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당신은 환자이니 사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 사회 의료화, 젠더 규범화

 

   
 

신체에 문제가 있음. 표준 이하. 실업. (P. H. Physically handicapped. Substandard. Unemployed.) (Clare, 87)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개발 사업을 진행하며 국민을 고용할 기회를 창출했다. 장애인들 역시 취업하길 원했다. 하지만 장애인이 노동자로 등록하려고 행정 기관에 갔을 때, 돌아온 것은 위와 같은 글귀의 스탬프가 찍힌 종이였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소소한 연금을 받으며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Clare, 87). 말이 실업이지, ‘정부에서 고용하지 않겠음’ 혹은 ‘고용할 수 없음’이 더 정확한 의미리라. 근대적인 노동자는 백인-비장애-이성애-비트랜스-성인-남성이며, 이 범주에 부합하지 않는 몸은 생산성이 떨어지거나, 노동에 적합하지 않거나, ‘단순 노동’만이 적합하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장애인이 노동하기에 적합한 근대적 인간이 아니라는 인식은 달리 말해 노동을 할 수 없다는 뜻이며 ‘할 수 없다’라는 언설은 ‘해선 안 된다’라는 명령이자 ‘너의 몸은 그 자체로 무능하다’라는 명령이다. 비백인 여성과 남성, 백인 여성, 타국에서 온 이주민 역시 백인 남성과 동일한 노동을 해도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 없었다.

앞 장에서 얘기했듯, 이런 차별을 정당한 것으로 보증하는 데 의학은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근대 국민국가와 근대 의료 체계의 발달은 쌍생아라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우선하지 않는다. 서로 뒤엉킨 상태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가 서로의 합리적인 근거로 기능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서로의 윤리적 판단 기준이다. 국민국가에 이로운 행위는 의학이 건강하다고 판단한 것이며, 의학에서 인정한 건강하고 규범적인 몸은 국민국가에 이롭다. 그렇다면 이 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를 형성할까? 의학은 개개인의 일상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3-1. 의료화, 개괄

사회의 의료화와 의료 통제 관련 논의로 유명한 피터 콘래드(Peter Conrad)는 의료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의료화는 비의료적인 문제가 병고나 장애 같은 언어를 통해 의료 문제로 정의되고, 다뤄지는 일련의 과정을 기술한다. (209

 
   

 

즉 이전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냥 넘어갔던 문제가 의학에서 조사하고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하는 과정이 의료화다. 관련 예는 상당히 많다. 여성의 임신을 의학에서 관리 통제하면서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그 이후의 양육 과정은 모두 과학적 양육이라는 명목으로 의학에서 담당하고 있다. 월경 전후 증후군은 이미 너무 유명한 사례다. 콘래드는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질병 진단만을 의료화로 논했지만,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의료화의 전부는 아니다. 한때 나는 머릿결이 너무 상해, 괜찮다는 가게에서 두피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직원은 상한 두피를 치료(!)하려면 이런 성분, 저런 성분, 요런 성분 등 나로서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약품/성분을 함유한 제품(결국 비싼 샴푸와 린스)을 사용해야 한다며 권했다. 이 직원에게 의료전문가 자격증은 없을 가능성이 컸지만, 그 직원의 말은 과학적/의학적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객이 못 알아들을 용어는 전문성을 보장하는 데 필수다. 의료화는 이렇게 일상용어로, 제품 판매 전략으로 곳곳에 퍼져 있다.

근대적 의료화의 역사는 이미 많은 이들이 자세히 논의하고 있어 여기서는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짧게 살피고자 한다. 근대 의학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모든 질병은 계량화된/수치화된 ‘정상’ 범주에서 벗어날 때 발생하며, 병 터[病巢]를 파악하여 시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질병의 진행 상태를 계측하거나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젠더, 인종, 간치수와 같은 신체 기관의 현재 상태 등이 동일한 사람에겐 동일한 처방을 할 수 있다는 보편적 지식을 적용, 지향한다. 실험 조건이 동일할 경우 실험 결과 역시 동일하며, 따라서 그 지식은 보편적이며 중도적이라는 근대 과학의 주장을 밑절미 삼는다.

의학, 특히 외과 의학이 과학적 방법론을 채용한 것은 자기 분야의 권위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18세기 외과 의학은 학문이 아니라 하층 계급의 기술이었다. 외과 치료는 이발사나 목욕탕 주인이 시술했고, 이 능력은 도제 제도의 매뉴얼에 따른 습득이지 지식으로 해석되지 않았다. 하지만 외과 의학을 전공으로 삼은 이들은 자신의 지식과 계급을 귀족층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 방편으로 외과 의사는 근대적 남성성을 전유하며 자신들이 이상적인 남성의 역할 모델이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방법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했다(관련해서는 Doyle; 루인, 2009 참고). 매뉴얼에 따른 습득은 동일한 조건을 갖추면 동일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과학적 방법론의 다른 판본으로 해석되었다. 식민지 침략 전쟁 등으로 부상자가 상당한 당시의 상황에서 외과 의학은 생명을 구하는 의술이기도 했다.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이 그림의 시대적 맥락을 잘 설명하고 있는
나카노 교코의 책과 같이 읽으면 좋다. 짧은 분량이지만 외과 의술의 발달 과정에서 발생한 시체 도굴, 시체 매매와 살인 사건, 계급 차별 등을 다루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joan5781/1438825 2010.11.12. 접근
 


또한 근대 의학은 전문 지식으로 소비된다. 르네상스 이후의 의학 발달은 사실상 내과 의학의 발달이었다. 1518년 설립된 의과 대학은 내과 의학을 다뤘고, 내과 의학은 전문적인 대학 교육으로서, 왕립학회 회원으로서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학문이라는 이미지였다. 이에 반해 외과 의학은 전문 지식이 아니라 도제 기술이란 점에서 지식이란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고, 전문성을 의심받았다. 그래서 외과 의학을 전공 삼은 이들은 꾸준히 전문대학을 설립하고, 대학 교육을 받아야만 해당 외과 의학 지식을 습득하고, 의과 의술을 시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나갔다. 지식의 독점은 지식의 권력화로 변했고, 권위 획득으로 이어졌다. 지식의 권력화는 질병을 환자에게서 분리하여 의사만이 개입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꿨다. 의학 지식의 전문화는 의사만이 환자의 정확한 증상을 알 수 있고 의사가 보증해야만 질병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질병을 겪는 사람은 환자지만, 질병을 아는 사람은 의사인 셈이다. 어떤 일의 당사자가 그 일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의료 지식의 전문화는 병고를 겪는 당사자를 그 병에서 배제했다. 모든 개인은 의사가 보증하는 정도에서 건강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서구의 근대 의학, 특히 근대 외과 의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에는 남성성의 변화도 있지만, 근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발달 및 팽창을 빼놓을 수 없다. 프렉쇼를 설명하는 앞의 글에서, 괴물스러운 몸을 가진 존재로 이국에서 온 원시인, 야만인을 소개할 수 있었다는 말은 곧 타국을 침략해서 그곳의 주민을 납치해 데려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납치한 타국의 개인이 서구 유럽의 규범적 남성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의학의 진단과 증명서가 필요했다. 가시적 차이도 중요했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관이 다른지, 즉 두개골 형태가 어떻게 다른지와 같은 ‘전문’적인 정보(혹은 과학이란 이름의 사기)가 함께할 때, 차이는 제 권위를 확보할 수 있다. 

 

영화 <300>의 한 장면.
고대 그리스 남성 레오니다스의 근육질이면서 이성적인 이미지와 동양에서 온 크세르크세스의 여성적이고 감정적인 이미지 대비는 서구 식민주의/제국주의가 서구와 동양을 바라보는 방식의 전형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비판했듯,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레오니다스가 죽는 모습을 예수의 죽음과 겹치도록 연출하여 서구의 침략을 미화하고, 인종 혐오와 젠더 혐오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미지 출처: http://redmonkey.ibbun.com/tt/544 2010.11.16. 접근
 



이러한 서구의 식민지 침략을 침략이 아닌 신의 뜻을 전하는 선교로 포장하기 위해 (물론 그들은 정말 선교라고 믿었겠지만) 언제나 선교사가 동원되었다. 서구 기독교식의, 서구 백인 중심의 문화를 전파한다는 소명 의식은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했다. 그것은 ‘이국의 미개한 관습’을 타파하고 ‘수준 높은’ 종교와 문명을 전하는 실천이었다. 이것을 침략 행위라고 믿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식민지 침략에 종교만 동행한 것은 아니었다. 의학 역시 빠질 수 없었다. 의학은 항해하고 탐험하는 자국민을 치료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도착한 곳의 주민들에게 자신의 근대성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른 말로 근대 의료화는 근대 식민화와 동의어다.
  

 

샬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 1847년 판(2판)에 실린 삽화.
존은 제인에게 자기와 결혼해서 함께 인도로 선교를 가자고 제안한다. 이들에게 선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성스러운 행동이지 식민지 침략이 아니었다.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P369b.jpg 2010.11.16. 접근 



이것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조하며 같은 민족이라는 수사를 구사했음에도 일본 영토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한국 영토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달리 대한 것을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역시 조선을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의료 기술을 활용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두법(牛痘法)을 들 수 있다(신동원 2001). 천연두를 치료하기 위한 우두법 시행은 당시 조선의 국가적 사업이었기에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일본은 이때 자신들의 우두법을 조선에 소개했고, 우두법 확산을 적극 도왔다. 이를 통해 일본은 조선에 “‘근대화한’ 일본의 모습을 심어”줄 수 있었고,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고 한다(신동원 2001, 343). 이것은 일본만의 전략이 아니다. 식민지 지배를 위해 군사력으로 강압하기도 했지만 선교와 의료 기술을 통해 주민들의 호의를 얻는 것도 필요했다. 물론 이후 식민지 지배가 견고해지면서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의료 정책을 달리했고, 핵심 기술과 업무는 지배국에서 관장했다.  


 

칠판에는 “colonialism(식민주의)”라고 적혀 있지만, 이것을 “cronyism"(편파, 친구 편들기)”으로 발음하는 것을 비꼰 카툰.
이미지 출처: http://www.cartoonstock.com/directory/c/colonialism.asp 2010.11.16. 접근
 


이처럼 의료화는 단순한 질병 치료로 끝나지 않는다. 의료화는 언제나 정치 경제의 이슈로서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고, 국민과 ‘차이’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1-05-2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줄기세포 연구가 정부에 의해 차별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