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성노동자 정체성에 대한 회의

 

6-3. 유연한 체제, '불성실한 언니들'

내가 활동하던 성매매 집결지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언니들이 함께 섞여 일하고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언니부터 갓 스물이 넘은 언니까지, 손님들의 취향이 워낙 다양해서 나이가 많은 언니와 나이가 어린 언니들은 한 가게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 ‘이 일’을 한 기간, 이 동네에서 산 햇수의 차이만큼, 이 언니들은 너무나 다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은 스스로를 ‘화류계’라고 칭하며 “나는 보통의 여인네들과는 뼛속부터 다른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언니들은 입만 열면 좋은 시절, 돈이 많던 시절, 손님이 많던 시절, 인기가 많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배운 일이 이것뿐이라 아직 이 동네에 남게 되었다”며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쉰다. 이 언니들은 ‘나이가 많아 인기가 덜하니 젊은 것들보다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무기로 삼는다. “성실함만큼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활동가인 나에게 “너희같이 순결한 애들은”이라고 운을 떼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언니들은 ‘너희’라는 말을 많이 쓰면서 나와 언니를 습관적으로 분리했다.

반면 나이가 어린 언니들은 ‘잠수를 타서’ 연락이 통 안 되는 언니들이 비일비재하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에게 그동안 뭐했는지 물으면 "좋은 남자 만나서 ‘잠깐’ 살림 차렸다"고 대답하기도 하고, "‘잠깐’ 바람 쐬고 돌아왔다"며 까맣게 탄 피부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잠깐’ 쉬었다는 언니, ‘잠깐’ 다른 일을 했다는 언니, ‘잠깐’ 집에 갔다 왔다고 말하는 언니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불성실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 언니들은 스스로를 ‘화류계’라고 칭한 적이 없다. 언니들은 나이가 비슷한 나를 ‘우리’로 묶는 경우가 많았다. 이 언니들은 나이가 많은 언니들을 아직도 이 장사를 그만두지 못한 ‘루저’로 폄하한다.

젊은 언니들의 경우, 자신들의 불성실함을 부정적으로 읽어내는 나이 많은 언니들에게 “노동 사회에서 탈출할 것인가, 노동에 헌신할 것인가”라는 홀거 하이데의 문장을 인용해서 반문할 수 있을 것 같다. 홀거 하이데는 <노동 사회에서 벗어나기>에서 노동 사회로부터의 탈출구를 모색하며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은 모든 인간 문명의 토대이다”라는 말과 앙드레 고르의 “오늘날 우리가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다”는 말을 인용한다. 인간의 ‘노동’은 인간의 ‘삶 그 자체’라는 맥락에서 존귀한 것으로 다루어지기도 했으나, 자본주의 시대 ‘노동’ 자체가 이미 ‘자본화’되어 있다는 맥락에서는 노동 역시 극복해야 하는 것이므로, 두 문장은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홀거 하이데는 “노동할 권리”라는 슬로건이 내세워진 사회에서 인간은 노동 중독증이라는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고 할 때 자본의 입장에서는 통제의 새로운 형태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연의 통제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 구조의 통제까지도 가능케 하는 ‘하이퍼 통제 사회’로의 발전 경향에 대해 경고를 한다.

매일 입만 열면 “돈, 돈, 돈, 돈” 하는 언니들이지만 저렇게 자주 잠수를 타는 것을 보면 “돈, 돈, 돈, 돈”은 그저 입버릇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니들의 수입은 대부분 나와 같은 활동가의 수입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돈이 그렇게 모자라나?' 싶은 순간도 많다. 물론 일수업자에게 갚아야 하는 채무 등 이곳저곳 나가는 돈이 일단 많아서 돈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언니들의 지출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기둥서방, 애인들을 챙기는 데 있다. 봄이면 바람막이 점퍼, 여름이면 한약, 가을이면 청바지, 겨울이면 거위털 점퍼. 월세도 언니의 몫, 생활비도 언니의 몫이다. 돈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예민하게 날을 세우고 있는 언니들이지만 이들과의 친밀함에서는 경제 문제를 배제하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은 세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라고 말해주는 사람에게 베푸는 일은 자기 위안일 수도 있고, 때로는 투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언니들의 ‘불성실함’을 시대의 변화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피자 회사의 매장에서 5년 넘게 일해 점장이 된 친구는 스스로를 ‘피자 전문가’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이 회사 매장 일이 특별히 싫지 않지만” 늘 다른 회사의 구인 정보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왜 스스로 피자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물은 적이 있는데, 피자는 “오늘 알바를 시작한 초짜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매장에서 주문된 음식을 요리한다는 것은, 이미 조리된 소스들을 다듬어진 토핑들에 버무려 피자 도우 위에 올리는 단순 작업, 매뉴얼 북을 따라 간단한 조립을 하는 과정 이상이 아니다. 매번 바뀌는 메뉴 탓이기도 했고, 모든 매장에서 같은 맛을 보장하고자 하는 본사의 평준화 전략이기도 해서 피자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 필요도, 외울 필요도 없다고 한다. 간을 볼 필요도 없고, 내가 만든 피자가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 일 해 볼까, 저 일 해 볼까, 묻는 것이 버릇인 친구에게 부모는 “한 우물 파지 못하고 이 일 저 일 기웃거린다”며 핀잔을 한다고 한다.

심지어 시민 단체에서 4년에 걸쳐 활동을 했던 나의 경험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전 세대 선배들은 20년 넘게 한 단체에서 ‘헌신’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내 동료들은 아무도 자신이 이 단체에서 20년 넘게 활동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우리는 활동 시간 중 일지를 쓰고, 매뉴얼 북을 만드느라 보낸 시간이 많았다. 이것은 예산을 분배하는 구청에서 요구한 것이기도 했지만, ‘민주적 소통’의 이름으로 우리 사이에서 합의된 바이기도 했다. 내가 만든 매뉴얼 북과 일지를 읽는다면 누구든 내가 하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내부 자료인 매뉴얼 북에는 활동 지역의 풍광의 변화, 내담자 여성들과의 관계 맺음의 시작, 중간, 끝, 성향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사실 매뉴얼 북에 기록된 활동 기록은 ‘나’와 ‘그녀’의 관계 맺음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관계의 시작을 모방하거나 대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일을 그만두고 누군가가 그 일을 이어가야 한다면 그 활동가와 내담자 여성은 다시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선배 활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조직에서 평생의 헌신을 약속할 자신은 없었다. 내가 만드는 매뉴얼 북은 (마치 피자 매장의 매뉴얼 북처럼) 누구든 그 관계를 이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지속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라는 위안을 주었다.  

 



내 친구들의 노동, 나의 노동과 언니들의 노동은 많이 다르지만, 우리 모두 ‘젊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는 꽤 비슷하다.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서 리처드 세넷은 이런 흐름을 체제의 유연화에 따른 변화로 읽는다. 세넷은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을 새롭게 조직된 근무 시간, 노동 경력으로 설명한다. 그 같은 변화의 가장 구체적인 징후로 “장기(long term)는 안 돼”라는 표어가 있다. 한두 개 직장에서 한 걸음씩 진급하는 전통적인 직업은 이제 퇴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평생 한 가지 기술만으로 먹고 사는 것도 어려워졌다. 물론 성매매는 원래 여성의 노동 경험이 자원화되지 않는 장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라서 여성들이 자신의 경력을 자원화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 낙인에 의해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낡은 여자’가 된다. 하지만 유연한 체계 속에서 이 직장, 저 직장을 떠돌다가, 이 직업, 저 직업을 가져보다가, 어떤 노동 경험도 경력으로 포장하지 못한 채 다시 집결지로 들어오는 젊은 언니들의 시대는, 신자유주의 시대 수평적 하향 이동을 하는 개인들이 사는 시대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피자 매장에서 일한 경험으로 스스로를 ‘피자 전문가’로 의미화하지 않고, 피자 만드는 일을 자신의 특별한 경력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언니들은 텔레마케터로 일한 경험으로 자신을 ‘텔레마케터 노동자’라고 정의하지 않고,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자신을 ‘성매매 전문가’나 ‘성노동자’라고 정의하지는 않는다. 단기, 계약, 임시 노동이 보편화된 세상 속에서 아무도 장기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단기적 사회 속에서, 그 중에서도 지우고 싶은 부정적 스펙이 될 것이 뻔한 성매매를 하며 사는 언니들의 삶의 태도는 나이 많은 언니들이 보기에 불성실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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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22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육체적노동, 단순노동, 보수가 만족스럽지않은 노동에 대해서는 직업이라기 보다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당연히 오래하려고도 생각하지 않지요. 요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일에 임하는 태도가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것 같아요.