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판매 여성의 자조, 연대의 준거틀

 

여성의 성판매 행위에 성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입장은 이제까지 남성들의 생산 노동을 신성화했던 역사를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노동의 영역은 일의 사회적, 도덕적 가치의 의미가 중시된 맥락이 있다. 이들의 노동은 가장으로서, 국민으로서, 가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땀방울’로 의미화되었다.

김은실(1999)은 한국의 근대화 프로젝트가 경제 발전을 통한 국가 건설을 위해 빠른 시간 내에 노동자들을 근대적인 개별 노동자나 계층적 범주라기보다는 ‘생산성 있는 민족주의적 집합체’로 만들어내야 했다고 지적한다. 이때 ‘일’의 개념은 노동자와 사업주의 계약 관계를 통한 거래라기보다는 국가와 가족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관계로서 형성된다. 특히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동 캠페인은 고된 노동을 국가 건설과 국가 안보와 동일시하면서 계층적 이해를 국가적 이해와 같은 것으로 만든다(김현미, 2000: 40).

특히 김현미(2000)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적 노동을 ‘보상을 바라지 않는 헌신’의 개념으로 규정해왔다고 읽어낸다. 이는 초남성화된 개발 국가에서 사회는 수동적이고 무력한 지배의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노동의 여성적 속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한 여성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성의 노동권을 확보하는 일은 민족주의적 집단주의가 여성에게 부여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의 개념을 벗어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긴 아직도 나이 많은 기지촌의 여성들은 자신을 ‘외화벌이 역군’으로 명명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외화벌이 역군’ 서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단속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거나 장사가 잘되지 않는다는 한탄 속에서이다.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 인정은 이들 언니들이 일상을 지속하는 중요한 동력이 되는 것 같다.

노동, 혹은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의미에 대해 이런 역사적 맥락을 담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성노동을 수행하는 성판매 여성들을 성노동자라고 호명하는 정치학이 어떤 희망적인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와 같은 의문을 던지는 데는 깁슨-그래함(Gibson-Graham, 2006)이 에서 제시한 계급 개념이 시사점을 준다. 이들은 헤게모니적인 담론의 해체와 다양한 범주의 정체성을 제시하고 개인들이 ‘차이’를 드러내는 개방적인 공간을 형성하는 것을 실천적 결론으로 제시했다.  



 



깁슨-그래함은 노동 시장에 여성이 유입되고 파트타임과 임시직이 증가하면서 노동을 정체성의 기본적인 근간으로 경험하지 않는 노동 인구가 생겼다는 시대적 특성에 주목한다. 여성의 프롤레타리아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과 관련된 노동 경험과 의식 모두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의문시한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 담론이 쇠퇴하는 것을 계급의 정치적 관련 정도가 변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에 깁슨-그래함은 사회를 중층적인 계급 형태를 가진 복합적인 분절체(disunity)로 이해해야 하며, 원시 공동체,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코뮤니즘적 계급 과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함을 지적하였다. 이 사회를 복잡하고 불균질한 것으로 이해하고 계급의 재개념화를 제안하는 것이다.

계급을 본질 없는 그저 과정으로 호명하는 이들의 논의 속에서는 실재 성판매 여성들의 노동 경험, 일터의 의미가 (그것이 ‘미국’이든, ‘미군의 와이프’든) 자신이 꿈꾸는 희망적 미래의 상태와 충돌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계급 변형 프로젝트는 언제나 가능하고, 필연적으로 사회 격변과 패권적 이행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은 한순간에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계급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주체의 의식 고양과는 관련이 없다. 사회적 그룹화보다 중층적 사회 과정 이론화가 계급 분석의 본질과 목적을 함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노동자라는 호명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굳이 깁슨-그래함의 계급 과정 개념을 가져오는 이유는 지난 연재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그녀들의 삶이 조금 더 다각적으로 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계급 과정 개념은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들의 삶의 언어와 방식에 대해 이해 가능한 맥락을 제공해준다. 업주에게 2차 수입을 5 대 5로 ‘착취’당하면서도 고용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고, 은행이 아닌 일수업자에게 고리의 돈을 빌릴 때도 그럴 만하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성판매 여성들의 노동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계급 과정 안에 있지만, 남편이나 남자친구와 가족을 이루고 사는 여성들은 가부장적 파트너와 봉건적 계급 과정에 놓여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들이 ‘아가씨 모임’을 꾸려 자본주의에 대항적인 정보를 유통시킨다면, 이들의 일상적 자조 모임은 코뮤니즘적 과정에 있는 것이다. 문화, 가족, 교제 실천이 이들의 착취 존재 조건을 제공한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기둥서방 혹은 미군의 애인으로서, 집결지 내 성판매자로서, 집결지 거주민으로서, 소비자로서, 때로는 피해를 입은 여성으로서 중층 결정된 이들의 존재를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노동 현장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깁슨-그래함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노동자의 아내가 응당 ‘노동자 계급’으로 설명되었던 것처럼, 타인들과의 관계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는 여성들의 서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이들은 계급의 개념을 유동적이며 다층적인 정체성으로 정의하면서 범주를 만드는 기준의 해체가 주요한 과제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이들은 자본주의 내에 존재하는 광범한 비자본주의적 공간에 주목하고 있다. ‘가정’은 그러므로 계급 과정의 주요한 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급 과정이 설명만 된다면 그들은 착취당해도 되는가? 그들의 노동 조건, 삶의 조건은 차별에 맞서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가? 사회 변혁을 상상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어디에 준거틀을 둘 것인가? 깁슨-그래함은 라클라우(1977)와 탐슨(1963)의 설명 방식에 주목한다. 이들이 계급을 종종 일터, 커뮤니티, 로컬, 국민 국가 장에서 투쟁의 결과로 구성된 사회적 그룹으로 설명했다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장소가 실제 계급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드러난다.

내가 활동하던 단체에서는 성판매 여성들을 ‘동네 사람’으로 명명하면서 이들과 일종의 ‘동네 접수하기 운동’을 실천한 바 있다. 집결지에 평균 10년 이상씩 오래 거주한 이들과 함께 자신의 동네에 대한 물리적, 인식론적 지도를 그려보는 작업이 그 시작이었다. 어느 목욕탕을 이용하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사는지부터 어느 골목은 어떻게 변했는지까지 다양한 질문과 답을 만들어보았다. 함께 동사무소에 가서 긴급 의료비를 신청해보았고, 동네 가게에 일부러 들러보기도 했다. 또한 이 동네에 오래 산 이들만이 알고 있는 동네 정보를 모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느 사진관에 가면 손바닥만 한 사진을 근사한 액자에 담아 주는지, 지구대의 어떤 경찰이 ‘착한 사람’인지, 일수를 어떻게 갚아나가는 것이 가장 손해가 덜한지, 어느 돼지갈비 집이 외상을 얼마까지 허용해주는지 등을 모아 공유했다. 이들에게 이 동네는 ‘튀는 외모’의 자신을 주시하지 않는 ‘안전한’ 곳이었다. 트랜스젠더 언니들이 옷가게에서 ‘여자 옷’을 골라도 전혀 이상한 시선을 보내지 않고, 이 옷 저 옷을 권해주는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동네를 매핑(mapping)하는 작업은 이들 개인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림을 그려보는 작업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각 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누구와 연대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는 자신의 노동자 계급 의식을 획득하여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을 도모하는 단선적인 정체성 운동과 맥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 동네 거주민으로서 정체화하면 당장 닥친 재개발 이슈에 대해 집결지 구멍가게 상인들이나 구두방 아저씨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을 수 있다. 물론 비가 많이 와서 골목의 하수도가 넘칠 것 같거나 눈이 많이 와서 골목길을 치우는 일 등의 사안들에 대해 이미 이들은 함께 모여 의논하고 행동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거주민’으로 정체화한다고 갑자기 ‘연대’하는 종류의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이 이들의 다채로운 삶을 조망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런 면에서 집결지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실험, 실천들이 이곳에, 이곳의 여성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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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은실, “한국 근대화 프로젝트의 문화논리와 가부장성”, <당대비평> 가을호, 1999.
김현미, “한국의 근대성과 여성의 노동권”, <한국여성학> 제16권 1호, 2000.
Laclau, Politics and Ideology in Marxist Theory. London: New Left Books, E. 1977.
Thompson,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New York: Vintage, E. P.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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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2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거주민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온전한 가정의 여자로 미안한 감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