다.
사진출처: http://www.stevenbolin.com/freaks/waino.html 2010.11.06. 접근  

  

앞서 설명했듯, 무대에서 공연을 한 프렉의 면면은 다양했다. 뉴저지 출신의 발달장애인 아프리칸-아메리칸은 “그것은 무엇인가?(What Is It?)”,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로 소개되었다(엘라이 클레어, 73). 위의 사진에 등장한 히람과 바니 데이비스는 백인이었지만 보르네오 원주민으로 소개되었고, 당대 평균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걸리버 여행기』의 릴리풋에서 온 사람으로 소개되었다. 이들은 모두 무대에서 자신의 ‘차이’를 강조했고 관객들은 놀람을 반복하며 제 몸의 규범성을 확인했다. 이 시기의 저명한 동물학자 바론 조르주 퀴비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검은 피부색, 곱슬머리 등을 묘사한 다음 “그것(It)은 명백히 원숭이 집단에 가깝다”라고 말했고, 독일 과학자 카를 보그트는 발달장애의 한 유형을 설명하며 “그들은 역사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지나온 초석의 하나”(엘라이 클레어, 80)라고 말하며, 이런 인식을 과학으로 포장했다.

프렉쇼가 쇠퇴한 이후, 몇몇 이론가들은 프렉쇼가 장애인과 비백인을 착취하고 전시한 행동이며, 이 무대에 선 이들은 순수한 피해자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것은 어느 정도 맞는 지적이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수도 없는 지적이다. 클레어가 자신의 책에서 상세하게 밝히고 있듯(
엘라이 클레어, 67~101), 프렉쇼 무대에 선 이들을 피해자로만 재현하는 것은 그 시대의 정황과 무대에 선 개인의 삶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해석한 것이다.

프렉쇼가 유행하던 시기, 이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태도는 괴물스러운 몸으로 태어난 이들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했다. 집이 가난하여 부모가 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없는 상황일 때면, 집에 머무는 것이 마냥 좋을 수도 없었다. 반면 프렉쇼 무대는 이들이 제 몸으로 노동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프렉쇼 매니저는 이들을 서커스에 데려오기 위해 (간혹 납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때때로 커다란 냄비 한가득 금과 은을 채워 부모에게 지급하곤 했다. 이것은 가족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자, 프렉이 서커스단에 입단하며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런 정황에서 매매의 윤리를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대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관객은 ‘미지의 세계’에서 온 ‘야만인’, ‘괴물’, ‘낯선 몸’을 구경하기 위해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했다. 그리고 무대에 선 배우는 으르렁거리고 거친 행동을 하며 ‘야만’의 행동 양식을 재현하거나, ‘괴물’스럽고 ‘낯선’ 몸을 과장하며 관객의 요구에 부응했다. 이를 통해 서커스는 엄청난 돈을 벌었고, 프렉 역시 (무대에 선 모든 프렉에게 해당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생계를 유지하거나,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이렇게만 설명한다면, 무대에 선 배우는 피사체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이 서커스이자 무대라는 점을 상기하자. 매니저와 배우는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관객이 놀라고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른 말로 관객이 프렉쇼를 찾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매니저와 배우는 무대에서 취할 행동을 계획했고, 늘 행동을 과장했다. 소인국 릴리풋에서 왔다고 소개받은 이들은 마치 그곳의 왕족 출신인 것처럼 행동했다. 동방의 미지에서 왔다고 소개된 이는 ‘야만성’을 강조했고, 원인(原人)으로 소개된 이들은 ‘미개함’을 강조했다. 배우들은 자신의 행동을 세세하게 계산했다. 히람과 바니 데이비스의 사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 소위 야만이라고 하기에는 사진 속 이들의 태도가 매우 차분하고 정갈하다. 단순히 키를 비교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이들의 자세를 살펴보면, 프렉쇼에서의 모습과 다를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럴 때, 굳이 피해자라는 지위를 누군가에게 부여해야 한다면 과연 누가 될까? 무대에서 제 몸을 전시(해야)한 배우인가, 이들의 과장이 사실이라 믿으며 놀람에 놀람을 반복하고 제 몸의 규범성을 확인받으려 한 관객인가? (혹은 이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물론 프렉쇼 무대가 괴물스러운 몸, 낯선 몸으로 태어난 이들에게 노동 공간이었고, 매니저 역시 “프렉을 장애 차별과 인종 차별로 대하지 않았다”(
엘라이 클레어, 76)라고 했어도 당대 지배적인 몸 규범으로 인해 수익이 발생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무대에서 (재)생산한 것은 장애와 인종에 바탕을 둔 차이였고, 이를 낯설어하는, 이를 낯선 것으로 반응하는 관객의 믿음이었다. 만약 이 배우들이 각자 태어난 마을에만 계속 머물렀다면, “장애인은 죄악”이자 “도덕을 결여”한 몸(엘라이 클레어, 82)이라 여기는 당대의 기독교 세계관에 따라 생존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무대를 통한 생존은 복잡한 이슈를 생산한다.

여러 복잡한 이슈 중 이 글의 주제로 제한해서 주목하는 이슈는 그 시절의 인간관이다. 관객은 배우의 외모를 통해 그들의 정신세계, 성품 등을 결정했다. 몸은 곧 정신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처럼, 괴물스러운 몸으로 태어난 것은 곧 죄악이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이 시기는 데카르트식의 근대 철학이 주류였다. 몸과 정신은 별개였고, 정신은 육체를 초월한다는 논의가 지배 담론이었다. 인간은 몸 없는 존재/기관이며, 생각하는 존재라서 몸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프렉쇼에 등장한 인물을 괴물로 대하며, 그의 정신과 내면도 ‘괴물’스러울 거라고 가정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근대적 인간이 가정하는 인간 범주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태도일 뿐이다.  

생각하는 존재와 다른 형태의 몸은 인간이 아니었다. 다른 말로 데카르트처럼 백인-(아마도 당대 의미에서) 비장애-(확인할 수는 없지만) 비트랜스-(역시나 확인할 수 없지만) 이성애- 남성만이 인간 범주에 속했다. 프렉쇼 무대의 배우를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소개하는 것은 그런 인식에서 문제될 게 없었다. 관음증을 윤리적으로 문제 삼는 사회라 해도 관음의 대상이 인간 범주에 들지 않을 때, 관음(증)을 문제 삼는 이는 드물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인간 범주의 협소함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 시절 중산층 백인 비장애 여성은 투표권과 재산권이 없었으며, 모든 것이 남성에게 귀속되어 있었다. 아내를 가르친다는 명목이라면 남편은 죽지 않을 만큼, 혹은 적절한 수준(누가 그 적절함을 잴 수 있을까?)에서 폭력을 행사해도 죄가 되지 않는 시대였다. 인간은 곧 남성이며, 괴물스럽지 않은, 혹은 혐오스럽지 않은 외모를 갖춘 남성이어야 했다. 하지만 괴물스럽지 않은 외모라고 해서 모든 남성이 규범적 남성이자, 인간인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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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2010-11-12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관련 자료들이 인상적이네요~ 글이 몹시 흥미롭습니다!

비로그인 2011-05-2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서양 모두 이전부터 임금이나 왕비, 귀족들 중에도 규범적이지 않은 남성들이 분명 있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